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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트럼프: 여전히 문제는 자본주의

트럼프: 여전히 문제는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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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우파의 출현

 

도널드 트럼프의 45대 미국 대통령 계층에 대한 저항의 쇄도는 현대에서 유례없는 것이다. 그는 증오와 혐오를 팔고 다니는 반동적이며, 인종주의적, 성차별주의적 불량배이다. 그는 모든 비판에 대해 이를 전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반응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한때 변호사를 하면서, 그리고 “폭도”, 로이 콘(Roy Cohn)에 대한 상담역을 하면서 배운 “기술”이다. 그는 이미 미국의 일부, 그 사법부, 비밀 정보국, 그리고 주류 언론, “인민의 적들”에게 그의 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에서 외톨이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명목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증가해 왔다. 푸틴, 두테르테, 에르도안, 오르반, 그리고 카진스키는 모두 다원주의에 대한 합의나 소수자의 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권위주의 정권을 통제한다. 무엇이 모든 권위주의자들(그리고 르 펜에서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네덜란드의 빌더르스(Wilders) 등 권력을 갖길 희망하는 이들까지)로 하여금 지금 이 시점에 권력을 잡도록 하였는가?

 

자본주의의 오랜 침체

 

그 뿌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초, 전후 호황이 끝났다. 그 후 세계의 자본주의의 지도자들은 엎치락뒤치락 과거의 성장률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찾으려 해 왔다. 1970년대 케인즈주의의 실패 이후, 그들은 “신자유주의”, 탈규제, 그리고 세계화로 돌아섰다. 자본은 이제 노동력이 가장 저렴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는 보다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제조업을 황폐화시켰다. 주로 값싼 서비스 직종이 제조업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자본이 부유한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수입은 오늘날 1979년에 비해 실질적으로 감소했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공동체가 파괴되어 감에 따라 침식되었다. 국가들은 보다 더 큰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 위해(예를 들어 면세 기간 등) 바닥으로의 경쟁을 심화시켜왔다. 그러나 경제 위기는 없어지지 않았고, 자본주의 체제는 금융 영역의 탈규제에 눈을 돌려, 투기로 가는 길을 열었다. 빚이 갑자기 “자산”이 되었다. 금융자본가들은 그들의 빚의 네트워크에 편입되기 위해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같은 방법들을 통해 끌어냈다. 결과는 2008년과 2008년에 터진 대규모의 어마어마한 버블(거품)이었다.

 

어디서든 국가는 은행들을 보석으로 보내고 노동계급에는 긴축재정을 부과했다. 영국의 작은 마을, 미국의 러스트 벨트에서는 세계화의 의심스런 이득을 공유하지 못했던 노동자층은 이제 더한 비참함에 만족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므로 다수는 오직 “세계화”가 저지른 피해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투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반세계화가 좌파의 운동, “세계화 반대(no-global)”, 점거 운동(Occupy Movements)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처음에는 TTIP와 같은 무역 블록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2011년에 경고한 것처럼,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반대할 필요가 있는 하나의 유행(세계화)이 아니라, 전체 착취의 시스템이다. 만약 당신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세계화의 반대는 민족의 방어가 된다. 급진적 우파는 오늘날의 독성 혼합물로 만들기 위해 반세계화에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더하기만 하면 됐다. 만약 있다면 이민자들 가운데서는 고립된 곳에 있는 소수와, 대다수의 사람들은 만약 일자리를 훔쳐간 것이 이민자가 아니라면, 일자리는 해외의 외국인들에게 간 것이 틀림없다고 믿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위기(1)의 사회적인 결과는 트럼프로 하여금 티파티(Tea Party)와 같은 반거대 정부 유형, 선교적 기독교인들부터 네오나치의 대안우익(Alt-Right of neo-Nazis)에 이르는 공화당을 둘러싼 모든 우익 그룹들을 연합하는 것이 가능토록 했다. 이에 노동자들의 투표가 더해졌는데, 이들은 세계화에 뒤떨어진 주요 주에서 “그들”(외국인들, 이민자들, 그리고 “워싱턴의 기득권자들”)에 반대하는 트럼프의 공격적인 발언을 믿었다.

 

악어에게 “늪”을 넘기다

 

트럼프가 “대안적 사실”에 강한 편벽이 있음은 잘 알려졌지만, 그의 가장 속 보이는 거짓말은 그가 워싱턴에 가서 “늪을 제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게리 콘(Garry Cohn, 국가 경제 위원회의 수장)과 스티븐 므누신(Steven Mnuchin, 클린턴이 그들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비난한 직후에!(2))과 같은 골드만삭스 은행가들을 가득 임명했다. 그의 내각은 적어도 세 명의 백만장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인은 그중에서 가장 부자이다. 이들은 많은 사업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미국 역사상 어떤 행정부보다 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회가 회사들이 해외의 권력자들(국무장관 틸러슨(Tilerson)의 이전 회사인 엑손 모빌(Exxon Mobil)과 같은)에게 제공한 자금을 공개하도록 강요하는 법을 이미 철폐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또는 트럼프가 다우케미칼(주)(Dow Chemical Co.), 록히드마틴, US 스틸(US Steel)을 포함한 미국의 주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 앞에서 사업에 부과된 “규제들”을 제거하는 “규제 개혁” 태스크포스팀을 연방에 만드는 행정명령에 사인하더라도 말이다. 환경보호에 관한 규제에서부터 투기를 금지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 규제가 산산조각날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지(2월 22일 자)의 데이비드 필링(David Pilling)이 지적하였듯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늪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악어에게 늪을 넘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쓸쓸한 희망으로 살고 있다. 비록 몇몇의 일자리는 돌아올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예전에 그들이 받았던 것만큼 받지 못하거나, 예전에 그들이 고용된 만큼 고용되지 않을 것이다. 멕시코 공장에 투자를 포기한다는 포드의 명백한 입장은 그들의 기운을 북돋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멕시코 공장이 3,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대신 지어지는 로봇화된 미국의 공장은 오직 몇백 개의 일자리만을 제공할 것이다(3). 만약 트럼프가 중국 수입에 대해 4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위협을 실행한다면, 이것은 대규모 수입 대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노동 계급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사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지난 40년 동안 그랬던 것과 똑같이 위기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트럼프에 반대할 것인가, 그를 키워주는 시스템에 반대할 것인가?

 

트럼프의 첫 번째 목표가 이민 노동자들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벽을 쌓고 이민자들을 내쫓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빌 클린턴은 벽 건설을 시작했다. 오바마는 이를 지속했다. 그리고 오바마는 작년, 25만의 이민자들을 조용히 쫓아냈다. 새로운 것은 트럼프가 큰 목소리로 멕시코인들과 무슬림을 겨냥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광범위한 공포와 극도의 혐오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교묘히 조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현재 4천만이 넘는 이민자들이 있으며 이 중 오직 1/4만이 불법 이민자들이다.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은 이제 공무원들과 인종주의자들 모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 외에 기대할 것이 없다. 트럼프는 미국의 민족주의를 이러한 “타인”과 적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는 에르도안이나 푸틴과 닮았다. 오직 국내 소비만을 위해 기획되었다는 해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선언과 그들이 실제로 하는 짓은 그들의 무가치한 허풍과는 종종 차이를 보인다. 지금의 자본주의의 위기가 이전에 비해 새로운 대재앙에 우리 모두를 포함해 몰아넣은 것 같다고 이야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수사는 보다 공격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그의 정책은 이전에 해 왔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의 존재와 같은 “가짜 뉴스”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트럼프는 이라크를 존재하지도 않는 증거를 근거로 침략하지도 않았고, 관타나모를 지음으로써 인권을 유린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저분한 드론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으며, 미국의 핵무기 개량을 위해 3조를 기부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부시와 오바마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오바마의 사무실에서의 마지막 행동은 관타나모만을 영구적인 강제수용소로 만들고 이미 거대한 국방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같은 점이 많지만, 점점 더 위험한 세계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4).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으로 가는 추동을 막는 것은 노동계급이 너무 수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과 싸우지 않음으로써, 지배 계급의 압력의 일부는 그들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훨씬 더 공격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들이 보여주듯이, 역사는 머물러 있지 않다.

 

세계 노동계급은 너무 오랫동안 체제가 내던진 모든 것의 수동적인 피해자였다. 이제 우리가 맞서 싸울 때가 되었다. 문제는 어떻게? 트럼프가 너무 싫기 때문에 그에 반대하여 자본주의 좌파(모든 종류의 사회 민주주의자들을 의미하지만, 특히 민주당)의 즉자주의적 선전을 지지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이 좌파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논리를 수용하였으며, 생활 수준의 하락에 연루되어있다. 그들의 응급처방은 사회적 평화를 사기 위해 보다 많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투기적 거품의 끝과 함께 무너졌다. 그들은 “파시즘”이라는 이야기로 주의를 돌리고 오도하는데, 그들은 대안이 더 나쁘다는 근거로, 노동 계급이 체제를 지지하게 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분열과 재건의 시대 이후, 풀뿌리 수준, 작업장과 공동체에서 노동자 저항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작은 징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길고 오랜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체제 안에 투쟁을 가두려는 이들의 통제를 넘어서는 모든 투쟁을 독려함으로써 이러한 부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에 의해 통제되는, 체제가 용인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에 순응하게 하는 자본주의 좌파에 의해 조종될 수 없는 자율적인 단체들을 위한 선동을 해야 한다. 이에 더해 혁명가들은 자본주의 착취, 환경 파괴,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제국주의 전쟁에 대안을 향한 “행렬”을 안내하기 위해 통일된 정치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구해야 할, 그리고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다.

 

<주>

 

(1) 이 주제에 대한 보다 확장된 논의는 leftcom.org를 보라. 트럼프(레이건식으로)는 감세를 통해 노동자들의 지지를 사고자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위 0.1%가 (1년에 3백7십만 달러 이상을 버는 이들) 1백1십만 달러 감세 혜택을 받는 동안 최하 5분위 계층에서 1년에 110달러 또는 수입의 0.8%의 감세 혜택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FTWealth, 42호, 2017년 3월, 8페이지)

 

(2) 사실 지난 수십 년간 모든 미국 행정부에는 골드만삭스의 대표자들이 있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하에서 그들은 “가버만삭스(Government Sachs)”라고 알려졌으며 빌 클린턴의 경제 자문은 민주당 아젠다에 영향을 주는 부르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에 기반을 둔 소위 해밀턴 프로젝트(Hamilton Project)라는 우익 씽크탱크를 세운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이었다. 오바마 아래에서는 11명의 골드만삭스 인물들이 정부의 여러 수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똑같이 오래된 늪이다. 이에 대해 prof77.wordpress.com을 보라. 트럼프와 클린턴의 지난 수십 년 간의 사회적, 정치적 거래는 잘 알려져 있다(지금 미국 민주당은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고 해도!)

 

(3) 이는 멕시코로 이전하기보다 1,000개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인디애나 주에 머물기로 결정했던, 그러나 결국 수백 명의 외주화와 로봇으로의 대체로 이어졌던 과거 트럼프와 Carrier 회사와의 유명한 거래와 똑같다.

 

(4) 트럼프의 당선 전후 제국주의적 관계에 대해서는 더하다. leftcom.org를 보라.

 

Friday, March 10, 2017

국제코뮤니스트경향 (Internationalist Communist Tendency)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7-03-10/trump-the-problem-is-still-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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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대통령 트럼프 : 사멸해가는 사회체제의 상징

대통령 트럼프 : 사멸해가는 사회체제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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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시대가 기울어갈 무렵 로마 황제들의 광기는 예외적이 아니라 흔한 현상이었다. 그것이 로마가 노쇠해지고 있다는 징후였음을 역사가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무시무시한 광대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에서 왕(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쇠퇴에서 더 진전된 단계(새로운 사회)에 도달했다는 징후로 이해될 수 없다. 그 체제의 진원지에서 포퓰리즘의 쇄도는 단기간에 연이어 브렉시트와 도날드 트럼프의 승리를 초래했는데, 이 사실은 지배계급이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자본주의의 내재적 붕괴 경향을 억제하는 데 활용해 온 정치기구에 대한 장악력을 잃고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지금 사회질서의 급속한 해체로 인해 지배계급이 인류에게 어떠한 미래의 전망도 제시할 수 없는 완전한 무능함과 그로 인한 거대한 정치적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또한 피착취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초래한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기력한 분노와 공포, 소수자들에 대한 희생양 만들기, 그리고 실제로 결코 실존한 적이 없는 과거에 대한 허상에 바탕을 둔 반동에 말려 들어갈 심각한 위험이 있다.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서의 포퓰리즘의 근원들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포퓰리즘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더 깊이 전개되어 있다. 우리는 독자들이 그 글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틀을 브렉시트 결과와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트럼프에 대한 초기 우리의 좀 더 구체적인 대응, '브렉시트, 트럼프 : 프롤레타리아에게 좋을 것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후퇴'와 함께 검토할 것을 권한다. 이 두 글은 우리의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157호에 실려 있다.

 

우리는 또한 '트럼프 대 클린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나쁜 선택일 뿐'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10월 초에 작성된 이 기사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부르주아지의 좀 더 '책임감 있는' 분파들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거의 미친 듯이 노력하는 것을 살펴보았다.1) 이러한 노력은 명백히 실패했는데 이 실패를 초래한 더 즉각적인 요소 중의 하나로는, 클린턴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 순간에 연방수사국의 국장, 제임스 코메이(Comey)가 어이없게 개입한 것을 들 수 있다. 미국 정보기구의 심장인 FBI는 클린턴이 국가안보의 기본적인 법규들에 어긋나게 사적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한 점을 더 조사한 뒤 그녀가 이후에 형사소송에 관여될지도 모른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녀의 당선 기회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그 일주일 정도 뒤 코메이(Comey)는 FBI가 점검한 모든 자료에서 그 어떤 불리한 점도 없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후퇴를 시도했다. 그러나 피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그녀를 감옥에'라고 집회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해 온 트럼프 캠페인에 FBI는 주요한 기여를 했다. 그런데 FBI의 그 기념비적인 실수는 국가기구가 중심에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잃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었다.

 

코뮤니스트들은 차악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트럼프 대 클린턴(Trump v. Clinton)' 기사는 역사의 현시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선거는 노동자계급에 어떤 선택도 제공하지 않는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그것들에 대한 코뮤니스트의 견해를 선명하게 재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은 아마도 이번 선거에서 가장 심했던 것 같은데, 이는 명백하게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사안을 가진 오만한 쇼맨 트럼프와 지난 30년 동안 국가자본주의의 지배적인 형식인 '신자유주의'를 체화한 클린턴 사이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두 가지 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권자들의 상당 부분은 미국선거에서 늘 그렇듯이 아예 투표하지 않았다. 초기의 추정투표율은 57% 이하로서, 투표하러 가라는 그 모든 압력에도 불구하고 2012년의 투표율보다 낮았다. 동시에 두 진영 모두에 비판적이지만 특히 트럼프에 비판적인 많은 이들은 결국 차악으로서의 클린턴에 투표했다. 우리는 부르주아가 제공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깨짐으로 인해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기껏해야 (또 다른 사회조직방식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비록 노동자계급이 계급으로서 행동하지 않을 때 극도로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국가의 해체를 관통하게 될 또 다른 사회조직방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은 본질적이다. 그리고 선거 이후의 시기에, 기존의 정치사회질서를 이렇게 거부하는 것, 부르주아 국가라는 감옥의 밖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여 노동자계급이 그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할 필요성을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적절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단순한 트럼프 반대주의, 일종의 개편된 반파시즘2) 쪽으로 이끌려가게 될 것이고 이것은 다시 부르주아의 좀 더 '민주적인' 분파들, 가장 그럴듯하게는 민주당 대선후보지명전에서 버니 샌더스3)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 언어를 말하는 그런 분파들의 견해를 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주의의 사회적 기초

 

이글은 트럼프에 투표한 사람들의 동기와 사회적 구성을 자세하게 분석하는 자리가 아니다. 트럼프 캠페인에 그렇게 결정적인 여성반대 수사법(레토릭), 여성혐오주의는 자체의 역할을 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점은 특히 지난 몇십 년 동안 성별 관계에 나타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변화들에 대항한 훨씬 더 세계적인 '남성의 반격'의 일부이기에 그 자체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중심부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이 불길하게 성장해 왔고 이점은 트럼프 캠페인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의 인종차별주의에는 이해할 필요가 있는 그 특유한 요소들이 또한 존재한다. 즉, 단기적으로는, 오바마의 대통령직과 미국판 '이민자 위기'에 대한 반응,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노예제와 차별의 유산 전체가 그러한 요소들이다. 초기의 통계로 볼 때, 대략 88%의 흑인 유권자들이 클린턴진영을 선택했지만 친트럼프 표는 압도적으로 백인들(비록 상당수의 '히스패닉'들을 동원하긴 했지만)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미국 인종 분리의 긴 역사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작성될 기사들에서 이 문제들을 다시 다룰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에 관한 우리의 기사에서 주장하듯이 트럼프의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대다수를 희생하여 특히 오래된 제조 및 채굴산업의 노동자계급을 희생하여 작은 소수만을 부유하게 하는 거시경제적인 과정들인 경제세계화와 금융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엘리트'에 대한 분노였다고 생각된다. '세계화(Globalisation)'는 자동차와 철강 같은 산업들이 대대적으로 분해되어 노동력이 더 값싸고 이윤이 훨씬 더 높은 중국과 같은 나라들로 이전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또한,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에 있어 '빈곤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의 이주를 통해 노동력을 값싸게 만드는 또 다른 수단이었다. 금융화는 대다수에게는 경제생활을 점점 더 신비스런 시장의 법칙들이 지배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다수의 소액투자자와 주택소유자들을 파산하게 하였던 2008년의 대폭락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자면, 앞으로 좀 더 자세한 통계적 연구들이 필요하겠지만, 트럼프 캠페인의 핵심적 강점은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들로부터, 특히 소위 '대도시의 자유주의 엘리트' 안에 체화된 기존의 정치 질서에 반대하는 저항의 하나로 트럼프에게 투표한 새로운 산업 황무지들인 '러스트 벨트(사양화된 공업지대)'의 노동자들로부터 받은 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노동자들이나 이 지역들의 다수는 이전의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투표했고 몇몇은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 그들의 표는 무엇보다도 부의 점점 더 커지는 불평등에 대항한, 그들 자신과 자식들에서 어떤 미래도 보장받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그 체제에 대항한 그러한 반대의 표였다. 그러나 진정한 노동자계급 운동의 완전한 부재라는 틀 안에 결국 이러한 반대는 엘리트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순진한' 노동자계급을 대가로 이민자와 난민들과 소수자들에게, 남성노동자들을 대가로 여성노동자들에게 특별한 이권들을 준다고 비난하는 포퓰리즘적 세계관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트럼프주의의 인종차별적 여성 혐오적인 요소들은 '엘리트'에 대한 수사적인 공격과 연관되어 있다.

 

트럼프의 집권 : 평탄하지 않은 주행

 

우리는 트럼프의 대통령직이 어떨지 그가 어떤 정책들을 구현하려 할지 추측할 생각은 없다. 트럼프에게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이 바로 예측 불가능성이라서 그의 통치의 결과들을 예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아침밥도 먹기 전에 벌써 몇십 개의 모순적인 말들을 할 수 있지만, 이점이 선거 캠페인에서 그의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있다. 하지만 캠페인에서 그랬다고 해서 재임 기간에도 그렇게 잘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트럼프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자신을 소개하고 미국 기업인들을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말하지만, 그는 또한 내륙 도시들에서의 인프라 구조를 회복하고 도로와 학교와 병원을 건설하며 환경 보호를 위한 개발 제한들의 폐지로 화석 연료산업을 다시 활성화하는 등 대대적인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 모두는 경제에 대한 중대한 국가자본주의적 개입을 뜻한다. 그는 수백만의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맹세하지만, 미국 경제의 많은 부분이 그들의 값싼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외교정책에서 그는 고립주의와 철수(나토에서의 미국의 참여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에서 보이듯이)의 언어를, 군비 예산증가를 약속하며 'IS에 폭탄을 퍼붓는 것' 같은 허세에서 개입주의 언어와 만난다.

 

확실해 보이는 것은 트럼프의 대통령직 특징이 지배계급 내부 그리고 국가와 사회 이 둘 모두에서 충돌로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트럼프의 승리연설이 화해의 전형이었고 그는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맞이하기 전 오바마는 가능한 한 원만한 이행기를 보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게다가, 상원과 하원에서 공화당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만약 공화당 기존 세력의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극복한다면 그는 더 선동적인 정책들을 미뤄 놓더라도 많은 정책에 대한 지지를 확보할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긴장과 충돌의 징후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나토에 관한 회의감을 유지한다면 또는 강력한 지도자로서 푸틴에 대한 그의 존경이 동유럽과 중동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위험스런 재활에 맞서는 미국의 시도들이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군 위계질서의 일부는 그의 몇몇 대외정책에 아마도 매우 적대적일 것이다. 그의 몇몇 국내정책들에 대한 반대는 또한 정보기구, 연방 관료와 대자본관계자들의 내부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을 테고 이때 이들은 트럼프가 마구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한편, 아마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클린턴 왕조'의 정치적 소멸로 새로운 반대파들이 출현하고 심지어는 분열을 일으켜서, 버니 샌더스와 같은 이들 주변에 좌익이 출현해서 경제적 정치적인 기존 세력들에 대한 적대 기운을 이용하길 희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의 수준에서,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과 비교하자면, 명백히 인종차별주의적 그룹들이 이제 그들의 폭력과 지배의 환상을 실현할 권한을 부여받은 듯이 느끼면서 '대중적인' 외국인 혐오증이 불길하게 꽃피는 것을 우리는 아마도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만약 트럼프가 '불법 체류자들'의 억류와 추방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시작한다면, 이 모든 발전은 지난 몇 년간 경찰에 의한 흑인살해 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거리에서의 저항들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실제로, 선거결과가 발표된 바로 그 날부터 미국 전역의 도시들에서 일련의 매우 분노한 시위들이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이 시위들에는 트럼프가 이끄는 정부라는 전망에 역겨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제적인 영향

 

국제수준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그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브렉시트 플러스 플러스 플러스(Brexit plus plus plus)'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서유럽의 우익 포퓰리즘적 정당들에, 특히 2017년 선거를 치르게 될 프랑스의 민족전선에 강력한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다국적인 무역 기구로부터 탈퇴를 원하고 경제 보호주의를 선호하는 정당들이다. 트럼프의 가장 공격적인 선언들은 중국의 경제적 경쟁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이는 우리가 1930년대의 경우처럼 이미 포화한 세계 시장을 더 위축하게 될 무역 전쟁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지난 20년간 세계자본주의에 기여했지만 이제 그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국주의의 수준에서 우리가 목격해온 '각자 나 홀로' 경향을 지금까지는 그것이 더 단단히 억제되어 온 경제 영역으로 전파할 위험이 있다. 또한, 트럼프는 지구온난화가 단지 중국인들이 그들의 수출 추세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해낸 장난이라고 선언했고, 기후변화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국제조약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약들이 이미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우리는 알지만, 그것들을 없애버리는 것은 우리를 산적한 세계적인 환경재앙들에 훨씬 더 깊이 빠뜨리는 것과 같다.

 

반복하자면, 트럼프는 사회운영에 대한 그 모든 전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부르주아지를 상징한다. 그 모든 허영과 자아도취주의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자신은 미치지 않았으나 점점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가는, 심지어 세계대전의 선택 여지마저 없어져 가는 체제의 광기를 그는 체화한다. 자본주의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은 자체의 정치적 군사적 기구들을 이용하여, 달리 말해서 한 계급으로서의 의식적 개입을 통해 완전한 통제 상실, 즉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카오스로의 충동이 최종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거의 한 세기 동안 막아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통제의 한계들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적들이 새로운 일시적 수리를 통해 살아남는 능력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계급의 문제는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으로 그 모든 수준에서 부르주아지의 명백한 파산이, 아주 작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제에 대한 혁명적 비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대열에서 그릇된 분노와 해로운 분열들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에 자본주의를 하나의 인류사회로 대체할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을 나타낸다.

 

한편 자본주의의 위기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이 오늘날 의제가 아닌 이유 중 하나는 노동자계급이 큰 전투에서 패배당하지 않고 여전히 마르지 않은 저항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를 들어 2006년의 프랑스 학생투쟁과 2011년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Indignados) 저항들처럼 지난 십 년 동안 나타난 다양하고 대대적인 운동에서 그것을 목격해왔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저항의 전조들은 경찰에 의한 살해에 반대하는 항의시위와 트럼프에 반대해 이뤄지는 선거 후 시위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위들은 분명한 노동자계급 성격을 갖지는 않고, 좌익의 직업정치인들에 의해서 그리고 다양한 민족주의적이거나 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흡수될 수 있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포퓰리즘의 위협과 자본의 좌익이 제공하는 잘못된 대안 이 두 가지 모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깊이 있는 무언가가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우리 계급의 코뮤니스트 전통들과 다시 접촉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자립을 위한 투쟁이다. 이것은 당장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혁명가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만연한 연무(smog)를 특히 모든 가장된 형식들까지 관통해서 길을 비춰줄 수 있는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명료성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그러한 발전을 준비하는 역할을 갖는다.

 

Amos 11.11.2016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주>

 

1)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의 반대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로, 그 당의 좌익의 일부로 여겨지기 어려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투표하느니 차라리 백지를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2) 지배계급의 한 부문에 대항해 다른 한 부문과 '반파시즘 '연합을 결정하는 정책을 우리가 거부하는 것은 특히 이탈리아 공산주의좌파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이것은 반파시즘이 노동계급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수단임을 정확히 인식했다. 우리의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101호에 재간행된 빌랑(Bilan)지의 기사, '반파시즘: 혼돈을 위한 공식(Anti-fascism: a formula for confusion)'을 참조하기 바란다.

3) 샌더스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트럼프 대 클린턴(Trump v Clinton)' 기사를 참조 바란다.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611/14175/president-trump-symbol-dying-social-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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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브렉시트, 트럼프 : 프롤레타리아에게 좋을 것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후퇴

  • 브렉시트, 트럼프 :

    프롤레타리아에게 좋을 것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후퇴

     

     TrumpBrexit3.jpg

     

    통제 불능에 이른 국민 투표

     

    우리는 30년 전에 "해체에 대한 테제(Theses on Decomposition)"1)를 통해 부르주아지가 그 자신의 정치 기관 중심에서 바깥으로 해체되어 가는 원심력 경향을 더욱 통제하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의 구체적인 의미가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 투표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배계급으로부터 나온 파렴치한 정치적 모험가들은 두 경우 모두에서 지난 30년 동안 경제적 대변동에 고통받아왔던 이들의 포퓰리즘적 저항을 자신들만의 자기-확장에 이용해왔다.

     

    국제공산주의흐름(ICC)은 포퓰리즘의 확장에 대해 인식하고 그 결과를 설명하는데 게을렀다. 이것이 우리가 왜 이제야 포퓰리즘에 대해 - 여전히 조직 내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지만2) - 전반적인 글을 출간하는 이유이다. 이 글은 토론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영국과 미국의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빠르게 진화하는 국제 상황에서 완벽한 분석을 내놓으려는 의도는 없지만, 우리는 이 글이 새로운 사상과 토론 심화를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길 희망한다.

     

    지배계급이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영국에서의 EU 국민투표와 그 이후의 일들로 나타난 전례 없는 혼잡과 무질서의 광경만큼 명백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까지 영국의 자본가들은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통제를 놓쳐본 적이 없었고, 자신들의 매우 중요한 이해관계가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이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와 같은 모험가들 손에 좌지우지된 적도 없었다.

     

    모든 면에서 브렉시트 결과에 대한 준비의 실패는 영국 지배 계급 내부의 혼란을 보여준다. 결과가 발표되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주요한 탈퇴 운동가들은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그들이 약속했던, 그리고 탈퇴 캠페인 버스의 모든 벽에 붙어있었던, 브렉시트 투표가 가져다줄 NHS3)를 위한 매주 3억 5천만 파운드 추가 자금은 본질적으로 '오타'였음을 설명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파라지는 UKIP4)대표 자리에서 사임했고, 모든 브렉시트 쓰레기더미를 그를 따르던 탈퇴 찬성자들의 무릎에 던져버렸다. 보리스 존슨은, 전임 의사소통 담당국장(director of communications) 구토 하리(Guto Harri)는 존슨의 "심장은 브렉시트 운동에 있지 않았다"며, 존슨이 브렉시트를 지지한 대의는 순수하게 기회주의적인 것이며,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에 도전하는 그의 리더십을 부흥시키기 위해 고안된 자위적 조작이라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투표의 모든 기간 존슨의 선전부장이었으며, 존슨이 영국 총리가 되기 위한 운동을 운영할 예정이었던(그러나 반복적으로 그 일에 관심이 없음을 선언해왔던) 마이클 고브(Michael Gove)는 그의 오랜 친구 존슨이 총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근거로 후보자 등록 마감 고작 2시간 전에 스스로 총리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존슨의 등에 칼을 꽂았다. 앤드레아 리드섬(Andrea Leadsom)은 고작 3년 전에는 탈퇴가 영국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으면서 토리당 대표 경선에 확고한 탈퇴 지지자로 입후보했다. 거짓말, 위선, 말 바꾸기들 - 이 모든 것들은 지배계급의 정치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충격적인 것은 세계에서 가장 노련한 지배계급이 어떤 의미에서건 국가에 대한 개인의 야망이나 사소한 맞수들의 비판 너머에 있는 압도적인 역사적, 국가적 이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영국 지배계급의 역사에서 이와 비견할만한 사건을 찾아보자면, 우리는 쇠퇴하는 중세 질서에 대한 마지막 갈망을 보여준 장미 전쟁(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로 극화된)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탈퇴 의견이 승리한 것에 대해 금융과 산업의 사장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충격적이다. 결과에 대한 모든 징후가 "당신의 인생에서 보았던 가장 아슬아슬한 승부"(만약 이를 인용해도 된다면, 워털루 전쟁 이후의 웰링턴 대공)5)임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는데에도. 20%, 그 이후 30%로 달러에 대한 파운드화(Sterling)가 즉각적으로 붕괴했던 것은 브렉시트가 기대한 결과가 아님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파운드화의 가치는 국민 투표 이전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은행과 사업가들이 사무실을, 또는 사업체를 더블린이나 파리로 옮기는 것과 같이 탈출을 향해 질주하는 가감 없는 장관에 배가 부를 정도였다. 세계에서 해외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의존도가 가장 높은 영국경제 상황에서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이 즉각적으로 법인세를 15%로 내리기로 한 것은 영국에 기업들을 잡아두기 위한 명백한 긴급 비상조치였다.

     

    제국의 반격

     

    영국의 지배계급은 아직 쓰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분별력 있게 존속을 지지해왔던 확고하고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인 테리사 메이(Theresa May)가 캐머런의 즉각적인 후임 총리가 되었고(애초에 9월 이전에는 그렇게 기대되지 않았다), 언론과 토리당의 국회의원들에 의해 그녀의 반대편인 앤드리아 리드섬과 마이클 고브가 직장을 잃은 것은 국가의 유력한 지배계급 일부에 대해 신속하고 통일된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그들의 진정한 역량을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이 상황은 세계 자본주의의 진화와 계급 사이 힘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쇠퇴기라는 현 단계에서 통일된 부르주아 정책이 분해되어가는 전반적인 움직임의 산물이다. 포퓰리즘으로 기울어지는 경향 너머의 추동력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포퓰리즘의 문제에 기여한 토론"에서 분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국제 현상은 특정 국가의 역사와 특징들의 영향 아래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띤다. 그래서 토리당은 항상 그 EU에서 영국의 구성원 자격을 실제로 허락한 적이 없는, "유럽연합에 대해 회의적인" 한 측면을 담당해 왔고, 그 근원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1. 유럽의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영국의 - 그리고 그 전에는 잉글랜드의 - 지리학적 위치는 영국이 대륙의 국가들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유럽의 경쟁으로부터 분리된 채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해 왔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 지주 권력의 부재 또한 프랑스가 19세기 이전, 또는 독일이 1870년 이후 그러했던 것처럼 유럽 지배를 바랄 수 없도록 했고, 오직 주요 강국들이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도록 하고, 그들 중 어느 나라와도 연루되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그들의 생존의 이해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2. 영국의 섬으로서의 지리학적 위치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한 국가의 지위는 대항해시대, 세계 제국주의의 개막을 결정지었다. 적어도 17세기부터 영국의 지배계급들은 전 세계에 모양새를 갖추었고, 그것은 다시 그들에게 유럽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하게 변했다. 영국의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지배적인 지위는 더는 유지 가능하지 않았고, 근대적 전쟁 기술들 - 공군,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 – 로 인해 유럽 정치로부터의 고립이 더는 선택사항이 아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 중 하나가 윈스턴 처칠(Winston Curchill)이다. 그는 1946년 "유럽 연방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만들자고 요구하였으나 보수당 내에서 그의 견해는 전적으로 승인되지 못했다. <편집자 주 : 처칠의 구상에서 유럽연방국에 영국이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논쟁이 되고 있다.> 특히 소련(USSR)의 몰락과 1990년대 독일 통일이 실질적으로 유럽에서 독일의 권력을 증가시킴에 따라 EU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이 증가했다.6) 국민투표 운동 동안 보리스 존슨은 EU가 “히틀러” 독일 지배의 도구라고 이야기하는 중상모략을 하였으나, 이러한 사건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거의 똑같은 언어로, 그와 똑같은 감수성들을 이미 1990년에 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가, 그 이후에는 대처 정부의 총리가 표현한 바 있다. 그것은 전후 정치 기관 내에서 권위와 규율의 상실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다만 리들리는 정부로부터 즉각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존슨의 반향은 새로운 내각의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었다.

     

    영국이 세계의 가장 위대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한때 누렸던 지위. 그 지위의 상실은 영국 국민(노동계급을 포함하여)의 심리적, 문화적 현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국가적 집착은 - 영국이 마지막으로 독립적인 세계 강대국으로서 행동할 수 있었던 - 이를 완벽하게 묘사한다. 영국 부르주아지의 일부와 더 많은 소부르주아지는 영국이 오늘날 오직 2등급, 또는 3등급의 강대국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탈퇴 운동가들의 다수가 EU의 "족쇄"로부터 영국이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세계는 영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사러 몰려들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영국 경제가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가능성이 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 권력의 상실에 대해 바깥 세계로 향하는 분노와 적개심은 미국 국민이 자신들의 지위 일부를 잃었다고 인식한 결과(트럼프의 "다시 위대한 아메리카를 만들자"는 지속적인 테마)로서의 감성들, 그리고 냉전 시기 그들이 자신들의 법칙을 부여할 수 있었던 능력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감성들에 견주어볼 만하다.

     

    포퓰리즘에 대한 양보로서의 국민투표

     

    보리스 존슨의 포퓰리즘 광대 짓은 더욱 극적이었고, 더욱 많은 미디어로부터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데이비드 캐머런의 낡은, 최상위 계급의 "책임감 있는" 페르소나가 발휘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캐머런은 지배 계급 내에서 얼마나 부패가 진행되었는지를 더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이기려고 당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민투표라는 카드를 이용한 무대를 만든 것은 캐머런이었다. 바로 그 성격으로 인해 국민투표는 의회 선거보다 통제하기 훨씬 어렵고, 그러하기에 언제나 도박을 의미한다.7) 카지노에 중독된 것처럼, 캐머런은 반복하여 스스로 도박사임을 드러내었는데, 처음에는 아슬아슬하게 그가 승리했던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였고, 그다음이 브렉시트였다. 그의 보수당은 언제나 경제, 영국(연합 왕국)8), 그리고 국방의 최고의 보호자임을 자처해 왔는데 이번에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결과 조작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이해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는 지배계급에 있어서 대부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위험 요소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전통적, 이데올로기적 의미에서, 그리고 심지어 쇠퇴기의 그릇된 형식에서도 그러한 문제에 관한 결정은 전체 대중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 그룹들의 조언을 받은(로비를 받은) “선출된 대표자들”에 의해 내려지게 되어 있다. 부르주아지의 관점에 의하면, 이를테면 2004년 EU의 헌법 조약(Constitutional Treaty)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조약 문서를 읽으려고도 그리고 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물어서 결정하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 국민투표들에서 자주 “잘못된” 결과를 얻었던 지배계급이 이 조약을 연기시켰다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프랑스, 네덜란드, 최초에는 아일랜드에 대해).9)

     

    오늘날 영국 부르주아 정당 내부에 메이 정부가 프랑스와 아일랜드 정부가 헌법 조약에 대한 국민투표를 망친 뒤 했던 것과 같은 속임수를 쓰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국민투표를 무시하거나 뒤집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단기간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영국 부르주아지가 그 추종자들보다 더 민주주의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대중의 의지”의 “민주주의적 표현”을 무시하는 것이 오직 포퓰리즘 사상에 신뢰를 부여하고 그들을 보다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테리사 메이의 전략은 EU로부터 탈퇴하게 된 영국을 조직할 책임을 떠맡은 채, 장관직에서 최대한 잘 해보려고 애쓰고, 가장 잘 알려진 탈퇴 찬성자 셋과 함께 브렉시트의 길을 멈추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광대인 존슨을 국제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 - 해외 인사들을 공포와 유쾌함과 불신이 뒤섞인 감정으로 환영하는 것 - 도 분명 이러한 폭넓은 전략의 일부이다. 존슨을 EU 탈퇴 협상이라는 논란이 많은 자리에 앉힘으로써, 메이는 탈퇴 운동가들의 주요한 발언들이 거의 확실하게 적대적인 언어로 가득할 대부분의 격렬한 비난 - 그리고 불신 - 에 직면할 것을, 그리고 이는 측면 저격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을 확신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포퓰리즘 운동에 찬성하는 이들이 갖는, 엘리트가 단순히 그들에게 불편한 결과를 무시하기 때문에 모든 민주주의 과정은 협잡이라는 인식은 지배계급의 체계로서의 민주주의 효율성에 실질적인 위협이다. 정치에 대한 포퓰리즘 개념에서는 “사람들에 의한 직접적인 결정”이 기존의 정치 엘리트에 의한 선출된 대표자들의 부패를 피하도록 해 줄 것이다. 이것이 독일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부정적 경험과 나치 독일이 국민투표를 이용했던 경험 이후 전후(post-war) 헌법에서 그러한 국민투표를 배제한 까닭이다.10)

     

    탈선한 선거

     

    만약 브렉시트가 통제에서 벗어난 국민투표였다면, 2016년 미 대선 후보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정도를 벗어난 선거이다. 트럼프가 후보가 되었다는 것이 처음 공언되었을 때에는 그 사실이 거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선두는 부시 왕가, 공화국 귀족들의 선호하는 선택, 그리고 잠재적인 강력한 기금 조달자(언제나 미국 선거에서 결정적인 고려사항)는 젭 부시(Jeb Bush)였다. 그러나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트럼프는 초반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했고, 그다음 주(state) 선거에서 계속 이겨나갔다. 부시는 ‘픽’ 소리를 내며 쓰러져 나갔고, 다른 후보들도 다르지 않았다. 공화당 대표자들은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후보는 테드 크루즈(Ted Cruz)뿐이라는 불쾌한 전망에 직면해야 했다. 그는 자기네 상원 의원들로부터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그리고 트럼프보다 아주 조금 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트럼프가 클린턴을 이길 가능성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러나 벌써 트럼프 후보는 제국주의 동맹들의 모든 시스템을 통해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미국은 70년 동안 그 효과성이 상호 방어의 불가침 -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 - 에 의존하는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 동맹의 보증국이었다. 트럼프가 만약 러시아가 발트 해 국가들을 공격했을 때 “그들이 대가를 치렀는지”에 대한 그의 판단에 미국의 반응이 달려있을 것이라고 선언한 방식으로,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 NATO 동맹과 그 조약의 의무를 존중할 준비가 되었음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때가 온다는 것은, 푸틴의 마피아 국가에 직접 대면하고 있는 동유럽 지배계급의 등골을 오싹하게 할 것이며, 중국이라는 용으로부터 보호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대한민국, 베트남, 필리핀 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러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군대는 없다는 트럼프의 최근의 발언(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크리미아(크림 반도)가 우크라이나 일부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완전히 모르는 것)을 보았을 때, 트럼프가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것이라는 가능성은 큰데 이것 역시 다른 이들에게 매우 위급한 상황임을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러시아 정보국의 민주당 IT 시스템 해킹을 환영하고 푸틴을 초대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트럼프에 조금이라도 얼마나 피해를 줬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공화당이 극단적으로까지는 아니어도 격렬하게 반러시아적이었으며,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강력한 군대 조직과 세계 각지에 배치된 다수의 군대를 옹호하는 것(이것은 재정 적자 수준을 급등하게 한 레이건의 엄청난 군비 증강이었다)을 떠올려 볼 가치는 있을 것이다.

     

    공화당이 그 후보를 극단적으로 위험하게 취급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64년, 프라이머리에서 종교적 우익과 “보수 연합”의 지지로 인해 승리한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는 오늘날 “티 파티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의 정책은 적어도 일관적이었다. 연방 정부 예산, 특히 사회 안전망에 대한 예산의 대대적인 감축, 군비 증강, 소련에 대항하는 핵무기의 사용 준비 등. 그것은 전통적인 극우 정책이었으나, 미국의 국가 자본주의의 필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골드워터는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는데, 이는 공화당의 지배층이 그를 지원하는 데 실패한 것에 부분적인 원인이 있었다.

     

    트럼프는 단지 골드워터 2.0 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차이는 유익하다. 골드워터 후보는 그 시기 “티 파티 운동”에 의해 대표되는, 골드워터의 패배 이후 몇 년 동안 물러서야 했던 - 보수당의 권력 장악을 대표한다. 최근의 10~20년 동안 이러한 경향이 돌아왔으며, 이 경향이 GOP11) 권력을 다소간 성공적으로 차지해 왔음은 비밀도 아니다. 그러나 골드워터 지지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 연합”이었다. 그들은 심각한 사회 변화(페미니즘, 시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의 시작, 전통적인 가치의 몰락)를 경험하는 미국 내에서 진정으로 보수적인 경향을 대표했다. 비록 많은 티파티의 “원인”이 골드워터와 같을지라도, 맥락은 그렇지 않다. 그가 반대하는 사회적 변화는 이미 일어난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티파티는 보수의 연합이라기보다 신경증적인 반응의 동맹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고 기본적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이윤을 가져다주는 자유 무역에만 관심이 있는 대(大)부르주아지의 어려움을 증가시켰다. 공화당 프라이머리에 나서는 자가 스스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완전무결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되었다: 낙태(당신은 “생명을 존중하는 이”가 되어야 한다), 총기 규제(총기에 저항하기 위해), 재정적 보수주의와 낮은 세금, “오바마케어”(사회주의, 이는 철폐되어야 한다. 실제로 테드 크루즈의 신용 일부는 상원에서 오바마케어에 저항하는 대중 호소 필리버스터를 한 것에 바탕을 뒀다), 결혼(신성한), 민주당(만약 사탄이 당을 만든다면, 그것은 민주당일 것이다). 자, 짧은 몇 달의 기간 트럼프는 효과적으로 당의 핵심 골자를 빼버렸다. 우리는 그 스스로 낙태, 총기 규제, 결혼(그 스스로 세 번이나 했다)에 대해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준 인물, 과거 스스로 악마 힐러리 클린턴에게 기부했던 인물이 후보가 되었음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최저 임금의 인상,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오바마케어의 유지, 고립주의 해외 정책으로의 회귀, 재정 적자 폭의 증대, 그리고 미국 경제에 필수적인 저임금 노동을 제공해 온 천백만의 이민자들의 추방을 제안한다.

     

    브렉시트에서의 영국의 토리당처럼, 공화당과 잠재적인 미국의 모든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인 입장과 경제적 계급의 이해관계에 대해 완전히 불합리한 정책을 가진 말안장 위에 스스로 올라탔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함의

     

    우리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후보 당선이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제국주의적 수준에서 더욱 불안정한 시대로 안내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수준에서 유럽 국가들 - 우리는 이들이 세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며 가장 큰 단일 시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은 이미 허약한 상황에 부닥쳐있다. 그들은 2007/8년의 금융 위기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협을 경험하였으나, 그것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영국은 주요 유럽 경제권에 남아있지만, EU와의 연결을 끊어내는 오랜 과정은 예측할 수 없게 파탄 날 것이며, 이는 적어도 금융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브렉시트가 유럽의 은행, 보험, 그리고 주식거래의 중심지인 런던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브렉시트의 성공은 유럽 대륙의 포퓰리즘 정당들만을 고취하고 그들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내년 반유럽주의자이며 포퓰리스트인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이 있는 국민 전선이 프랑스 대선에서는 가장 큰 단독 정당이다. 유럽 강대국들의 정부는 영국의 유럽으로부터의 분리를 가능한 부드럽고 마찰 없이 이뤄내려는 열망과 영국에 대한 어떤 양보(이를테면 인구의 이동은 제한한 채 시장에의 접근은 허락하는)도 다른 이들에게 – 지적하자면 폴란드와 헝가리와 같은 국가들에 - 같은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다는 실질적 두려움 사이에서 갈가리 찢겼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을 통합함으로써 유럽의 남동쪽 국경을 안정시키려는 시도는 완전히 중단될 것이다. 터키 에르도안(Erdogan)의 쿠데타와 시리아 난민들을 공갈·협박의 비열한 게임의 말로써 쓰는 것에 대해 EU는 통일된 반응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비록 EU 그 자체가 제국주의 동맹이었던 적은 없으나 그 구성원의 대부분은 NATO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럽의 단합을 약화시키는 어떤 것도 러시아가 동유럽의 측면, 우크라이나와 발트 해 국가들을 무너뜨리는 압력에 반격하는 NATO의 능력에 도미노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러시아가 가끔 프랑스의 국민 전선에 자금을 지원하고, 독일의 페기다(Pegida: Patriotische Europäe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 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 운동에는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유일한, 가장 뚜렷한 승자는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 후보자는 이미 미국의 신뢰성에 한 방 펀치를 날렸다. 핵무기 버튼에 손가락을 얹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생각은, 반드시 말해둬야겠는데, 매우 두려운 전망이다.12) 그러나 우리가 수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날 불안정과 전쟁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그 지배적인 제국주의적 지위를 모든 이민자에 저항하여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결의이며 이 상황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구에 대한 분노

     

    보리스 존슨과 도널드 트럼프는 수다쟁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것도 공유하고 있다. 둘 다 정치적 모험주의자이며 국가의 이해를 넘어서는 어떤 원칙이나 감성도 결여하고 있다. 둘 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왜곡시키든 바꾸든 그들의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의 익살은 그것들이 터무니없어 보일 때까지 미디어에 의해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완전히 하찮은 것들이며 세계화의 패배자들의 울부짖는 분노, 절망, 그리고 부유한 엘리트와 자신들의 비참함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를 쏟아내는 창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트럼프는 가장 무도하고 모순적인 발언을 대충 지껄여버린다. 그의 지지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듣길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존슨과 트럼프가 똑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개인적인 인격의 차이라기보다 그들이 속한 지배계급의 차이와 관계가 있다. 영국 부르주아지는 수 세기 동안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지배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에 비해 미국의 거칠고 대담하며, 자기-몰입적인 국면은 제2차 세계대전에 진입하는, 루스벨트의 고립주의자들에 대한 승리와 더불어 끝났다. 미국 지배 계급의 중요한 분파는 여전히 바깥 세계에 대해 무지한 채로 남아있다. 어떤 이는 그들이 발달이 늦은 성인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선거의 결과는 우리에게 노동 계급의 상황에 대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줄지언정 절대 계급의식의 표현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되었든 미국에서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되었든, 프랑스의 국민 전선의 마린 르 펜이 되었든, 또는 독일의 포퓰리즘인 페기다와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이 되었든, 이러한 당과 운동이 노동자의 지지를 얻는 곳에는 지난 40년 동안 자본주의 경제 변화로부터 가장 고통받은 이들이 있음을,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좌우익을 막론하고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패배한 수년의 경험이 그들에게 지배 엘리트를 위협할 방법은 똑같은 엘리트에 대한 저주를 정책으로 하는 무책임한 정당을 향해 보란 듯이 투표하는 것일 뿐임을, 합리적으로 결론 내린 이들이 있는 곳임을 모든 투표 수치는 보여준다. 비극이라면, 이러한 노동자들이 정확히 1970년대 투쟁에 가장 대중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라는 점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선전의 공통 주제는 “우리”는 “다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실제로 통제해 본 적 없다. 보스턴 UK의 한 거주자가 “우리는 단지 모든 것들을 원래 있었던 자리로 되돌리고 싶을 뿐입니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때란, 일자리가 있었을 때, 그 일자리가 적절한 임금을 보장해 줄 때, 노동 계급 공동체의 사회적 연대가 실업과 태만으로 무너지지 않았을 때, 변화가 뭔가 긍정적이고 조절 가능한 속도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을 때이다.

     

    브렉시트 투표가 영국에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목조 뒤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 더욱 자유롭다고 느끼는 새롭고 추악한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실이다. 그러나 브렉시트 또는 트럼프에 이민을 멈추라고 투표한 많은 - 아마도 절대다수 - 이들은 그렇게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다. 그보다 그들은 외국인 혐오로부터 고통받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공포, 알려지지 않은 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 ‘알려지지 않은 자’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그 자체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의 과정에서 실제의 사회관계를 마치 자연적인 힘으로, 요소로, 마치 날씨와 같이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그러나 노동자들의 생활에 영향력은 훨씬 파괴적일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여, 본질적으로 신비스럽고 이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와 같은 과학적 발견의 시대, 사람들이 더는 궂은 날씨를 마녀가 일으킨 것이라고 믿지 않는 시대에, 그들의 경제적인 비통함이 그들의 불행한 이민자 동료들에 의해 일어났다고 믿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매우 끔찍한 아이러니이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

     

    우리는 이 글을 “해체에 대한 테제”를 언급하면서 시작했다. 해체에 대한 테제는 거의 30년 전인 1990년에 썼다. 우리는 그 테제를 인용하며 결론을 짓고자 한다.

     

    “우리는 특히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그 역사적 책무의 수준에 도달하는 능력이 해체될 위험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한다. (…) 노동계급의 힘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요소들은 바로 이 이데올로기 해체의 다양한 측면들에 직면한다.”

     

    ● 연대와 집단적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찾는’ 원자화에 직면한다.

    ● 조직의 필요는 모든 사회적 삶의 기반이 되는 관계의 파괴, 사회적 해체에 직면한다.

     

    ● 프롤레타리아의 미래에 대한 신뢰와 그 자신의 힘은 지속해서 사회에 만연한 절망과 허무주의로 활력을 잃는다. 의식, 명석함, 일관되며 통일된 생각, 이론의 달콤함은 환상, 마약, 분파주의, 신비주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에 대한 거부 또는 파괴의 가운데로 곤두박질치는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이다."

     

    그 위험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것들이다.

     

    포퓰리즘의 유행은 지배계급에 위험한데, 포퓰리즘이 지배계급의 정치 기관들을 통제할 능력을 위협하는 동시에, 지배계급의 사회적 지배를 지탱하는 기둥인 민주주의의 신비화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프롤레타리아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혼란에 대해 어떤 대안적 전망도 제공하지 못하는 무능력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의 허약함이며, 그것이 포퓰리즘의 유행을 가능하게 했다. 프롤레타리아만이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유혹의 말 - 포퓰리스트 선동가들이 약속하는, 어떤 경우에라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과거로의 회귀라는 불가능한 약속에 자신을 맡긴다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8월, Jens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주>

    1) International Review 107, 2001년 출판

    2) International Review의 이 주제를 보라.

    3) 국가 의료 제도(National Health Service)

    4) 영국 독립당(United Kingdom Independence Party): 1991년 세워진 포퓰리즘 정당. 그 선전은 본질적으로 EU 탈퇴와 이민 반대이다. 역설적으로 유럽 의회에서 가장 거대한 단독 영국 정당을 구성하는 22명의 MEPs 를 보유하고 있다.

    5) EU와 영국 재무부가 탈퇴 캠프가 승리할 경우 상황에 대한 계획에 대해 일정정도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준비가 부적절하며 - 아마도 보다 적절하게는 - 아무도 탈퇴파가 국민투표에서 승리할 것이라도 진실로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이것은 탈퇴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진실이었다. 명백히, 파라지는 국민투표 날 잔류파의 승리를 인정했으나, 잔류파가 패배한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6) 1973년 보수당 정권 아래 영국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했다. 그 구성원 자격은 1975년 노동당 정부의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되었다.

    7) 대처가 의회 선거에서 40% 이상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권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8)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의 통합 왕국 연합이라고 이야기된다.

    9) 이러한 불편한 결과에 따르면, 유럽 정부들은 헌법 조약을 채택하지 않았고, 2009년 리스본 조약으로 기존의 협정을 단순히 수정함으로써 가장 본질적인 요인을 구했다.

    10) 스위스와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국민투표와 구분해야 한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정립된 정치적인 과정의 일부였다.

    11) “Grand Old Party”,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용된 공화당의 구어식 표현이다.

    12) 골드워터 패배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전술적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존슨의 선전은 골드워터의 슬로건 “당신의 가슴 속에서 당신은 그가 옳음을 알고 있다”와 대비되게 “당신의 창자에서, 당신이 그가 괴짜임을 안다”라는 슬로건으로 맞받아쳤다.

     

    <원문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nternational-review/201608/14087/brexit-trump-setbacks-ruling-class-nothing-good-proleta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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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5호를 내면서
 
 
박근혜 정권의 탄생 직전에 창간한 『코뮤니스트』를 박근혜가 파면되어 구속된 시점에 발간한다. 지난 몇 년의 엄중한 정세에서 코뮤니스트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특히 코뮤니스트를 제때 발행하지 못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기에 독자들에게 가장 무거운 마음으로 사과드린다. '코뮤니스트'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대중과 약속한 것은 혁명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이행하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과 운동의 절박함을 담아 다시 약속드린다. 앞으로 코뮤니스트는 정기적으로 정세에 맞춰 발행할 것이다. 또한, 코뮤니스트 정치와 코뮤니스트(공산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알릴 것이다. 코뮤니스트가 중심이 되어 다시 한 번 혁명 조직 건설의 기초를 마련할 것이다. 코뮤니스트 지지자와 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체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번호는 장기간의 공백이 있었던 만큼 현 정세와 코뮤니스트 정치에 중심을 두었다.
<코뮤니스트 정치>에는 촛불 투쟁이 만들어 낸 조기 대선 정국에서 정권 교체와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촛불 투쟁이 향해야 할 길과 대대적 촛불 투쟁에 대한 분석 글을 실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 특집>에는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려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계획과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혁명 운동 평가와 전망 모임’에서 개최한 토론회 발제문을 실었다.
<문화예술>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관람기와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추모집을 코뮤니스트 추모문화 정립 의지를 담아 소개했다.
<국제정세>에는 자본주의의 오래된 침체와 사멸해가는 사회체제의 상징인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를 다룬 공산주의좌파 경향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들은 현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연속성을 갖기 위해 작년 기사도 실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추적해 나갈 것이다.
이번 호부터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연속해서 소개할 예정이다. 우리의 정치 원칙이 코뮤니스트의 유일한 강령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열어놓고 토론할 생각이며, 내외부의 어떠한 논쟁과 검증과 공헌도 기꺼이 받아들여 함께 발전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코뮤니스트 혁명가>에는 실비아 팽크허스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글을 실었는데, 이것은 왜곡되어 잘못 알려진 혁명가의 명예회복과 혁명적 복원의 시작을 알리는 특별한 약속이다.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연재 번역 글은 이번이 4회 인데, 앞으로 속도를 높여 빠른 시일 안에 완료할 것이다. 코뮤니스트는 앞으로 한국의 사회주의자와 노동자들이 좌익공산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와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고 혁명적 공산주의 사상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사상적 기반을 제공할 계획이다.
 
박근혜 정권의 탄생시기에 출범한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그동안 수많은 내외부의 걸림돌과 싸우면서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손실도 있었고, 반성도 있었고, 교훈도 얻었다. 우리는 이 과정이 코뮤니스트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코뮤니스트』를 재편하면서, 새롭게 창간한다는 각오로 5호를 발행한다.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코뮤니스트 창간 정신을 계속 발전시키는 데 있다.

 
“우리는 세계혁명운동의 역사 속에서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평가와 그에 따른 원칙을 되새기려 한다. 인터내셔널의 관점으로 코뮤니스트 운동을 생성해 나가려는 주체로서 우리는 스스로를 정립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책을 사서 읽는 동지들을 단순한 구매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의 시대에 서서 함께 활동하는 동지로 생각한다. 동지들의 적극적인 비판적 문제의식을 기대한다. 우리는 항상 열려있고, 동지들과 토론하기를 원한다.
애매모호한 진보 좌파, 노동 정치에 대한 허상을 깨고, 코뮤니스트의 이념과 원칙을 위해!“
 
- 2012년 10월 8일 『코뮤니스트』 창간사 중에서

 

박근혜 정권이 저물고 새로운 부르주아 야당 정권이 들어선다고 노동자의 삶과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 4년과 촛불 투쟁의 경험은 오히려 야만의 자본주의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유일한 목표가 코뮤니스트 혁명임을 증명하고 있다. 촛불 투쟁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노동자계급의 현실이 암울하다고 자본주의 타도와 코뮤니스트 혁명으로 향하는 길에 우회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최종 목표를 분명히, 공개적으로, 공세적으로 주장하며 새로운 운동을 창출해 나가야 할 때이다.

 
“미래는 야만이 아니라 코뮤니즘이어야 한다.”

 
2017년 4월 10일
코뮤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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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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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17 봄호_5호 목차

□ 코뮤니스트 5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의 전면적 투쟁으로!!
‣ 대대적 촛불 투쟁은 더 넓고 깊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
‣ <노동자의 책> 이진영 동지에 대한 탄압을 규탄한다!
‣ 대대적 촛불 투쟁, 주체 그리고 자극(inspiration)   

□ 러시아 혁명 100주년 특집
‣ 1917년 러시아와 노동계급의 혁명적 기억
‣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행기 그리고 코뮤니즘을 둘러싼 쟁점들
‣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 문화예술 
‣ 나, 다니엘 블레이크
‣ 남궁원이 부른다. ‘청계천8가’에서 ‘인터내셔널’까지

□ 국제 정세
‣ 트럼프: 여전히 문제는 자본주의
‣ 대통령 트럼프 : 사멸해가는 사회체제의 상징
‣ 브렉시트, 트럼프 : 프롤레타리아에게 좋을 것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후퇴
  
□ 코뮤니즘을 향하여
‣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1 - 반의회주의 혁명전략

□ 코뮤니스트 혁명가
‣ 선거 – 실비아 팽크허스트
‣ 실비아 팽크허스트 : 혁명가들은 왜 노동당에 반대하는가?
‣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의 독일사회민주당의 위기 [유니우스 팸플릿] 한국어판 서문

□ 연재 번역
‣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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