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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파병 한국군 철군하고 피랍한국인의 무사귀환 보장하라!



2007.7.26 김승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피랍23인. 8명의 석방 소식을 듣자마자 날아든 비보에 참담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의 동료들이 지금도 겪고 있을 그 공포를 상상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니, 그의 죽음은 어떠했을까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몇 년전 고 김선일씨의 죽음과 최근까지 이어진 이 죽음의 행렬들! 그리고 지금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이 처참함!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부터 왔는지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적국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기는 하나 많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의 선교활동을 비난하였다.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누구를 해한 것이 아닌, 봉사를 위한 것인 한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처음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노무현 정부와 그의 동료들이 선택한 미군을 따라다니는 "군대" 의 파병이 아닌 "민간"의 지원이 더 필요하였다.

 

이들이 한국은 아프간과 무슬림 국가들에 의하여 "적국"이 되어있었던 상황을 무시한 탓을 논하고자 할 수 있으나, 그 탓이 어찌 피랍된 이들에게 돌려져야 하는가? 그것은 옳지 않다. 이들의 생명을 그 같은 공포와 위험에 빠뜨린 것은 그들이 "적국 국민"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스스로 적국을 자초하며 부시와 그의 네오콘의 전쟁에 동맹한 한국 정부 그리고 "봉사"로서 "적대행위"를 감추고자 자국 국민을 이 나라에 보낸 한국 정부와 이 전쟁을 지지하는 자들의 무모함 때문이다.

 

피해자

 

새삼스럽게 테러에 의한 피해자를 열거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정부의 패부가 드러나고 있다;
 

2003년 11월에는 오무전기 직원이었던 고 김만수씨와 고 곽경해씨가 이라크 저항단체에 의해 피격당하여 생명을 잃었다. 2004년 4월에는 두 명의 한국인이 이라크 민병대원들에게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인 선교단체의 7명이 이라크 저항단체에 의해 피랍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2004년 5월 고 김선일씨가 납치되었다. 이때에는 아예 이 사실을 2주 이상 숨기고 있었지만,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서야 사람들은 알 수 있게 되었고, 24시간이내 철군하지 않는다면 살해하겠다는 위협에 현직 대통령이 파병철회는 없다고 선언하여, 결국 이튿날 팔루자 인근 도로에서 김선일 씨는 참수된 채 발견되었다. 2004년 8월에는 외국언론사 소속이었던 한국인 기자 한명이 피랍, 15시간여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3월에, 팔레스타인에서 KBS특파원 한 명이 팔레스타인 저항단체에 의해 피랍된 적이 있기도 했다.

 

끊임없는 위협이 있었으며, 정부는 서울의 지하철 역사 및 공공시설의 쓰레기통을 전부 치워버렸을 정도였다. 테러의 위협때문임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 전쟁과 동맹을 맺은 모든 국가에서  이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암살과 테러와 납치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 전쟁의 진정한 피해자는 모든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이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참전은 정부와 국회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이 전 국민을 대변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이 결국 오늘의 참상을 불러왔지만, 이들은 아직도 자신의 신념에 수정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멈추지 않는 죽음의 행렬들이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기 보다, "국익"을 민주주의로 둔갑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제 국민이 죽고 납치되어도 이를 국익이라 부르거나 '남는 장사'라 부르기를 더 선호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진정으로 누구를 대표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이 전쟁의 진정한 피해자가 제 국민이 되어있음에 대하여.

 

협상

 

정부는 23인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무엇을 위한 협상일까? 그리고 대다수 언론들은 한국 정부의 외교력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이야기한다. 한 명이 결국 생명을 잃고 이제 22명. 이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협상이라 칭하는 것이라면 이는 100% 위선이다.

 

아프가니스탄, 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수 만명이 죽고, 병들고 자신의 고향과 집을 떠나 사막과 국경에서 인간 다운 삶은 커녕, 단지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정부가 이 같은 수 만명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 자신의 나라에서 표류하며 일상적인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나라의 정부가 무엇을 대표할 수 있을까?  아프간 정부는 미국의 대리정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황폐해져버린 아프가니스탄의 대중들이 미국 정부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정부가 아닌, 탈레반과 같은 무장 저항 단체에 자신의 안위를 맡기는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이 과연 군대인가? 이 군대가 제 국민으로 부터 버림받은 정부를 지원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로도 그 국민들로부터 적대를 사기에 충분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이 이런 정부와의 외교력을 강조하면서 그 외교력의 시험을 자처하며 협상을 벌일 일일까? 더우기 탈레반이 요구하는 그 포로들의 석방에 주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이 전쟁과 아프간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미국정부임을 세상이 다 아는 처지에 말이다.


한국정부가 협상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22인의 무사귀환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협상이 아니라, 즉각적인 철군 선언과 이 전쟁 동맹으로부터 나오며, 탈레반의 포로들의 석방을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다.

 

노무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이야기한다. 뭐든지 잘못되어도 그것이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릴 정도다.

 

그는 김선일 씨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을 진 자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테러의 위협에 내맡겨버린 데도 책임을 져야 한다.

 

어디 그 뿐인가? 한,칠레 FTA체결 당시 2명의 농민의 죽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고 이용석씨와 같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죽음, 사람으로서 노동자로서의 삶 그것 하나를 요구했던 고 하중근씨와 수없이 많은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KTX 승무원,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외침,그리고 한미FTA반대와 노무현의 퇴진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한 택시 노동자의 절규! 이 모든 것의 한 가운데에 대통령 "노무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말을 아낀다. 고 김선일씨의 죽음에서와 같은 화를 불러들일까 노심초사하는 것일까? 그리고 되려 국민들에게 차분한 대응을 호소한다.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한나라당의 두 경선후보나 대통령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자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후신들! 그들은 이번 피랍이 있고 나서 유독 23인의 피랍에 대해서만큼은 차분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 지, 어떻게 정권을 잡아야 할지, 헐뜯고, 물어뜯고, 헤쳐모여하는 그 긴박함 속에서 유독 이 23인의 피랍에 대하여만큼은 차분한 것이다. 어찌 이들이 지금의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된다하여도 어찌 지금의 대통령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제2의, 제3의 노무현들에 지나지 않다!

 

무사귀환, 즉각적 철군

 

여전히 한 사람의 죽음에 침통한 심정이다. 더우기 남은 22인의 안위도 걱정 그 이상의 심정이다. 모든 한국의 국민과 세계인들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들의 무사귀환을 정말이지 진심으로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과 우리 모두를 이토록 불안에 던져 넣어버리고도 무책임한 지금의 정부에게 모든 파병 한국군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피랍 한국인의 무사귀환을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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