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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노동절: 자본주의의 잔혹함이 심화하고 있다. 해결책은 독립적인 계급투쟁뿐이다.

2026년 북미 노동절; 올해 역시 노동자 탄압, 파업 금지, 노동조합 방해 공작, 이주 노동자 탄압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자본가계급이 자행하는 이러한 공격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불충분한 이윤이라는 국제적 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문제는 한 명의 악덕 기업주나 정치인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피와 땀과 눈물로 대가를 치르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이다. 그러나 전 세계 노동계급은 오직 단결된 계급으로서만 결정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절은 투쟁적이고 급진적인 5월 1일 아닌 9월 첫째 월요일이다. 이는 노동조합과 자본가정권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온건하고 평화로운 축제의 형식을 띤다. <역자>)
노동자 탄압
전 세계적으로 자본가들은 노동계급 동지들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설립된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예산은 수십억 달러 규모로 대폭 증액되었고, 권한도 크게 확대되었다. 감시 체계의 전면 개편, 개인 정보 접근 권한 확대, 그리고 내부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테러를 진압할 수 있는 재량권 확대는 이 기관의 권한을 크게 강화했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이민세관집행국(ICE), 국경순찰대, 그리고 국토안보부(DHS)는 주요 도시 전역에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는 잔혹한 단속을 벌였고, 주 방위군과 해병대는 연방 부처의 보안 강화를 위해 동원되었다. 한편, 많은 비난을 받는 지역 경찰은 그 와중에도 노동자 추방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체포했다. 지금까지 4명이 거리에서 살해당했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으며, 이민세관집행국(ICE)과 국토안보부(DHS)의 수용소에서 적어도 52명이 사망했다. 캐나다에서는 카니(Carney) 행정부가 대규모 채용 캠페인의 일환으로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RCMP) 예산을 증액하고, 사법 제도를 개편하고, 정부 기관에 훨씬 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북위 48도 이남 지역이나 도널드 트럼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반(反)이민 운동에 불을 지핀 것은 우연한 비극의 연속이 아니었다. 세계 체제들이 치명적인 민족주의 숭배로 빠져드는 가운데, ‘책임 전가’는 부르주아 국가의 대리인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자본주의 모순에 내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데 가장 유용한 전술 중 하나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권력자들이 국가 자본의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만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민 단속 요원들에게 납치당했다. 어떤 경우에는 소규모 사업체의 직원 전원이 구금되기도 하는데, 이는 개별 소부르주아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의제를 실현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는 수사를 통해 노동계급을 더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열시키고, 이민자 유입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크고 명백한 모순을 낳는다. 민주주의의 환상이 무너져 내릴수록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전술은 점점 더 잔혹해지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같은 곳에서는 수십만 명, 아니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추방하겠다는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재 대규모 강제 추방, 때로는 "재이주"라고도 불리는 이 주장은 대부분 우파에서 나온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부든 자유주의 정부든 모두 집권하면 극단적인 추방 정책을 채택해 왔다. 설령 2028년 공화당 집권이 끝난다고 해도 추방 건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은밀한 방식으로, 마치 관례를 따르는 듯한 행정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잔혹한 수준의 강제 추방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과 오바마 행정부 모두 트럼프 행정부에 버금가는 추방 정책을 펼쳤으며,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첫해에만 90만 건 이상의 강제 추방이 이루어졌다. 결국, 미국 부르주아 국가의 양 진영 모두 수십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뿌리 뽑고 추방해 왔으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파업 금지
1926년 제정되어 여러 차례 개정된 미국 철도노동법(RLA) 도입 이후, 의회가 철도 노사 교섭에 개입한 19건의 사례는 모두 파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최근 사례인 2022년에는 노동자들이 이전에 거부했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했다. 이 법안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친(親)노동자적 대통령”으로 불리는 인물과 “사회주의자”를 자임하는 의원들도 서명하여 통과되었다. 파업 발생 원인 중 하나는 과도한 대기 근무 정책으로 인한 안전 문제였다. 철도 노동자들에게 이 합의안이 강요된 지 두 달 후, 오하이오(Ohio)주 이스트 팰러스타인(East Palestine)에서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하여 심각한 유독 물질 유출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캐나다에서 발생한 파업들은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캐나다 우체국(Canada Post)과 에어 캐나다(Air Canada)의 사례는 파업이 자본가계급에 너무 불편한 상황이 되면, 주저 없이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그러한 명령을 거부한다고 주장하더라도, 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들은 법적 소송을 제기(파업이 아닌 법적 분쟁)하여 파업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기세를 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퀘벡(Quebec)주에서 '공익에 반(反)하는' 파업을 금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더해져, 노동계급을 굴복시키기 위한 통일된 전술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계급은 노동조합의 법적 테두리 밖에서, 그리고 노동조합의 통제를 벗어나 투쟁해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계급의 역사는 이러한 방향을 제시하는 풍부한 교훈들로 가득 차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비공인(와일드캣) 파업 물결부터 1970년대 퀘벡(Quebec)의 파업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은 국가와 그 산하 기관들과 직접 맞서 싸울 때 가장 큰 성공과 투쟁력을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승인 없이 파업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파업 전술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작은 사례조차도 우리 투쟁의 주도권을 잡는 데 있어 중요한 한 걸음이다. 이러한 행동이 없다면, 우리의 운명은 밀실에서 변호사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노동조합 대 노동자
전 세계적으로 자본가계급은 심각한 이윤율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윤을 얻기는 어려워지고, 노동계급에 전가해야 하는 손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자본가가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노동자들에게 손실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제 교섭은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다가오는 세계 제국주의 간 갈등 속에서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에 점점 더 많은 (불리한 또는 해로운) 것을 요구할 것이 예상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조합들은 수많은 방식으로 국가 체제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다. 이들은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와 같은 정부 기관을 통해 조직적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기관들은 분쟁이 항상 정부 기관과 분리된 채 진행되도록 보장하고, 부문 간 연대투쟁을 막고 연대파업을 범죄화한다. 따라서 전미자동차노조(UAW) 지도부가 2028년 "총파업"을 인위적으로 선언한 것(이는 자본가들에게 2년이라는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다. 마치 계약 만기 시한의 문제일 뿐, 노동자들의 실제 투쟁 의지가 극에 달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에서부터 트럭운전사노조(Teamsters)와 항만노조(Longshoremens) 위원장들이 트럼프의 민족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는 것까지, 노동조합이 자본가계급에 충성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을 자본가계급의 여러 분파에 이용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의도적으로 분열·약화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
가장 "급진적인" 노동조합 운동조차도 이러한 노동조합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자본주의에 맞선 정치적 수사와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이러한 '급진적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노동력 매매 협상의 틀에 갇혀 있다. 그곳에서의 성공은 결국 그들을 전통적인 노동조합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조차 '파업 금지' 조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성 체제에 도전하려는 진보-좌파들과 마찬가지로, '급진적 노동조합'들은 노동계급을 권력 장악을 향한 방향성 없이 영구적인 반대 상태에 묶어둔다. 게다가,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국가와 맺고 있는 수많은 법적·정치적 유착 관계 때문에, 이들은 결국 대형 노동조합의 모델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노동자들이 제국주의 국가와 그 모든 정치적 목표를 위한 꼭두각시로 전락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부, 기업, 노동조합을 결합한 "삼자 모델"은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계급 말살이라는 수십 년간의 낡은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조국 방어를 위해 노동조합을 총동원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파업 금지와 단체교섭 금지라는 제약 속에서도 생산을 유지하며 전쟁 수행을 지원하고 있다.
결론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국가 기관에 편입시키고, 조합원들에게 점점 더 불리한 교섭 조건을 강요하는 것처럼, 결국 노동계급을 제국주의 무대에서 국가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처럼 노동조합이 계급투쟁을 방해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독립적인 계급투쟁의 절대적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 주도의 방식이나 법치주의 방식, 또는 비정치적이고 오로지 경제적 성격만을 지닌 모든 노선에 단호히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정치와 코뮤니스트 강령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이미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 소비에트, 슈라, 노동자평의회 및 총회와 같이 우리 계급의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 정치권력의 기반이 되는 진정한 계급 전체를 아우르는 기구들을 만들어 왔다.
지난 200년 동안 투사들이 얻은 교훈을 되새겨보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계급으로서 행동해야 하며,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이 제시하는 모든 해결책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배계급은 우리에게 수많은 정당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하지만, 결국 그 정당들은 노동계급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면서 이를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들은 국경 폐쇄를 주장하지만, 금융 자본은 지리적 경계를 알지 못한다. 한편, 개혁주의자들의 해결책은 단지 경비원만 교체할 뿐이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와 같은 사회민주주의 조직들은 근본적으로 부패한 체제를 개혁할 수 있다는 허황된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진정한 노동계급의 권력을 저지하기 위한 대안 전략에 불과하다. 캐나다의 경우,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와 매니토바(Manitoba)주에서 집권한 개혁주의 신민주당(NDP) 정부는 노동계급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공약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그 공격을 묵인해 왔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답은 자본주의 권력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강령과 정당이 이끄는 가운데, 지배적인 부르주아 질서를 전복하는 혁명에 있다. 혁명적 코뮤니스트의 과제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 노동계급의 모든 구성원과 함께 투쟁에 참여하여 국제적 차원에서 세계 혁명당(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것이다. 세계혁명당은 자본주의에 맞서 코뮤니즘, 즉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로서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국가도 계급도 없는 사회를 위한 혁명 운동을 이끌어갈 것이다.
2026년 9월 7일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계급투쟁(Klasbatalo)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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