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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6호> MB정부의 공공기관 죽이기, 당장 멈춰라

 

MB정부의 공공기관 죽이기, 당장 멈춰라

 

 

2월 11일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 소관 연구기관장들이 성과연봉제 도입 논의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작년 12월 27일 기초기술연구회 정기이사회에서 소관 연구기관에 대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 도입(안)’을 의결한지 꼭 한 달 보름만이다.

 

그로부터 열하루 뒤인 2월 22일 출연연구기관들은 단협해지 폭탄을 맞게 된다. 과학기술정보원구원, 한의학연구원, 해양연구원, 핵융합연구소, 극지연구소, 항공우주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등 7곳에 같은 교과부 산하 기관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광주과학기술원도 합류해 2월 28일 현재 총 9곳이다. 이쯤 되면 2009년의 판박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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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http://www.ehistory.go.kr)

 

2009년 무더기 단협해지

 

이번 무더기 단협해지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9년은 공공기관노조들에게는 그야말로 단협해지 대응투쟁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2월 9일 노동연구원을 시작으로 철도, 발전, 가스, 국민연금 등으로 이어졌고, 직업능력개발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여성정책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등 연구기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단협해지 행렬을 이명박 정권의 노조 죽이기 기조가 진두지휘 하고 있었음은 이미 여러 경로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이 행렬이 시작되기 직전 순진하게 단체협약 갱신에 서명한 공공기관장들이 있었으니 바로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기관들이었다. 노동조합 체계상 보자면, 철도, 발전, 가스 등 2009년 단협해지 대응투쟁의 선두주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공공운수노조(준) 산하의 대규모 소산별노조인 공공연구노조 소속 연구기관들이다. 이 기관들은 2009년 1월 6일, 이전 단체협약을 그대로 갱신한다는 내용으로 공공연구노조와 산별협약을 체결했던 것.

 

이들은 그 이후 다른 공공기관들이 줄줄이 단협을 해지하면서 실적을 올리는 것을 보며 몹시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모여서 몇 차례 대책회의도 열고 하더니 “뭔가 시늉이라도 보이자”는 의기투합을 이뤘는지 2009년 말 급기야 일제히 보충교섭을 요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노조 깨기로 악명이 높은 노무법인을 고용해 교섭권을 통째로 위임했는데, 이 노무법인은 한 기관에서 교섭 1회당 부가세 6만 원 포함 66만 원을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초기술연구회 소관 9개 기관에서 공공연구노조에 보충교섭을 요청했으니 노무법인 ‘조은’은 교섭을 한차례 진행하면 600만 원을 챙기는 셈이다. 공공기관에서 이렇게 쓰는 돈이 누구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인지 한번 생각들 해보시라.

 

공공연구노조는 “오직 단협 후퇴와 노조 무력화 목적으로 고용된 노무법인에 교섭권을 통째로 위임한 상태로는 교섭 불가”라는 입장을 전달했고, 그렇게 기초기술연구회 소관 기관장들은 어떤 가시적 성과도 내지 못한 채 2011년을 맞았다.

 

단협해지 도원결의

 

다시 2011년 2월 11일로 돌아가자. 정확히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여러 경로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 자리에서 단협해지 날짜와 시간을 맞춘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이 자리를 주도했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노조원에 대한 불이익으로 한 해에만 조합원 70명이 탈퇴한 점이나 현재 천막농성중인 비정규직 분회에 대한 탄압으로 보건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2월 22일 17시로 디데이를 맞췄다는 정보가 하루 전 노조에 입수됐고, 실제로 22일 16시부터 각 사업장 노조로 단협해지 통보 공문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현재 공공연구노조 소속 기초기술연구회 소관기관 중에서는 과학기술연구원만이 통보를 받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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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레디앙) 

 

2009년과 같은 점, 다른 점

 

공공기관에 시장주의 논리를 확대적용 하려던 이명박 정권의 계획이 2008년 촛불정국으로 좌초를 겪자 똑같은 내용을 이름만 바꿔 들고 나온 게 이른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이다.

 

기관을 통폐합하고, 감사원을 통해 공공기관장들을 압박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실적경쟁에 줄 세웠던 모든 일들이 ‘선진화’란 이름으로 지난 2년간 공공기관에 자행됐다. 그리고 지금 정부는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선진화’로 공공기관 선진화의 마침표를 찍으려 하고 있다.

 

2008년 생명공학연구원과 카이스트의 강제통합부터 출연연구기관 단일법인화까지 이명박 정부가 집권초기부터 추진하고자 했던 출연연구기관 구조개편은 과학기술계의 반발과 공공연구노조의 투쟁으로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다. 기만적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의 화룡점정을 위해 연구기관 노조들에 대한 무력화는 반드시 필요한 수순. 이제 노조의 날개를 잘랐으니 연구기관에 성과연봉제와 이진아웃제를 도입하는 한편, ‘미완의 선진화’로 남았던 출연연구기관 구조개편을 밀어붙일 것이다.

 

이번 사태는 산별협약에 대한 단협해지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올 5월 공공부문 최대 규모의 산별노조가 될 (가칭)공공운수노조가 출범을 예고하고 있고 공공연구노조는 이의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될 소산별노조다.

 

얼마 전 한국동서발전(주)이 발전산업노조의 5개 본부 중 하나인 동서발전본부를 기업별노조로 전환시키면서 민주노총을 탈퇴시키려 한 노조파괴 공작을 상기하자. 사업장 단위의 노조탄압을 넘어 더 크고 강력한 노조로 뭉치기 전에 식물노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권의 의중이 숨어있다.

 

공공기관 지배구조 바꾸는 전면전 할 때

 

정부가 이번 사태를 직접 진두지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하지도 않다. 허준영 같은 이에게 기관장 평가 우수등급을 주는 정부 하에서 기관장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기관장이 노조위원장에게 “열심히들 투쟁 해봐라, 나도 노조탄압해서 허준영처럼 점수 좀 따보자”라고 빈정거렸다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

 

이번 단협해지는 “과학계에서도 기관장이 되려면 선거캠프 참여가 가장 빠른 길”이라는 비난 속에 낙하산으로 내려앉았던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이명박에게 보은하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9개 기관이 끝이 아니다. 올해 대부분의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상황에서 한 번도 이명박에게 점수를 따지 못한 기관장들이 호시탐탐 실적 쌓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협 죽이기 행렬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곡된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를 민주화하지 못한다면 공공기관에 ‘공공성’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하다. 이제 공공기관 노사 간의 이 반복되는 싸움의 고리를 끊자.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싸움이 필요한 때다.●

 

- 오승희 (공공운수노조(준) 조직국장)

 

※ <프레시안>에 실린 글을 글쓴이의 허락을 받아 옮겼습니다.

 

(2011년 3월 3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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