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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을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나에게 빈집은,
놀고 먹고 자고 쉬고 노래하고 술마시고 이야기하는 공간이면서, 그렇기에
일상이 곧 현장이며 투쟁이 시작되는 공간이라는 것을 매번 일깨워주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내 거칠고 공격적인 말투가 시험대에 올라 스스로 부끄러운 경우도 많고
장투자들, 손님들의 훌륭한 언행을 보며 정말 많이 배웁니다.
내가 말 하는 스타일이 원래 이렇지 아니한데- 왜 그러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이 많은 친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고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써내려간 이틀 전의 일기를 좀 정리해서 써 봅니다.
최근 빈집의 모습들에 대한  내 맘대로의 진단과 평가와 대안들이 담겨 있으므로
이것이 다 구라라고 말하거나, 이것은 너무도 독선적인 판단이라면
충분히 제가 고쳐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일단 던져보고자 합니다.
새벽 5시까지, 잠도 못자겠고- 머릿 속이 복잡했었더랬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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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일주일 후면, 빈집이 1년이 된다.
한 해동안 무수한 인연들을 만들었고 엄청난 음식과 술을 만들어 먹어치웠으며
개, 고냔이를 비롯해 많은 식구들이 오고 갔다.
엄청난 양의 일과 많은 이야기들.
'빈집의 1년'을 떠올리기만 해도, 아마 각자의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단어와 문장들의 조합이 횡단할 것이다.
요동치는 감정의 흐름들도.

빈집의 저런 많은 것들에 대해 한 해를 요약해서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딱 한 가지, 최근 구체적으로 쟁점이 되는 일상의 한 부분을 말하고 싶다.

빈 '집'은 집인가.
우리가 사는/ 먹고 자는 '집'은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
사실 나는 빈집에 기거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가-'라는 앞 문장의 주어에서 빠져야 하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아닌 것 같고
암튼, 꼭 사는 사람만 말할 수 있는 건 아닐테니.



따져보자. 누가 사나.

지음, 아규, 창균, 지각생, 정란.. 말랴, 짱돌, 러니.. 네오, 공룡, 지선, 현명, 복돌이, 동글이, 멍니, 잇을.

그 외 숱한 많은 친구들이 있다.

일단 현재 상주자 12명에 개 1마리, 고냥이 3마리.


최근 '집'과 장투자들 사이의 공동의 논의 거리는,

1. 집안 일의 분담- 칠판에 집안일 내역과 한 사람 등을 적으려 노력 중이다. 달력도 있다.

2. 아랫집과 윗집의 소통 - 밥이나 술 같이 먹는 것 말고도, 윗집에 누가 살 것이며 아랫집과 윗집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들

3. 서로의 마음, 생각 나누기 - 따따땃, 숟가락, 영화보기 등

4. 공간과 생활의 새로운 구성 - 빈집 확장 논의. 빈 가게, 빈집3 등.


이거이 서로 다 얽혀 있는 문제임에도 따로 떼어서 이야기하는 게 효율적일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내 눈에는

이 중 1,2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3도 뭔가 편치 않다.

윗집과 아랫집은, 나만 그런가? 묘한 긴장과 갈등 관계에 놓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공격적 발언과

그에 대한 회피, 혹은 대응에서부터

또, 집안일의 분담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다고 느껴지며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즉 육체적 물리적 노동의 증가뿐 아니라 감정 노동도 증가하며,

그것을 분명히 '노동'으로 느끼며

이를 조절하기 위한 시도들은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빈집이 게스트 하우스로서 많은 행사와 손님들과 함께 하는 것도 맞물려

많은 즐거웠던 일들이 '노동'으로 되어가고,

몇몇 사람들에게 그 노동이 집중된다는 판단 하에

칠판과 달력을 만들었다.

숨어있는 일과 노동들을 드러나게 하자는 취지에서... 그러나

칠판과 달력은 점차 손이 덜 가 비어가고 있고

밥자리와 술자리가 분리되고,

땃땃땃 자리는 물론 따사롭고 소박하지만

때로 서로를 느끼고 이야기를 듣는 데 아직 미숙한 것 같다.

불을 켜고 끄는 일에서부터 땃땃땃을 준비하고 발표하고 진행하는 시간들.

이건 따따땃의 문제는 전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가?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가?



'집'에서 생활하는 방식은 너무도 다양하며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노동 공간으로/ 공부와 재생산을 위한 공간으로...

이것들이 혼합/중첩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분류가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빈집은 그때 그때 이 모든 활동들과 기능들이 자유롭게 전환되고

또한 공존할 수 있도록 기획했던 것 같다. 맞나?

A가 공부를 하면 B는 노래하고 C는 술을 마시며

D는 잠을 자고 E는 동물들과 놀고 F는 음식을 하고 G는 방에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

그러나 이들이 한 공간에서 모두 서로에게 영향받지 않고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공허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활동들은

다음과 같이 상호 영향을 줄 수 있다.


A는 B가 노래하고 C가 술마시고... 하는 활동에 의해 공부하기 힘들거나

특정 형태의, 특정 방식으로 공부하게 될 것이며 이는 , B, C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A보다 B, C가

영향을 덜 받는 경향이 있다.

F는 음식을 적어도  A, B, C, E, G가 먹을 수 있도록, 그 후에 올지도 모를

잠재적 참여자들을 고려하며 음식을 한다. B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이는 ,F에게 기쁨을 줄 것이며

G가 나와서 도와준다면 일은 수월해질 것이다.

B, C, D, E, G 는 다시 말해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빈집을 활용하는 경우

특정 배치 하에서, 이를테면, F와의 계약 혹은 상호 인정(암묵적으로 설거지에 가담한다든지, 다른 노동을 할 것이라는/했다는) 속에서 걸림 없이 먹을 수 있고,

지정된 방에서 잠으로서 타인과 별 영향을 주고 받지 않고 잘 수 있으며,

휴식도 누군가의 제어를 받거나 간섭 없이 취할 수 있다.


집을 노동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

맥주를 담그거나 화장품을 만들거나 번역 알바를 하거나

사무적 일들을 처리하는 공간이 되면(그렇다고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특별 노동)

적절한 배치를 고안해야 한다.

맥주를 담는 일은 부엌, 마루를 사용하며 많은 사람들이 공동노동을 한다.

다른 기능의 활동들과 조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별 무리 없이, 조율을 많이 의식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고 본다.

화장품 만들기는 좀 덜 공간과 시간과 인력이 든다. 다른 활동들과 곧잘 병행된다.

번역 알바를 하기에 아랫집 마루는 부적절하다.

집중적으로 혼자서 노동을 하기에는 주위가 산만하고 다른 기능들과 조화되기 힘들다.

더욱이 그런 신체적 리듬으로는 아랫집 마루에서 벌어지는 다종다양한 일과들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오히려 감정 노동에 시달릴 수 있다.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공부를 하는 데에도 마찬가지 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랫집(빈집1)이 윗집(빈집2)을 구상하고 계획할 때

아랫집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기 힘들었던 기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었다.

조용히 혼자 블로그질도 하고, 조용히 공부도 하고, 사무실도 필요하고,

아랫집의 손님방이 그 기능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손님이 있을 때는 손님 때문에 못 쓰고, 없으면 커플들 공간으로 배려하기 때문에 비커플인 장투자들이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하여

윗집은 잠잘 공간도 부족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랫집은 손님도 드나들고 즐겁게 놀고 공동 생활을 구성하는 곳으로 만들되,

윗집을 누구든지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공부하거나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래서 왁자지껄 즐거운 아랫집, 조용한 윗집. 이랬다.


그러나 이 기획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리고 노동 분담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윗집이 생겼고 우리는 두 집을 오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

노동 분담에 대해 윗집과 아랫집 사이에 분할이 생기고,

윗집과 아랫집이 기능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머무르는 장투자들에 따라 분리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윗집이 생겨 아랫집의 생활도 달라져야 하는데, 왠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윗집과 아랫집을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에 따라,

그때 그때 재배치하면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윗집의 리듬, 아랫집의 리듬이 다르게 구성되고

각 공간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이를 통합하려는 시도 속에서

부하를 겪거나 서운함을 느끼는 방식으로 서로 부침을 겪고 있지 않았나?


윗집, 아랫집이 공간적인 분할,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리듬의 분리를

굳이 극복하고 하나의 공간일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편함은 뭔가.


이런 애매성 속에서 단순히 빈집2에 대한 재정 분리,

독립을 하게 된다면 윗집과 아랫집의 기능과 활동들은

어떻게 확장될까?


1. 빈집2가 빈집1의 기능을 보완, 확장하는 형태로 가는 것(처음의 기획대로)

2. 빈집 2를 새로운 모델로서 모든 기능이 가능한 자립적 공간이 되게 함과 동시에

  빈집1 역시 모든 기능이 가능한 자립적 공간이 되도록 좀더 머리를 굴려본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나?)

3. 지금의 기능적, 공간적 분리를 인정하고 주기적으로 혹은 필요에 따라 장투자들이 로테이션 하는 것.


이 셋의 모델이 내가 생각한 전부다.

더 많은 안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안들을 친구들이 많이 제안해주었으면 좋겠다.

이건 빈집1이나 2의 장투자들의 공동 과제가 아닌가 싶다.

빈집2에서의 생활과 기능들이 어떻게 조율되고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번역 노동을 하는 네오도 도서관이나 다른 공부 공간

(일정 정도의 긴장감이 있고 관계 속에서 소통하면서 공부할)

이  필요해진다는 말을 들으면서,

또 내가 빈집2에 가는 게 더 편치 않아지는 과정 속에서도

뭔가 변화를 시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믿는다.

오해 없었으면 하는 것은,

내가 불편해지는 건 그곳에 사는 장투자들 개인의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것.

윗집과 아랫집이 똑같은 기능을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며

그곳에 어떤 권력관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손님이기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도 역시 아니라고 생각한다.


빈집이 확장되고, 더 많은 장투자들이 생기고,

집도 두 채가 되었고, 인근에 더 많은 빈집이,

혹은 그 모방체들이 실험될 수 있는 조건 하에서

빈'집'은 이제  '집' 이상의 무엇, '마을'로의 전환을 위한 진통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랫집 하나만으로 이제 빈집을 다 이야기할 수 없고

간간히 마을 계획을 품었던 것이라고... 본다면

지금 아랫집도, 윗집도 어떻게 재구성해야할지 논의를 해봐야 하지 않나.


마을은, 각 집들이 레고블럭이 아닌 이상은 다 똑같은 구조, 기능, 구성원,

라이프스타일을 가질 필요가 없다.

마을은 집들의 집합이자 그 이상이다.

공동의 리듬을 구성하는 일군의 무리로서...


따라서, 다시, 빈집1, 2는 어떤 활동을 조직하고 기능들을 나눠야할까.

빈집의 구성원들 각각은 어떤 활동을 더 하고 싶으며, 어떤 활동을 방해받는다고 느끼나?

어떤 활동을 함께 하고 싶고,

어떤 활동을 서로에게 부탁하고 싶은가?

나는 전체 구성원들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그동안 해보지 못한, 계발해보지 못한 무엇을 해보고자 하나?

우리는 어떤 변신을 그리고 있는 걸까?



아이러니한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논조의 글을 한참 쓰고 난 후, 노트 뒤편에는 ‘칭찬 편지’를 써 두었다.

어쩌면 당연한 필요인지도 모른다.

러니와 나에 대한 칭찬 말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칭찬은 비교적 쓰기 쉬웠다.


그 리스트는 오는 일요일 저녁, 빈집에 모였을 때 공개하려고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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