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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2호] 문화 전쟁에서 모험: 비평

문화 전쟁에서 모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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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라 미디어(Novara Media)의 객원 편집자인 애쉬 사카(Ash Sarkar)는 올해 문화 전쟁에서 모험(Adventures in the Culture Wars)”이라는 도발적인 부제를 단 첫 번째 저서 소수자의 지배Minority Rule)1)를 출간했다. 노바라 미디어는 2011년에 설립되어 학생 운동2) 이후에 자율주의적 경향의 뉴스와 정치 분석을 제공하는 매체로 두각을 나타냈다.3) 그러나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노동당 대표로 재임하는 동안(2015-2020) 코빈의 지도력에 열정적으로 몸을 바쳐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되면서 이들의 인지도는 크게 상승했다. 5년 전 코빈이 사임한 이후 사카와 그녀의 노바라 동료들은 다시 당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기회주의적이던 시절의 정치적 입지를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사카는 자신의 정치를 자유의지 코뮤니스트(libertarian communist)”, 자신의 분석 체계를 맑스주의자로 묘사하는데, 아마도 TV 프로그램 굿모닝 브리튼에서 짜증이 폭발하여 자신은 코뮤니스트이며 피어스 모건(Piers Morgan)바보라고 선언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4) 사카는 소수자의 지배에서, 지난 수십 년간 대중의 분노를 조장하고 표출시켜 우리 모두를 서로 대립하게 하고, 당면한 실제 문제에서 우리의 관심을 돌리는 데 있어 미디어가 수행한 역할을 분석한다. 필연적으로 좌익과 우익 모두에서 나타나는 정체성 정치는 이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사카의 조사에서 중심 주제를 형성한다.

 

 

좌파의 정체성 정치

 

사카의 출발점은 좌파에 대한 비판으로, 그녀는 자신이 정체성 정치의 혁명적 본질이라고 제시하는 것을 좌파가 자유주의적 일탈로 왜곡하여, 최근 몇 년간 정체성 정치가 반()생산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전환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사카는 좌파 환경여기서 조직화 시도는 억압 올림픽”5)에 의해 탈선되었다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경험을 회상하고, 개인적 경험과 피해 의식에 대한 집착이 집단 프로젝트에서 적극적으로 파괴적인 역할을 해온 일반적인 경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콤바히 리버 콜렉티브(Combahee River Collective, CRC)와 블랙 팬서 파티(Black Panther Party, BPP) 같은 그룹과 대조한다.6) 사카는 정체성 정치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CRC 성명서(1974년 작성, 1977년 발표)로 돌아가서, 정체성 정치의 본래 의도가 집단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혁명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오늘날 좌파의 정체성 정치와 비교하면서, 사카는 후자에 만연한 세 가지 핵심적인 해로운 사상, 생생한 경험의 우위, “환원 불가능한 차이에 대한 강조, 그리고 당연한 듯 받아들인 상충하는 이해관계라는 가정을 제시한다.(32) 우리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정체성 범주에 근거하여 서로 상충하며, 우리의 차이가 노동자로서 우리가 공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실제로 연대에 파괴적이며, 사카가 이것을 지적하는 것은 분명히 올바른 것이다. 또한, 사카가 지적했듯이, “생생한 경험을 탁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고통으로부터 사회자본”7)을 창출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피해 의식을 만들어낸 조건을 바꾸기보다는 피해 의식을 고수하려는 비뚤어진 동기를 창출했다.(65)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그녀가 정체성 정치의 혁명적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사카의 주장은 훨씬 더 불확실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 CRC의 경우에는 이것이 그들의 의도였을 가능성이 충분한데, 그들은 가부장제뿐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정치경제 체제의 파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8) 그들은 인종, 계급, 성적 억압을 분리하는 데 종종 어려움을 [겪었는데]” 당시 흑인 여성들에게 이러한 억압들은 대부분 동시에 경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 운동의 정치적 기여에 의존하는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개인적 경험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꽤 명백하다. 그들은 억압의 문화적, 경험적 본질을 탐구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따라서 이러한 경험이 그들 정치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게다가 자칭 맑스주의자로서는 다소 당혹스럽게도, 사카는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이 노동계급을 인종도 성별도 없는 노동자로만생각했다라는 CRC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특정 부분이 억압받는 구체적인 방식을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며, 최고로 중요한 일이다. 실제로 맑스와 엥겔스 자신도 이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당대에 여성이나 이주민이 착취당하는 구체적인 방식과 더 광범위한 노동계급 내에서 이것이 지니는 역학관계를 반복적으로 지적했다.9)

 

그리고 맑스주의 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억압에 반대하는 데 있어 동시성이라는 상당히 기본적인 개념보다 훨씬 더 적합한 이론적 도구를 발견한다. 우리는 이러한 억압이 단순히 서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역사적 과정계급 사회의 발전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사카는 나중에 이 문제를 어느 정도 다루지만, 인종 개념과 관련해서만 다룰 뿐인데, 그녀는 이 인종 개념을 노예제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나중에는 노동계급을 분열시킬 목적으로 영속화된 기술이라고 설명한다.(237)

 

게다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보아왔듯이, 소수 집단의 동화는 지배계급의 구명 세트에서 소외만큼이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소외 경험은 누군가를 혁명적 관점을 채택하도록 이끌 수 있지만, 소수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기를 들자면, 오늘날 흑인 레즈비언이면서 동시에 CEO가 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정체성에 기반을 둔 주장은 자연스럽게 개량주의적 막다른 골목(단일 쟁점 캠페인, 대표성 요구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 개량주의로부터 정체성 정치를 구출하려는 모든 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개인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정체성 정치의 발전은 정체성 정치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논리적 귀결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노동계급의 다양한 부문이 겪는 구체적인 억압과 착취에 대처하기 위한 토대는 독립적인 노동계급 정치여야만 하며, 동화와 개혁을 목표로 하는 계급 혼합적, 분파적 정치에 대한 다원주의적, 기회주의적인 양보여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

 

개량주의로 향하는 이러한 내재적 경향을 고려할 때, 정체성 정치의 논리적 종착점은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것을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며, 비록 (곧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사카의 분석은 부족하지만, 그녀가 여기서 자본가의 위선을 지적한 것은 올바르다. 그녀는 특히 코카콜라와 CIA가 교육과 마케팅에서 교차성을 수용한 사례를 언급하며, 코카콜라가 미시간주 플린트의 지속적인 식수 부족을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는 멕시코 치아파스주에서 이득을 취하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또한, CIA가 자신을 반()차별주의자라고 광고하면서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지정학적 적대국들에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투하하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사카는 이 문제를 제국주의라고 명명했고, 그녀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카, 또는 적어도 이 책의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는 영국, 미국, 그리고 그 동맹국들의 제국주의 정책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단지 한 국가나 국가 블록의 정책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모든 국가가 한 세기 넘게 그 안에서 운영되어야 했던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한 국면이며, 모든 국가의 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어쩔 수 없는 원동력이다. 학생운동 이후 좌파의 베테랑이자 자신을 맑스주의자라고 칭하는 사카가 맑스와 엥겔스가 정교화하고 이후 부하린과 레닌이 제국주의 이론으로 발전시킨 방법론을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고도 적잖이 거만한 짓일 것이다.10)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의 지배의 제국주의 비판에서 그것들이 빠진 것은 더욱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그녀가 지적하는 많은 문제를 훨씬 더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어, 생산과 분배 수단이 점점 더 적은 수의, 점점 더 큰 조직(아마존, 구글, 메타 등)의 수중에 집적되고 집중되고 있는 현재의 경향은 사유화가 [아닌] 인클로져로 나아가는 (바루파키스의 표현으로)11)봉건제적 전환으로 설명된다.(258-60) 그러나 금융화·투기·국가개입이 증가함과 더불어 독점적 소유로 나아가는 이러한 경향은 맑스주의자들에게는 모호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한 세기 넘게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를 규정해 온 바로 그것이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교조주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을 빈곤하게 만들고 억압하는 세력이 어떻게 세계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과 동일한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이러한 더욱 완전한 정의는, 이러한 경제적 발전이 생산양식 측면에서 퇴보가 아니라 더욱 깊은 심연이 체제가 우리를 이곳으로 몰아넣고 있다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임을 보여준다.

 

우파의 정체성 정치

 

그러나 좌파에 대한 비판이  소수자의 지배의 끝이 아니며,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도 아니다. 대신에 사카는 언론의 문화 전쟁에 대한 좌파의 부적절한 대응을 다룬 후, 이 문제를 추적하여 자본의 우파가 전통 매체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애초에 그것들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되짚어본다. 여기서 그녀는 다양한 우파의 주장에 내재해 있는 환상과 오류를 분석하고, 왜 그것들이 일반 대중에게 그토록 큰 지지를 얻었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간다. 마케팅 방식사카의 통제력이 명백히 제한된 부분과는 달리, 이 부분은 실제로 소수자의 지배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첫 번째 장이 없었다면 (사카가 자주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 담론의 언어와 유머는 다소 불쾌감을 줄 수 있지만) 분석과 메시지 측면에서 훨씬 더 광범위한 타당성을 지녔을 것이다. 여러 직장으로 확대되며 점점 더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는 다양성과 포용성 교육 외에도, 사르카르가 능숙하게 보여주듯이, 대부분 노동계급은 교차성을 둘러싼 토론을 접하기보다는 우리의 의식 속에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우익의 논지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사카의 두 번째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다. 문화 전쟁은 자본가 계급, 특히 우익이 조종하는 미디어의 산물이며, 우리의 불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문제는 자신과 그들의 체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있다고 우리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녀가 다양한 홍보 영상과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소수 엘리트 집단우리가 들어왔던 그런 집단이 아니다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사카는 지난 40여 년간 영국 노동계급이 겪은 경험계급투쟁 물결의 붕괴, 영국 중공업과 복지국가의 해체, 소규모 재산·사업체 소유로 점진적 전환 등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자본가들, 특히 자본의 우익과 언론(이 시기 대부분 동안 권력을 누려온 것은 맞지만, 여기서 그녀는 자본의 좌파가 수행한 역할을 축소하여 언급한다)이 어떻게 이러한 과정을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에 맞춰 조종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노동계급은 기하급수적으로 분열해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의심을 품게 되었다.

 

사카가 보여주듯이, 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의 연대를 체계적으로 약화함으로써 혼란의 씨앗을 뿌렸는데, 오늘날 그들은 우파와 좌파의 정체성 정치 사이의 문화 전쟁이라는 형태 속에서 그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사카는 이주와 성 정체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최근의 도덕적 공황을 하나하나 조금씩 살펴본다. 또한, 그녀는 주류 언론의 변화한때 맹목적인 유행 추종자들로 조롱받고 무시당했던 영국 노동계급이 이제는 조작된 위협(이주민, 트랜스젠더)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백인 노동계급으로 변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카는 장막을 걷어내고 환상 기계의 다중 레버를 맹렬히 잡아당기고 있는 사기꾼들을 폭로함으로써, 노동계급 전체이러한 도덕적 공황이라는 허구의 분열 양쪽에 나뉘어 있다가 서로 분열하여 더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정확하게 강조한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과 조건에 대한 공격은 나중에 백인 영국 노동자들에게도 확산한다. 그리고 젠더 이념에 맞서 싸우는 것처럼 포장된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격은 필연적으로 시스젠더(cis: 생물학적 성과 성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옮긴이)와 트랜스젠더 모두의 의료 서비스에 영향을 미친다.

 

사카는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소셜 미디어의 새로운 기술 발전이, 우리의 주의와 사고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독점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에 주목한다. 맑스와 엥겔스가 모든 시대에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라고 지적한 이래, 우리의 사고 자체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지속적인 지배의 본질은 상당히 변화했다. 맑스와 엥겔스 시대에, 이러한 지배는 빈곤층과 노동계급의 기초 문해력이 비교적 최근에야 나타난 현상이고 그 이상의 교육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지난 18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문해율이 상승했고, 처음에는 신디케이트 저널리즘의 형태로 그다음에는 소셜 미디어의 형태로 대중 매체가 급격히 늘어났다. 사카는 소셜 미디어가 부분적으로, 그러나 극적으로 공적 영역을 민주화했으며, 그 효과는 놀랍고도 매우 우울했다고 말한다.(83)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모든 자본주의적 민주화와 마찬가지로, 사회 영역에서 평등한 참여라는 약속은 자본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참여자들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조작하는 방식의 현실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위기

 

그러나 사카의 설명에는 자본주의의 작동에 내재한 위기의 본질은 빠져 있는데, 이는 이러한[정부의] 정책과 전술이 연이은 우익과 중도 정부의 악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이윤율이 하락함에 따라 자본가 계급은 이러한 경향을 상쇄하는 동시에 경제적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측면에서 가능한 한 큰 비용을 노동계급에 전가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노동계급의 실업, 빈곤, 비참함을 수반하는 주기적인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존재에 있어 불가피한 부분이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에서, 새로운 축적 사이클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본 인프라의 대대적인 파괴는 결국 전쟁, 즉 세계대전을 초래했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의 세 번째 세계적 축적 사이클의 끝자락에 살고 있다. 따라서 중공업은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해체되어 임금 노동이 더 저렴한(그리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더 낮은) 주변부로 이전되었다. 따라서 모든 곳에서 인플레이션 대비 임금이 하락 압력을 받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임금이 감소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동시에 노동계급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축소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정부들의 정책과 전술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표현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서론에서 사카는 단 한 번, 자본주의가 위기로 향하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러한 경향을 새로운 시장에 대한 끝없는 욕구라고 설명한다.(7) 그러나 새로운 시장에 대한 이러한 욕구분명 자본주의에 내재한 위기의 특징는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동력이 아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자본론3권에서 아주 분명하게 밝혔듯이, 이 동력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이며, 자본의 끊임없는 새로운 시장추구는 이윤율의 저하와 동의어가 아니라 그 증상이다. 이 말이 다소 현학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 위기의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기를 들어, 사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시기, 즉 영국 사회민주주의의 전성기에 대한 향수를 해로운 환상으로 정확하게 규정한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그녀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계급 불평등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간단하다고 묘사하고 난 후, 그 시대를 정의했던 케인스주의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제안을 줄줄이 늘어놓는다(“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복지와 공공 서비스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윤을 쥐어짜고, 임금을 끌어올릴 의향이 있다면”, 198). 일회성 발언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는 실상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것이 사카가 말하는 코뮤니즘”(우리는 그것이 코뮤니즘이 아니라고 가정한다)가 이런 의미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양보적 개혁이 어떻게 그리고 왜 도입되는지, 그리고 애초에 그러한 개혁을 약속하는 좌익 정당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집권하는지에 대한 본말이 전도된 오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코빈주의(Corbynism: 코빈은 영국 노동당 내 좌파로 당대표를 지냈다옮긴이)의 실패는 이러한 이유로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스타머의 노동당 정부와 그 이전의 블레어 정부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상당히 강경했지만, 코빈 운동의 종말에 대한 사카의 분석은 대체로 전략상의 오류와 다른 정치 세력의 반대를 극복할 수 없었다는 점에 국한되어 있다. 사카는 자신과 노바라 동료들이 이 시기에 근본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전략을 추구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편이지만, 이 시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순진했고 궁극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좌파의 혼란과 환상을 심화시키는 데 있어 사카와 노바라가 수행해 왔고 지금도 계속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그들에게 정직한 심판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 견해에서도 똑같이 순진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의 지배가 좌파주의, 즉 개량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카는 이 책 (그리고 그녀의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자신을 코뮤니스트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그녀가 지적한 실제 문제들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사카는 소수자의 지배에서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것으로 제시하는 듯 보이지만, 그녀의 주장이 담고 있는 실제 정치적 내용은 필연적으로 개혁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후퇴하고 만다. 우리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의 조건을 방어하고 개선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서 노동계급은 자신의 집단적 힘을 다시 배우고 재발견해야 하는데, 이는 자본가의 공격에 맞서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계급으로서 자신의 공동 이익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먼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자본가 계급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러한 개혁을 허용한 것만큼이나 쉽게 철회할 것이다. 오늘날 그들의 이해관계는 임금과 복지보다 군비 지출이 우선이라는 것을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투쟁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와 이 독특한 위치가 부여하는 역사적 사명, 즉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무덤을 파는 자의 사명을 이해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자본 좌파의 환상을 고려할 때, 사카가 정치가 관중 스포츠가 되었다”(12)라고 불평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범위 안에서 모든 민주주의는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소수를 위한, 유산계급만을 위한, 부자만을 위한 민주주의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노동계급이 우리의 권력을 어떤 사람들과 단체들에 위임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과 단체는 우리를 대표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착취하는 계급,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부르주아 팬터마임과 공통점이 없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대해 명확하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역사적으로 자기 조직화한 대중 계급투쟁의 경험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독립적인 계급 통치 기관대중 집회, 파업위원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자평의회(또는 소비에트)을 통해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대 미디어에서 날조된 분노에 대한 간략한 역사로서,  소수자의 지배의 핵심에는 동의하지 못할 부분이 거의 없다. 우파가 유리한 곳에서 우파를 이기기 위해 문화 전쟁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논지를 거부하고 우리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우리만의 의제를 설정하고 분열을 더 큰 분열이 아닌 연대로 극복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그녀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의 장점은 그 약점과 분리될 수 없는데, 이 책의 요점은 좌파의 정치와 전략이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는 좌파의 일부가 아니라 노동계급 일부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와 그것을 지배하는 계급을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그 대신 계급, 국가, 화폐가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게 된 소수의 계급 일부이다. 우리가 코뮤니즘이라고 부르는 이 사회는 소련과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괴물들이나,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노동계급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다른 어떤 민족 국가와도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혁명적 수단에 의해 초래된 이 사회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를 아우르지 않으면 실패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혁명은 노동계급이 이끌어야 하고, 우리 자신의 주도하에 우리만의 독립적인 영역에서 조직되어야 하며, 우리를 서로 싸우게 만들기 위해 착취자들이 그어놓은 자의적인 차이의 선들인종, 성별, 성적 지향, 종교, 그리고 그들이 생각해 낸 다른 모든 것을 넘어 단결해야 한다.

 

20256

틴코트카(Tinkotka)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혁명적 전망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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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옮긴이 주) 현대 민주주의의 원리인 다수 지배에 대립하는 소수 엘리트의 지배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인종이나 젠더 같은 영역의 소수자가 서구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역설적인 제목이다.

2. (옮긴이 주) ‘학생운동1960년대와 1970년대 학생들이 주도한 좌파 운동(이후 신좌파)을 언급하는 말로 보인다. 이 운동은 민주주의, 시민권, (대학)개혁 같은 문제를 중요시했는데, 노바라 미디어는 그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3. ‘노바라라는 명칭은 엘리오 페트리(Elio Petri) 감독의 1971년 영화 「천국으로 가는 노동계급(The Working Class Goes to Heaven)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피에몬테(Piedmont) 지역의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다.

4. “코뮤니즘의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후자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5. (옮긴이 주) 어떤 집단이 가장 억압받고 있는지 경쟁적으로 따져보는 것.

6. 아사드 하이더(Asad Haider)2018년에 출간한 책 「잘못된 정체성: 트럼프 시대의 인종과 계급(Mistaken Identity: Race and Class in the Age of Trump)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는데, 당시 우리는 이 책을 리뷰하면서 CRCBPP에 깃든 스탈린주의의 유산을 비판했다. leftcom.org.

7. (옮긴이 주) 사회자본이란 사람들 사이의 연계와 네트워크가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개념이다.

8. CRC 성명서는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americanstudies.yale.edu.

9. 보기를 들어, 맑스의「자본론과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서 흑인 노예제와 아일랜드 이주민에 대한 논평을 볼 것. 여성 억압의 역사적 뿌리에 대한 분석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을 참고할 것.

 

10. 부하린의「제국주의와 세계 경제 그리고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를 볼 것.

11. (옮긴이 주) à la Varoufakis: 그리스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오늘날을 테크노 봉건주의사회로 묘사한다. 거대 기술 기업이 세계를 자신들의 봉건적 영토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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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대안 2

거부: 자본주의 선거에 대한 계급적 대응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대안”을 밝힌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동지들의 과거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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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 매체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거부’ 요구를 검열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므로[1], 우리는 선거에서 거부할 것을 촉구하는 임무를 스스로 맡는다. 오늘날 어느 국가에서든 진정한 의사결정 과정은 국민 대표자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진정한 권력은 의회나 백악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기관 배후에 있는 기구에 있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자본주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레닌의 "혁명적 의회주의"조차도 본래 목적은 차르 두마(하원)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집권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급진적 개혁주의자들의 활동은 그들이 지지하는 반동적 자본주의 분파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 활동에 끌려 들어간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부르주아지는 누가 후보 명단에 오르고, 누가 선거에 출마할지 집단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나서는 모든 유권자에게 자신의 조건에 맞는 정당에 투표하라고 요구한다. 반면 시민들은 후보 명단에서 가장 덜 악한 거짓말쟁이로 보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투표한다. 지배계급의 정치적 쇼(선거)를 거부하라는 요구는 결국 일부 자본가들에게 위협이 된다. 실제로 한 주요 소셜 미디어 기업이 그러한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의 원인은 미국 정권을 이끄는 두 분파(민주당, 공화당) 사이의 정치적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쟁은 너무나 심해서 지배계급이 더 강력한 검열을 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리 코뮌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민주주의의 사례들이 있다. 이는 소수 지배층이 장악한 자본주의 정치 체제에서 단순히 자리를 차지하는 정치적 꼭두각시가 아니라, 위임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선출자가 소환할 수 있는 대의원(대표)을 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였다. 이러한 노동자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를 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독재"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들에게 자신들이 배제된 모든 형태의 사회 조직은 독재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정치 기구인 정당의 등장은 19세기 경찰 조직의 형성과 민족주의의 부상과 함께 나타났다. 계몽주의 혁명의 시대에 ‘당파적인 사람(당원)’이란 민중의 이익보다 자기 정치 분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이는 옛 귀족 계급의 한 분파에 가담하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 혁명 직후 휘그당과 공화민주당과 같은 느슨한 정치 세력은 19세기 후반에 명확하게 확립된 경직된 정치 구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자본의 좌파 일부는 누구나 부르주아 공화국의 가장 오래된 정치적 득표 획득 기구에 들어가 대중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기구로부터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하는 모든 정치 세력을 이념적으로 압박한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종파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율성을 표출하는 모든 행위를 종파주의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노동자들이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혁명가들이 자본주의 선거라는 부르주아 정치쇼 참여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선거 과정 자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외는 무관심과 불만으로 나타난다. 이는 강렬한 이념적 공격을 받는 노동자들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거부를 촉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영역에서, 계급의 방식으로 지배계급에 맞서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인터넷이라는 주류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표현을 부르주아 양당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투표소에 가두어, 누구나 부르주아 전쟁광들에게 투표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표현의 제한은 누군가가 금지된 ‘거부’ 주장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주장이 용인되고 무시되곤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위기는 이러한 정치적 각본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초래했다. 부르주아지는 끝없는 축적의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스스로 반대되는 현상을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혐오 캠페인이 자행되고 있다. 이 캠페인은 모든 반대 의견과 사회적 저항을 경쟁 관계에 있는 제국주의 세력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몰아 공격한다. 이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부르주아지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해 나아가면서 사용해 온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 것이다. 이는 국외에서 전쟁의 명분을 쌓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탄압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발생한 모든 사회 운동은 제국주의 세계 무대에서 특정 적대 세력이 조장한 분열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경찰의 총격에 시달리는 것이 싫다면 "X"라는 나라에 속았기 때문이고, 전쟁에 지쳤다면 "Y"라는 나라 탓이라는 식이다.

 

우리는 이러한 계급 분열이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국가, 모든 민족 집단, 모든 정체성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부르주아 이념가들은 이러한 계급 구분을 감추려 하지만, 결국 계급 분열은 그들의 정체성 정치로도 지울 수 없을 만큼 뿌리 깊다. 미국의 두 주요 부르주아 집단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모두 시민들의 신뢰에 대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그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반동적이다. 달라진 점은, 거대한 소셜 미디어 기구를 장악한 일부 사람들이 선거 거부를 촉구하는 모든 목소리를 금지된 표현으로 규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미국 선거에서 어떤 투표도 제국주의 전쟁 기계를 정당화하는 행위이다. 이는 부르주아 행정부의 양 진영 모두 해외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확장하고 유지하는 데 전적으로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결국 핵심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충돌로 이어질 영구적인 전쟁 상황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민주적 선택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이 체제의 실체를 폭로할 것을 촉구한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행위원회를 누가 운영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2]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거부는 지배적인 자본주의 세력의 이념적 통제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계급이 스스로 '자신을 위한 계급'으로 자각하기 위해서는 [3] 정치적 단절이 첫걸음이다. 유진 V. 뎁스(Eugene V. Debs)는 민주당에 입당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을 탈당해서 그러했다. 실제로 그는 특히 풀먼(Pullman) 파업의 유혈 사태 이후 민주당 초기 활동을 개인적인 수치의 원천으로 여겼다. 초기 볼셰비키들도 차르의 경찰국가를 개혁하겠다는 목적으로 두마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위를 이용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지지를 규탄했고, 의회 연단을 통해 부르주아 정권을 비난했다. 냉전 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이름을 가진, 제국주의 전쟁 지지가 명백히 드러난 우리의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본주의 정당 앞에 우리 모두를 무릎 꿇게 하려고 한다. DSA는 미국 사회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정당으로 전락하여 붕괴한 결과물이다. 그들은 열린 무덤을 응시하며 그것이 요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부르주아 선거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자신의 혁명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집권당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나는 부르주아 지배의 정치적 위기를 활용하여 우리의 정치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동자들에게 선거란 착취자들이 자행하는 의례적인 굴욕 행위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지 않는다고 외칠 때, 우리는 자본주의 선거에서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

 

부르주아 선거를 거부하자!

 

2019년 9월 6일

ASm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주>

 

[1] 클라이모어(Clymore), A. “페이스북, 미국 유권자들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광고 금지할 예정”. 로이터. 2019년 6월 30일.

https://www.reuters.com/article/us-usa-election-facebook/facebook-will-ban-ads-that-tell-people-in-u-s-not-to-vote-idUSKCN1TV0Y8/

[2] 『코뮤니스트 선언』 제1장, “현대 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업무를 관리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맑스)

[3] 『철학의 빈곤』, “따라서 이러한 대중은 이미 자본에 대항하는 계급이지만, 아직 자신을 위한 계급은 아니다.” (맑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9-09-06/abstention-a-class-response-to-capitalist-e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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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대안 1

모든 투표는 자본주의에 대한 찬성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대안”을 밝힌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동지들의 과거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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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조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후보”에 투표할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노동계급이 맞이할 결과는 모든 분야에서 삭감과 위기뿐이다

 

자본주의 투표는 노동계급에 무의미한 것 이상으로 해롭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이다. 설령 노동자 정당이나 이른바 사회주의 정당에 투표한다 해도, 결국 현 체제를 정당할 뿐이다. 우리가 투표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그들은 자신들이 통치할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더 커진다. 국민(유권자)의 뜻이라는 것이다! 사실, 1974년 이후 영국 선지(The Sun)의 지지 없이 당선된 정부는 없었으니, 국민의 뜻이 아니라 머독 언론이 대변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처럼 생산 수단을 장악한 자들은 사상의 재생산 수단도 장악하고 있으며, 매일같이 자신들의 언론매체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진정한 권력은 의회에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우리 조상들이 참정권을 위해 싸웠으니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라고 여전히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는 차티스트 운동(참정권 요구)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진보적인 역할을 상실했다. 노동계급이 투표함에 종이 한 장을 넣는다고 해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체제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다. 19세기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했던 것은 지금과는 사정이 다르다. 당시 자본주의 언론은 노동계급에 접근할 수 없었고 국가는 다른 매체를 활용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이 자본주의 지배계급에 공포감을 심어주고, “대중” 언론이 이미 확립된 후에야 비로소 모든 노동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1918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보편적 참정권이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한 발판이 되기는커녕, '민주주의 수호'가 자본의 실질적인 지배를 감추는 의회주의라는 허울에 노동자들이 충성하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부(생산 수단의 소유자와 지배자들)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유롭다. 그리고 만약 1923년처럼 자본이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1년 뒤 데일리 메일(Daily Mai)에 실린 가짜 지노비예프 편지(1)처럼, 거짓 정보를 퍼뜨려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노동당을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노동당은 오래전부터 의회 정치에만 관심이 있었고 영국 자본의 이익에 반할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왜 선거에 무관심한지 의아해할 만도 하다!

 

결국, 의회는 자본주의 지배를 가리는 허울에 불과하다. 의회 자체가 국가는 아니다. 진정한 권력은 배후에서 지배계급의 의제를 설정하는 네트워크에 있다. 국회의원들은 로비스트들을 앞세워 실질적인 의제를 좌우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독점 자본가들에 비하면 무력하다. 언론이 '질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스캔들'과 같은 의회 부패 사건을 집중 조명할 때, 폭로되는 것은 주로 국회의원들이다. 그러나 로비스트에게 뇌물을 주고 부패를 조장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의회는 서커스와 같고, 투표는 누가 당선되든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가리는 연막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노동계급이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는 우리 투쟁에 필요한 것과 정반대이다.

 

좌파 민족주의의 환상

 

1970년대 초, 전후 호황이 끝나고 오래된 자본주의 경기 순환 위기가 다시 찾아왔을 때,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1950년에는 영국 유권자의 85%가 투표에 참여했지만, 1970년부터 이 수치는 꾸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59.3%만이 투표했고, 온갖 매체를 동원해 투표를 독려했던 2010년에도 65%에 그쳤다. 언론은 체제의 정당성 하락을 우려하는 지도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물론, 특별한 지역적, 정치적 쟁점이 있을 경우는 예외적으로 투표율이 놓을 수도 있다. 어느 지역에서 좌파 세력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수도 있고, 설령 그들이 가치 있는 정책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지역이든 영국 전체든, 국가적인 해결책은 없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저항(좌파) 정당에 투표하는 데서 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은 없다. 노동계급이 깨어나 자본주의 공격이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급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현재 우리는 패배하고 있다. 비록 반(反)자본주의 사상이 고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저항은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러한 사상들은 아직 반(反)자본주의 운동으로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대안이 명백히 부재하다는 점이다. ‘코뮤니즘’이라는 단어는 신뢰를 잃었으며, 자본주의 야만성을 대신해 문명화된 미래의 열쇠를 노동계급이 쥐고 있다는 생각은 언론에서 절대 다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전 세계의 전쟁과 경제 위기 소식에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느끼기보다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라고 위안 삼으며, 위기가 곧 사라져 긴축 정책이 과거의 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심지어 가장 큰 피해자들조차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떤 이들은 다른 누군가가 앞장서 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긴축 정책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저 투쟁을 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 사실 모두 같은 투쟁이지만, 대다수는 아직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 결국, 노동자들이 더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주장에 동의해 온 사람들은 그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

 

집단으로 조직하자

 

따라서 우리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투표를 거부하자! 이 부르주아 사기극을 거부하자! 하지만 이것은 수동적이거나 체념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악화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조합비로 급여를 받으며 투쟁을 점점 더 협소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유지하도록 감시하는, 어쩌면 얼굴도 자주 볼 수 없는 노조 대표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강제 퇴거에 맞서 싸우든, 의료 혜택 삭감에 맞서 싸우든, 악화하는 노동 조건에 맞서 싸우든, 우리는 파업위원회·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직장과 지역 사회에서 모임·총회를 개최하여 우리만의 조직 형태를 마련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발언권을 갖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본주의 대의제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 우리만의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모든 대의원(대표)을 선출한 사람들이 즉시 소환할 수 있는(4년·5년에 한 번이 아닌) 민주주의다. 유급 관료나 자칭 ‘대표자’들이 밀실에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파업을 벌일 때는 몇 시간이나 하루이틀 정도 피켓을 들고 하는 형식적인 시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투쟁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조직하자

 

사실 생활 수준 저하에 맞선 투쟁은, 이를 일으키는 체제에 대한 단호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무리 전투적인 투쟁이라 할지라도 자본가들은 신속하게 재정비하여 양보했던 것들을 되돌려 놓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공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는 이들은 투쟁의 핵심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취해야 할 구체적인 단계를 설명할 정치적 의무가 있다. 이는 계급투쟁의 부활과 분리된 진공 상태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투쟁 또한, 자체적인 정치 조직이나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명확한 강령 없이는, 궁극적으로 현 자본주의 국가 체제를 전복한다는 정치적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는 자본주의 야만성을 피하려면,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이는 의회 선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코뮤니스트의 목표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생존 수단을 집단으로 장악하고 이를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하여 인류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노동당이 추진했던 산업 국유화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직 이러한 방식만이 소수 엘리트의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삼고 인간의 필요는 부차적으로만 다루는 자본주의 생산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만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를 끝장낼 수 있다. 이러한 변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인류에게 코뮤니스트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혁명은 소련, 중국, 쿠바 등의 국가자본주의 체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사회주의는 착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래로부터 건설할 때만 가능하다.

 

노동계급은 쟁취해야 할 세상이 있다.

 

2015년 5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역자 주>

1. '지노비예프 편지(Zinoviev Letter)'는 1924년 10월 영국 총선을 불과 4일 앞두고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 특종으로 대서특필한 조작 문서이다. 이 편지는 코민테른 의장과 지노비예프가 영국 공산당에 보낸 것으로 위조된 문서이다. 편지의 내용은 영국 노동당을 통해 영국 내 적색혁명을 일으키고 군대 내 반란을 선동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는 러시아 반공주의 망명객들이 위조하여 영국의 정보기관 요원들과 보수당 측에 전달한 가짜 문서였다. 우익 성향이 강했던 데일리 메일은 이 편지의 출처가 의심스러움을 인지하고도 총선 직전이라는 절묘한 타이밍에 이를 폭로했다. 편지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당시 영국 사회에 만연했던 '적색 공포(Red Scare)'를 자극하여 많은 유권자의 반발을 샀고, 이는 보수당이 압승하고 노동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훗날 진상 조사와 문서 검토를 통해 이 편지는 소련을 악마화하고 노동당을 실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100% 위조 편지로 판명 났다. (위키피디아)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5-04-28/every-vote-is-a-yes-for-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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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된 전쟁으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오직 노동계급만이 해결책을 갖고 있다.

일반화된 전쟁으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오직 노동계급만이 해결책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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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콤파스 그룹」(Kompass-gruppen) 정기 총회에서 채택된 '정세 전망' 문서>

 

 

2025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고, 가자지구에서는 (학살이 계속되는 가운데) 불안정한 휴전이 유지되고, 수단에서는 참혹한 내전이 벌어졌고,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폭격했고, 한국, 터키, 세르비아에서는 다소 자유민주주의 성격을 띠는 대규모 시위가 연이어 일어났다. 이 외에도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약 50건의 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폭격하고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했으며, 이란에서는 대규모 봉기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에 이어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에 대한 대규모 전쟁을 시작하여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고 이란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려 시도했는데(실패했고), 이는 유가 상승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오늘날 궁극적으로 세계정세를 규정하는 핵심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국주의 경쟁이다. 중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계속 성장하며 전 세계에 걸쳐 제국주의 이권을 확장하고 있고, 미국은 오랫동안 유지해 온 패권에 대한 점점 더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그리고 그린란드 관련 위협)는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석유나 기타 천연자원과 같은 경제적 이익 외에도,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뒷마당'에서 패권을 확보하고, 중국(그리고 러시아)과 경제적, 정치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거나 이미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국가들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트럼프가 자신만의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과도 연속성을 갖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점점 더 치열해지는 투쟁의 일환이며, 또한 미국이 파산 직전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작년(2025년) 초, 새로운 관세 부과를 발표하고 유럽이 안보를 더욱 철저히 관리하고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EU와 NATO 내부에 큰 우려를 불러일으켰고, 대규모 군사력 증강은 물론 ‘전쟁 의식’ 고취를 위한 선전 활동으로 이어졌다. 스웨덴은 NATO 가입을 완료했고, 크리스테르손(Kristersson) 총리는 “우리는 전쟁 중도 아니고, 평화 상태도 아니다”라고 밝혔다.(1)

 

따라서 2026년 현재,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주도권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상황은 점점 더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다.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을 위해 전쟁터에서 서로를 학살하는 것을 막고, 정당한 불만이 부르주아지에 이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적 차원에서 더 높은 수준의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당분간 이러한 움직임의 조짐이 미미할 뿐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을 이해하려면, 1970년대 초 위기의 재발, 즉 전후 호황이 끝나고 부채 기반 경제 정책이 더는 유지될 수 없게 되면서 이윤율이 하락함에 따라 케인즈주의가 최종적으로 실패한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 서구 세계 전역(스웨덴을 포함)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과 실업,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석유 파동 등, 이 모든 현상의 근본에는 이윤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국제적으로 널리 퍼진 현상으로, 산업계(그리고 노동자)에는 철강 위기, 특히 스웨덴에서는 1970년대 조선업 위기와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자본가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구조조정이었다.

 

부르주아지의 치열한 투쟁과 이윤 확보를 위한 생산 구조 개편은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중공업의 중요성은 감소하고, 대신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초소형 전자 기술), 정보 기술, 서비스업과 같은 분야가 부상했다. 스웨덴의 산업 노동자 수는 1970년대 초 140만 명에서 현재 60만 명 미만으로 감소했다. 동시에 서비스 부문은 전체 노동자의 70~80%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규모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 시장의 구조와 노동계급의 구성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정체성 또한 변모시켰다. 예전의 공장, 제분소, 그리고 수많은 동료와 함께 일하고 생활하던 장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기본적인 노동자 정체성은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노동 시장은 서비스 부문이 지배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부문은 매우 이질적이다. 대학 졸업자부터 무학력자까지, 시간제 임시직, 정규직, 계약직, 인력 파견업체, 비자발적 자영업자(2) 등 다양한 고용 형태가 존재하며, 임금, 근무 조건, 생활 방식, 주거 형태 또한 제각각이고, 계급 공동체 의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긴축 정책은 노동조합을 넘어선 투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비공인(와일드캣) 파업의 물결로 이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투쟁이 패배로 끝났다는 점도 분명하다. 자본은 생산 시설을 저임금 및 저비용 지역으로 이전하고 생산, 경제, 그리고 노동계급의 구조를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이후 파업은 감소세를 보였고, 최근 10~15년 동안은 파업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의 파업 활동을 기록했다. 이처럼 노동 시장의 급격한 변화, 분열된 계급, 그리고 오랜 기간 투쟁 전통과 경험이 잊혀진 현실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매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최근 몇 년 동안 주목할 만한 사례가 적어도 몇 가지 있다. 2023년 스톡홀름( Stockholm) 통근 열차의 비공인 파업(3), 2024년 베르크슬라겐(Bergslagen)에서 열린 노조 밖 대중 집회(4), 그리고 2025년 볼트(Volt) 택배 노동자들의 소규모 비공인 파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투쟁들은 칭찬할 만하고 중요하며, 노동계급은 이러한 투쟁을 통해 투쟁 범위를 확대하고, 투쟁이 성장하면서 (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더욱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해야 한다. 오늘날 분열된 계급에게 출발점은 어렵겠지만, 새롭게 등장해야 할 계급의식은 독립적이고 노조를 넘어선 투쟁을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투쟁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6년 스웨덴 자본의 좌파(사민주의, 좌파) 정치 상황은 ‘팔레스타인 연대’와 위선적인 ‘반제국주의’(국제주의적 관점은 완전히 부재)가 지배적일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는 2026년이 선거의 해라는 사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현재 상황은 일종의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극우) 스웨덴 민주당(SD)은 20%가 조금 넘는 득표율로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 유지는 ‘부르주아’ 정부에 달려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적-녹 연합이 여전히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으며, 그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파 정당들은 지지율이 너무 낮아 의회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해 있다.

 

NATO 가입이나 군비 경쟁 전반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나 반대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부르주아지는 "러시아에 대한 공포", 불안정한 세계정세, 그리고 "백악관의 미치광이"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좌우 양측 모두 군비 경쟁과 전쟁 선동을 부추기는 데 협력하고 있다. 동시에, 스웨덴의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인 유럽에서 세 번째로 높은 9%에 달하는 실업률에 대한 해결책은 아무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계급 문제는 그들의 세계에서는 완전히 낯선 개념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앞서 언급한 실업 문제 외에도,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위험한 작업 환경이 확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망 사고(2025년에는 매주 한 명꼴)와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2022~2023년 이후 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진정되었는데도, 여전히 높은 생활비는 문제다. 계급과 공동의 이익을 위한 투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개인주의적이고 분열적인 정체성 정치가 여전히 지배적이며, 이는 좌파와 보수 우파 모두에서 나타난다.

 

점점 더 가혹해지는 노동 환경, 인종차별과 분열, 치솟는 생활비, 그리고 재무장과 전쟁 준비를 위해 계속해서 긴축 정책을 펼치는 국가...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투쟁해야 할 때이며, 투쟁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박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노동계급은 우리의 공통된 입장과 집단으로 행동할 때 발휘할 힘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집단 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현재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의 조직률은 58%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는 민족주의 신화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계급 협력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서로 대립시키는 것이지, 계급 대 계급의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은 투쟁과 연대를 통해 우리가 전 세계 노동자들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특정 ‘민족’이나 국가와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운동이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위기가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우리 모두를 극도의 야만적인 행위로 위협하고 있는 이 시점에,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이 힘을 모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위원회를 통해 우리는 노동계급과 그들의 투쟁에 국제주의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결국, 전쟁을 멈추고 전쟁 준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뿐이다. 노동계급이 국가가 아닌 계급으로서 독립적으로 행동한다면, 우리의 생활 조건을 지키고 전쟁을 막거나 멈출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과 국제주의, 이것이 바로 2026년에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그것은 여기 스웨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같다.

 

2026년 올해의 과제가 작년보다 더 쉬워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대안은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노동계급이 그 어떤 자본주의 분파도 지지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정치적으로 명확히 밝혀야 한다. 노동계급이 의회주의 환상에서 벗어나, 노동조합 밖에서 독립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양한 노동자 집단 사이 차이를 넘어, 국경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전복하는 데 필수적인 무기인 국제적인 혁명적 노동계급 정당(세계혁명당)의 건설로 이어져야 한다. 제3차 세계대전과 환경 재앙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2026년 4월 16일

콤파스 그룹(Kompass-gruppen)

 

<주>

 

1. 스웨덴에서 비자발적 자영업자(bemanningsföretag och ofrivilliga F skattare)는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하는 대신 외주(underleverantör) 형태로 계약하기 위해, 구직자나 노동자에게 강제로 F-skatt(법인세/사업소득세) 등록을 요구하거나 실직의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인 사업자로 등록하는 노동자를 뜻다.

2. 스웨덴과 나토 가입: 재무장에 맞서 싸우자,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자!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5-06-14/sweden-and-the-nato-accession-fight-against-rearmament-fight-against-capitalism

3. 스웨덴: 통근 열차의 비공인 파업이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4-28/sweden-the-wildcat-strike-on-the-commuter-trains-shows-the-way-forward

4. 스웨덴의 계급투쟁: 노동조합에 대한 분노와 불만 - 그 다음은 무엇인가?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5-01-06/class-struggle-in-sweden-anger-and-dissatisfaction-with-trade-unions-and-then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5-26/capitalism-s-drive-towards-generalised-war-only-the-working-class-has-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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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2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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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뿌리는 '부르주아지 독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 계급인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권력(경제, 정치, 군사적)을 갖는다. 반면에 다수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살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부과한 조건에서만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현대의 노예, 즉 임금 노예이다. 따라서 두 계급의 이해관계가 양립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중립적이고 계급을 초월한 전지전능한 기관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전의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국가는 계급 통치의 기구이며, 그 기능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 즉 노동계급을 임금 노동의 사슬로 묶어 부르주아지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누가 부르주아지를 대신하여 국가를 운영할지 결정한다. 선거 제도는 부르주아 독재 체제를 주권자(국민)의 명령으로 포장하고, 동시에 그것을 민주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부르주아지는 독재를 위한 이상적인 정치적 외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계속 의지해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통 선거권을 통해 '다수' 또는 '국민'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강력한 착각을 만든다. , 자본주의 국가가 실제로 중립적인 기관이라는 착각, 유권자가 단순히 주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진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만든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누구든 (우파든 좌파든) 기껏해야 부르주아지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줄 사람 중에서 선출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누구에게 투표하든 자본주의적 요구가 승리한다. 보기를 들어 경제 위기 때마다 자본주의 체제는 긴축과 해고 등을 요구했고,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모든 정부는 자본주의 요구에 따랐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선거, 의회)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는 무엇이었나?

 

이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는 어떤 영원한 반()정치적 '순수주의'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일부인 의회의 역사적 발전에 근거한다. 오늘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리고 각 단계에서 노동자 운동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의회는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전임자인 봉건 귀족에 대항하는 핵심 무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자들은 정치 과정에서 명백히 배제되어 투표하거나 후보를 낼 수 없었다. 따라서 초창기 노동계급 운동에서 제기된 요구 중 일부는 정치적 대표성(영국의 차티즘 등)을 포함했다. 지배계급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제한적인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와 같은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새롭게 제공되는 공간을 활용하도록 장려했다. 맑스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처럼 거대한 관료 체제와 군사 기구가 없는 일부 국가에서는 의회를 통한 평화적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지만, (1871년 파리 코뮌의 경험이 보여주듯) 다른 대부분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은 혁명을 수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노동계급은 단순히 기성 국가기구를 접수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할 수는 없다.”(맑스, 프랑스 내전, 1871)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국가를 파괴한 후 새로운 기관을 건설해야 한다.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주의 국가들이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면서 실제 정치권력은 점점 더 의회에서 벗어나 관료주의 복합체와 상비군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국가 복합체 내에서 부르주아 의회는 자본주의 통치를 최적화하기 위한 토론장과 위원회로 위축되었다.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의회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2 인터내셔널의 혁명 세력에게 의회와 선거 참여는 전술적이고 선동적인 것이었다. 선거 출마는 혁명가들이 선거 유세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연설하거나, 의회 연단에서 연설과 시위를 하거나, 의회 면책을 이용해 혁명가들을 기소로부터 보호하는 등 선전을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17년 혁명 물결이 발발한 후 제3 인터내셔널 내에서 이를 정확히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즉시 제기되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평의회’, 일명 소비에트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대안을 찾았다. 부하린이 작성하고 제3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에서 채택한 테제는 국가 체제로서 의회주의는 부르주아지 통치의 민주적형태가 되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 국가기구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파괴하고 노동자 대표로 구성된 지역 소비에트로 대체해야 한다라고 인식했다. 동시에 그들은 혁명적 상황에서도 의회 연단을 여전히 유용한 선전 도구로 여겼다. 이를 묘사하기 위해 혁명적 의원들이 '적진에 들어가 지뢰를 매설'하고 '의회 담장 뒤에서 대중이 의회를 폭파하도록 돕는' 군사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코뮤니즘은 미래 사회의 국가기구 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기구로서 의회를 부정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위해 의회를 사용할 가능성을 부정한다. 의회 파괴를 자신의 임무로 규정한다.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오직 분쇄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이것이 [그 기구들의] 이용과 관련하여 제기될 오직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길이다. (...)

 

코뮤니스트당은 이 의회 체제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의회 분쇄를 의회 안에서 돕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 (3차 인터내셔널 첫 4개 대회 테제, 결의와 선언, 1920)

 

반면, 보르디가의 기권주의 분파로 대표되는 코뮤니스트좌파의 입장은 의회가 전술적 문제라는 부하린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혁명이 임박하고 노동계급 당면 임무가 부르주아 지배의 정치 기구를 파괴하고 자신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일 때, 혁명가들이 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더 중요한 일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빼앗아 가며, 결정적인 순간에 이들 기구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맑스주의 원칙으로 민주주의 질서가 오랫동안 발전해 온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선동은 선거와 부르주아 기구에서 보이콧을 확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선거 활동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실천은 이중적인 위험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의 모든 힘을 빨아들여 당의 다른 모든 부분을 마비시킨다. (...)

 

선거 활동을 수행하는 당 조직은 혁명에 필요한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활동에 맞는 조직의 성격과 뚜렷이 다른 매우 특수한 기술적 성격을 발전시킨다. 당은 유권자들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여러 선거위원회로 쪼개진다. (...)

 

1 인터내셔널은 선동, 비판, 선전하기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했다. 그 뒤 제2 인터내셔널에서 의회주의의 해악적 영향이 나타났다. 그것은 개량주의와 계급협조를 가져왔다. (...)

 

언론,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활용할 수는 없다. 언론, 결사의 자유 등을 활용하는 것은 행동 방식 문제이다. 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관 문제이다. 부르주아 기관은 노동자 소비에트 같은 프롤레타리아 기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혁명 이후에 언론, 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구를 분쇄하고 그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

 

착취계급에서 피착취 계급으로 권력 이전은 그 뒤로 대의제 기구 변화를 불러온다. 부르주아 의회주의는 소비에트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혁명적인 직접행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은폐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낡은 가면을 찢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의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며, 이 관점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에 완전히 부합한다. (...)

 

코뮤니스트혁명의 대의는 바로 착취계급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직접행동을 요구한다." (아마데오 보르디가,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920)

 

믿을 수 없는 자들이 의회에 들어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혁명의 노선에 따라 투쟁할 거로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 의회에 들어가면 연설을 통해 선동할 수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제도들을 믿도록 길들이는 것이다. 의회에 들어간 자들에게 선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 세계 코뮤니스트당은 이제 의회 선거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한다. (...)

 

리프크네히트 동지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의회 밖 대중들 속에서 활동하는 한에서만 그랬다. 만약 리프크네히트 동지가 의회 안에서 발언만 했었다면, 맥도널드나 다른 많은 배신자처럼 아직 살아있었을 것이다. (...)

 

모든 나라 인민이 그런 것처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앞에도 이제 양자택일의 선택이 있다. 두 가지 전술이 있다. 하나는 갖가지 민주적 단계를 통해 인민들 속에 순종의식을 키우는 것이다. 다른 것은 대중들 속에 혁명적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

 

이제 우리 힘은 대중들 속에서 혁명적 투쟁을 날카롭게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지금 순종의 길이냐 투쟁의 길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갈라처(영국)의 지지 발언, 위의 글)

 

코뮤니스트좌파 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등도 원칙적으로 부르주아 의회 참여를 완전히 거부했다. 이들 모든 분파는 노동자들이 자기 정치를 포기하고 자신의 적()인 부르주아 정당의 약속, 즉 자본가 식탁에서 더 많은 빵 부스러기를 뜯어내겠다는 약속에 넘어가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 노동계급은 투쟁을 통해 그 부스러기를 직접 가져갈 수 있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좌파가 선거 참여가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마지막으로 선거에 참여한 것은 1948년이었다. 이탈리아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투표하지 말자라는 구호 아래,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참여했을 뿐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냉전의 경계가 형성되고 노동자들은 각각 (스탈린주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과 기독교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두 제국주의 블록, 소련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선거 자체는 제국주의 갈등의 한 장면으로 축소되었다. 그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 선거는 도전이었다. 73개 도시와 읍내에 있는 지부와 수천 명의 당원으로 당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은 다양한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는 주요 정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부는 1919년 보르디가의 기권주의분파의 입장으로 돌아가 선거를 강력하게 비난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의회 방식을 통해 이룰 수 없다는 원칙에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선거 문제는 전술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1948년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한 결정적 요인은 후보자를 내세운 정당이 모든 도심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나 공청회에서 발언권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공적인 공간을 사용함으로써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더 많은 노동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동시에 체제 전체를 공격할 수 있었다. 아래 전단에서 볼 수 있듯이 당의 목표는 여전히 반()의회적이었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의 신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부활할 것이며, 전쟁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감 있게 말할 수 있어서 선거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오직 부패한 투표용지와 의회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의식과 힘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서.” (“투표하지 말자”, 19484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집행위원회)

 

실제로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가장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술적 문제로 남아 있으므로 선거 참여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의회 선거에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전술적 장점을 결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선거에 대한 자본주의 미디어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략적으로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 이후의 모든 선거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미디어와 자본(선거비용)이 선거 자체를 더 지배하게 되어, 노동자들을 자본의 경쟁 영역으로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이러한 선거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후보를 출마시킨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거대한 물량 공세 앞에 작은 선전의 효과도 초라해진다), 오히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환상만 강화할 뿐이다.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계급투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선거에서 자본가계급은 우리에게 온갖 장밋빛 공약과 미래를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임금 노예와 전쟁만을 제안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이 자본가 편에 서서 싸우도록 속이기 위한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대안은 노동자민주주의이다. 노동계급은 위대한 투쟁 역사에서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은 특히,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수백만, 수천만 명이 자기 삶의 수준과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은 노동계급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가능성을 열었고. 1905년에 이어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만들어진 소비에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실제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 나라와 지역에서 노동자평의회를 만들었다. 심지어 기차 승객들도 달리는 열차에서 모든 승객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도록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들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물결 속에서 자주적으로 투쟁을 조절-통합하고 자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다. 일단 선출되고 나면 유권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통령, 국회의원과 달리, 노동자의 대표는 노동자평의회에서 위임받은 내용에 반드시 따라야 하며, 유권자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대표와 함께 대체 대표를 선출했고, 탄압 시기에는 대표가 체포되었을 때 역할을 대신할 대체 수단이 되기도 했다.

 

미래에 노동자 투쟁이 대대적으로 확산하고 계급의식이 발전하여 세계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진다면, 세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계급투쟁이 혁명적 절정에 이르고, 마침내 지배계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노동계급은 자기 조직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하여 생산과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노동계급은 처음으로 자기 권력을 갖게 되며, 사회는 계급 철폐와 인간해방을 위한 자유로운 인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주주의로 대체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노동자 민주주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초로 성공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한 나라(러시아)에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경험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의 노동계급은 혁명에 가까워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으로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수십 년 동안 계급이 아닌 민주 시민이나 애국하는 국민으로서 투표하도록 길들어졌다.

 

여전히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며, 그것은 혁명적 투쟁을 통해 썩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의회와 자본주의 권력의 모든 기구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선출한 사람이 직접 소환할 수 있는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노동자 권력 기구를 만들어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이형로

 

 

이 글은 <코뮤니스트 정세토론회> "선거 이후 위기와 노동계급의 대안" 발제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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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 파업 철회의 주요 의미

삼성전자 노조 파업 철회의 주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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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가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예정되었던 18일간의 파업을 철회했다. 대신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조합원 대상 투쟁 지침을 통해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파업은 5월 2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약 4만 8천 명의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었다. 이 파업은 인공지능(AI) 및 메모리 칩 생산을 포함한 삼성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줄 수 있었다.

 

이번 합의는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갈등의 현재 진행 상황이다. 지난 4월 23일, 4만여 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평택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성과급 인상, 성과급 투명화, 그리고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했다. 우리는 이전 기사에서 이 분쟁의 모순을 명확히 설명했다. 삼성은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생활비 상승, 인플레이션 압박, 전쟁과 에너지 위기의 여파에 직면해 있다. 전쟁과 위기는 직장 밖에서만 머물지 않고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파업 철회는 또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삼성, 정부, 그리고 대다수 언론은 파업이 확산하고 위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통속이 되었다.

 

삼성의 전략: 분열, 지연, 제한

 

삼성은 노조의 요구를 단순히 수용하지 않았다. 경영진은 이번 갈등을 통제 가능한 임금 협상 범위로 제한하려 했다. 특별 수당과 일회성 성과급을 제안했지만, 성과급 제도화에는 반대했다. 삼성은 노동자들이 갈등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갈등이 협상 테이블과 법적 절차, 그리고 제한된 안건에 대한 투표의 범위 안에 머물기를 바랐다.

 

삼성은 또한, 서로 다른 노동자 집단들을 분리하려 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에게는 메모리 사업부가 흑자를 내고 있어 상황이 특별하다고 설명했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의 노동자들에게는 같은 요구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회사의 수익성 높은 부서의 노동자와 수익성이 낮은 부서의 노동자 사이에 분열을 조장한다.

 

이러한 분열은 자본에 유리하다. 만약 노동자들이 자신이 속한 부서의 이익 분배만을 위해서 싸운다면, 그들은 계급의 구성원이 아닌 특정 부문의 일원으로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수익성이 좋은 메모리 사업부의 노동자들은 더 큰 성과급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하청·비정규직, 물류, 청소, 경비, 다른 전자 공장 또는 기타 부문처럼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문에 속한 노동자들은 투쟁에서 소외될 수 있다.

 

정부의 역할

 

이번 갈등에 이재명 정부도 개입했다. 정부의 중재는 중립적인 개입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국가 전략 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였다. 삼성은 평범한 기업이 아니다. 한국의 수출, 반도체 생산,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국가적 위상을 지탱하는 핵심 기업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파업이 초래할 경제적 위험을 경고했다. 수출, 공급망, 그리고 국가 경제에 미칠 막대한 피해를 언급하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국가 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둔갑시켰다.

 

파업 금지 조치에 대한 위협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긴급 조정권 발동을 검토했다. 긴급 조정권은 공익이나 국가 경제를 명분으로 파업을 중단시키거나 유예할 수 있는 조치이다. 법원 또한 반도체 생산 현장 내에서의 파업 행동을 제한했는데, 특히 안전 보호 시설 및 제품 변질 방지와 관련된 작업에서 쟁의행위가 금지되었다.

 

이는 중요한 지점이다. 파업 금지법은 계급투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 내부의 중요한 무기다. 이는 노동자들의 행동이 생산, 이윤, 국가의 이익을 위협할 때 사용된다.

 

파업 금지법의 위협은 투쟁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한 기업 내부에만 머무르는 파업은 고립될 수 있다. 하나의 법적 범주 안에 머무르는 파업은 제한될 수 있다. 공식 노조 경로에만 의존하는 파업은 저지되거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투쟁을 확대한다는 것은 다른 부문, 즉 하청·비정규직, 물류, 다른 전자 공장, 운송, 에너지, 교육, 돌봄 및 기타 부문의 노동자들에게까지 파업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투쟁이 확산할수록 한 기업의 법적 문제로 축소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언론과 ‘국가 이익’이라는 담론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이번 파업 가능성을 삼성, 반도체 산업, 수출, 그리고 국가 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다루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언론은 종종 자본과 국가의 언어를 사용한다. 언론은 파업이 기업, 투자자, 수출, 공급망에 어떤 손실을 끼칠지 묻는다. 하지만 물가 상승, 노동 시간 연장, 스트레스, 불안정이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는다.

 

이러한 일방적인 보도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는 삼성 노동자들이 생산을 방해하는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국가 경제 전체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명분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연대를 막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국가 수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가, 주거, 식량, 교통, 돌봄, 그리고 안전한 삶을 위한 임금으로 살아간다. 언론이 국가를 위해 삼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이익 분배 요구의 한계

 

노조의 이익 분배 요구는 노동자들의 진정한 분노를 반영한다. 노동자들은 삼성의 막대한 이윤을 보면서 "왜 주주와 경영진만 혜택을 보는가?"라고 묻게 되었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익 분배 요구에는 심각한 약점도 있다. 이는 노동자들을 자기 회사나 업종의 성공에만 얽매이게 한다. 삼성이 큰 이익을 내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자기 몫을 요구한다. 반면 이익을 적게 내는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은 나눌 것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간병 노동자, 교육 노동자, 운송 노동자, 또는 소규모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요구를 하면 자본가는 "우리 업종은 수익성이 나쁘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는 투쟁의 확장성을 약화하고. 업종·부문을 초월한 노동자의 단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또한, 노동자들이 ‘자기’ 회사의 성공을 위해 다른 회사들과 경쟁에 나서게 만든다. 삼성 노동자들과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서로를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어느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분배하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 자신의 생활 조건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이다.

 

따라서 더 광범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전체 노동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요구가 필요하다. 보기를 들어,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 임금 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 더 안전한 작업 환경,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등한 권리, 해고 금지, 무급 초과근무 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쟁 자체에 대한 노동자 총회의 통제권이다.

 

이러한 요구는 수익성이 높은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 모두에서 노동자들이 공감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기업의 재무 상태에 좌우되지 않으며, 전체 노동자의 필요에서 출발한다.

 

파업 철회의 의미

 

파업 철회가 갈등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갈등이 생산 현장과 파업 위협의 단계에서 잠정 합의안에 대한 투표 단계로 옮겨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 지도부는 이를 책임감 있는 성과로 포장할 수 있다. 삼성은 이를 사회적 평화로 포장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국가 경제 보호로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통제권을 더 확보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분노가 안전한 (노조) 협상 채널로 되돌려진 것인가?

 

4월 평택 집회는 대규모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노조 협상가들을 지지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조직적으로 정돈된 노조 행진의 위험성도 보여주었다. 진정한 투쟁의 발전은 노동자 자신들의 총회, 선출 및 소환할 수 있는 대표자(대의원), 부서 사이 직접적인 토론, 그리고 삼성 외부 노동자들과의 연대일 것이다.

 

삼성, 정부, 언론이 파업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확장되지 않는 힘은 언제든 억누를 수 있다.

 

결론

 

삼성 노동자 투쟁은 단순히 성과급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전쟁 준비, 인플레이션, 세계 시장경쟁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삼성은 AI 칩 호황에 발맞춰 규율 있는 노동자를 원한다. 정부는 수출과 국력을 위해 안정적인 생산을 원한다. 언론은 파업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기를 원한다. 노조는 책임 있는 교섭 주체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익성이 높은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 사이의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계급적 연대에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를 배제하고 투쟁을 제한하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정규직·비정규직, 작업장·부문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중요하다.”

 

한국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동지들이 제안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담고 있다.(1)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반도체 산업 노동자 파업위원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만이 자본의 분열 정책과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 생존권 위기에 맞선 모든 노동자의 투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삼성 노동자와 다른 전자산업 노동자 사이, 그리고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다.

 

파업 금지법의 위협은 이 문제를 더 시급하게 만든다. 정부가 국가 경제를 명분으로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하나의 사업장이나 법적 틀을 넘어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해답은 기업 성과급을 위한 좁은 투쟁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공유하는 요구를 위한 더 광범위한 투쟁이다.

 

파업은 철회되었다. 투표 결과가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더 깊은 교훈이 있다. 방어적 투쟁은 하나의 사업장, 하나의 노동조합, 하나의 이익 분배 방식에 갇히면 그 효력을 잃게 된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확장하고, 스스로 조직하고, 전체 노동계급을 위한 투쟁으로 만들 때 비로소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

 

2026년 5월 20일

프레도코르보(fredocorvo)

 

<주>

1.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삼성 노동자 투쟁 : 아래로부터의 투쟁 건설과 계급적 연대를 위해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1&document_srl=348514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6/05/20/samsung-workers-strike-called-off-key-imp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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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세력과의 투쟁 그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극우 세력과의 투쟁 그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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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겪는 문제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1970년대 전후 호황이 끝난 이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성장률 하락’(즉, 이윤율 하락)의 결과에 직면해 있다. 모든 선진국에서 노동소득분담률(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년 넘게 감소해 왔다. 국민건강보험(NHS), 학교 예산, 사회 복지 혜택, 연금 등 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된 자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공공 서비스가 삭감되었다. 국제 시장에서 투기하는 금융 자본주의 기업들이 공공시설을 운영하면서 강과 해안은 하수 오염으로 더러워지고, 결국 우리는 더 높은 요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영국개혁당(Reform)이나 영국독립당(UKIP) 같은 극우 세력의 거짓말에 귀 기울이면 오직 “영국이 망가졌다”라는 생각만 들게 된다. 그들에게 원인은 간단하다. 모든 것은 이민자와 난민 탓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소영국주의자들(1)의 지지를 얻어 세력을 확장한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반(反)이슬람, 반(反)이민 성향의 우파 세력은,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이 이끄는 영국수호동맹(EDL)이 ‘왕국 통합’(Unite the Kingdom)으로 변모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손쉬운 동원력, 일론 머스크 같은 재벌들의 막대한 재정 지원과 공개적인 지지에 힘입어, 로빈슨 일당은 지난 3월 런던 중심가에서 수만 명의 “극우 활동가”들을 동원했던 시위를 5월 16일 다시 재현하려 하고 있다. 이는 도발이다. 5월 16일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건국과 1948년 자신들의 땅을 잃은 사건, 즉 ‘나크바(대재앙)의 날’을 규탄하는 전통적인 시위를 벌이는 날이다. 그러나 올해 런던 경찰청은 팔레스타인 측이 매년 제출해 온 행진 허가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로빈슨 일당이 런던 중심가를 마음대로 활보하도록 허락했다.

 

선의의 “반(反)파시스트”들과 현 체제가 개혁 가능하다고 믿는 많은 이들은 이미 지난 3월 런던에서 열린 극우 세력에 맞선 대규모 시위를 다시 한번 준비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극우 인종주의자들에 맞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들을 만들어낸 체제 자체에 맞서야 한다.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은 특정 정치 체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전환할 수 있다(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데 가장 유리한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오늘날 전쟁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의 편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편도, 러시아 편도 아니다.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란 공격을 규탄하지만, 그렇다고 이란 국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자지구, 서안지구, 레바논에서 자행되는 시온주의자들의 팽창주의 학살도 지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가 우리에게 빈곤, 극심한 불평등, 그리고 야만적인 전쟁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이를 끝낼 때이다.

 

 

2026년 5월 8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Aurora) 75호

 

<역자 주>

1. 소영국주의자(Little Englander)는 18~19세기 제국주의 팽창에 반대하고, 영국 본토(잉글랜드)의 내실을 기하며 식민지의 독립을 옹호했던 고립주의적 정치 성향을 말한다. 대영제국 건설보다는 영국 자체의 이익과 평화를 우선시한 사상으로, 대외 팽창을 지지했던 '대영제국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5-08/more-than-a-fight-against-the-far-right-we-need-a-fight-against-capitalism


<참고할 글>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반(反)파시즘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5652

 

결정적인 선택 :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5975

 

노동계급의 투쟁만이 인종주의적 분열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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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금: 자본주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영국은 지금: 자본주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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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트럼프의 이란에 대한 ‘선택적 전쟁’의 여파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란을 “극도로 강력하게” 타격하면 “매우 빠르게” 끝낼 수 있다는 그의 끊임없는 허세는 점점 더 공허해지고 있다. 이러한 발언은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전 세계 사람들(수년간 이슬람 정권에 저항해 온 이란 노동자들을 포함하여)에게는 끔찍한 소식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비료 부족은 이미 기후 변화로 가뭄에 직면한 아프리카 농민들이 올해 작물을 파종하는 시기에 발생했다. 이는 광범위한 기근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유가 상승은 이미 치솟고 있던 생활비에 세계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이는 유가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에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2008년 은행 구제금융 이후 수년간 긴축 정책을 펼쳐왔는데, 물가 상승으로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노동자의 고통이 더 커질 전망이다.

 

노동당은 14년간의 보수당 정권 시기 경제와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 덕분에 2024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물가 급등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올해 3분기 인플레이션을 3.5%로 예측한 것은 이미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도는 수치로, 이제는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부 부채는 평시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국채 발행 금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출, 특히 복지 지출을 삭감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당은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예상된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방선거는 전통적으로 집권당에 대한 반대표가 쏟아지는 자리이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점은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기존 양당 모두 수십 년간 지속된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한 정당뿐 아니라 두 개의 ‘신생’ 정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2018년 브렉시트 당으로 출발해 현재 크리스토퍼 하본(Christopher Harborne) 같은 재벌들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6명의 의원을 보유한 패라지(Farage)의 ‘영국개혁당’(Reform UK)은 의회 내 ‘우익 포퓰리즘’을 대표한다. 좌파 진영에서는 잭 폴란스키(Zack Polanski)가 이끄는 녹색당이 2월 26일 고튼 앤 덴튼(Gorton and Denton) 보궐선거에서 '생태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워 승리하며 선거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공약은 "노동자들을 초부유층과 대기업에 맞서게 한다"라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2026년 4월 3일). 이 과정에서 녹색당은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이끄는, 내분으로 얼룩진 ‘좌파 노동당 재출발(당신의 당)’ 진영의 지지자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사실상 전 지구적 체제 위기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 10일 완료된 잉글랜드 136개 지방의회 선거 개표 결과 영국개혁당은 총 1,453석을 확보했다. 반면 집권 노동당은 1,496석을 잃어 1,068석에 머물렀고, 영국 양당 체제의 다른 한 축인 보수당도 563석이 줄어 801석에 그쳤다. 녹색당은 550여 석을 확보했다. 전체 득표율도 개혁당이 압도적인 1위고, 뒤이어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 녹색당 순으로 나타났다. 개혁당은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도 96석 중 34석을 차지해 웨일스당(43석)에 이은 제2당으로 올라섰고,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도 17석을 확보해 스코틀랜드국민당(SNP·58석)에 이어 공동 제2당이 됐다. 개혁당이 웨일스·스코틀랜드 의회에 자력 입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역자>)

 

자본주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끝없는 호황과 불황의 순환을 반복하는 자본주의는 이제 그 수명이 다했다. 세계 경제가 보유한 막대한 물질적 부는, 그 부를 창출하는 노동력을 가진 사람들, 즉 세계 노동계급이 통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국경 구분에 관심이 없고, 환율 투기(환 투기)에도 관심이 없으며, 무책임한 대표들이 쫓겨날 염려 없이 몇 년간 자리를 지키는 의회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지역 사회(아래)에서부터 정상(위)까지 직접 민주주의 기구를 만드는 데 모든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 자본주의는 이윤율 위기를 주기적으로 겪는데, 부채와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바로 전쟁을 통한 파괴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 즉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은 누구를 동원해서 싸우고, 죽고, 개인적인 희생을 치르게 할까? ... 이 세상의 부유층은 아닐 것이다.

 

부유층(재벌) 한 명당 점점 더 가난해지는 수백만 명의 임금 노동자들이 있다.

 

• 2025년에도 가장 부유한 50명이 보유한 4,680억 파운드(947조 원)는 가장 가난한 50%가 보유한 4,660억 파운드를 계속해서 웃돌고 있다. (이퀄리티 트러스트)

• OECD 38개국 중 영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는 9위이다. 상위 20%가 국가 소득의 36%를 차지하고 국가 전체 부의 63%를 소유하지만, 하위 20%는 소득의 8%와 전체 부의 0.5%만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통계청)

• 70만 명이 넘는 대학 졸업생이 실업 상태에 놓여 실업 수당을 받고 있다(이는 현재 룩셈부르크 인구보다 많은 수치다). 한편, 매년 80만 명이 대학을 졸업한다. 정부는 “젊은 세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 2025년 10월부터 12월 사이 영국 내 16세에서 24세 인구 중 약 12.8%(89만 1천 명, 전 분기 대비 1만 1천 명 증가)가 교육, 취업, 훈련 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은 상태(NEET)였다.

 

1978년 영국의 실업자 수는 160만 명에 달해 전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실업률은 5~6% 사이였다. 이후 실업률은 대체로 이 수준을 유지해 왔다. 2025년 4분기 영국의 ‘조정된’ 실업률은 5.2%로, 독일(3.9%)과 미국(4.5%)보다는 높았으나 프랑스(7.9%)보다는 낮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의 규칙대로 행동하는 한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는 데 있어서 우리는 모두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상황에서 살아왔다.

 

이제 많은 노동자가 이 체제의 지속적인 위기에 대한 비용을 치르는 데 지쳤다. 의사나 대학 강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조차 임금, 업무량, 취업 기회, 고용 불안 등을 이유로 파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우리와 같은 일반 임금 노동자 처지에 놓인 것을 보여준다. 호텔 청소 노동자와 기타 직원, 철도 노동자, 쓰레기 수거 노동자 등 수많은 이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끝이 없다. 노동조합들은 파업 열기를 식히고 냉각기를 두어 노동자들을 서로 고립시키고 있으며, 노조별로, 업종별로, 심지어 사업장별로도 고립시키고 있다.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정치적 전망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현재 상황만으로는 주식 시장이 붕괴하거나 자본주의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진정한 위협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위기를 거듭해 온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전쟁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순전한 경제 위기와 더불어, 그로 인해 더 악화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 환경 위기다. 이는 기후 변화 그 이상의 문제이지만, 자본주의가 지구에 가하는 치명적인 파괴행위를 막기 위한 미약한 시도들은, 제국주의 전쟁과 지구의 필수 자원을 둘러싼 치열해지는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더 시급한 문제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오직 국제 노동계급만이 이를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정치적 전망이 필요하다. 어느 정당에 투표해야 할지 알려주거나 반(反)파시스트 세력과 연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직면한 이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서 벗어날 길, 즉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의 세계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전망이다. 이 지구에 남아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전 세계 인류가 존엄과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너무 늦기 전에 이 길에 동참하자!

 

2026년 5월 6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Aurora) 75호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5-06/here-in-the-uk-there-s-no-escaping-the-capitalist-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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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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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부르주아지가 미국을 국내외에서 더욱 공격적인 자세로 이끌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당선이 가능했던 것은 바이든의 정책이 중국을 비롯한 여타 경제·제국주의 경쟁국에 비해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직면한 어려움과 쇠퇴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정책과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을 내세운 트럼프의 당선은 자본과 상품의 전반적인 과잉생산이라는 세계 자본주의 모순의 극적인 심화를 반영한다. 이는 또한, 생산력의 전반적인 과잉생산을 파괴할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과정을 더 가속할 것이다.

 

취임식 당시 기술 기업들은 트럼프의 지시에 따랐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MAGA 규범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며 "분위기 전환"을 선언하는 데 열심이었다.[1] 미국 부르주아지는 트럼프와 MAGA가 미국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추세를 반전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의 예상은 맞았을까?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이미 몇 가지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약점은 대선 직후 치러진 특별 선거에서 트럼프의 선거 연합이 승리하지 못한 것과 대법원이 그의 초기 관세 계획을 무효로 한 데서 나타났다. 게다가 MAGA의 고립주의 기조는 예멘의 후티 반군,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 그리고 캐나다와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NATO와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팽창주의 의제로 빠르게 대체되었다.[2]

 

트럼프주의의 모순이 MAGA 운동의 지속성을 위협한다는 징후는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서 나타났다. 국경 순찰대의 "총사령관"이자 트윈 시티(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작전 책임자인 그렉 보비노(Greg Bovino)는 르네 굿(Renee Good)과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해임되었고, 그 자리는 국경 정책 총괄 책임자이자 트럼프 행정부 내 비교적 온건파였던 톰 호먼(Tom Homan)으로 교체되었다.[3] 3월 5일에는 국토안보부 장관 크리스티 노엠(Kristi Noem) 역시 트윈 시티 사건과 국토안보부(DHS) 예산의 사적 사용에 대한 상원 청문회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인 후 해임되었다.[4] 이 사건은 처음에는 시카고나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에서 발생했던 다른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이러한 살인 사건으로 트럼프의 인기는 더욱 떨어졌고, 그와 ICE(이민세관집행국)에 대한 항의 운동이 더 거세졌다. ICE는 텍사스 ICE 시설에서 루이스 구스타보 누녜스 카세레스(Luis Gustavo Núñez Cáceres)를 살해하는 등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살해 사건들의 여파와 상황은 더욱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미국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 고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긴축 재정과 전쟁의 시기에 희생양을 만들어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와 같은 인물들은 이상화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낙원을 약속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생활비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민자들을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몰아간다. 이러한 생활비 상승은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전쟁으로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리될 수 없다.[5] 트럼프가 최근 "우리는 이민자들과 전쟁 중이다"라고 발언한 것은 단순히 인종차별적인 선동이 아니라, 반(反)이민 정책과 전쟁 준비가 현재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6]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정책들은 역효과를 낳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종차별과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이러한 정책들은 유럽에서 극우 정당의 지속적인 부상에서 알 수 있듯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주의의 가장 큰 실패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발생했다. 마두로 체포에 고무된 듯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지도부를 겨냥한 ‘참수 작전’을 감행했다. 즉각적인 승리를 기대했던 미국은, 최근의 불안정한 휴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순식간에 중동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하고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위협까지 가했던 전쟁에 휘말렸다. 이란은 미국, 이스라엘, 걸프 지역 목표물에 대한 보복 공격 능력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해상 패권 신화를 깨고 석유 달러를 약화함으로써, 이란은 비록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 분쟁에서 분명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란 전쟁은 처음부터 이미 대중적 지지가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는 언뜻 보기에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흐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처럼 보일 수 있다. ICE(이민세관집행국)가 도시와 동네를 급습하여 미국 내 이민자 노동계급을 탄압하는 행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응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ICE 반대 시위는 단순히 '왕은 없다‘(No Kings) 운동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온건한 행진에만 그치지 않고, 시위대와 ICE 및 국토안보부(DHS) 요원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로도 특징지어진다.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한 미국 여러 도시의 주민들은 이주 노동자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 ICE 요원들과 대치했고, 종종 호루라기를 불거나 ICE 요원과 피해자들 사이에 직접 개입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타인을 위해 정부의 정책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려는 이러한 미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최근 우리가 기억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노동계급의 투쟁성을 보여주는 훨씬 더 중요한 신호이다. 지금까지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이러한 시위의 한계는 연방 정부의의 대립이 전적으로 강제 추방 문제에만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이란 전쟁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경제적 여파는 미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주도하는 부르주아적 '왕은 없다’(No Kings) 시위는 자신을 시민으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반(反)트럼프 ‘왕은 없다’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운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반(反)트럼프 민주주의 운동이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계급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점이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트럼프,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포함한 미국 지배계급 전체가 추구하는 전쟁으로 향하는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진정하고 효과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다.[7] 시위를 실패라고 부르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오히려 시위는 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 분파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를 통제하고 부르주아지가 전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쇼비니즘과 인종주의를 이용하는 데 성공한 것에 가깝다.

 

미국 부르주아지가 트럼프에 대한 이러한 반발을 어떻게 이용하려 하는지 이해하려면, 1월 23일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이른바 ‘총파업’을 살펴봐야 한다. 이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파업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사람들의 불만을 표출하도록 조직한 좌파 집회였다. 시위 참가자들이 파업하지 않은 지하철을 타고 시위 현장에 갈 수 있었고,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노동조합들은 겉으로는 이 행사를 지지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조합원들에게 파업을 촉구하지는 않았다.[8] 계급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듯 보였지만, 이 운동의 상당 부분은 사실 과거의 반(反)파시스트 운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사회, 정치, 국제적 측면에서 점점 더 많은 실패와 명백한 무능력을 드러내면서, 미국 부르주아지는 이미 트럼프에게 정책 수정을 강요하거나, 어쩌면 일부 사람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그를 제거할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러한 초기 단계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통해 미국의 전쟁 기계에 직접 도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불만”을 민주주의·반(反)트럼프 구도로 계속해서 왜곡하고,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를 ‘왕은 없다’(No Kings) 시위와 같은 무력한 배출구로 유도할 것이다. 미국에는 최근 이러한 사례가 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투표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고, 더 많은 미국 노동계급을 그들이 이길 수 없는 불공정한 게임으로 끌어들였다.[9] 이러한 부르주아의 승리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선거 정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환상과 코뮤니스트 좌파의 약점 때문에 발생했다. 시위대가 연방 요원들의 업무를 더 어렵게 하거나 전쟁을 규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와 명백히 결별하고 계급투쟁을 벌여야 한다.

 

미국의 이란 개입으로 인해 연료와 식료품 가격이 치솟고 노동 및 생활 여건이 현저히 악화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나아갈 유일한 길은 생활 및 노동 조건에 대한 추가적인 악화, 구매력 상실, 사회 복지 혜택 삭감 등 어떠한 추가적인 희생도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으로서, 파업과 거리 시위, 그리고 지역 투쟁의 확대와 전면화를 통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전쟁으로 향하는 현재의 흐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반격의 첫걸음이며, 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전쟁과 재앙을 타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가 발전시켜야 할 혁명적 투쟁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지배적인 세력으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제국주의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현재의 흐름을 역전시키고 저항하는 데 있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에게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2026년 4월 10일

프레드(Fred)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전쟁인가 혁명인가」 33호

 

<주>


사진 : 픽사베이

[1] https://www.aei.org/op-eds/the-vibe-shift-hits-hollywood/

[2] 그린란드와 캐나다에 대한 트럼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발언은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화를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다.

[3] https://www.vox.com/politics/477197/tom-homan-cbp-dhs-ice-bovino-noem-trump-minneapolis.

[4] https://www.npr.org/2026/03/05/nx-s1-5667546/kristi-noem-homeland-security-fired.

[5] https://www.nbcnews.com/politics/donald-trump/trump-says-not-possible-us-pay-medicaid-medicare-daycare-re-fighting-w-rcna266381.

[6]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news/international/global-trends/trump-declares-us-is-at-war-in-terrifying-seven-word-statement-about-alien-enemies/articleshow/119124668.cms?from=mdr.

[7] https://www.cnn.com/2026/03/28/us/live-news/no-kings-protests-03-28-26.

[8] https://www.wsws.org/en/articles/2026/01/30/pzgh-j30.html.

[9] https://www.nbcnews.com/politics/elections/voter-registration-surged-during-blm-protests-study-finds-n1236331

; https://bsky.app/profile/vickyacab.bsky.social/post/3md7ogi6cmc2k.

「약탈의 옹호」(In Defense of Looting)의 저자인 아나키스트가 BLM 운동이 조 바이든 후보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칭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출처>
https://igcl.org/The-Wheels-are-Coming-off-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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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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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해고되었다. 이는 군수 산업을 제외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를 반영한다. IT(유비소프트, 오라클, 캡제미니, IBM), 자동차 산업(애스턴 마틴,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보쉬 및 굿이어와 같은 모든 하청업체), 유리 산업(아크, 베랄리아), 소매업(오샹, 제니퍼), 금융 서비스업(네덜란드의 ABN 암로, 암호화폐 업계의 블록), 물류(아마존, UPS, 지글러), 언론(라 트리뷴,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다양한 산업 분야(하이네켄, SEB, 에라스틸, 랑세스, 바스프)가 모두 영향받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생산 공정에 도입되면서, 특히 IT 분야에서 수만 명의 엔지니어, 기술자, 그리고 일반 직원들이 실직 상태에 놓였고, 단기간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게다가 전 세계 공무원들의 감원도 더해질 전망이며, 트럼프와 머스크는 몇 달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밀레이(Milei)가 '전기톱' 긴축 정책으로 공무원들을 해고했던 사례를 앞장서서 따르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 교육 제도 또한 앞으로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자본주의 전체를 강타하는 구조조정에서 어느 나라 경제도 벗어날 수 없다. 중국 역시 실업 통계가 불투명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독일은 오랫동안 중국 내수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누려왔던 산업 부문이 더는 중국에 의지할 수 없게 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은 기계, 화학, 자동차 등 가장 대표적인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이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대규모 감원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폭스바겐(Volkswagen)과 오펠(Opel)뿐만 아니라 보쉬(Bosch), 아우모비오(Aumovio)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 산업 하청업체가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바스프(BASF)는 행정 서비스의 일부를 인도와 말레이시아로 이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며, 화학 기업 랑세스(Lanxess) 역시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유럽 산업의 중심에서 나온 이 모든 조치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결과다. 독일에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주로 시간제이지만, 사라진 일자리는 숙련되고 생산성이 높고 보수가 좋았던 정규직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끝이 없다. 심지어 유엔조차 전 세계적으로 직원들을 대거 감원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해고는 각국 정부의 사회·보건 정책 긴축과 실업자에 대한 감시 강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정부는 해고를 쉽게 하려고 노동 시장 규제를 더 완화하여, 일일 노동 시간을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연장하고, 휴가 분할 사용을 허용했다. 한편, 벨기에는 실업 수당 지급 기간을 제한할 예정이어서, 일부 실업자들은 소득원을 자동으로 잃게 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변동 금리 학자금 대출에 기반을 둔 고등교육 재정 지원 제도로 인해 최근 젊은 졸업생들이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젊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존재하는데, 청년 실업률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돌며, 청년 6명 중 1명 이상이 실업 상태다. 청년 실업은 정부의 주요 현안으로 점점 더 부각하고 있으며, ‘35세의 저주’(나이에 따른 해고) 현상과 맞물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 해체의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모든 공격은 지난 15년여 동안 자본주의가 점점 더 통제 불가능한 경제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면서 초래된 결과이다. 금융 위기(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및 국가 부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세계 경제의 불안정화, 그리고 세계 경제가 전쟁의 소용돌이(우크라이나, 가자, 이란 등)로 끌려 들어가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세계정세, 급증하는 군사비 지출로 특징지어지는 전시 경제,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의 관세 인상,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역 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그리고 점점 더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환경 파괴 비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있다.

 

반면, (군수 산업을 제외한) 세계 경제의 침체가 점점 더 뚜렷해짐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한계가 부각하고 있다. 만성적인 과잉생산, 국가 경제 관리 정책의 한계, 그리고 경쟁국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부르주아지를 점점 더 자멸적인 전략으로 내몰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모든 안전장치와 대책, 즉 시장 개방, 관세 제한, 공통 표준 개발, 조정된 통화 정책 시행과 같은 최소한의 공조 정책들을 모두 해체하고 있다. 과잉생산은 분명히 대규모 해고 사태를 초래하는 현재 진행 중인 위기의 원인이다. 보기를 들어, 중국은 자국의 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결국, 중국은 자국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을 세계 시장과 경쟁국에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자본주의의 해체가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근시안적인 국가 정책의 가속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책을 둘러싼 각국 부르주아지의 분열 심화, 비이성적이고 선동적인 포퓰리즘 정책(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관세 전쟁과 같은), 그리고 자신들의 특권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부르주아 분파들의 이념적 맹목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부르주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의 영향을 완화할 만한 일관된 경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이러한 해체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상당히 가중되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잔혹하고 지속적인 위기의 심화는 매우 심각하다. 부르주아 정치에서 진지하고 포괄적인 대안은 보이지 않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가들에서 보이는 파괴는 아마도 복구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겠는가?

 

이러한 공격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자본주의와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위기는, 아직 일자리를 가진 운 좋은 노동자들을 점점 더 잔혹하게 착취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냉혹하게 방치되는 경제 체제의 위기이다. 과잉생산은 모든 상품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에서도 노동이 가장 비극적인 운명이다! 노동계급이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겪는 이 야만적인 현실은, 부르주아지가 그들에게 전쟁, 무자비한 착취, 그리고 비참함 외에는 어떤 희망도 제시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노동자들이 혁명적 전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직 멀고 험난한 길이 놓여있다. 그러나 위기의 영향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임금 노동, 사유재산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면서, 자신들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인 경제적 요구, 파업, 투쟁 조직을 위한 집회, 거리 시위에 다시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은 점차 자신들의 “힘”인 단결, 연대, 자기 조직화 필요성, 그리고 운동의 목표에 대한 성찰을 재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위기는 노동계급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맞이하게 될 진정한 미래를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지만, 투쟁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전히 노동계급의 동맹으로 남을 것이다.

 

2026년 4월 9일

HD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사진 : AP=연합뉴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801/inexorable-descent-crisis-reveals-historic-failure-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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