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0/12

[코뮤니스트 11호] 엥겔스 탄생 200주년 : 가족, 편지, 혁명 동무

엥겔스 탄생 200주년 가족편지혁명 동무

 

 

<편집자 주>

엥겔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올가을 예정된 평가와 계승에 대한 토론에 앞서 혁명 동무 맑스와의 마지막 우정을 보여주는 편지글맑스 저서에 대한 공적 책임을 다하자는 엥겔스의 글을 소개한다.

 

 300px-Engels20.gif

 

 

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가 죽은 다음해인 1884년 10월 출간된 책은 미국 인류학자 모건(1818~1881)의 <고대사회>와 모건의 원시사회 저술의 문단을 인용한 마르크스의 노트에 의존했다엥겔스는 루이스 모건의 연구에 비추어라는 부제를 붙였다여성해방에 대한 사회주의 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모건은 인간 사회의 네 가지 본질적 특성으로 발명과 발견정부가족재산을 든다엥겔스는 이들 특성을 가족사유재산과 국가 발전의 통합된 연결 주제로 삼았다여성가족노동계급 재생산에 대한 역사적·이론적·포괄적 분석을 시도한다그는 사유재산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족이 가부장제와 연결된다고 봤다국가는 곧 억압·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국가라고 통찰한다앞서 모건은 재산을 관리할 수 없는 권력이라고 결론냈다.

 

엥겔스는 국가 출현에 대한 자신과 마르크스의 관심에 따라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 이행에 초점을 맞추었다자본주의 대규모 역사적 영향 분석에 기반을 둔 마르크스 <자본>의 관점여성해방·인간해방 조건인 집합적 노동과정 참여를 통한 정치적 권리라는 엥겔스 관점이 일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성과 노동자에 비유하면 실질적 사회평등에 대한 투쟁을 통해 두 집단은 법적으로 평등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자본에 의한 착취가 철폐되고 가사노동이 공공산업으로 전환될 때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뤄진다는 분석은 엥겔스의 탁월한 업적으로 꼽을 만하다가족과 국가를 지배와 착취 이데올로기로 삼는 한국 자본주의 현실을 비판하려면 필요한 책이다올해는 엥겔스 탄생 200주년이다마르크스에 가려진 그를 기리려면 읽어야 할 책이다.

 

오세철의 내 인생의 책, 2020년 1월 14경향신문

 

 friedrich-engels-german-school.jpg

 

 

알제리에서의 편지칼 마르크스

 

병마에 고통받던 마르크스는 1883년 314일 영원한 혁명 동무 엥겔스 곁에서 눈을 감았다. 65세 때다서한집은 사망 한 해 전인 1882년 봄과 여름요양하러 간 알제리와 리비에라에서 딸 예니와 사위 롱게 등 가족과 엥겔스에게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질베르 바디아는 서한집의 해설에서 마르크스의 심경을 헤아리며 끝마쳐야 할 많은 일들에 대한 감정으로 그냥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탕탈(Tantal)의 욕망에 의해 고통당한다는 것을 우리의 마르크스는 절대 수용하지 않았으리라고 썼다.

 

편지 대부분의 수신자는 엥겔스였다두 혁명가의 인간적 관계가 편지에서 드러난다햇볕 때문에 예언자 같은 수염과 모발을 제거했다(1882년 428)는 일상·일신의 변화를 알렸다자신을 괴롭히는 병죽음 같은 슬픈 상념에 관한 암시를 딸들에게는 하지 않았다그 고통과 상념은 오직 둘도 없는 동무 엥겔스에게만 숨기지 않고 토로했다.

 

엥겔스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영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매사에 무관심해진다네”(1882년 58)라고 적었다마르크스는 항상 편지를 끝내면서 자네의 늙은 무어인이라고 적었다엥겔스는 12년을 더 살며 마르크스가 남기고 간 저술들을 완성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

 

번영하는 자본주의의 끝자락에서 파리코뮌을 보았던 마르크스는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의 시작으로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혁명가나 노동계급이나 자신들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마르크스의 마지막 서한집은 병들어 고통받는 위대한 혁명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다혁명의 객관적·필연적인 과제를 다시 곱씹어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오세철의 내 인생의 책, 2020년 1월 13경향신문

 

 

karl11.jpg

 

 

알제리 체류의 마르크스질베르 바디아

 

칼 마르크스는 1882년 초 마르세이유 항에서 출발하여 알제리로 가 그곳에서 3개월가량 머물렀으며, 5월 4일 프랑스로 되돌아와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한 달을 보냈다.

 

이 여행의 동기는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에서다마르크스는 그의 가벼운 늑막염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는 있었으나기관지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이 때문에 런던의 여러 의사와 그의 친구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알제의 햇볕이 마르크스가 전에 머물었던 와이트 섬의 기후보다 좋아 그의 병세의 회복과 완쾌를 효과적으로 빠르게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를 돌보고 있던 엥겔스와 의사 돈킨은 마르크스가 알제에 가도록 강력히 권고하였다당시 영국에서 프랑스 리비에라처럼 요양지로 이름난 곳이 알제리였다. 1865년과 1870년 사이에 천명 이상의 영국인들이 겨울 시즌의 몇 주 또는 몇 달을 알제리에서 보냈다.

 

1882년 겨울은 특별히 포근하지도 않았고, 3월 날씨치고는 비가 계속 내렸다항해조건이 그의 건강상태를 더 나빠지게 하였다. 3월 6일 피를 토해 내었고각혈은 일주일동안 멈추지 않았었다유능하고 적극적인 의사 스테판이 마르크스의 병의 재발(늑막염)을 진단하였는데 또 다시 진료를 받을 수 있을는지마르크스에게 산책을 하지 못하게 하고독서와 담소도 줄이라고 권고하였다마르크스가 도착하자 즉시 오랜 산책을 한 페르메에게 마르크스가 중환자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고 의사선생은 충고하였다.

 

이와 동시에 마르크스의 지적활동은 거의 중단상태에 있다일은 하면 안 되고 신판을 내기 위한 자본론의 손질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의 서신교류는 직계가족과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한해서 2월말부터 6월까지 3개월에 걸쳐서만 이루어졌다마르크스는 그의 곁에 손자들을 두고 싶어 했고그들의 놀이 광경에서 재미있는 경탄과 놀람의 연극에도 참여하는 상상을 하고 제일 큰 외손자 죠니(장래의 쟝 롱게)에게 특별한 애정을 나타냈다그는 늘 초조하게 세 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으며특히 9월에 딸을 출산할 예니(롱게)에게 주어질 가사노동과 그녀에게 딸린 네 아이의 교육 등에 대해서도 안쓰러워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오래전부터 마르크스 가족의 일원이었다절친한 친구로 베푸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마르크스의 각종 병 치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마르크스가 건강의 실상을 들어내려고 노력하지만 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건강에는 이상 징후가 없다고 얘기하였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번씩이나 엥겔스에게는 듣기 거북한 말을 내뱉고 있다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까지도 너희들은 희생시킬 수 있어회복기에 있는 환자에게 이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지라고.

 

그의 친구에게 무엇이 불만인가엥겔스가 자신을 알제리로 보냈고프랑스 리비에라에 가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이러한 마르크스의 불만은 근거가 희박하다어느 누구도 그 해 알제의 봄 날씨가 그 정도로 엉망일 줄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더 나아가 본래 겨울철 프랑스 리비에라 날씨는 대개 건조한데 1882년은 이상한 해로 마르크스가 이곳에 갔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번째 불만은 엥겔스(사위인 라파르그에게도 같은 불평을 하고 있다)가 마르크스 보고 하루 종일 거실이나 서재에 있지 말고 좀 오랫동안 걷기도 하고바깥공기도 마시고 하라고 종용했던 것이다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기가 뭘 하든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10년 전 마르크스의 영애가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1870년 11월 19)에 다음과 같이 썼다아빠(마르크스)의 건강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양호합니다이는 무엇보다 우리의 엥겔스 박사가 신경을 써준 덕택이지요… 그는 무어인(마르크스의 별칭)에게 장시간 걷게 함으로써 약 이상의 더 좋은 처방을 한 것입니다. 라고.

 

엥겔스에게 한 마르크스의 불평불만을 보면서, 1차 세계대전 때 로자 룩셈부르크가 옥중에서 쓴 서신 중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을 생각하였다. 지난날 나는 심술궂고불행하고그리고 병들었다이를 거꾸로 배열해보면 어떨까나는 병들었고불행했으며고약했을까?” 그렇다마르크스가 생애 처음으로 그의 친구에게 부당한 태도를 보이는데이는 그가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리라.

 

알제리에서의 편지, ‘질베르 바디아의 해설’ 중에서

 

 

 MADBV.JPG

 

 

엥겔스에게

 

 

친애하는 프레드,

 

이 엽서에 앞서 자네에게 전보를 쳤었다이 엽서가 쓸데없는 걱정을 줄 것 같아서 염려된다사실 별로 중요치 않지만 일련의 좋지 않은 일들(항해를 포함해서때문에 2월 2일 알제 도착했을 때 뼈 속까지 얼어 내 몸이 많이 상해있었어.

 

1881년 12월 날씨는 엉망이었으나 1월은 화창했다고 하네공교롭게도 2월부터 날씨가 춥고습기 차 제일 추웠던 2월 20, 21, 22일 3일간 아주 혼이 났다네불면식욕저하심한 기침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고덩치 큰 돈키호테처럼 심한 우울증으로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네.

 

쓸려고 가져온 경비로 다시 유럽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는데선실에서 보낼 두 밤 동안 지겨운 기계소리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것을 상상하면이런 날씨를 피해 사하라 사막 초입에 있는 비스크라로 곧 바로 떠나볼까 생각도 해보았다그러나 연락관계나 교통편을 생각해보면 이런 새 여행이 7~8일은 잡아먹고 아주 고통스러울 것 같아 여행 시 여러 어려운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 얘기로는 비스크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가 날 경우 한 순간이라도 부상자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그러네!

 

2월 22일 오후가 되자 온도계가 따뜻한 날씨를 일러주고 있었지내가 도착하던 날 마음씨 좋은 페르메 판사가 도와줘 함께 알제 동쪽* 성벽 외곽 언덕에 위치한 빅토리아 팬션 호텔로 짐을 꾸려 올라가면서 오리엥 그랜드 호텔을 떠났어. (글쎄 이 호텔에 밥 맛 없는 급진주의 철학자 애쉬턴 딜키가 묵고 있었고영향력 있는 신문 프티콜롱이나 알제 지역신문의 종사자*모든 영국인은 귀족이라는 인상을 주며 브래드로그에서 왔다는 귀족들도 투숙하고 있다네). 내 방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지중해로 둘러싸인 알제항만언덕을 타고 계단식으로 늘어선 빌라들 (언덕아래 계곡이나 언덕위의 협곡에 자리 잡고 있는)*더 멀리는 많은 산들이 보이는데마티푸산 넘어 카빌리산맥의 눈에 쌓인 쥬르쥬라*산 정상이 보인다네(앞서 얘기한 것처럼 모든 산은 석회질 성분이라네). 아침 8시에 보는 이러한 파노라마 이상 더 좋은 경치가 어디 있겠나 싶다공기초목유럽 아프리카의 경이로운 혼합 등등매일 아침 10시나 9시에서 11시 사이 내 방* 위쪽에 있는 계곡과 언덕 사이를 산책하네.

 

이 모든 생활에 먼지는 빠지지 않지. 2월 23일과 26일 사이에는 화창한 날씨였으나지금은 여기서 폭풍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천둥 번개가 없이 한바탕 소란만 피우는 바람이 닥치고 있다네.(여기 알제에서도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와이트섬에서 입었던 것과 다르지 않네지금까지 빌라 안에서 얇은 외투를 코뿔소 가죽 옷으로 바꿔 입었을 뿐그 외에 현재까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원주민들도 그 위력에 놀라 위험하고 할퀴는 날씨라고 부른다네(2월 27일부터 9일 정도는 계속 될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3일만 좋은 날이었어이런 조건에서 내 기침은 고약한 가래*와 함께 갈수록 더 심해졌어내 몸 왼쪽 부위는 병의 악화에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잠도 설치고정신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어그래서 스테판 의사를 불렀지(알제에서 최고의 의사라네). 어저께와 오늘 두 번에 걸쳐 나를 진찰하였다네무엇을 해볼까?

 

그가 해준 처방전으로 약을 사러 알제시내로 가는 중이야청진기로 자세히 검진한 후 이 의사의 처방전은 다음과 같다.

 

1. 솔을 이용하여 칸다지스 콜로디온*을 바르고, 2. 적당한 양의 물에 탄 비산염 소다를 식사할 때 스프 한 숟가락 정도로 해서 들고, 3. 밤에 기침이 심할 경우*에만 코데인과 물약*을 섞어 스프 한 숟가락 정도와 먹을 것. 8일후 다시 왕진 오겠다고 했네나보고 체력단련은 적당히 하라고 하였네소일거리의 독서 외에는 진정한 의미의 지적활동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네상태가 안 좋아 예정보다 빨리(아니 오히려 늦게)런던으로 돌아 갈 수가 없을 것 같아환상을 가지거나 장밋빛으로만 사물을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네.

 

편지 쓰는 것을 멈춰야 할 것 같네알제 시내 약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그건 그렇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보다 더 감정표현을 싫어한다는 것을 자네는 알고 있지내 아내에 대한 추억을 내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겠지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어런던의 내 딸들에게 이 늙은 닉에게 편지쓰라고 일러주게애비가 먼저 편지를 보내기를 기다리지 말고.

 

인간창조라는 주요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펌스는 어디 있나내 안부를 전해 주게.

 

헤렌무어 셜머모두에게도.

 

나의 고우에게

 

자네의 무어인

 

아참나의 친애하는 돈킨 의사에게처럼 스테판 의사선생에게 줄 코냑*을 잊지 마!

 

1882년 3월 1

 

빅토리아 호텔 팬션알제시 봉아퀘이대로 상 무스타파로

 

 

 

알제리에서의 편지칼 마르크스 중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1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8 :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8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3bc88ab1953692c9eb7fcd46c5f6fff2.jpg

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탄생한 노동자국가는 1920년대 후반까지는 노동자 권력 아래 사회주의로 이행을 위한 시도들이 수행되었지만스탈린주의 반혁명 이후 1930년대부터는 노동자계급에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우리는 러시아혁명 이후 몇 달 안에 이루어진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제도적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1917년 신분제 폐지철도노동자 노동시간 1일 8시간 실시군대 계급 폐지, 1,886개 전략회사 몰수종교의식을 하지 않는 결혼제도 실시낙태법 제정모자보호 연구소 개소, 1918년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공화국 선포사회주의 적군 창설을 위한 법령 선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위와 같은 법적제도적인 혁명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노동자계급은 소비에트 생산 주체권력 주체가 되지 못했다최초 프롤레타리아 혁명인 러시아 10월 혁명이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결이 패배하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고립되면서 사회주의로 이행이 실패하게 된 것이다. 1918년 봄 테일러주의 재도입과 1인 경영 강제 그리고 혁명 성과를 방어하려는 임시조치들즉 정치반대 분쇄짜르 관료 재고용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인센티브 재부과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실질적 권력을 깨뜨리고 노동자정부와 노동자 사이 틈새를 벌려놓고 말았다이 과정은 3년간의 내전 동안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죽음으로 더욱 굳어졌고세계혁명의 연이은 실패는 볼셰비키를 고립시켰다.

 

결과적으로당시 러시아는 1차 대전 패배와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세계분업 내 후진적이고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일부 자본주의적 이행 형식을 들여와 이행을 추구한 것이다이러한 상황을 이어받은 스탈린은 5개년 계획 도입과 농업 집산화로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지만오히려 일국사회주의와 반노동자 계급적인 당 독재 강화를 가져왔다당이 곧 계급이라는 잘못된 판단 속에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당이 노동자계급을 대신하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레닌 죽음과 세계혁명의 명백한 침체에 힘입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선언은 국제주의와의 공개적 단절이었으며 세계 제국주의 권력으로 러시아를 건설하는 약속이었다이것은 사회주의가 승리한 세계혁명 열매임을 주장한 1917년의 볼셰비즘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그러나 볼셰비키가 러시아 국가와 경제경영에서 엉키면 엉킬수록 고립되고 낙후한 상황에서라도 성취할 수 있는 사회주의를 향한 단계를 더욱더 이론화하기 시작했고그중 하나인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이론은 산업 성장을 노동계급 이해와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실제로 러시아의 산업 성장은 노동계급 착취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한마디로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은 본질에서 자본축적을 의미했다유럽 혁명운동 패배와 러시아에서 반혁명 과정은 코민테른을 구성하는 당들에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과하고동시에 그 당들이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도록 하면서 코민테른에 반영되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일국사회주의는 생산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법률상의 소유형식만을 바꾸어 놓았다그것들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진정한 성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단지 개인 소유의 법률상 측면만을 폐지한다노동자는 생산수단 사용에 있어서 어떤 진정한 통제력도 소유하지 않으며생산수단들은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결국생산수단들은그것들을 소유하고 공동으로 담당하는 관료 조직을 위해 단지 집산화 되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일반화된 상품생산 체제이며자본주의 생산 목적은 잉여가치 획득과 축적이다여기서 자본주의가 단순히 상품생산과 시장의 무정부성에 기반을 둔 이윤추구 체제라는 기본인식을 넘어자본주의 핵심이 자본의 사회적 관계 지배이며자본은 본질에서 소외된 노동의 자기 확장임을 인식해야 한다소련 노동자들은 임금을 위한 교환을 위해 일했으며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소외시켰고 자본을 생산했다소련에서 잉여가치는 사적 자본주의와 같이 새로운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하여 생산과정에 재투자되었다소련은 이러한 자본과 임노동의 사회관계가 생산수단과 생존수단의 국가 소유 제도로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며스탈린주의 옹호자들의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국유화)가 전체인구에 의한 소유를 의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고이것은 단지 소유형태의 법적인 형식이었을 뿐 전혀 노동자계급 소유가 아니었다결국국가와 그 관료 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 폐지를 향한 한 걸음 진전이 아니라단지 이것을 더 효과적으로 성형하기 위한착취강화를 위한 한 수단에 불과했다따라서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양립할 수 없지만사적 소유의 부재(사회주의 경제 창조를 위한 필요 불가결한 전제조건임에도)는 그것 자체로 사회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반혁명은 국가가 주도하고 명령하는 특수한 형식을 취했고이것은 10월 혁명 이행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핑계로 민족경제 재조직화로 나타났다이 과정은 그 후 중국동유럽쿠바북한 등등에서 추진되었고이들 모든 국가는 사회주의적인 요소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평의회 권력의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사회주의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를 참칭하며 타도해야 할 대상인 자본과 관료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특히 중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제국주의 동맹체제 안에서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중국은 러시아와 다르게 프롤레타리아혁명을 한 적이 없고따라서 단 한 번도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가진 적이 없어 현재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과거의 마오주의 이데올로기 모두 자국 자본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희생시키면서오히려 그들을 탄압하는 데에 사용되었음을 되새겨야 한다.

 

소련 경험은 첫째일국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국가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소련에서의 국가는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일국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 이론 및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노동자국가에 대한 환상은 이러한 은폐에 모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둘째명령경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며사적 소유 철폐와 국가 소유로 전환만이 아니라생산수단 사회화와 국가 권력이 노동자계급의 지배 아래 존재하는 노동자평의회 체제이어야 한다셋째러시아혁명 교훈은 국가기구가 반혁명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이며이행기에 계급과 국가 사이 관계 문제의 복잡성과 난해성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앞으로도 프롤레타리아와 혁명가들은 이 문제를 우회할 수 없으며이것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넷째, 노동자국가, 코뮤니스트 사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중국, 쿠바, 북한과 같은 부르주아 착취체제는 계급투쟁과 세계혁명을 통해 전복하고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54597f442844f2361f89fe565d21035c.jpg

코뮤니즘은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아래로부터 노동자평의회 권력 창출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코뮤니스트 혁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당 역할은 필수적이다하지만 당이 노동자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으며노동자계급의 집단적 권력을 당이 가질 수 없다따라서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은 혁명 시작과 함께 사회 모든 권력을 노동자계급이 집단으로 행사하는 노동자평의회 권력을 수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노동자평의회가 모든 정치와 경제와 산업을 장악하고 노동자평의회가 전 사회에 걸쳐 모든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코뮤니즘 생산 관계는 생산수단 국유화와 사적 소유 철폐를 넘는 생산수단 사회화이며생산수단 사회화는 노동자평의회의 전 사회적 권력이라는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