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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 : 독자의 소리

독자의 소리 photo_2021-01-06_18-24-52.jpg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은 2012년부터 코뮤니스트를 발간하고 있는데이번에 창간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그동안 동지들의 지지와 관심그리고 비판과 충고가 있었기에 꾸준한 발간이 가능했습니다.

 

이제 지난 10년을 반성하고 평가하면서 앞으로의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려고 합니다코뮤니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환영하며동지의 소중한 조언은 저희를 돌아보고 발전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이 되었다는 말에 조금 놀랐습니다처음 책을 받고 코뮤니스트의 정확한 뜻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던 기억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입니다많이 가진 것도 아니면서 허영심 가득 약자를 이해한답시고 여기저기 기부는 했지만경제적 어려움이 얼마나 고달픈지 경험하고서야 세상을 둘러보게 되었던 자신이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혁명”, “투쟁”, “자본주의” 평소 거칠다고 생각했고 불편했던 단어가 많았지만어떤 호는 꼼꼼히 읽고 또 읽기도 했고 아예 책장을 넘겨보지도 못한 호도 있었습니다하지만, 11호에 실린 국제정세(코로나19와 자본주의)는 매일 매일 늘어나는 코로나 환자 상황보다 전 세계 노동자 현실이 더 비참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두에게 같지는 않다는 코뮤니스트 투사의 글은 가슴 아팠고또 잊고 있었던 고 김용균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글도 기억납니다러시아혁명 100주년 특집호를 통해 다루었던 문재인 정부와 미국의 사드 배치 강행을 규탄한다.’ ‘코뮤니즘 장애를 없애는 실제 운동’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노동조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간간히 분함도 느끼면서 낯설고 어색하던 단어들이 우리 삶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으며각호 표지 디자인을 이해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한밤중 국도를 운전하다 캄캄한 시골 마을 집집마다 작은 불빛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너무 소박하고 아름다워 차를 세워 잠시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코뮤니스트가 한밤중을 밝히는 아름다운 불빛이 되기를 희망하고어설픈 독자지만 (감히세계적인 혁명 흐름의 작은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성실히 구독하겠습니다.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 뜨겁게 축하합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창간 20주년, 30주년 ~~ 새로운 누군가 축하 메시지를 쓸 수 있기 기대합니다.

 

2022년 10월 25

독자 진영

 

 

 

독자의 소리를 작성해 달라는 문자를 받고 아직도 가지고 있던 2012년에 만들었던 코뮤니스트」 1호의 제목과 주요 글들을 읽어봤습니다.

 

당시에도 문재인과 박근혜의 대통령 선거에 있어 자칭 사회주의 세력 일부가 선거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했지만기대했던 성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당시보다 지금은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칭하는 세력이 아예 소수화되어 버렸는지 없는지 모르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제가 코뮤니스트 운동의 방향과 전망을 얘기하기는 아직 실력이 안 되고책이 나올 때마다 아는 지인들에게 많이 일방적으로 구독을 요구했는데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면 읽기 어려워서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소수가 만들다 보니 이론을 편하게 전달하거나 한국화하지 못해 관심이 많지 않은 이상읽고 소화하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저 또한 줄을 쳐가면서 읽어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최근 자주 드는 생각인데 지하철이나 버스를 비롯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 폰에 중독된 상황에서 솔직하게 드는 생각은 몇 권의 인쇄매체가 사회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대학가나 지식인 사회가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맑스주의의 쇠퇴와 현실 적합성이 없다고 주장할 때러시아혁명부터 현실 계급투쟁까지 근본적원칙적 역사관과 전망을 가지고 코뮤니스트를 발행하며 활동하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동지들에 경의를 표합니다.

 

2022년 10

신정현

 

 

 

코뮤니스트」 창간 1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어렵고힘든 길 꿋꿋하게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뮤니즘’, ‘코뮤니스트 운동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는데코뮤니스트를 통해 조금은 되었습니다제게는 어려운 내용이 많아 지금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언젠가 술술 읽을 수 있고책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앞으로 20, 50, 100년 계속 코뮤니스트의 묵직한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2022년 11

독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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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Ⅲ

스탈린과 스탈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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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이르자 스탈린은 당-국가 기구 전체를 완전히 장악했다이제 그는 농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것에 자신감을 느꼈다많은 스탈린주의자에게 이 시기는 소비에트 생산양식의 사회주의적 변혁이 일어난 시기였다그들은 강제 집산화 프로그램이 농민에 대한 강제 수용사적 생산의 종료모든 공장의 재국유화였다고 주장한다그들에게 5개년 계획의 산업화 프로그램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를 대체한 것이었다이것은 대체로 사실이지만이러한 조치를 사회주의라고 계속 말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스탈린은 그것에 관해 거침없이 말했다이것은 위로부터의”(당시 그가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표현혁명이었다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사회주의는 생산자 자신이 건설해야 한다이것은 레닌이 소비에트 권력의 초기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반복했다그는 공장으로 가서 노동자 스스로 경영하도록 촉구했다이것은 러시아에서 만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세계혁명의 확장에 달려있었다세계혁명의 확장에 실패하고 1918~21년 내전 기간에 계급의식을 가진 많은 노동자가 사라지자 러시아 혁명가들은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레닌 자신도 명확한 해결책이 없었고 1921년 이후 사회주의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그의 글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앞서 설명한 이른바 자유 독재” 시기인 1920년대의 활발한 논쟁은 사실 딜레마를 숨기고 있었다사회주의가 자기 생산물 생산자의 통제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맑스주의 이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만이 이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었다프롤레타리아트의 붕괴가 당을 새로운 국가로 남겨둔 이후 역사는 이미 이 해결책을 제시했다내전 동안 발전한 경찰기구의 더욱 적극적인 사용과 국가산업을 강제로 현대화하기 위한 군국주의 동원 프로그램의 채택이 필요했고그것은 스탈린주의의 모든 주요 구성요소를 갖고 있었다스탈린주의의 승리는 스탈린과 그의 동료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모든 문제를 제쳐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장되었다.

 

그들에게는 사회주의에 관한 어떤 이론보다도 소련의 산업화라는 실질적인 과제가 더 중요했다후진국에서 산업화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투자에 대한 독점적 통제를 통한 국가였다스탈린은 1929년에 의제를 정했다.

 

중공업은 국가 보조금이 필요하다만약 우리가 그것을 제공할 수 없다면우리는 사회주의 국가는 고사하고 문명국으로서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 (레닌주의의 문제모스크바 1940, 303)

 

그리고 여기에는 국유화(즉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와 생산자 자신이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사회화를 동일시하는 많은 사람의 혼란이 있다이것은 결국 국가 소멸의 길로 가는 한 걸음으로 보여야 한다국가가 결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회주의가 훨씬 더 중앙집권화된 국가 기구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물론 스탈린주의자들만이 국가 소유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었다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사회민주주의 운동 내에서도 널리 퍼진 믿음이었다하지만 국가 소유는 이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단일 자본주의 실체에서 집단 자본주의 실체로 이전할 뿐이다임금노동자의 처지에서(그리고 맑스가 말한 임금노동의 존재는 자본주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둘 다 자신의 잉여생산물 처분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5개년 계획에 따라 생계비가 엄청나게 오른 것으로 계산되었다집산화 재앙은 4년 만에 기초 식료품 가격의 8배 상승을 이끌었다임금이 억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득세가 인상되었고여기에 임금 격차 및 다른 인센티브가 도입되었다일부 산업에서는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40배까지 벌어질 수 있다.1) 문제는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트가 당시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보다 형편이 더 나았는지가 아니라(당시 서유럽 노동자의 1/4은 실업 상태였다그들이 실제로 생산수단에 대해 동일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스탈린주의자들(그리고 실제로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자본주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하지만 그것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그들의 모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전형적인 19세기 기업가(틀림없이시가와 중산모를 갖춘 남성)를 찾고 있지만그러한 인물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19세기 말의 독점 자본주의가 지배계급이 지구의 잉여가치를 처분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집단적인 기업 자본주의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이것은 마이클 라이먼(Michael Reiman)의 다음 관찰과 어떻게 다른가?

 

스탈린의 강령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민과 분리되고 인민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지배적인 사회계층의 존재가 필요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스탈린주의의 탄생: 2차 혁명 직전의 소련인디애나, 1987, 120)

 

우리는 이미 이 지배계급을 낳은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보여주었다첫째당내의 모든 잠재적 반체제 인사들의 모든 권력 위치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정치적 그리고 물리적 제거둘째 젊고 새로운 계급의 노멘클라투라를 만들었는데그들의 다수는 첫 번째 5개년 계획에서 훈련받은 노동자의 자녀들이었다. (한 가지 역설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이었다그들은 특별 주택특혜 상점별장(dacha), 고등 교육 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별개의 계급이 되었다그들은 서유럽의 지배계급처럼 자유롭게 부를 축적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확실히 이러한 특권을 그들의 자녀에게 물려주고 항상 지배계급에서 역할을 찾을 수 있었다이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잉여가치를 집단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국가 기구가 설정한 모든 목표를 향해 돌렸다이것은 부수적으로 소비에트 체제 내에서도 경쟁 압력을 가져왔고이는 또한 사회주의 계획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약화했다,

 

존재했던 것은 아마도 일어나고 있는 계획의 반영으로 추정되는 목표 설정 체제였다모든 목표 설정 체제와 마찬가지로 그 목표들이 한 일은 경제가 기능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목표 달성을 위해 관리자들은 종종 그들의 프로젝트에 자원을 전용하기 위해 경쟁했고 중앙은행의 지원을 얻기 위해 근본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국영은행과 재무부의 역할은 명시된 계획이 무엇이든지 간에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매우 중요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엉터리 국가 체제는 화폐 폐지를 향해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실제로 우리가 위에서 보았듯이 경제에서 금전적 유인책의 역할이 커졌다화폐 문제는 어떤 체제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평가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비록 우리가 여기서 그 문제를 완전히 다룰 수는 없지만자본주의하에서 화폐는 생산의 실제 가치를 왜곡하는 또 다른 수단을 나타낸다생산 자금을 조달하고 통화 공급을 통제하는 사람들도 경제 관리의 주요 수단을 통제한다그들은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화폐적 가치를 사용하는데이것이 존재하는 한 사회는 가치 법칙에 지배될 것이다. “필요의 영역에서 사회주의 영역으로의 도약은 화폐가 폐지되어 노동시간 자체가 탈상품화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에만 사용되기 전까지는 실현될 수 없다그러나 그러한 체제는 또한 개인이나 추상적인 집단 자본주의 국가에 우리의 잉여가치를 수용하고 지시할 지배계급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스탈린주의는 소련이 너무 낙후된 자본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소련에서만 나타났다어떤 면에서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혼합 경제를 예고했지만(보기를 들어 인민이 국유화된 산업을 소유한다는 구실), 실제로는 독특한 맥락에서 발생한 자본주의적 구성체였다그것은 중국과 쿠바와 같은 국가의 모델이 되었지만진정한 혁명가들과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코뮤니즘의 요람이 아니라 묘지였다이것은 우리가 퇴치해야 할 유령이다.

 

결론

 

러시아혁명은 스탈린이 1928년 소련의 확실한 지도자가 되기 훨씬 전에 이미 패배했다러시아 10월 혁명의 퇴보는 세계적인 계급 운동의 패배와 그에 따른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맞선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의 약점에서 비롯되었다스탈린주의는 볼셰비키혁명의 당연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희망과 노력과의 완전한 단절이었다노동계급의 자유 대신에 스탈린(그리고/또는 그가 대표했던 성장하는 자본가계급)은 전례 없는 잔혹한 당 독재를 발전시켰다.

 

코뮤니즘 대신에특히 잔혹한 국가자본주의의 변종이 발전했다자본주의 사회의 기반인 상품생산과 임금노동은 그대로 유지했지만전면적인 국가통제와 강제노동은 사회주의의 업적이라고 거짓으로 그려졌다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의 수중에 집중된 생산수단에 대한 처분권이 없는 임금노동자로 남았다러시아에서 스탈린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특히 퇴행하는 국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어떤 의미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 등장한 혼합경제의 특정 요소를 예상했다여기에서도 국유화된 산업은 인민의 재산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그것은 주로 독특한 맥락에서 발전한 극히 예외적인 자본주의적 구성체였다.

 

스탈린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심각한 패배를 안겼던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쿠바나 중국과 같은 일련의 국가들의 모델이 되었다지배 형태이자 정치 경향으로서 스탈린주의는 민족주의와 국가자본주의 강령을 토대로 행동했다그것은 국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복종테러혁명의 포기코뮤니스트의 대량 학살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의 조장여성에 적대적인 성도덕 전파임금노동에 대한 미화에서 완전히 반동적인 성격을 드러냈다스탈린주의는 다소 퇴보한 사회주의 실험이 아니라반대로 혁명의 무덤을 파는 자들특히 반()코뮤니즘의 음흉한 변종이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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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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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빈 매튜스소련에서의 특권 코뮤니즘 아래의 엘리트 생활양식에 대한 연구, (Alen and Unwin, 1978)

2. (역자결론은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믿지 못할 친구들스탈린주의”, 코뮤니즘을 위하여를 인용했다이 팸플릿을 발행한 CWO는 ICT의 영국 지부이다.

 

<출처국제주의 코뮤니스트」 22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03-08-01/stalin-and-stalinism

 

<이전 글> 

스탈린과 스탈린주의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2875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Ⅱ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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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그리고 전복의 전망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그리고 전복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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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기후 위기는 세계 곳곳에서 폭염가뭄홍수빙하의 증발 등 기상이변으로 나타나고 있다기후 위기 징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타났지만위기 요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시작되었다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사회 확산과 맞물려 있으며자본주의가 지구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산양식이 되면서 더욱더 심화하였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폭염과 폭우 그로 인한 산사태가뭄 등의 피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기후 재난은 지난 7~8월 중부지역의 집중호우로 인한 막대한 피해처럼 직접적인 피해와 갈등뿐만 아니라 재난지원마저도 철저하게 계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기후 재난의 피해는 대부분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몫이지만자본은 탄소배출권그린 경제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후 위기마저도 이윤 추구 수단으로 삼는다이것은 기후 위기가 철저하게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순수한 환경 문제가 아닌 인간사회의 생산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기후 위기의 배경

 

수많은 환경운동단체뿐만 아니라 세계 부르주아지 일부도 현재 기상 상황을 기후 위기라고 인정하고 있다그들은 기후 위기 원인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등을 지목하고 있다환경운동단체와 이른바 진보좌파 일부는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 환경과 자연 파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그들은 기후 위기의 해결책으로 불평등 타파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하지만기후 위기와 사회경제체제와의 관계에 대한 접근은 피상적 수준에 그치면서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내의 대안에 충실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철저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원인 분석이 미미할수록 나오는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혁정책 개선에 머물거나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의한 규제탄소 거래제에 대한 기대생태도시로 전환 요구는 규제 강화를 통해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물론 이러한 규제와 제도 개선정책 전환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여기에서 재생에너지와 사회연대경제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면 명확하다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대안으로재생에너지에 관한 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하지만 이윤추구와 독점이라는 관점에서 도입시행되고 이윤법칙에 지배받는 재생에너지 생산은 전혀 대안이 될 수 없다한때, (지금도사회연대경제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상호공제조합 등등이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었다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의 사회연대경제는 오히려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이것은 재생에너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자본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과 독점화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뿐이다.

 

또한 자본과 지배계급은 녹색경제탈성장지역생산뉴딜정책 등등 자본의 이윤 추구를 마치 친환경적으로 미화하고 있다녹색은 껍데기에 불과한 데도 많은 환경단체와 진보좌파는 녹색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에서 자본에 녹색을 요구한다고 하여 친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 운동을 정지시키고 파괴해야만 가능하다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진보좌파즉 자본주의 좌파 환상에 불과하다자본주의 내의 개혁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동조는 쇠퇴기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생명 연장 수단이자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후 위기는 자본축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이런 점은 국제 부르주아 기구에서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보고서는 이런 점에서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난화빙하의 해빙 등 기후 위기의 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그러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온실가스 농도는 1750년부터 감지할 수 있고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화 확산과 맞물려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상황은 악화하였다이는 자본축적의 세 번째 주기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결국 기후 위기의 원인을 피상적으로 분석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퍼트리는 진보좌파는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전복하기 위한 투쟁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민족/국가 단위의 대안 역시 근본적 해결책에는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사회주의가 일국에서 불가능하듯이 기후환경 문제 역시 국가 단위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아시아를 비롯한 비유럽 지역으로 세계 공장 이전은 자본축적의 일환이며 이는 일국이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3. 기후 위기는 자본의 또 다른 이윤추구 기회

 

<사례1> 지난 8월 기후 위기에 따른 폭우가 중부지방을 휩쓸었다그러나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다반지하에 살던 장애인과 노동자 가족그리고 컨테이너 임시숙소에 머물던 이주노동자가 폭우로 인한 산사태에 목숨을 잃었다. (“이번 폭우는 기후재난반지하 없앤다고 문제 해결될까”, 비마이너, 2022. 08. 11)

 

<사례2> 당시 윤석열은 대통령실을 통해 자신도 침수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많은 증거와 증언은 이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하였다윤석열의 집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엘리베이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자아파트 측이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조치를 경고했다. (“윤 대통령 아파트가 침수 피해?... '허위 영상'에 뿔난 입주민들”, 한국일보, 2022. 08. 12)

 

<사례3> 11호 태풍 힌남로가 지나간 포항 냉천 지류인 용산천 인근의 용산2리에 집들은 태풍당시 지붕만 남기고 통째로 잠겼다그 이전까지 어떠한 태풍에도 범람한 적이 없었던 하천이었다하지만 용산천 인근에 포항시가 아파트 허가를 내주면서 물길을 거의 직각으로 변경하였다피해 마을 주민은 "아이파크 때문에 이 지대는 전부 저지대가 된 거예요딴 것 없어요약한 사람은 죽어야 하고 돈 있는 사람만 사는 건 아니잖아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범람 안 된다던 포항시수로 바꾼 '인재'”, 대구mbc, 2022. 09. 14)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주거는 계급적이고 빈부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또한 기후 위기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몫이다물론 기후 위기의 피해뿐만 아니라 전쟁경제위기대유행 등 자본주의가 퍼트리는 온갖 고질병의 고통은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강력한 타격을 준다이쯤 되면 기후 위기에서 비롯된 각종 재해는 사회적 관계와도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호 태풍 힌남로가 할퀴고 간 포항을 방문한 윤석열에게 재해 약자는 자연재해인가아니면 인재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이 질문과 포항 용산천 범람은 기후 위기가 경제사회 체제와 밀접하고 계급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제기한 사건이었다.

 

자본은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전쟁대유행 등 각종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자에게 고통 분담과 희생을 요구했다노동자에 대한 고통 전가는 동전의 양면처럼 자본에는 이윤 추구의 기회이기도 하다경제위기 시에는 소자본에 대한 대자본의 집적과 인플레이션을 통한 사회적 약자의 부를 도둑질하며 부가가치를 증대시켰다최근 윤석열 정권의 재정 확보를 위한 국유 재산 매각 역시 이런 맥락이다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사례는 있었다박근혜 정권에서 건실한 재정 확보라는 명분으로 한국석유공사 사옥 매각 후 그 건물에 임대로 들어가기도 하였다그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와 관련된 탄소배출권무늬만 친환경인 테크놀로지의 대표 사례인 전기자동차는 전기를 만드는 과정이나 전기자동차 생산과정이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고 수소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이다그린란드 빙하가 녹자 희토류를 선점하려고 제프 베이조스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억만장자들이 광물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따라서 각종 위기는 고통 분담 이데올로기와 폭력을 통해 노동자에게는 고통을 가중하지만자본에는 집적과 집중의 기회이다.

 

4. 기후 위기 대책

 

1) 기후 위기에 따른 사회시설 제반에 대한 개선 요구

 

지난 8월의 폭우에 대한 대책으로 서울시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을 불허하겠다고 발표하였다그러나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는 주거의 공공성 강화라는 내용도 없고 반생태적 도시환경에 대한 근본 대책도 없다며 강력히 비판하였다수도권에서 반지하는 일반적인 주거 공간 중 하나다서울시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5%에 달하는 약 20만 호의 지하·반지하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수도권에 집중된 이유는 높은 집값 때문이다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택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이다.

 

비판의 핵심은 근본적인 문제는 위기를 상시화하는 서울의 도시 환경이라는 것이다아스팔트로 뒤덮인 땅은 빗물이 스며들 수 없고하천을 매립하거나 숨기며 물의 흐름을 막는 복개천은 홍수 위험을 높인다자연의 순환 시스템을 무시한 도시개발이 생태환경과 인간의 삶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반복되는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생태적인 도시계획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그런데도 반생태적 도시환경 개선보다는 토건 자본을 위한 정책들의 나열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온실가스 감축 계획 재수립과 기후재난에 취약한 계층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서 대규모 정책 수립과 예산 확대를 정부와 서울시에 마련하라고 요구하였다.

 

2)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탈성장지역경제

 

환경과 기후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지 대안인 녹색경제그린뉴딜 등의 명칭은 국경을 초월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을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한국에서도 이명박 정권은 녹색성장을 주장하며 친환경 정책인 양 포장했다하지만 실제로는 토건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물이 4대강 사업이다문재인 정권 역시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과는 다르다며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을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기반 위에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겉으로 보기에 그린뉴딜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동시에 탈 탄소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녹색 일자리도 창출하고 지구도 살리고 돈도 버는 정책으로 포장되었다하지만 최소한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명확한 목표 구체적 계획어떠한 규제책도 제시하지 않았다탄소배출 제로 의지와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 공허한 내용에 불과한 친자본적인 정책으로 이전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국제 부르주아지의 녹색경제 역시 이러한 맥락이다기후 위기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된 자본은 결코 이윤을 포기하지 않고 비서구권으로 공장 이전을 통해 탄소 배출 규제 및 배출권을 이용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더 나아가 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의지도 없다이러한 철학 부재는 당연히 대안의 부재로 나타나기 마련이다부르주아 정부는 자신의 무능과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해 장밋빛 청사진으로 제시했지만그들의 계급적 성격은 감출 수 없었다탈 탄소 문명을 탈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빠져 있고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에 맞춰져 있다.

 

3)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과 녹색경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

 

사회시스템 제반에 대한 개선은 노동단체 비판처럼 자본의 이윤 중심이 아닌 노동자 관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그런데 국제 부르주아 기구의 탄소 저감제생태도시 조성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한가저소득 노동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한가또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을 부르주아지에 강제하지 않고 협조요청 정도로 실행 가능한가이러한 의문에 대해 어떠한 긍정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자본의 이윤 축적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를 막는 것이 아니다즉 지금의 기후 위기 역시 철저하게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부르주아지에 협조요청이 아닌 기후 위기 대책을 제대로 시행할 계급성을 갖추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탄소배출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였기 때문에 탄소배출 제로에 대한 능력과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더 나아가 환경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 없다따라서 세계환경협약을 통한 국제 부르주아지의 추진과제(탄소 저감그린 경제 등)들은 공허한 내용에 불과하다오히려 무능력과 무의지를 감추려는 부르주아 정부는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하지만결론은 자본의 이윤 추구룰 위한 새로운 방법은 없다.

 

자본의 이윤추구는 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고통 분담을 의미한다부르주아지는 자기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할 뿐이다그것이 환경과 기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성격이다따라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채 탄소 저감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그린뉴딜이나 녹색성장녹색경제 등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본질은 자본 축적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은 시급하고 꼭 필요한 사업이며도시 녹지 확보 및 재난 인프라 구축 역시 중요한 사업이다지난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정책을 잠시 살펴보자문재인 정권은 집값 억제가 아니라 집값 폭락을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부르주아 정부와 정당들의 집값 안정 대책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이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소유와 매매 및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의 삶에 전가될 뿐이다또한 공공임대주택 역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서는 철저하게 이윤추구라는 관점에서 시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부르주아 정부는 노동자 요구에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본 이익에 반하는 요구를 정책으로 시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정책과 제도 속에서 경험했다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요구와 기대는 기후 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5. 결론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결론은 기후 위기와 환경파괴 원인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라는 것이다약탈과 착취의 생산이 지속된다면 인류를 포함한 종 전체가 탈출구 없는 멸종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결국 선택지는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종의 멸종을 포함한생태계 파멸이냐의 갈림길만이 놓여 있다부르주아지는 자본 운동을 억제하거나 중단시키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오직 기후 위기환경파괴종의 멸종을 향해 폭주하며 달리는 자본 운동에만 매달린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각종 위기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자본주의 폭주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자본의 무한이윤 경쟁은 기후 위기가 일국만의 대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세계혁명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인류생산 및 환경 사이 새로운 관계를 건설하여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문제 제기 없이는 지구파괴를 막을 수 없다이윤추구 체제를 넘어서지 않는 대안과 정책은 결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지구파괴와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즘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지구를 파괴한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킨다.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노동자 희생과 지구 파괴를 멈출 수 있다!!

 

기후재난환경 파괴대유행전쟁생계비 위기...

자본주의가 원인이다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만이 지구와 인류를 살릴 수 있다!!

 

2022년 9월 22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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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1부)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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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반

 

지금 우리가 중판을 찍고 있는 이 글은 CWO(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가 지금까지 만든 첫 번째 팸플릿의 1부이다이 글은 1975, CWO의 전신인 혁명적 전망(Revolutionary Perspectives) 소그룹이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적 토대라는 제목으로 별도로 발간했다오랫동안 절판되었으나이 글에 실린 맑스주의 경제의 핵심 개념에 관한 복잡하지 않은 설명은 혁명적 동지들이 오늘날 세계적 자본주의 시대에도 맑스의 시대에서처럼 동일한 근본적인 물질적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준다.

 

전후 경제적 호황의 끝이 명백해진 1970년대에 이 글이 작성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이에 따라 맑스주의를 재발견한 코뮤니스트좌파의 혁명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이 글은 왜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성장한 전후 번영의 시대가 인플레이션 위기로 바뀌어버렸는지 이해하도록 충격을 선사했다케인즈주의가 자본주의의 순환하는 경제적 위기 문제를 해결했다는 성명은 이제 허위로 드러났고자본주의 축적 순환은 또 다른 위기로 끝날 것이라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친 폴 매틱(Paul Mattick)의 주장이 그 정당성을 입증했다맑스와 케인즈에 대한 그의 연구는 우리에게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경제적 힘에 대한 맑스의 원래 분석을 더 깊이 연구하도록 고무했다전후 호황기 노동계급을 진정시켜 자본을 위한 계급이 되게 한 것으로 여겨지는 증가하는 소비주의에서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계급투쟁은 귀환했고이와 함께 맑스주의 러시아를 기형의 노동자 국가’ 또는 국가주의로경제의 국가 통제를 사회주의로 가는 단계로 정의한 가짜 맑스주의가 아니라자본주의의 성장이 노동계급의 확장에 따른 부불노동에서 빼앗은 이윤에 기반을 둔다는 뿌리 깊은 원칙에 기초한 맑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났다가치법칙의 이러한 재발견으로부터 분석은 우리가 맑스주의 경제의 핵심 개념자본주의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뒤이은 이윤율의 하락 경향으로 자연스럽게 데려간다이 핵심 개념들은 아직도 오늘날 세계적 자본주의가 맞이하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이해하는 기반이다.

 

지난 몇 년간원본 팸플릿 전체를 다시 출간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우리는 항상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첫 번째 문제는 1970년 작성된 글은 위기가 그 뒤로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해 그 무엇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고두 번째 문제는 첫 부분과 그 제국주의 시대 또는 쇠퇴기에 자본주의의 발전 사이의 연결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이론적 발전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점이다따라서 우리는 첫 번째 이론 부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쇄하고뒤이은 출간물들에서 맑스 사후 자본주의의 발전을 다루기로 했다자연스럽게지난 40년이 넘도록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ist Communist Party, PCInt)의 우리와 동지들은 이러한 발전에 대해 글을 쓸 이유가 있었고이제 우리의 의도는 이 모든 것들을 합쳐 맑스주의 이론적 틀 원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재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오늘날 이윤율 하락을 자본주의 작동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는 몇몇 강단 맑스주의자들과 쟁점을 다룰 것인데우리는 그 작동이 필연적으로 자기 붕괴하는 것을 보여주는 표도 만들어줄 수 있다그러나 제국주의 전쟁전 세계 노동계급의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그리고 지구의 실제 존재를 위협하는 오늘날 제국주의를 추동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얼마나 급박한 문제인지 그들은 대개 아무런 생각이 없다아래로 떨어지는 그래프와 표는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의식적인 혁명 운동 없이도 자본주의가 점진적으로 소멸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2) 역설적으로 이는 오래전, 20세기 초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사민당의 개량주의자들을 사로잡았던 종류의 생각이다그러했기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윤율의 하락이 자본주의의 존재론적 위기의 원동력으로 보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그 과정이 태양이 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그 시절 경제 기반의 존재 이유는 노동가치론을 재확인하는 것이었고이는 포화 시장에 대한 이론에 반대하여 자본주의 위기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오늘날에는 싸워야 할 더 위험한정체성 정치와 기후 위기 운동과 같은 21세기의 계급을 넘나드는 개량주의 형태의 환상들이 있다이 환상들은 개량주의의 환상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인종피부색국적이나 그 외의 무엇이든 정체성 자본주의가 한 계급으로서의 우리를 나누기 위해 사용하는 그 어떤 기준과 관계없이 임노동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적 투쟁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

 

오늘날 생활 수준이 떨어지고 굶주림이 확산하는 전쟁의 시대에이 글자본주의에 내재한 반복하는 위기 뒤에 있는 경제적 추동력과 종국에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맑스의 설명에 대한 개관은 특히 적절하다같은 이유로이 글은 모든 자본주의 이윤의 기반이 되는 부불노동을 하는 계급노동계급이 여전히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에 핵심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이 메시지를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반들

 

모든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물질적 필요(음식주거지의복)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이다이 근본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역사 유물론 관점의 토대이다맑스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 사람은 역사를 만들’ 수 있도록 살아가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삶은 그 무엇보다 우선 먹고 마시고거주하고옷을 입는 등의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따라서 첫 번째 역사적인 행동은 물질적 삶 바로 그것을 생산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모든 사회에서일정량의 노동 시간이 인류의 물질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물질의 생산에 투여되어야만 한다노동자와 도구/기계그리고 원자재(생산수단)는 모든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이다그러나,

 

어쨌든 생산이 계속되려면그것들은 반드시 통합해야 한다이러한 통합의 이뤄지는 특정한 방식이 사회 구조로 이뤄진 서로 다른 경제적 시대를 구분해준다. (4)”

 

따라서 인간 존재가 그들의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를 생산하는 방식(이를 생산양식이라 한다)이 특정 기간 그 사회 본질의 근본적인 결정 요인이다일정 수준으로서의 생산수단의 발전(가장 단순한 도구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에 이르기까지)은 그와 관련된 사회적 관계망을 포함한다이것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는 바로 그러한 연결의 총체이다그것은 다시 모든 법적정치적그리고 문화적 상부구조의 진정한 기반이다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역사 유물론의 관점에서 출발하면역사적 발전 뒤에 있는 동력은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이다모든 사회에서 생산력은 특정 시기그 생산력이 원래 만들어진 사회적 관계망과 충돌을 일으킬 때까지 발전하고 확장하거나또는 점점 복잡해진다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관계는 한때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하였으나 이제는 생산력이 더 발전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이것이 물질적 생산력이 확장함에 따라 등장하는 사회 혁명의 시대이며이 시대는 사회적 관계와 옛 사회의 상부구조가 전복될 필요를 만들어낸다따라서

 

그 어떤 사회적 질서도 그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에 파괴되지 않는다우월한 새로운 생산 관계는 그들을 존재하도록 하는 물질적 조건이 과거 사회의 틀 속에서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과거의 생산 관계를 대체하지 않는다따라서 인류는 문제를 풀기 위해그러한 책무를 피치 못하게 스스로 떠안는다왜냐하면 엄밀하게 조사해보면오직 그 해결방안이 이미 존재하거나적어도 형성되는 과정에 있을 때만 문제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부르주아의 생산양식은 생산의 사회적 과정에서 마지막 적대적인 형태이다적대적이라 함은 개인적인 적대의 의미가 아니라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이다그러나 부르주아 사회 내에서 발전하는 생산력은 또한 이러한 적대를 해결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생산한다이에 따라 인류의 선사 사회는 사회의 형성과 함께 그 종말을 고한다. (5)”

 

중세시대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 생산이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자본주의 생산은 결국 중세 사회정치적 법적 관계의 전복그리고 부르주아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길로 나갔다일단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공고해지자자본주의 역사적 책무는 전례 없는 세계적 수준의 규모로 사회의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되었고그렇게 함으로써 전체 인류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생산 기반을 건설하기 위해 물질적 발전의 수준을 그 필요만큼 만들었다. (코뮤니즘)이 세기(약 1914시작과 함께 자본주의는 코뮤니즘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는 그 역사적 책무를 완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연작의 목적이다그 뒤로 어떤 자본의 축적도 더는 생산력의 진보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않았다(여기서 진보적이라는 것은 높은 수준의 생산양식을 위한 조건을 발전시킨다는 의미). 따라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생산력의 발전은 그 어떤 것도 쇠퇴하는 기반에 서 있다 자본주의가 생산양식이 그러하듯 기울고 있다는 징후이다.

 

그러나 쇠퇴기 자본주의 분석을 계속하기 전에자본주의의 기본적인 특징들과 자본이 확장하고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동안그와 동시에 사회의 생산력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자본을 무능력하게 하는 특정 객관적 한계를 부여하는 근본적인 추동을 개괄할 필요가 있다.

 

결국다른 생산양식처럼자본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삶의 물질적 필요가 생산되는 과정이며단지이윤을 위한 자본주의 생산과 사회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생산의 근본적 필요성 사이의 모순이라는 특징을 가진 독특한 역사적 형태이다.

 

노동가치론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도구를 스스로 생산하는 사회에서는 그들 노동의 산물은 효용이거나 사용 가치이며이는 소비를 위한 물질 형태 또는 생산수단 일부로 기능하는 물질일 것이다노동의 분업이 없고 생산자는 자신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원시 사회에서 생산은 사용 가치의 형태밖에 없었다생산의 수준이 생업 경제를 넘어서서 발전하고 사람들이 그들의 산물을 교환하기 시작하면(물물교환이 산물에 상품의 특징 역시 부여된다상품은 효용(또는 사용 가치)의 물체(객체)라는 성격과 다른 상품으로 교환될 수 있는(교환가치물체(객체)라는 이중적 특징을 갖게 된다.

 

모든 상품은 인간의 노동으로 생산되며그 모든 상품은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인간 노동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상품의 가치는 인간의 노동이 들어간 양의 추상적 개념이며그 상품에 포함되어 있다상품에 내재한 노동의 양이 측정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따라서 노동시간은 가치의 측정 도구이다그러나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 할지라도특정 상품의 가치는 어떤 개별 노동자가 그것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시간의 길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만약 그러하다면가치는 특정 개인이 얼마나 빠르거나 느린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상품의 가치는 생산력의 발전이 특정 수준에 도달한 사회에서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 시간의 평균으로 결정된다그리고 이것이 교환을 목적으로 서로 다른 상품의 물리적 질적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해 준다.(보기를 들면그러므로 방직공이 15야드의 천을 생산하는데 평균 5시간이 걸리고목수가 테이블을 만드는 데 평균 5시간이 걸린다면, 15야드의 천은 하나의 테이블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만약 우리가 상품의 가격이 가치와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테이블의 가격은 15야드의 가격과 같은 것이다.)상품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오직 교환의 과정을 통해서 만이다왜냐하면 한 상품의 가치는 오직 다른 상품에 의해서만 표현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가치법칙

 

상품 생산과 그것을 암시하면서 수반하는 노동의 분업이 자본주의 발전의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지라도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던그 이전의이른바 자본의 원시 축적이 일어나기 전의 다른 특정 역사적인 조건들이 있다.

 

무엇보다 물물교환을 통한 교환은 화폐 경제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화폐는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가 표현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품으로서교환가치의 편리하고 표준화된 도구로이후에는 교환의 매개로 교역의 확장을 촉진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화폐의 일반적인 특징은 모든 다른 상품의 교환가치를 표현해주는 것인데이것은 화폐가 일반적인 부의 물질적인 대표물”(6)이란 뜻이다이를 통해화폐는 역사적으로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고이는 상품 생산과 교역이 확장되면서 더욱 그러했다중상주의 시스템은 교역을 통한 화폐의 일반적인 형태로서의 부를 축적할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등장을 위한 또 다른 근본적인 전제조건은 스스로는 어떤 생산수단도 갖지 못하고 따라서 살기 위해서는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임금노동) ‘자유로운’ 노동자의 존재이다.

 

“... 노동자는 그의 노동이 포함된 상품을 파는 위치에 있는 대신바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것으로 내놓아야만 하며그것은 살아있는 자신의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이다. (7)”

 

임노동의 존재는 노동력이 이제 그 교환가치가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평균 노동시간 – 노동자가 자신의 물질적 필요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이 되는 상품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화폐로 표현되면서 노동의 교환가치는 노동자의 임금과 동일한 것이 되었다일단 노동력이 상품으로 전환되면잉여가치의 생산그러니까 노동자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고 스스로 재생산하는데 필수적인 가치를 초과한 그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가치법칙에 따르면상품은 그 가치 또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노동시간의 양에 조응하여 교환된다자본주의 아래에서 가치법칙의 작동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을 자본가가 그 자체로 판매하면서 이윤이 만들어진다동시에 노동자들에게 자기 노동력의 교환가치와 동등하게 임금이 지불된다왜냐하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살기 위해 판매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그들 자신의 물질적 필요와 동등한 수준의 가치 생산에 필요한 시간 이상으로 더 오랫동안 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이것이 잉여가치이며노동자의 노동력에 의해 창조되고생산수단의 소유자에게 전용되는 것이자자본 이윤의 원천이다.

 

자본 축적

 

원래의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일어나고(역사적으로 원시적 축적은 상인들이 그들이 축적한 부의 일부는 생산 공장에 투자했을 때 발생했다), 자본주의가 생산양식으로 자리 잡고 난 이후자본주의는 그 자신의 확장을 위한 방법을 만들어낸다맑스는 이 사실을 묘사하기 위해 자본가와 노동자만으로 구성된 폐쇄 사회에서의 추상적인 단순 재생산 모델을 묘사했다전체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총생산은 불변 자본(원자재기계류 등)과 가변 자본(자본가들이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 그리고 잉여가치로 구분할 수 있다만약 전체 고정자본이 자본이 한 번 순환하는 과정에서 모두 소모된다고 가정하면사회적 총생산은 아래와 같이 표현될 수 있다:

 

c + v + s

(역주: c는 불변 자본(constant capital), v는 가변 자본(variable capital), s는 잉여가치(surplus value)

 

만약 이 사회적 총생산을 다시 생산의 두 영역첫 번째 영역을 생산수단의 생산두 번째 영역을 소비 수단의 생산으로 더 자세히 구분한다면원래의 공식은 다음과 같이 정교화될 수 있다.

 

영역 I

c + v + s

영역 II

c + v + s

사회적 총생산

 

(자본가들이 생산된 모든 잉여가치를 소모하고따라서 사회적 총생산은 새롭게 재생산될 뿐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단순 재생산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맑스의 도식을 따라가 보자:

 

영역 I

4,000c + 1,000v + 1,000s

영역 II

2,000c + 500v + 500s

사회적 총생산(9,000)

 

이 표는 가치로 두 영역의 관계를 묘사하는 추상적이지만각 영역에서 생산된 전체 가치가 실제 물리적인 물체의 형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만약 우리가 두 영역의 관계를 묘사한다면생산의 순환이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두 영역 사이에서 일부 상품 교환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명확하다영역1에서 생산된 4,000 불변 자본(기계류기계 도구 등의 형태)은 동일한 영역에서만 분배될 필요가 있다그러나 (생산수단의 형태기 때문에) 1,000v + 1,000s 로 표현되는 만큼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도자본가가 개인적으로 소비하지도 못한다다른 한 편영역2에서 생산 과정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2,000 만큼의 불변 자본은 소비자 제품의 형태로 남아있는 한 쓸모가 없고, 500v 와 500s는 영역2의 노동자와 자본가에 의해 소비될 수 있다재생산이 마찰 없이 계속되려면영역1에서 1,000v 와 1,000s는 영역2에서의 2,000c로 교환되어야 한다다른 말로 하자면단순 재생산을 위한 균형 조건은 아래를 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Iv + Is = IIC

 

이러한 추상적인 단순 재생산 개괄은 자본 축적이 근본적으로 자기 생산의 과장이며 이는 확대된 재생산다시 말해 사회적 총생산이 재생산 순환 동안 증가한 상황에서도 진실이다.

 

현실에서 자본가 사이의 경쟁은 자신의 경쟁자를 약화하기 위해 낮은 가격에 판매하도록 끊임없이 강요한다이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상품을 더 싸게 생산해야 하고따라서 잉여가치 일부를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새로운 기계류의 형태로 돌려야 한다자본주의의 역사는 축적의 증가또는 확대한 재생산 역사의 하나이다그런데도 상술한 첫 번째 모델은 확대된 재생산이 여전히 근본적으로 노동자-자본 관계의 재생산으로 남아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산의 두 영역으로 돌아가서이제 만약 우리가 각 영역에서 생산된 잉여가치 일부를 자본으로써 생산 과정에서 되돌려 놓기로 하면그러면 각 영역의 잉여가치는 자본가들의 개인적인 소비를 위한 부분을 대표하는 A와 자본으로 변환되는 부분을 대표하는 B로 나눌 수 있다따라서

 

Is = IA + IB

IIs = IIa + IIB

 

각 영역의 부분은 다시 불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세부 영역(IBc 와 IIBc), 그리고 가변 자본으로 축적되는 세부 영역(IBv 와 IIBv)으로 더 잘게 나뉠 수 있다따라서 사회적 총생산 공식은 이제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영역1 Ic + Iv + IA + IBc + IBv

영역2 IIc + IIv + IIA + IIBc + IIBv

 

각 영역의 처음 세 측면의 재생산은 이미 단순 재생산 공식에서 다루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자본화된 잉여가치 중 일부를 다룬다단순 재생산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이유로만약 확대 재생산이 발생한다면, IBv는 반드시 IIBc와 동일해야 하는 것이 명확하다확대 재생산이 발생하기 위한 두 영역 사이의 필수적인 교환은 단순 재생산에서의 두 영역 사이의 교환 공식과 결합하여 아래의 방정식으로 묘사할 수 있다.

 

Iv + Ia + IBv = IIc + IIBc

 

다른 말로 첫 번째 영역의 완전히 새로운 가변 자본과 비생산 소비로 떨어지는 동 영역의 잉여가치 부분은 반드시 두 번째 영역의 새로운 불변 자본과 같아야 한다. (8)

 

이 확대 재생산 모델에서자본의 축적은 불변 자본의 성장노동자 소비의 성장과 자본가 소비의 성장을 포함하는 자기-확대(self-expanding) 과정임이 명확하다따라서

 

상품 생산은 자기 시장을 만들어내는데그것이 잉여가치를 새로운 자본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한 그러하다(9)”

 

우리는 아래에서 자본의 자기-확대가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동반함을그 대신 자본이 잉여 가치를 새로운 자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평균 이윤율 공식

 

우리는 어떻게 경쟁이 개별 자본가들이 지속해서 잉여가치 일부를 자본으로 변환시키도록 강제하는지따라서 자본의 축적이 어떻게 자기-확대의 과정인지를 보았다그러나 모든 자본가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그리고 따라서 잉여가치의 생산)이므로특정 시점에 이르렀을 때그러니까 이전보다 적은 이윤이 발생하는 순간자본가들은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전환하는 행위를 그만둘 것이며따라서 자본 축적이 중지될 것이다.

 

이윤의 증가는 (자본으로 돌리는잉여가치의 증가를 내포한다그러한 증가는 노동자가 더욱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해야 한다는 뜻이고따라서 착취율(s/v, 가변 자본 중 잉여 치의 비율또는 잉여 가치율의 증가로 이어진다자본가가 착취를 심화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노동일의 연장 (절대적 잉여 가치)

2. 노동력의 교환 가치의 절감 – 다시 말해노동자가 자신의 최저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상대적 잉여 가치). 이는 1) 보다 싼 식료품 가격그리고 2) 높은 생산성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노동 생산성 향상은 노동자가 주어진 시간 생산할 수 있는 교환가치 양의 증가를 포함한다한 편에서 사회적 노동 생산성은 그 자체로 전체 상품량의 증가 안에서 나타나는데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 각 단일 상품의 가치는 하락한다증가하는 상품량의 생산을 포함하는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이에 더해 생산력의 발전을 내포한다기계류의 개선더 효율적인 기술의 도입 등이러한 것들은 가변 자본에 대한 불변 자본 비율의 증가라는 결과로 빚어진다따라서 노동자의 숫자가 실제 증가해도새로운 기계류 등에 대한 투자의 증가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진 않는다가변 자본에 비해 더 증가한 불변 자본의 비율은 맑스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c/v, 불변 자본/가변 자본)의 고도화라고 지칭한 것이다이윤율 하락 경향으로 이어지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지속적인 증가(고도화)는 그 대가로 자본의 축적 능력에 실질적인 한계를 씌운다이윤율 그 자체는 s/c+v(잉여가치/불변 자본 가변 자본)로 표현될 수 있는데이는 불변 자본의 감가상각과 대체그리고 노동자의 임금을 고려한 이후에 획득하는 잉여가치이다.

 

그러나 노동가치론의 입장에서 우리의 분석은 사회적 총생산에 대한 것이며따라서 우리는 특정 회사 또는 나아가 일부 산업의 이윤율에 대해서는 부차적으로만 다룰 것이다우리의 관심은 이윤율의 평균 또는 일반 평균율의 형성이며이는 경쟁의 결과로 등장하는데이 법칙은 자본의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이윤율의 하락 법칙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중요하다.

 

맑스는 자본론」 1권에서 상품 생산을 다루면서상품의 가격이 그 가치와 동일하고수요와 공급의 변동이 없다는 가정다시 말해 p = v임을 가정했다그러나 3권에서 그는 일반적으로 산업 자본이 더 발전하면상품 가격이 그 가치와 같아지는 경우는 드물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치에서 가격의 일탈은 가치 이론의 기반을 약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가장 확고하게 확립해주는 것이다물론 개별적 가격도 언제나 어느 정도 가치와 관계가 있으나, 3권에서 맑스의 성취는 가치와 가격이 일치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 전체 경제 수준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다시 말해 총 p = 총 v이다.

 

“... 가치에서 가격의 일탈은 서로 균형을 맞춘다... 같은 방식으로 사회의 모든 상품의 생산 가격의 합은 그 모든 가치의 합과 동일하다. (10)”

 

다른 것이 모두 동일하다면구성이 고도화된 상품의 가격은더 적은 노동이 포함되기 포함될 것이므로저수준 구성에서의 자본의 가치보다 낮아질 것이 명백하다이와 관계없이경쟁은 각 자본이 대체로 가격과 동등한 수준에서 판매하도록 강제한다따라서 고도화된 구성에서의 자본은 가치보다 높이낮은 구성에서는 가치보다 낮게 판매하도록 강제한다이 효과는 명백하다 – 저수준 구성에서의 자본이 고도화된 구성의 자본으로 가치가 지속해서 추출되는 것.

 

단일 산업 내에서 이러한 균등화의 원시적인 보기를 확인하기는 쉽다그러나 경향(처음에는 지역에서 시작하여 국가 수준으로 가는)은 결국 지구적 수준에서 자신을 확립하고이를 묘사하기 위해 우리는 맑스가 3권에서 제시한 다소 더 복잡한 보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산업의 모든 각 영역이 그 상품을 가치에 맞춰 판다면특정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다자본의 구성이 낮은 수준의 산업들에서는 높은 이윤을 창출하고고도화된 자본 구성의 산업에서는 이윤이 낮을 것이다그러나 자본은 전자에 더욱 끌릴 것이므로이는 산출의 대규모 증가와 과잉 생산 시장으로 나아갈 것이다이와 유사하게노동은 자신의 교환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고따라서 이를 고정 자본으로 대체하려는 동기를 제공한다그동안 다른 산업들은 자본이 고갈되고성장은 느려지고산출은 둔화하며 가격은 증가할 것이다이 순환의 끝에서 자본의 고공 행진은 처음에 그러했던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명백히 고꾸라질 것이다모든 자본 운동과 가격 변동의 결과는 전체 경제 수준에서 평균 이윤율의 형성과 잉여가치 배분의 올바른 분배이다자본가에게 이 운동은 그 자체로 시장이 그의 제품에 그들의 가치가 아니라 가격을그것도 생산의 비용(비용 가격수준에서 치른다는더불어 이윤율이 평균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이 가격은 결코 임의적이거나 가치 관계와 독립된 것이 아니다.

 

생산 가격과 평균 이윤율의 전반적인 하락과 상승은 노동 생산성의 변화 과정에서 바뀌는 가치 관계의 변화상품의 가치 내용의 변화그리고 총자본의 유기적 구성에서의 구조적 변화가 야기한다. (11)”

 

이는 자본의 구성과 고정 착취율이 다른 생산의 다섯 영역의 추상적 보기로 묘사될 수 있다.

 

photo_2021-01-02_11-41-14 (2).jpg

 

자본의 평균 구성은 78c + 22v이며평균 이윤율은 22%이다따라서 가격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형성된다.

 

 photo_2021-01-02_11-41-14.jpg

 

이 법칙은 순환 과정의 끝에서 자본이 생산한 총가치 일부를 그들이 되돌려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은잉여가치결과적으로 이 상품 생산으로 그들 자신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이윤을 보증하지 않지만오직 잉여가치와 이윤이 사회적 총자본의 모든 나누어떨어지는 부분의 영역에 있는 양만큼만 확보하도록 해 준다... 투자된 자본 100은 그 유기적 구성이 어떠하든 관계없이한 해에 그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이윤의 양은 같은 기간의 사회적 총자본 100의 부분에 떨어지는 양과 같다. (12)”

 

그렇다면 이 메커니즘은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산업들로 지속해서 가치가 흘러가는 것을 포함하며어떤 국가 자본에서도 자본의 집중 과정을 가속한다그러나 세계 시장의 생성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세계화를 향한 이 추동 속에서자본은 자기 내부에서 확장이를 데 없이 확대된 이윤율의 균등화를 수반한다이는 발전이 불균등 교환에 발목 잡힌 낙후된 영역에서 가치를 뽑아내고따라서 그들의 주요한 축적의 과실의 대부분을 강탈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글에서 우리는 이윤율의 균등화 경향을 이윤율의 하락 경향과 함께 살펴볼 것인데이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뚜렷한 특징을그 성장의 시기와 쇠퇴의 시기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를 기억해야 한다.

 

이윤율이든 일반적인 경제 법칙이든그 무엇도 근사치경향평균을 제외하고즉각적인 현실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13)”

 

이윤율 하락 경향

 

그렇다면 자본의 축적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필수적 조건으로 하는데이는 다시 이윤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근대 정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며매우 복잡한 관계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없어서는 안 될 만한 것이다과학의 입장에서도 이는 가장 중요하다따라서 물질적인 생산력이 이미 있고작동하고 있으며고정 자본의 형태 – 자본주의 그 자체의 역사적 발전으로 인해 생산력이 발전하면서자본을 현실화하기보다 자기-실현을 유예하는 특정 시점에 도달했을 때 로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14)”

 

헨릭 그로스만(Henryk Grossman)의 수치를 사용해 보기를 묘사하기 위해, 1:1 유기적 구성, 30 불변 자본과 30 가변 자본착취율 100%, 그리고 이윤율(s/c + v)이 50%를 가정해보자.

 

유기적 구성이 (5:1)다시 말해 250의 불변 자본과 50의 가변 자본그리고 같은 착취율이면 이윤율은 16.6%가 될 것이다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모두 증가한다생산의 규모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고용된 노동자의 숫자도 증가한다. (16)”

 

그런데도 이윤율은 떨어지고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는 생산된 잉여가치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이를 데 없이 성장한 고정 자본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로스만의 수치를 사용하여 또 다른 보기를 상술해보자.

 

“... 200c – 100v – 100s(잉여 가치)의 구성에 따라고정 자본은 (총 잉여가치가 축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가정하면원래 크기의 50%로 증가한다자본 축적의 더 높은 단계에서 심각하게 더 높은 유기적 구성예를 들면 14,900c – 100v – 150v로는잉여가치의 증가한 양은 오직 추가적인 자본(AC)으로 1% 올리기 위해서 사용될 때만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17)”

 

이 분석에서 보면축적의 높은 단계에서 총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너무 크고 이윤율이 너무 작은 지점기존의 불변 자본이 생산된 전체 잉여가치를 흡수할 정도로 확대되는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 축적은 제한될 것임이 명백하다. (18) 더욱이 이 위기가 접근함에 따라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배분을 위한 가치의 비율 역시 감소하며이로 인해 자신의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자의 첨예한 투쟁이 불가피해진다 –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추가적인 축적을 위한 충분한 잉여가치의 부족에서 비롯된 해고와 실업생산력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는 무능력 또한 그러하다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붕괴를 향한 추동을 축적 과정 그 자체에서 찾는다역사적으로 이러한 붕괴 경향은 자본의 주기적인 과잉-생산” 위기로 나타났었다자본의 평가 절하대기업의 소규모 자본 흡수를 포함한 더 높은 수준의 자본 집중과 중앙집중화를 통해 이런 위기는 극복해왔다그리고 유기적 구성이 더 고도화되고더 높은 착취율로 결국 새로워진 축적에 이른다그런데도 새로워진 축적이 뒤따르는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의 역사는이윤율 하락 경향과 붕괴로의 장기적 경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위기가 초기의 붕괴라고 한다면자본주의적 시스템의 최종적 붕괴는 위기가 완전히 발전하여 어떤 역-경향들로도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19)”

 

현실에서 이윤율 하락 경향은 다양한 역-경향들을 불러일으키는데처음에는 하락을 성공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요한 것은 아래와 같다.

 

1. 노동자의 생활 수준의 하락 또는 생산성 향상에 의한 착취율의 증가우리는 앞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그 자체가 생산성 향상과 따라서 이윤율 하락에 대한 역-경향을 제공해 줄 수도 있는 잉여 가치율의 증가를 살펴보았다. (20) 위기의 때마다 자본가는 착취의 절대적 증가로 잉여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임금 삭감노동시간의 증가).

2. 원자재 비용의 하락과 결과적인 불변 자본 요인들의 저렴화와 잉여 가치율의 비율적 증가유사하게더 저렴한 식재료는다른 모든 것이 같다면노동력의 교환 가치를 떨어뜨리고따라서 자본가의 생산 비용을 감소시킨다.

3. 해외 무역저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가진 해외의 자본에 가치보다 높은 수준에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가진 자본은 추가 이윤을 만들 수 있고따라서 이윤율 하락에 반격에 기여한다.

 

그러한 도구들이 이윤율 하락 경향을 특정 시기 동안 성공적으로 무효화시켰을 수는 있지만장기적으로 그들은 오직 문제를 악화시킬 뿐인데왜냐하면 자본의 축적은 가속하고유기적 구성은 더욱 증가하는 가운데더욱 노골적으로 장기적 이윤율 하락 경향이 그대로 두기 때문이다역사적으로 이윤율의 점진적인 하락은 위에서 개괄한 것처럼 경제적 위기에 의해 해소해 왔고이전보다 집중화되고 중앙집중화된 자본과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축적의 순환이 그 뒤를 따랐다모든 위기에서 순환의 처음에 설립된 이윤율은 그 이전 순환의 시작에서보다 더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고이윤율 하락의 역(경향은 더욱더 짧은 기간 이후 부적절한 것이 되고위기들은 그 자체로 더 자주그럴 때마다 더 심한 강도로 발생한다더욱이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역 경향들이 효과적일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보기를 들어 착취의 심화는 노동자들이 살아야만 하고 영원히 최저 생계 수준 이하의 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계급투쟁이 위기의 심화와 함께 격화되면서 강화된 계급 자체의 전투성에 의해서도 제한된다따라서

 

역 경향의 힘이 정지함에 따라자본주의적 붕괴 경향은 통제 속에 있다이제 우리는 영원한 위기또는 자본주의의 죽음의 위기를 갖는다그러니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남아 있는 수단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영구적이고 절대적인그리고 보편적인 빈곤화밖에 없다. (21)”

 

우리는 축적이 특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다시 말해 자본이 세계적 규모에서 지배적인 생산양식인 곳에서가치법칙이 그 자체로 세계적인 법칙으로 확립될 때, “역 경향의 힘이 정지했다라는 것을 볼 것이다.

 

-ER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ㅣ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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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침내 우리가 이제 공개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은 ‘Ant Pace’ 덕분이다그는 CWO의 오랜 지지자이며오래 전 스스로 원본 글 전체를 다시 입력하고 표를 재생산하는 책임을 맡았는데그 첫 번째 부분이 여기에 실리게 되었다.

 

(2) 우리는 스탈린주의자 비밀 당원인 쌍둥이 로버츠(Roberts)와 카체디(Carchedi) 또한 사회주의가 단지 국가 통제 아래의 자본주의라 생각한 것 같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3) 맑스독일 이데올로기, p.17 (Lawrence and Wishart)

 

(4) 맑스자본」 Vol. II, p.37 (Lawrence and Wishart)

 

(5) 맑스, Preface to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in Early Writings, p.426 (Pelican, 1975)

 

(6) 맑스그룬트리세, p.226 (Pelican). 귀중한 금속은 화폐를 위한 가장 적절한내구성이 있고 편리한 크기에균일한 물리적 질상대적으로 희귀한 물질을 제공했다다시 말해그들은 공유 재산이 아니고따라서 교환가치로 생산되는 객체인 것이다따라서 화폐는 그 자체로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이면서모든 다른 상품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7) 맑스자본」 Vol. 1, p.147

 

(8) 부하린Imperialism and the Accumulation of Capital, 159페이지 (Merlin Press, 1972). 확대 재생산에 대한 전체 설명을 위해서는 이 작품과 부록을 보라.

 

(9) 매틱맑스와 케인즈, 76쪽 (Merlin Press, 1969)

 

(10) 맑스자본」 Vol. III, p.157

 

(11) 매틱, op.cit. p.46

 

(12) 맑스, op.cit. p.158

 

(13) Engels to Schmidt in Marx/Engels Correspondence, p.553 (Progress Publishers, 1975)

 

(14) 맑스그룬트리세, op.cit., pp.748-9

 

(15) 매틱, ‘The Permanent Crisis’, in International Council Correspondence, November 1934

 

(16) op.cit. p.5

 

(17) op.cit. p.7

 

(18) 어떻게 이 지점에 도달하는지에 더 자세한 묘사가 필요하다면 아래 부록2에 재출간된 그로스만의 자본 축적 모델을 보라.

 

(19) op.cit., p.9

 

(20) 맑스는 이윤율의 하락 경행을 분석할 목적으로 잉여 가치율을 고정으로 가정했지만그가 다른 역-경향들과 달리 잉여 가치율의 증가가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반대로맑스는 자본론」 3권에서(예시로 209법칙 그 자체 챕터를 보라이윤율이 잉여 가치율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떨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21) op.cit. p.14

 

2022년 8월 31

혁명적 전망」 20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8-31/capitalism-s-economic-foundations-p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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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군국주의와 해체

군국주의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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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는 1990년 5월 소련이 붕괴하기 전 동구권이 붕괴한 지 몇 달 만에 '해체에 관한 테제'(국제평론」 62, 107)를 채택했다. 1990년 8월 초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도록 이끈 사담 후세인에 대해 미국이 설정한 함정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집중한 것은 동구권이 사라진 첫 번째 결과였다대서양 동맹의 대열을 좁히려는 미국의 시도는 동구의 적이 실종됨으로 인해 붕괴의 위협에 놓였다. 1990년 10월 ICC가 해체 테제를 보완한 '군국주의와 해체소개 전문(국제평론」 64)을 논의해 채택한 것은 미국 주도의 주요 서방 국가들의 대()이라크 군사 공세를 준비했던 이들 사건 이후였다.

 

ICC는 2017년 제22차 국제대회에서 27년 전 채택한 본문을 기본적으로 확인한 해체 테제 '오늘의 해체 보고서국제평론」 164호를 업데이트해서 채택했다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국주의 문제에 대한 보완적인 글을 우리에게 요구하는데, 1990년 10월의 상황과 비슷하다쇠퇴기 전쟁 문제에 대해 ICC가 수십 년 동안 스스로 부여한 분석의 틀을 잊어버린 결과 이 전쟁의 발발을 예견하지 못한 실수를 생각하면 그러한 조치는 더욱더 필요한 부분이다.

 

1) 1990년 "군국주의와 해체"라는 글의 1번 항목은 우리에게 맑스주의 방법의 살아있는 성격과 과거에 우리가 할 수 있었던 분석을 비판확인하거나또는 그것을 더 많이 만들도록 수정함으로써 끊임없이 우리에게 제시되는 새로운 현실과 맞설 필요성을 상기시킨다세밀한 본문에서는 이 항목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반면우크라이나의 현재 전쟁에 대한 일부 부르주아 "전문가들"이 만든 잘못된 해석에 직면했을 때프롤레타리아 정치 환경 대부분의 집단에 의해전쟁과 더 일반적으로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맑스주의 방법의 근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용하다.

 

그 밑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있다: "인간은 존재의 사회적 생산에서 필연적으로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한즉 물질적 생산력 발전의 결정 단계에 상응하는 생산 관계에 들어간다이러한 생산 관계의 총체성은 사회의 경제 구조를 구성하는데이는 법적정치적 상부 구조를 형성하며 일정한 형태의 사회적 의식이 존재하는 진정한 기반이다물질적 경제적 기반이 사회생활의 다른 측면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은 종종 기계적이고 환원주의적인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엥겔스가 1890년 9월 조지프 블로흐(Joseph Bloch)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고 많은 다른 문헌에서)  "유물론적 역사 개념에 따르면궁극적으로 역사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실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이다맑스와 나는 둘 다 이것보다 더 강력하게 주장해 본 적이 없다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경제적 요인이 유일한 결정적 요소라고 말하도록 왜곡한다면그는 그 명제를 무의미하고 추상적인터무니없는 말로 변형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경제적 상황은 기본이지만계급투쟁의 정치적 형태와 그 결과들보기를 들어 성공적인 전투 후 승리한 계급에 의해 확립된 헌법법적 형태그리고 특히 이 모든 실제적 투쟁의 반영들즉 참여자들폴리의 두뇌즉 상부구조의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또한 많은 경우에 역사적 투쟁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고 특히 그들의 형태를 결정하는 이 모든 요소의 상호작용이 있는데이 요소들은 수많은 사고 속에서 (경제 운동이 마침내 자체적으로 주장하게 된다."

 

분명히우리는 부르주아지의 "전문가"들에게 맑스주의 방법을 채택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한편노동자 운동특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본 원칙과 관련하여 맑스주의자이며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많은 조직이 전쟁의 원인에 대한 엥겔스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비판한 것을 주목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따라서 1990-91년 걸프전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었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뻔뻔하게 정의하여 걸프만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받아 왔다이란에 대항하여 이라크를 지원하게 했던 것과 같은 이익 때문에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원하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대()이라크 석유 군주"(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 Le Proletaire의 전단)를 작성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실걸프만의 위기는 석유에 대한 통제의 위기이다값싼 휘발유가 없으면 수익이 낮아질 것이다서구 자본의 이익은 위협받고 있다그리고 미국이 중동에서 유혈사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며.(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의 영국 지부이탈리아의 ICT 지부인 코뮤니스트 투사의 분석에 따르면, "석유는 거의 모든 생산 주기에 직간접적으로 존재하며독점적인 임대료 형성 과정에서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며결과적으로 가격 통제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경제가 침체의 징후를 분명히 보이고엄청난 규모의 공공 부채유럽과 일본의 경쟁에 직면한 낮은 생산성에 빠진 생산적 기구와 함께미국은 세계 경제의 이러한 근본적인 변수인 석유 가격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중동에서 이후 30년 동안 일어난 일은 그런 분석과 모순된다이 지역(2003년 부시 주니어 행정부에 의해 시작된 전쟁과 같은)에서 미국의 다양한 모험은 미국 부르주아계급의 경제적 비용이 유가의 통제(만약 정말로 이 전쟁들로 인해 어떤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와 관련된 그 어떤 것보다 더 높았다.

 

오늘날우크라이나 전쟁은 직접적인 경제적 목표가 없다. 2022년 2월 24일 적대감을 촉발한 러시아도, 1989년 제국의 붕괴 이후 러시아가 약해진 틈을 타 20년 이상 나토의 국경까지 확장하기 위해 나토의 확장을 추진해 온 미국도 마찬가지이다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한다면러시아는 현재 파괴하고 있는 지역을 재건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될 것이다게다가머지않아서방에 의해 시행된 경제 제재는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를 더욱 약화할 것이다서방측에서는 이미 수백억 달러가 투입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는 말할 것도 없고이와 같은 행동도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사실 현재의 전쟁은 ICC가 분석한 자본주의 쇠퇴기와 특히 쇠퇴의 정점을 구성하는 해체 국면의 전쟁 문제를 더욱 잘 보여주는 사례다.

 

2) 20세기 초부터 노동운동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역사적 쇠퇴기에 진입한 가장 중요한 징후로 부각했다이러한 역사적 시대의 변화는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GCF)는 이러한 변화의 구체적인 특징에 대해 밝혔다.

 

"증강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전쟁은 (국가식민지제국 정복에 관계없이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성숙하고강화되고확장되는 상향적인 움직임을 상징했다자본주의 생산은 전쟁을 정치 경제의 다른 수단으로 계속 사용했다각각의 전쟁은 더 큰 확장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열어 자본주의 발전을 보장함으로써 정당화되고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에 전쟁은평화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쇠퇴를 표현하고 이를 매우 가속한다.

 

전쟁을 생산과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의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과정으로 나타날 평화와는 반대로 사회의 발전에 대한 훼방꾼이자 족쇄인 부정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이것은 객관적이고 경제적으로 결정된 과정에 도덕적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전쟁은 자본이 발전을 위해 외부 영역을 개방하는 필수적인 수단이었는데그 당시에는 그러한 영역이 존재하고 폭력을 통해서만 개방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마찬가지로역사적으로 발전의 모든 가능성을 다 소진한 자본주의 세계는 근대 제국주의 전쟁에서 생산력을 심연 속에 집어삼킬 수밖에 없는 붕괴의 표현을 발견하고생산의 외적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끊임없이 가속하는 리듬으로 파멸에 파멸을 축적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전쟁과 평화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이 존재하지 않지만자본주의 사회의 상승기와 쇠퇴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며따라서 각각의 단계에서 전쟁의 기능(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관계)에 차이가 있다. 1단계에서는 전쟁이 시장의 확장을 보장하는 기능을 하지만, 2단계에서는 생산은 본질적으로 파괴 수단즉 전쟁의 생산에 맞춰진다상승기에 전쟁이 경제 발전의 과정에 기여했지만자본주의 사회의 쇠퇴기에는 쇠퇴기의 경제 활동이 본질적으로 전쟁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전쟁은 항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전쟁은 영원한 삶의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 대회, 1945년 7월 국제정세 보고서, ICC 3차 총회에서 국제평론 제18호에 발표되었다).

 

1945년에 공식화된이러한 분석은 새로운 세계 전쟁이 없는 동안에도 근본적으로 유효했다그 이후로 세계는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만큼 많은 죽음을 초래한 100개 이상의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이 상황은 동구권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 이후에도 계속되고 심지어 심화하여 왔는데이것은 자본주의가 붕괴의 단계로 진입하는 첫 번째 큰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우리는 1990년에 "사회의 일반적인 해체는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라는 문서에서 이것에 대해서 발표했다이러한 의미에서이 단계는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적 위기국가 자본주의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현상 등 쇠퇴기의 구체적인 특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더욱이해체는 자본주의가 쇠퇴기로 급락하는 모순의 정점으로 나타나는 한이 시기의 구체적인 특징들은 그것의 궁극적인 단계에서 여전히 더 악화한다. (...) 스탈린주의의 종식이 국가 자본에 대한 역사적 경향의 종식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징후에 불과하였다따라서 현재 제국주의 블록의 소멸은 제국주의의 사회생활에 대한 지배력의 문제에 대한 사소한 소명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근본적인 차이는 스탈린주의의 종말은 특히 비정상적인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에 해당하지만블록의 종말은 여전히 더 야만적이고비정상적이며혼란스러운 형태의 제국주의로 가는 문을 열 뿐이라는 사실에 있다. 1990-91년 걸프 전쟁,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특히 아프리카에서 20년 이상 지속된 많은 전쟁이 이러한 예측을 더욱더 잘 확인시켜 주었다.

 

오늘날 유럽의 심장부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현실과 훨씬 더 큰 규모의 새로운 보기이다그것은 체제의 세계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전쟁의 완전한 비합리성에 대한 ICC의 논제를 웅변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국제평론」 168, 2022년 5월에 채택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과 중요성본문 참조)

 

3) 사실 1945년 GCF(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의 본문에 발표된 바와 같이 19세기 전쟁과 20세기의 전쟁을 구분하는 것이 완전히 타당하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는 고조기에는 전쟁이 경제 발전의 과정에 기여했던 반면쇠퇴기에는 경제 활동이 본질적으로 전쟁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의해 현저하게 표현되지만, 19세기의 각 전쟁에 직접적인 경제적 원인을 돌릴 수는 없다보기를 들어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 부르주아지에 재앙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였고이로 따라 결국 영국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히 약화하였으며, 19세기 중반에 프랑스 부르주아지가 지배적 지위로 향하게 하는 후자의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후자의 경우맑스 ("프랑스-독일 전쟁에 관한 총회 제1차 연설"에서프랑스와 독일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역동적인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독일 측에서는 프로이센 국왕이 당시까지만 해도 관세동맹(Zollverein)만 관리하던 소규모 게르만족 국가들을 왕국에 다시 편입시켜 제국을 세우려 했다알자스-로렌(Alsace-Lorraine)의 합병은 이러한 결혼의 선물이었다나폴레옹 3세에게 전쟁은 근본적으로 프랑스의 산업 발전으로 위협받는 제2제국의 정치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프로이센 측에서는군주의 야망을 넘어이 전쟁은 독일의 완전한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정치적 통합을 가능하게 하지만프랑스 입장에서 이 전쟁은 완전히 반동적이었다사실 이 전쟁의 보기는 엥겔스가 역사적 유물론에서 완벽하게 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사회의 상부구조특히 정치와 이데올로기(정부의 형태와 국민감정의 구성)가 사건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동시에사회의 경제적 기반은 독일의 산업 발전의 실현과 전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결정 요인으로 본다.

 

사실각 전쟁의 경제적 원인을 찾아 "유물론자"가 되려고 하는 분석은 맑스주의 유물론도 변증법적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그리고 이러한 "망각"은 현시대 제국주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되는데이는 사회생활에서 군국주의를 매우 강화하는 것에 의해서 명확하게 정의된다.

 

4) 1990년의 "군국주의와 해체"라는 글은 개방적인 시기의 제국주의 분쟁에서 미국 권력이 취할 위치에 대해서 중요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진입한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그리고 걸프전 사건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세계는 "각자도생"의 경향이 완전히 운영되는국가사이의 동맹이 제국주의 블록을 특징짓던 안정과는 거리가 멀지만당장의 필요에 따라 지배되는 광범위한 자유주의로 나타날 것이다유혈 혼란의 세계에서미국 경찰이 점점 더 거대하고 잔인한 군사력의 사용으로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미국은 냉전 시대의 경쟁자가 몰락한 후에도 특히 1990년대 말옛 유고슬라비아와 21세기 초의 중동(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세계 경찰'의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했다유럽에서는 바르샤바 조약에 가입했던 나토심지어 소련에 가입했던 나라들(불가리아에스토니아헝가리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체코루마니아슬로바키아)에 새로운 국가들을 통합함으로써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서구와 동구권이 세계를 공유하면서, 1990년에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그와 같은 세계의 새로운 분할이 수립되었다는 것이다지금까지쇠퇴기 동안다양한 제국주의 적대감이 분산되고세계(또는적어도 그 결정적인 영역)이 두 블록으로 나뉘지 않는 그런 상황은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2차 세계 대전에서 나타난 두 개의 주요 제국주의 별자리의 소멸은 두 개의 새로운 블록("동구권 붕괴 후불안정성과 혼란", 국제평론」 61)을 재편성하는 경향을 보여준다동시에그 글에서 그러한 과정의 모든 걸림돌과 특히 자본주의의 붕괴로 인한 걸림돌을 지적했다." 우리가 이미 강조했듯이 자본주의 사회 해체의 깊고 일반화된 현상에 의해 두 군사 집단 사이의 새로운 지구를 공유하는 경향은 반대에 직면하게 되고심지어 최종적으로 타협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 국제평론」 57).

 

이 분석은 "군국주의와 해체"라는 소개 글에서 발전되었고, 30년 후세계가 두 개의 군사 블록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 이를 확인해 준다국제평론」 168(인용)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과 중요성"이라는 글은 1990년 기사에 기초하여 발전되었는데이는 그들 사이에 지구를 공유하는 두 제국주의 블록의 재건이 여전히 의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군국주의에 관해서 우리가 1990년에 쓴 글을 상기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쇠퇴기의 시작 그리고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의 첫해까지만 해도비록 블록 리더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필요했지만제국주의 연합의 다른 파트너들 사이에 일정한 '동등함'이 존재할 수 있었다보기를 들어1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프랑스미국이라는 세 '승전국'이 운영할 수 있는 군사력 수준에서의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이 상황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상당히 바뀌었는데당시 '승전국'들은 이미 동맹국들보다 훨씬 더 강력했던 미국에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었다그것은 미국과 소련 모두 각 블록 지도자가 특히 핵무기 보유 덕분에 블록의 다른 국가들에 대해 절대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 "냉전"(방금 끝난기간 동안 강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가 더욱더 쇠퇴기에 빠져들게 됨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블록 사이 갈등 규모와 그에 관계되는 것은 점점 더 세계적이고 일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깡패들이 더 많을수록더 강력한 '깡패'가 되어야 한다.)

 

무기 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환상적인 수준의 투자를 요구한다(특히주요 강대국만이 완전한 핵무기의 개발과 더 정교한 무기의 연구에 필요한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모든 국가 사이의 원심력이 강화되는 경향은 국가의 적대감이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자본주의의 마지막 요소도 그와 같다부르주아지의 다른 분파들이 더 많이 서로를 분열시키는 경향이 있을수록위기는 그들의 상호 경쟁을 날카롭게 하므로따라서 그 분파들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서 국가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같은 방식으로공개적인 역사적 위기가 세계 경제를 더 많이 파괴할수록더 강자들은 다른 나라 구성 요소들이 이탈하는 경향을 억제하고 통제하기 위해 블록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그리고 쇠퇴의 마지막 단계인 해체의 단계에서이러한 현상은 심각하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모든 이유특히 마지막 이유로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의 재건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다시는 일어나지 않고혁명이나인류의 파괴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

 

오늘날 이 분석은 전적으로 타당하지만우리는 1990년 글에서는 중국이 언젠가 새로운 블록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오늘날 중국이 미국의 주요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이런 누락의 배경에는 중국이 주도적인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점즉 제국주의 블록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여건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중요한 오류이다게다가중국 부르주아지는 군사력을 지원할 수 있는 경제적기술적 힘을 스스로 보유하고 있어야 미국 부르주아지와 군사적으로 경쟁할 수 있고그렇지 않으면 1980년대 말 소련과 같은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다른 이유 중에서도 중국이 (특히 대만과의 관계에서점점 더 커지는 군사적 야망을 확고히 하고 있지만아직 혹은 앞으로 오랫동안 중국 주변에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을 형성하려는 어떤 허세도 부릴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5) 우크라이나 전쟁은특히 핵무기에 대한 푸틴의 태도에서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켰다세계대전은 제국주의 블록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사실 세계 전쟁은 제국주의 블록 구조의 궁극적인 단계이다더 정확히 말하면제한된 국가들과 관련된 전쟁이 동맹의 유희를 통해 전면적인 큰불로 변질하는 것은 구축된 제국주의 블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유럽 열강 간의 제국주의 경쟁의 첨예화에서 비롯된 깊은 역사적 원인인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다양한 동맹국들이 점차 분쟁에 개입하는 일련의 상황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왕위 계승자 암살 사건을 이용하여 세르비아 왕국을 굴복시키고자 하였다세르비아는 영국프랑스와 함께 "트리플 협정"을 맺었던 러시아 동맹국의 지지를 즉시 받았다. 1914년 8월 초이 모든 국가는 서로 전쟁을 벌였고, 1915년 일본과 이탈리아, 1917년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이 그 뒤를 따랐다마찬가지로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했을 때, 1920년 폴란드영국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조약의 존재는 비록 그들의 부르주아지가 그러한 충돌에 대한 특별한 욕구가 없었음에도 이 두 나라를 독일에 선전포고하게 했다유럽 3대 강대국 간의 분쟁은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오늘날 NATO 헌장 5조는 회원국 중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은 모든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이것이 1989년 이전에 바르샤바 조약에 가입했던 국가들심지어 발트 3국과 같은 소련이 NATO에 적극적으로 가입한 이유이다이제 핀란드와 스웨덴도 수십 년간 '중립'을 유지한 후에 동참하고 있다규정이 그렇게 적시되어 있는 상항에서우크라이나 국가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푸틴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가 두 블록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것은 제3차 세계대전이 현재 의제가 아니며다시는 그 전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세계정세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1990년 1월에 우리가 작성한 바와 같이: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분석에서프롤레타리아 해법인코뮤니스트혁명이홀로 인류 파괴(부르주아지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반대할 수 있지만이러한 파괴가 반드시 제3차 세계대전의 결과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강조해야 하는 이유이다그것은 또한 해체 과정의 논리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맑스주의에 의해 부각된 '사회주의 또는 야만'의 역사적 대안은 '사회주의 또는 제국주의 세계대전그리고 최근 수십 년 동안 핵무기의 개발 때문에 더욱 무서운 '사회주의냐 인류의 파괴'의 형태를 가져왔다이러한 관점은 동구권의 붕괴 이후에도 절대적으로 유효하다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파괴가 제국주의 세계대전이나 사회 해체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ICC가 이 문서를 채택한 이후 30년 동안 사건들은 제3차 세계대전이 아닌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종말론의 네 기수가 "생태적 재난전염병기근과 국지적 전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6) "문서 소개군국주의와 해체"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부문으로 결론을 맺었다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그들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기보다는 이 부분의 발췌문을 인용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결과적으로그것은 노동계급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본적인 부분이다분명히이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그것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슈투트가르트(1907)과 바젤(1912)의 국제회의가 강조했듯이]의 중심이었다첫 번째 제국주의 살육 사건(레닌룩셈부르크리프크네히트의 전투독일과 러시아의 혁명)에서 더욱 결정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 중요성은 전쟁 기간특히 스페인 내전 동안 변하지 않았으며물론 1939-45년 사이의 세기 중 가장 큰 대참사 동안에 그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 사실, 20세기의 시작 이래로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 및 그 혁명적 소수가 보기를 들어 노동조합이나 의회 문제보다 훨씬 더 많이 맞서야 했다전쟁이 죽음의 고통과 그 결과 인류의 생존에 드리워진 위협을 표현하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야만이 가장 집중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그렇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야만성이 과거 수십 년보다 훨씬 더 많이, (부시와 미테랑이 '새로운 평화 질서'의 예언을 좋아하든 말든세계정세의 영구적이고 만연한 요소가 되어점점 더 많은 선진국(이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서만 제한됨)이 관여하게 됨에 따라 전쟁 문제는 여전히 노동계급에 더 중요하다. ICC는 과거와 달리 새로운 혁명적 물결의 발전은 전쟁이 아니라 경제 위기의 악화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대규모 계급투쟁의 출발점인 노동계급 동원은 경제적 공격에서 비롯된다는 이 분석은 전적으로 타당하다같은 방식으로의식 수준에서 위기의 악화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막다른 골목을 드러내는 근본적 요인이 될 것이다그러나 이와 같은 의식 수준에서 전쟁의 문제는 다시 한번 첫 번째 질서의 한 부분을 담당할 운명이다.

 

인류의 파괴라는 역사적 막다른 골목의 근본적인 결과를 강조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가 오늘날 (다른 해체의 징후와 달리제한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위기쇠퇴와 해체중앙 국가에서 그것은 현재 국가주의 깃발 아래 등록되지 않는 범위에 이르기까지 구성함으로써(13)

 

그것은 전쟁이 위기 그 자체와 경제 공격보다 훨씬 더 쉽게 노동계급을 상대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평화주의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무력감을 줄 수 있고부르주아지가 그러한 경제적 공격을 계속해서 수행하게 할 수 있다." (14)

 

오늘날우크라이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무력감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키는데이는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서방국가에서는 주류언론들이 쏟아내는 선전방송에 힘입어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어떤 강화를 증진하고 있는데한 편으로는 '독재자'(푸틴)인 ''과 다른 한 편으로는 '민주주의자'(젤렌스키와 그의 서방 지지자들)의 대립을 보고 있다그러한 선전은 2003년 "위대한 미국 민주주의"의 주인인 부시 주니어가 이라크와의 전쟁 ("큰 거짓말사용유엔 "국제법위반, "금지된무기 사용민간인에 대한 폭격, "전쟁 범죄)에서 푸틴과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분명히 효과가 더 적었다.

 

그렇긴 하지만, ICC는 중앙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트특히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그리고 주변 국가들과 이전의 사회주의 블록의 국가들 사이의 차이를 내세우는 "가장 약한 고리"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기사 "계급투쟁의 일반화의 중심에 있는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 국제평론」 31호와 토론 : “'가장 약한 고리이론에 대한 비판국제평론」 37호 참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커다란 정치적 약점을 부각한다현재의 전쟁은 중앙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에도 부정적인 정치적 영향을 미치겠지만그것은 고통받는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이 그것을 확실히 마비시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특히중국은 이미 급격한 인플레이션 상승(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시작되었지만후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에 따른 경제적 공격을 통해 이 전쟁의 결과를 느끼고 있다그것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공격에 대한 계급투쟁의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역사적 상황에서우리의 계급 내 개입은 물론 심각한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전체 계급에 대한 공격과는 별개로 다음과 같이 결정된다.

근본적인 전쟁 문제의 중요성

오늘날 위태로운 무게에 대해서 계급 내 혁명가들이 의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

그러므로 이 문제가 우리 언론의 전면에 계속 등장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시기이 문제가 국제적 사건의 전면에 있는 시기에는우리는 노동자들의 그것에 대한 특별한 감성으로부터 특별한 강조와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이익을 얻어야 한다. (문서 소개군국주의와 해체, 15)

 

7) 30여 년 전에 제시된 이러한 방향은 오늘날도 완전히 유효하다그러나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한 우리의 선전에서는 혁명적 투쟁의 일반화를 위한 조건에 대한 우리의 분석특히 1981년 국제평론」 26호에 실린 우리의 글 "노동계급 투쟁의 일반화를 위한 역사적 조건"에서 발전된 분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수십 년 동안 혁명가들은 파리 코뮌(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1905년 러시아혁명(러시아-일본 전쟁 중), 1917년과 1918년 독일에서의 제국주의 전쟁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었다고 여겼다또는 심지어 이것은 오직 세계대전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이는 코뮤니스트좌파 단체들 사이에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분석인데이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역사적 경로에 대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오직 ICC만이 이러한 분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맑스와 엥겔스가 생전에 발전시킨 고전적 분석으로 돌아갔는데이 분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은 자본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경제적 붕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전쟁에 아주 많은 반응을 보이게 되면그 나라의 부르주아지는 적대적인 행동을 끝내고 전쟁에서 퇴장함으로써 그러한 반응을 약화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1918년 11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을 의식한 부르주아지는 발트해에서 수병들의 봉기가 일어난 지 며칠 만에 협정국과 휴전협정을 체결하는 데 급급했던 것은 바로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다대조적으로어떤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트의 대규모의 전면적인 투쟁의 원인이 될 경제적 경련을 극복하고 끝낼 수 없을 것이다.

 

b) "전쟁은 승자뿐만이 아니라 패자도 발생시킨다패배한 국가들에서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혁명적인 분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서 생겨나는 복수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이러한 후진적 경향은 혁명가들의 진영에까지 파고들었고이는 민족적 코뮤니즘을 주창했던 KAPD(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의 경향과 KPD(독일 코뮤니스트당선전의 축이 될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볼 수 있다더 나쁜 것은 승전국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였다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이미 나타났듯이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는 순수하고 단순한 애국주의 정신이 아니라면 나태한 정신이었다.” (국제 평론」 26)

 

c) 부르주아지는 제1차 세계대전과 그것이 일으킨 혁명적 물결로부터 교훈을 얻었다한편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에 중앙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심각한 정치적 패배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독일 측에서는 나치 테러를연합군 측에서는 반()파시스트 동원을 하여 이를 달성하였다반면에 지배계급은 특히 패전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부상하는 것을 막거나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하였다.  "가장 위태로웠던 이탈리아에서 부르주아지(...)는 즉시 정권을 바꾸고 그런 후에 동맹을 맺었다. 43년 가을에 이탈리아는 둘로 나뉘었다남쪽은 연합군의 손에 있었고나머지는 나치에 의해 점령되었다처칠의 조언(이탈리아는 스스로 국을 끓이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에 따라 연합군은 북쪽으로 진군하는 것을 늦추었고두 가지를 성취했다한편으로는 그들은 독일군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게 하였으며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파시스트세력에게 반()자본주의 투쟁의 지형에서 반()파시스트 투쟁의 지형으로 운동을 전환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 독일에서… 국제 부르주아지는 1918-19년과 유사한 사건의 반복을 피하고자 체계적으로 행동했다전쟁이 끝나기 직전연합군은 함부르크나 드레스덴과 같은 대도시에서 전례 없는 폭격을 통해 숙소의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몰살했다. 1945년 2월 13히로시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두 배인 135,000(히로시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두 배)이 폭격으로 사망했다군사적 목표로서 그들은 쓸모가 없었다게다가 독일군은 이미 철저하게 패했다그들의 목표는 노동계급을 공포에 떨게 하고 어떤 식으로든 조직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둘째연합군은 독일 영토 전체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전 가능성을 일축했다그들은 패배한 독일 부르주아지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영토를 직접 관리하려고 안달했다마지막으로 후자가 항복하고 그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연합군이 민간인들을 만났을 때 초래될 수 있는 폭발적 혼잡을 피하고자 수개월 동안 전쟁 포로를 붙잡았다. 1944년 후반 폴란드에서는 붉은 군대도 바르샤바에서 봉기한 노동자들을 학살하는 더러운 일을 나치 군대에 맡겼다. 1945년 초 부다페스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43 :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으로 야기되는 희생에 반대한다.” 국제평론」 75)

 

d) 1차 세계대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출현은 이 전쟁의 특징에 의해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었다2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의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이 전쟁은 특히 탱크와 항공기와 같은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수단들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양측의 전투원들 간의 직접적인 교전의 가능성은 크게 제한된다그리고 마지막으로3차 세계대전은 어느 단계에서 핵무기에 관한 요구를 하게 될 것이며이것은 분명히 그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8) 과거에 우리는 "혁명적 패전주의"의 구호를 비판해왔다이 구호는 특히 레닌이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제기하였고근본적으로 국제주의적인 우려에 기초하고 있었다이는 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들이 사회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기 전에 그들의 나라가 승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회-애국주의자들이 퍼뜨린 거짓말에 대한 비난이었다이러한 거짓말들에 직면하여국제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유리한 것은 한나라의 승리가 아니라 반대로 그 나라의 패배라고 지적했다. (프로이센에 패한 후 파리 코뮌이 이어진 것과 러시아의 대일 전쟁 실패에 따른 1905년 혁명의 보기에서 알 수 있듯이그 후, "혁명적 패전주의"의 구호는 진정한 국제주의에 등을 돌린 자국의 부르주아 계급이 패배하는 것을 보기 위한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바람으로 해석되었다실제로 레닌은 1907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마르토프와 함께 제정된 개정안을 구체화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구호를 먼저 내세웠다그런데도 전쟁이 발발할 경우 [사회주의 정당들은전쟁을 조속히 끝내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가장 깊은 민중의 심연을 자극하여 자본주의 지배의 붕괴를 촉진할 의무가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의 전환"하라는 구호를 구체화한 것으로프롤레타리아는 다른 나라에서 계급의 형제들을 학살하기 위해 그들의 착취자들을 향해서 무기를 들었다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군인들이 여전히 그들의 장교들에게 총구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베트남 전쟁 동안미군이 상관에게 "우연히총을 쏘거나 폭탄을 장교들의 천막에 투척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어떤 식으로든 혁명적 공세의 기초를 구성할 수 없었다이 때문에 우리의 선전에서는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구호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는 구호를 함께 외쳐야 한다.

 

더 일반적으로무엇이 유효한지(국제주의 원칙의 방어)와 더는 유효하지 않은지(전술적 구호)를 강조함으로써 과거 전쟁에 직면했을 때 혁명가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은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의 책임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는 슬로건이 앞으로는 현실적 관점을 구성할 수 없다면다른 한편으로 1907년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채택된 수정안특히 사상의 타당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혁명가들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온 힘을 다해 사용하여 가장 깊은 대중 계층을 선동하고 자본주의 지배의 몰락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이 구호는 현재 프롤레타리아트의 취약한 상황을 고려할 때 분명히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그것은 계급에 대한 코뮤니스트 개입의 신호탄으로 남아 있다.

 

2022년 5

국제평론」 168, 2022년 여름호

국제코뮤니스트 흐름(ICC)

옮긴이 ㅣ 이명수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37/militarism-and-decomposition-may-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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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2023년 전망

2023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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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전망이 암울하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의미가 없다인플레이션이 다시 자본주의를 괴롭히고 있고전 세계의 임금 노동자들은 완전한 궁핍은 아니더라도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에 직면해 있다일반적으로 자본에 대한 경제적 선택지가 좁아짐에 따라 정치인들의 책략 여지도 점점 제한되고 있다지난여름 영국 총리의 빠른 교체는 '안정적인 정부'에 대한 영국의 명성에 종지부를 찍었다헛소리 요소 외에도 무능 요소가 우스꽝스러운 결과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우리의 기사(1)에서 지적했듯이트러스(Truss)와 콰르텡(Kwarteng)의 속임수로 인해 노동계급의 심각한 생활비 위기가 더욱 악화하였다그러나 물론 더 넓은 맥락은 수십 년 동안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괴롭혀 왔고지옥 같은 전쟁 파괴를 통한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낮은 이윤율의 더 깊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이다우리가 현재 경제적 존재 이유를 정의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원본 문서를 업데이트하고 재발행하는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다이것은 현시대에 대해 맑스가 분석한 이윤율 하락의 결과에 대한 정당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익성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작년은 2007~8년의 폭락 이후 금융 투기꾼들에게 최악의 해였다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주식 및 채권 시장은 2022년에 30조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가들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인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거나 근접했다이윤율은 금융 전문가들이 거의 논의하지 않지만특히 미국에서 '낮은 이윤율'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이 비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예상대로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의 모든 소동이 끝난 후작년 이집트에서의 후속 조치의 대표들은 전년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당황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우리는 이 목표가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체가 점점 더 위협받는다고 확신한다그렇다고 우리를 오해하지 말자우리는 '기후 부정론자'가 아니지만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의 문제인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본주의의 능력이나 의도에 대해 회의적이다사실 COP27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진지한 시도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수완가들에게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임이 입증되었다.

 

그런데도, 2022년은 머리기사를 장식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폭풍가뭄으로 인적 비용이 증가한 해로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우크라이나 전쟁은 명목상 NATO 동맹국을 끌어들이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다그것은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대리전쟁 끝에 나온 것이다우크라이나 난민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으로 인한 난민 수를 1억 명이 넘게 늘렸다그것은 이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긴 군사적 충돌이며 전 세계의 판도를 바꾸는 요인이다자본은 수익성 위기를 상쇄할 경제적재정적 회피 수단이 바닥나고 있다과거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 경제 강대국 간의 군사 경쟁이 표면화되었다경박한 언론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큰 전쟁이 돌아왔다"라는 것은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행동 연장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이 전쟁은 앞으로 일어날 더 나쁜 전쟁의 전조이다바이든( Biden)과 블링컨(Blinken) 모두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실제 위협을 연결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군사적으로 어느 세력이 가장 강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작년 러시아의 국방 예산 660억 달러는 중국의 2,930억 달러와 합쳐도 1조 천억 달러가 넘는 나토(NATO) 회원국의 총예산에 비하면 왜소하다그러나 러시아도 중국도 팍스 아메리카나에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특히 '평화(pax)'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작년에 450억 파운드의 군비를 지출하여 미국 다음으로 나토에서 두 번째로 큰 군비 지출국이 된 자금난에 처한 영국조차도 군비 지출의 지속적인 증가가 오늘의 추세다공공 부문 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자금을 지원할 "돈이 없다"라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다.(2)

 

나토의 국방부는 휴면 무기 생산 라인을 하루아침에 가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영구 전쟁은 무기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하며이는 결국 장기 생산 계약을 확보하는 데 달려있는 투자가 필요하다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무기 제조업체에 그러한 장기 계약을 제시하고 무기 생산의 대규모 확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독일은 "군사 현대화"를 위해 천억 유로를 약속했다일본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적어도 2023년에 우리가 전망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며특히 중국의 군사 공격을 배제할 수 없는 대만에서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종 해결책(집단학살)'을 축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역사의 흐름을 바꿀 힘은 단 하나뿐이다그것은 일단 깨어나면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꿀 힘을 가진 잠자는 거인인 노동계급뿐이다이것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위원회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뒷받침하는 틀이다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대응이 아니라 영구적인 초점으로즉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오늘의 투쟁보다 진정한 문제를 우선시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다지금은 초기 단계이지만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이 과정에서노동계급이 자신만의 계급적 기구를 만들 때 미래에 해야 하는 것처럼다른 국제주의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전쟁과 전쟁을 부추기는 쇠퇴하는 체제에 대한 세계 노동계급의 정치적 저항을 구축하는 것이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3년 1월 27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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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적 전망」 21, 3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 "내년에는 국방 지출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되고 거의 500억 파운드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분명히영국 자본의 수호자들은 이제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 (영국 국방성 장관벤 월리스가 의회에 보고파이낸셜 타임스」 2023년 1월 3일 자에서 인용)

 

<출처혁명적 전망」 21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3-01-27/the-outlook-for-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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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150년 후 : 제1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Ⅰ

150년 후 인터내셔널에서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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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국제노동자협회(일명 제인터내셔널)는 1872년 9월에 개최되었다격렬한 회의가 끝난 후바쿠닌은 다수결로 추방되었고그때부터 노동자 운동의 적색과 흑색 경향은 각자의 길로 가게 되었다.

 

또는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한다그 사건으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우리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그리고 오늘날까지 혁명가들을 계속해서 분열시키고 있는 의견 불일치를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바쿠닌과 맑스

 

바쿠닌은 1814년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그는 러시아군에서 잠시 복무했지만, 1836년에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이주했다그는 피히테(Fichte)와 헤겔의 생각에 끌렸고알렉산드르 헤르젠(Alexander Herzen)과 니콜라이 오가레프(Nikolay Ogarev)와 같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1840년 그는 독일 철학의 고향인 베를린으로 이주했다맑스는 1818년에 자유주의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5년 그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본으로 갔다건강이 좋지 않아 병역을 면제받았지만그의 아버지는 1836년에 그를 베를린 대학교로 옮기게 했다맑스 또한헤겔의 사상을 알게 되었고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와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의 영향을 받았다.

 

그 당시 유럽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산업화는 낡은 사회 구조를 뿌리째 뽑았고새로운 운동과 새로운 사상을 낳았다두 젊은이가 철학의 영역에서 점차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간 것은 1825년 러시아의 12월 봉기, 1830년 프랑스와 벨기에혁명, 1831년 폴란드 봉기, 1831년 프랑스의 카누트(실크 노동자봉기영국의 인민헌장 운동 등의 사건이 배경이었다둘 다 베를린의 젊은 헤겔계 사람들 사이에서 첫발을 내디뎠고아르놀트 루게(Arnold Ruge)와 알게 되었으며, 1842년 처음으로 진지한 책을 출판(드레스덴의 바쿠닌쾰른의 맑스)했다그리고 둘 다 1843년 국가 당국에 의해 첫 번째 탄압(바쿠닌이 스위스로맑스가 프랑스로 추방되는)을 받았다두 사람 모두 빌헬름 바이틀링(Wilhelm Weitling)과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고곧 그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1844년 파리에서 바쿠닌과 맑스는 마침내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바쿠닌은 나중에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당시 나는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형이상학적 씨름을 아직 벗지 못했으며사회주의는 본능적이었을 뿐이었다비록 나보다 어렸지만맑스는 이미 무신론자의식 있는 유물론자정통한 사회주의자였다우리는 자주 만났다나는 그의 학문과 열정적인 헌신에 대해서 크게 존경했다…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솔직한 친밀감이 전혀 없었다우리 기질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맑스는 나를 감상적인 이상주의자라고 불렀고그가 옳았다나는 그를 허영심 많고음흉하고교활하다고 불렀고나 또한 옳았다.”

(제임스 기욤이 인용한 바쿠닌의 원고, 1871)

 

맑스는 새로운 동지 엥겔스의 도움을 받아 이상주의 및 종교와 분명한 정치적 결별을 하고 자본주의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반면 바쿠닌의 정치는 범슬라브주의(슬라브 민족이 거대한 민주 연방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이상주의와 종교적 관념에 방해받았다바쿠닌이 슬라브 인들에게 호소했던 것과 같은 해에 맑스와 엥겔스는 코뮤니스트 선언을 발표했다.

 

1848년 혁명의 발발은 두 혁명가를 유럽 전역의 투쟁(파리의 바쿠닌프라하와 드레스덴브뤼셀파리쾰른에서 맑스)의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보았다그들은 모두 폴란드혁명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유럽 운동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랐다엥겔스는 특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슬라브 국가들을 반동(反動)의 산실이라고 맹비난했다그리고 그가 "()역사적 민족"이라고 불렀던체코슬로바키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민족적 열망을 일축했다이 시기에 맑스는 바쿠닌이 러시아 스파이라는 소문을 다른 두 명의 특파원으로부터 받아 그 소식을 노이에 라이니슈 차이퉁(Neue Rheinische Zeitung)에 실었다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맑스는 그에 대해서 해명하고 범슬라브주의에 관한 대중의 의견 차이에도 그 후로 몇 년 동안 바쿠닌을 옹호했다그런데도 바쿠닌에 대한 그러한 근거 없는 비난은 훗날 그의 정적이 악용했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맑스와 바쿠닌은 추방되고 체포당하는 경험을 했다그래서 1849년 바쿠닌이 색슨 당국에 붙잡혔을 때그것은 단지 또 하나의 일시적인 좌절로 보였다대신그는 감옥에서 감옥으로그리고 여러 나라로 이감되어 구타와 고문을 견디며 여러 번 감형된 사형 선고받고마침내 망명 생활을 했다. 1861년에 이르러서야 그는 시베리아에서 탈출하여 서유럽으로 다시 돌아와 정치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한편 1849년 맑스는 런던으로 피신하여 정치경제학 비판에 전념하였다.

 

수년간 투옥 생활은 바쿠닌을 비통하게 만들었고독일에 대한 증오가 다시 불붙으면서 훨씬 더 엄격한 범슬라브주의자가 되었다그는 헤르젠과 오가레프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폴란드와 이탈리아의 민족해방 운동에 투신했다분할된 폴란드에서 1863년 봉기가 일어났을 때바쿠닌은 자원했지만거절당했다그 후 그는 스스로 봉기에 참여하기 위한 자신의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봉기 자체와 마찬가지로 원정은 실패했고폴란드 반란군은 고립되어 분쇄되었다이러한 사건들은 바쿠닌의 범슬라브주의 희망에 타격을 주었고마침내 바쿠닌이 자신의 정치사상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한편 런던에서는 폴란드 봉기와 미국 남북 전쟁이 1864년 제인터내셔널 창립의 원동력이 되었다그것은 당시 이탈리아로 이주를 계획하고 있던 바쿠닌이 부재하게 된 과정이었다그러나 그와 맑스는 런던에서 잠깐 만났다.

 

“[바쿠닌]은 오늘 자신이 사는 이탈리아(플로렌스)로 떠났다나는 어제 16년 만에 처음으로 바쿠닌을 보았다나는 그를 전보다 매우 좋아한다고 말해야 했다폴란드 운동과 관련하여 그는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자체를 조용히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했지만, 18개월간의 투쟁과 같은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폴란드에서 그러한 도발을 했다폴란드는 보나파르트의 영향과 두 번째로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농민사회주의를 선언하는 폴란드 귀족의 망설임이라는 두 가지로 패배했다지금부터 폴란드 사건이 붕괴한 후 [바쿠닌]는 사회주의 운동에만 관여할 것이다전반적으로그는 16년 후에 내가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알게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맑스가 엥겔스에게, 1864년 11월 4)

 

그 후 몇 달 동안두 혁명가는 우호적인 내용으로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그리고 제인터내셔널과 자본의 초안 문서를 교환했다인터내셔널에서 맑스 영향력은 커졌고이탈리아에서 바쿠닌은 혁명적 사회주의집단주의아나키즘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정치적 기권주의()국가주의연방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교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처음에 그는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와 프리메이슨(Freemasons)의 급진적인 추종자들 사이에서 지지자들을 찾았고결국 국제혁명협회라는 비밀 조직을 설립했다그러한 비밀 집단의 '교리'는 바쿠닌이 국제 네트워크에서 혁명가를 다시 조직하려고 시도한 생각을 요약하고 있다. 1867년에 그와 그의 추종자 중 일부는 스위스로 떠났고새로 설립된 평화와 자유 연맹프랑스 제제국과 프러시아 왕국 간의 적대 행위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평화주의 조직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했다인터내셔널은 또한 몇 명의 대표단(그들 중 바쿠닌의 가까운 동지가 된 제임스 기욤)을 파견했는데맑스의 표현대로 단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다른 나라 노동계급의 연합이 궁극적으로 국제 전쟁을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터내셔널]은 그 자체로 평화 회의였다만약 제네바 평화 회의의 발기인들이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를 정말로 이해했다면 그들은 [인터내셔널]에 가입했어야 했다.”

(맑스평화와 자유 연맹에 대한 국제노동자협회의 태도에 대하여, 1867)

 

바쿠닌은 연맹의 중앙위원회에 선출되었지만방향에 영향을 미치려는 그의 시도는 쓸데없는 것이었다연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특성이 처음부터 분명했다그러나 그는 몇 명의 지지자들을 더 얻었고그들은 1868년 베른 회의에 이어 연맹을 떠났다그들은 현재 제인터내셔널의 한 분파라고 선언한 사회주의 민주주의 국제동맹을 설립했다바쿠닌은 맑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친애하는 친구여나는 당신이 경제혁명의 위대한 길을 따라간 것우리를 당신과 함께 하자고 초대하고 부분적으로 국가적이고 때로는 전적으로 정치적 모험의 길에서 우리 에너지를 낭비한 사람들을 비난한 것이 얼마나 옳았는지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한다나는 지금 당신이 지난 20년 동안 해왔던 일을 하고 있다베른 회의에서 부르주아지와 엄숙하고 공개적인 결별 이후 나는 노동자들의 세계 외에 다른 사회와 환경을 모른다내 조국은 이제 인터내셔널이다이는 그 유명한 설립자들의 것이다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친구여내가 당신의 제자라는 것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그리고 나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나의 태도와 개인적인 의견은 여기까지다.”

(바쿠닌이 맑스에게 1868년 12월 22)

 

두 혁명가가 이제 하나의 조직에서 함께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동맹은 연례 회의에서 자체 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 자율성을 보존하려고 했다인터내셔널은 "내부와 외부에서 활동하는 제2의 국제기구의 존재자체를 허용할 수 없었다. (IWMA 총회, 1868년 12월 22맑스와 엥겔스는 또한 동맹의 강령특히 그들의 폐지가 아닌 "계급의 사회적 평준화"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결과적으로 동맹은 스스로 해산하고 회원들을 인터내셔널의 지역 부서에 가입시키라는 요청을 받았다. 1869년 7월 바쿠닌과 그의 지지자들은 마침내 제인터내셔널에 가입했다그러나 나중에 알 수 있겠지만동맹은 인터내셔널 내에서 비공식적인 조직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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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바쿠닌이 처음으로 제인터내셔널에 가입하려 했던 방식은 맑스의 의심을 불러일으켰고바쿠닌과 1869년 스위스에 나타난 러시아의 혁명적 테러 옹호자 세르게이 네차예프(Sergey Nechayev)와의 잘못된 연관성은 그것을 단지 확인해 주는 것만 같았다그러나 이것이 밝혀지기 전에 맑스와 바쿠닌은 농민 사이에서 토지의 사적 소유를 옹호하는 프루동주의자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잠시 힘을 합쳤다.

 

인터내셔널은 항상 당시 노동계급 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정치적 경향의 불안한 동맹이었다그들 중에는 프루동블랑키라쌀레맑스 그리고 이후에 바쿠닌의 추종자들이 있었다처음부터 맑스와 엥겔스는 인터내셔널 내에서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정치적 명확성을 위한 투쟁에 참여했다제네바 회의(1866년 9)에서 독일과 벨기에 대표단 중 소수만이 코뮤니스트 사상을 옹호했다로잔 회의(1867년 9)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커졌다그리고 브뤼셀 회의(1868년 9)에서 그들은 마침내 광산탄광운하철도 등이 공동 소유재산이 되어야 한다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그러나 프랑스의 프루동주의자들은 여전히 토지의 사회화에 저항했다바젤 회의(1869년 9)에서 집단주의적 입장을 옹호한 바쿠닌의 지원으로 마침내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제 파업의 중요성과 노동조합 조직 구성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도 있었다더욱 놀랍게도바쿠닌은 또한 총회의 권한을 확대하여 인터내셔널의 원칙에 반하는 어떠한 조항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을 지지했다맑스주의자들과 바쿠닌주의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가 발생한 부분은 상속권에 대한 문제였다바쿠닌이 보기에 상속권의 폐지는 미래 사회의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전제 조건인 동맹에 대한 그의 강령의 핵심적인 요소였다맑스가 보기에 상속권에 대한 모든 문제는 생산 수단(이미 인터내셔널이 승인한)의 사유 재산 폐지로 해결될 법적 산만함이었다어느 쪽도 확실한 과반수를 얻지 못했고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맑스와 바쿠닌 모두 불화의 씨앗이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바젤 회의의 전반적인 결과에 비교적 만족했다.

 

이 시기는 제인터내셔널의 전성기였다유럽에서는 리본 짜기비단 염색공스위스의 건설 노동조합과 작곡가의 파업벨기에의 웅덩이 노동자와 광부 파업프랑스의 면화 노동자와 광부 파업웨일스의 광부 파업 등 계급투쟁이 진전되고 있었다새로운 지지자들은 그러한 대의에 지지를 얻고 있었다. 1870년 리옹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바쿠닌이 직접 개입한 봉기의 시도가 있었다.

 

1871년 이러한 불만의 물결은 제프랑스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에 오랫동안 예상되었던 전쟁의 여파로 일어난 혁명적 봉기인 파리 코뮌에서 마침내 절정에 이르렀다비록 인터내셔널은 파리에서 영향력이 별로 없었지만맑스의 짧은 코뮌에 대한 보도는 가장 잘 알려진 공공의 방어가 되었다부르주아지의 눈에 파리 코뮌은 제인터내셔널과 동의어가 되었고그 구성원들은 이제 억압을 견뎌냈다맑스와 바쿠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파리 코뮌이 자신들의 강령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았지만그 사이에 두 혁명가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어 이제는 인터내셔널을 분열시키겠다고 위협했다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러한 상황으로 이끌었다.

 

1869년 말바쿠닌이 러시아 스파이라는 소문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이 비난은 지기스문트 보르크하임(Sigismund Borkheim)이 다시 얘기하였고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반복했다바쿠닌에 따르면그의 이름은 바젤 회의」 명예 법원에서 지워졌다그러나 모세 헤스(Moses Hess)는 1869년 10월 바쿠닌이 인터내셔널을 약화하고 총회를 런던에서 제네바로 옮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신상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바쿠닌은 (헤르젠과 오가레프조차도 과도한 것으로 판명된자신을 상대로 음모를 꾸몄다고 알려진 "독일 유대인"에 대한(발표되지 않은()유대주의적인 장광설로 응수했다존경과 전술적 고려에서 바쿠닌은 맑스를 언급하지 않았지만그는 이 모든 공격의 배후에 있다고 잘못 생각했다.

 

다음 논쟁은 제인터내셔널의 제네바 지부인 로만드 연맹(Romande Federation)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그곳에서 폴 로빈(Paul Robin)과 샤를 페론(Charles Perron)과 같은 바쿠닌의 추종자들이 편집한 평등(L'Egalité)은 총회의 업무에 대해 많은 불만을 제기했다. 1870년 3월 일반 평의회는 비판을 다룬 맑스의 답변을 회람했다그러나 맑스는 바쿠닌이 개인적으로 이 배후에 있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바젤 회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제 총회의 신용을 떨어뜨리려고 했다바쿠닌에 대한 복수심을 품은 또 다른 러시아 망명자 니콜라이 우틴(Nikolai Utin)은 이제 그의 기회를 감지하고 평등을 인수하기 위해 움직였다맑스의 이름으로섹션 분할제네바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맑스의 추종자라고 선언하고 쥐라(Jura)에 있는 사람들은 바쿠닌의 추종자를 선언하며 둘 다 로만드 연맹」 이름을 주장한다.

 

마침내앞서 언급한 네차예프(Nechayev)와 바쿠닌의 관계는 1870년 7월에 밝혀졌다네차예프는 매우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다그는 러시아 전역에 존재했던 비밀 혁명 그룹의 대표라고 주장했지만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고그는 러시아의 다른 혁명가들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고 심지어 그의 전(동지 중 한 명을 살해하는 데 책임이 있었다네차예프는 또한 바쿠닌이 다른 노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러시아어로 자본의 번역(바쿠닌은 이미 출판사로부터 선금을 받았다작업을 포기하도록 설득하였다바쿠닌의 음모에 대한 애정은 그를 속이는 것을 볼 수 없게 만들었고 마침내 네차예프와 거리를 두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보르크하임과 우틴 같은 사람들은 이제 맑스의 의심을 살 수 있는 더 많은 탄약을 가지고 있었다.

 

1871년 9월 제1차 인터내셔널회의가 런던에서 열리기 전에 화해의 시도가 있었다총협의회의 비판자 중 한 명인 로빈(Robin)은 총회에 참석했고제네바 동맹은 바쿠닌과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해산을 선언했다이 회의에서 맑스는 1869년에 동맹이 실제로 해체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인터내셔널 내에 비밀 조직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또한 주라(Jura) 부문이 로만드 연맹(대신 주라 이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프랑코-프로이센전쟁 동안 프랑스를 지지하는 군대를 창설하라는 인터내셔널 규약을 위반하여 항소를 제기한 기욤을 지목했다런던 회의는 노동계급의 경우경제 운동과 정치적 행동은 불가분하게 통합된다는 인터내셔널 전(선언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바쿠닌주의자들은 런던 회의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반대 의견은 이제 인터내셔널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었다스위스에서 주라(Jura) 부문은 자체 회의를 열었는데비록 그들은 그렇게 하라는 말에 분개했지만 주라 연맹(Jura Federation)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기로 동의했다기욤은 인터내셔널에 문서를 작성하여 회람하여 가능한 한 빨리 회의를 열 것을 요구했고총협회의 권위주의를 비난하였다벨기에에서는 총협회를 전면 폐지하자는 제안이 나왔고스페인에서는 맑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 주변의 맑스주의자들이 마드리드 연맹에서 축출되었다총협회는 이러한 "내부 분쟁"에 맑스가 초안을 작성한 "국제적 가상의 분열"이라는 팸플릿으로 대응했다. 1872년 8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와 카를로 카피에로(Carlo Cafiero) 같은 바쿠닌 추종자들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부분은 총협회와 결별하고 그들만의 회의를 조직하기 시작했다그 장면은 이제 헤이그 회의에서 맑스주의자들과 바쿠닌주의자들 사이의 마지막 대결로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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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회의

 

헤이그 회의는 1872년 9월에 열렸다처음 3일은 형식적인 절차로 진행되었고네 번째 날은 파리 코뮌을 계기로 국제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규탄하는 총협회의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그 성명서 낭독은 65명 정도의 대표자들이 열렬하게 환영하였다그들 중에는 처음으로 맑스와 엥겔스가 있었다바쿠닌은 참석하지 않았지만기욤은 바쿠닌주의자들을 대표해서 참석했다그 후 토론은 인터내셔널의 총협회 역할에 관한 문제로 넘어갔다총협회의 권한에 관한 맑스 안이 5일째에 통과되었다회의에서 총협회의 의석을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전하는 것에 찬성표를 던졌는데엥겔스의 이 제안은 바쿠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노동조합원들과 프랑스의 블랑키스트들을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정치적 행동에 관한 토론은 회의 여섯 번째 날과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프랑스 블랑키주의자들 중 한 명인 에두아르 베일랑(Édouard Vaillant)은 "정치 권력의 정복"을 위한 운동을 제안했다그것은 통과되었지만아이러니하게도총협회의 의석을 뉴욕으로 옮기기로 한 결정에 이미 너무 격분하여 인터내셔널이 "붕괴"했다고 선언한 프랑스 블랑키스트들이 퇴장한 후였다.

 

마지막으로 테오도르 쿠노(Theodore Cuno)는 연맹에 대한 조사 임무를 맡은 5명으로 구성된 특별 위원회의 보고서를 낭독했다이 위원회는 바쿠닌과 그의 추종자들이 "인터내셔널과 완전히 반대되는 규약"을 가진 비밀 그룹에 가입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의 축출을 지지했다스위스의 아나키스트 아데마르 슈비츠게벨(Adhémar Schwitzguébel) 제명 동의안은 통과되지 않았으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을 거부한 기욤은 바쿠닌과 함께 제명되었다그들의 제명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 중에는 맑스와 엥겔스뿐만 아니라 파리 코뮌의 퇴역군인 레오 프랑켈(Leó Frankel), 왈러리 안토니 브로블프스키(Walery Antoni Wróblewski), 오귀스트 다니엘 세라일(Auguste Daniel Serraillier)도 있었다여러 가지 이유로그것은 절차상 추악한 부분이었다연맹을 조사하는 위원회 위원 중 적어도 한 명은 나중에 보나파르트주의 스파이로 밝혀졌다그리고 바쿠닌에 대한 소송을 강화하기 위해특별 위원회는 또한 바쿠닌을 절도 및 협박 혐의로 고발했다이것은 바쿠닌이 자본을 번역하기 위해 선금을 받았지만그것을 완료하거나 돈을 반환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었다그러나 바쿠닌이 모르는 사이에 출판사를 폭력으로 위협한 것은 네차예프였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2022년 6

다이즈버즈(Dyjbas)

코뮤니스트 노동자조직(CWO)

옮긴이 ㅣ 이명수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9-02/150-years-on-the-split-in-the-first-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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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Ⅱ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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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 계급과 노동력 착취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 계급으로 나뉜다소수인 부르주아는 모든 생산수단을 통제함으로써 모든 권력(경제정치군사)을 효과적으로 유지한다다수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살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부과한 조건에서만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다프롤레타리아트(생산사무서비스운송 등)는 현대의 노예즉 임금 노예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즉 재생산에 필요한 금액을 노동자에게 지불한다그러나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임금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하는데그 차이를 잉여가치라고 한다우리는 자본가의 이윤에 기초한 이러한 메커니즘을 착취로 정의한다.

 

생산의 특정 조건에 따라 착취는 매우 낮은 임금과 매우 열악한 노동 조건또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더 나은 조건과 관련될 수 있다그러나 착취는 무시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남아 있으며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 생산물을 빼앗기는 사회 계급의 분할에 기초한 이전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착취가 견딜 수 없고 힘들어질수록자본주의 체제는 과잉 축적의 주기적인 위기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6. 계급투쟁과 계급의식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경제위기가 잇달아 발생하지만그것은 자연스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은 착취당하는 전 세계 노동계급이 이루어내야만 한다.

 

자본주의 쇠퇴기위기가 지속하면서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을 더욱 가혹하게 공격할 수밖에 없다점점 더 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실업은 만연해진다점점 더 적어진 일자리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압력에 놓이게 된다노동계급은 처음에는 이러한 자본가 공격에 후퇴할 수도 있지만자본주의 생산의 특징은 결국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착취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게 만든다이러한 경제 투쟁은 노동계급이 자본가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단결하고 연대하면 승리할 수 있다노동자들이 계급으로서 집단적 힘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동이익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승리는 중요하고 필수적이다하지만 경제 투쟁 승리의 의미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여서도 안 된다경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쟁취한 모든 승리는 중요하지만그것은 일정 기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노동자의 이익에 대한 진정한 방어는 그들이 착취 체제 전체에 맞서 계속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즉 피착취계급이 유일한 잠재적 혁명 주체이다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수단 소유에서 배제되고자신의 노동 생산물에서 소외된 채 자본 이익에 반대하는 역사적이자 즉각적인 이해관계를 갖는다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반드시 계급 통일과 자본에 대한 깊은 적대 의식을 가져야만 혁명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 영역에는 생산 관계 역학을 분석하고계급투쟁 경험에서 교훈을 끌어내고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강령을 정교화하고 발전시키며이 과정에서 계급을 정치적으로 안내할 수 있는 조직 전위가 있어야 한다.

 

사실 계급 본능과 계급의식”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존재한다첫째계급 본능은 노동자 자신의 유산으로서 노동자 투쟁 속에서 싹트고 발전한다그것은 물질적 이해관계의 적대감에 의해 존재하게 되고이와 같은 적대감에서 비롯된 경제적정치적 모순을 양식으로 하여 살아간다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가 사이 관계가 노동자 투쟁의 특정 일반화와 대립의 단단함을 함축할 만큼 충분히 긴장되어 있어야 한다둘째계급의식은 계급 모순에 대한 과학적 관찰에서 생겨나며그러한 모순과 함께 성장한다그것은 계급의 역사적 경험이 양산한 자료에 대한 검토와 정교화를 양식으로 살아간다.

 

혁명과 함께 권력은 전체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것의 유기적 집합체(노동자평의회와 당)에 달려있다. 여기서 당은 일반적인 선동과 선전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은 평의회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지지·방어하고, 당의 투사들은 평의회가 당 구호를 승인할 때마다 매 순간 책임을 맡고,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 성공에 필수적인 당의 “정치적 방향”인 코뮤니스트 강령의 타당성은 평의회에 강요할 수 없지만, 정치적 투쟁을 통해 획득하고 방어해야 한다.

 

7. 파시즘과 반()파시즘 인민전선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 운동 강화에 대한 부르주아지 반응의 하나였다역사적으로 파시즘은 급진화된 소부르주아 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위기로 자신들의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다파시즘은 전투적인 행동과 공격적인 민족주의()유대주의사회적 선동이 혼합된 기괴한 선전을 통해 이러한 범위 밖에서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그러나 부르주아지 일부를 움직여 파시스트 운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한 것은 반동적 절충주의 강령이라기보다는 노동자운동 조직에 대한 테러였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에서 파시즘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체제 토대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경제의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주의나 중앙집권적인 조직에 맞는 권위적 통치 형태였다파시즘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뿌리째 뽑고모든 반대 시도를 분쇄하고사회 모든 영역을 국가 통제에 종속시킴으로써특히 자본 독재의 권위적인 형태임을 입증했다.

 

파시즘의 야만적 범죄 행위는 위기와 전쟁의 제국주의 순환에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잔혹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이런 이유로부르주아지의 일부 유급 도덕주의자가 파시즘을 반()부르주아 반란 또는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기꺼이 표현하려고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홀로코스트 공포에 비추어 볼 때그러한 주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그런데도 파시즘과 민주주의 사이 공생 관계를 숨길 신비화는 남아 있다의심할 여지 없이파시스트는 인종주의를 심화하고 확대했다그러나 인종주의도반유대주의도민족주의도 파시스트만의 발명품은 아니며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이다파시스트는 자본주의 밖에 서 있지 않으며 지배적 자본주의 관계에 반대하지도 않는다오히려 그들은 지배자들이 일상적으로 퍼뜨리는 원망과 이데올로기를 손에 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강화한다이러한 이유로 코뮤니스트는 다른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와 마찬가지로 파시즘과 싸운다.

 

노동계급에는 파시스트의 출현과 그들의 공격에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러한 투쟁은 명확한 계급 기반에서 시작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지배를 파괴하기 위한 포괄적인 반()자본주의 투쟁의 일부이어야 한다우리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캠페인과 다양한 반()파시스트 동맹에 대한 모든 참여를 거부한다이들은 노동계급을 민주적이지만 여전히 부르주아 국가 굴레에 묶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동적인 막다른 골목을 나타낸다()파시즘 전체 논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덜 나쁜 것으로 방어함으로써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이다민주주의 수호라는 개념은 계급 중립적 실체로서 국가라는 신화를 받아들이고순종하고결국 굴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그것은 국가를 강화하고 국가 권력에 복종하며 자기 활동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결국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국가에 속박하고 억압에 무방비 상태로 넘겨주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반파시즘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항상 실패한다국가가 최고의 반파시스트라고 자처하는 환상 속에서 또는 반파시스트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포기한다면국가를 혁명적으로 전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재앙으로 빠지게 된다반파시즘은 국가를 미화하는 이념이자혁명을 포기하는 실용적인 경로로서파시즘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겨냥하고 있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는 파시즘과 거리낌 없이 싸우며동시에 어떤 형태의 부르주아 권력과도 싸운다역사적으로 파시즘은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운동에 대한 반응이었다그것의 뿌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부르주아 권력 내부에서 낱낱이 드러난다그들은 필요하거나 기회가 있을 때진정한 반동적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민주주의 가면을 벗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파시즘적 기능 내에서 부르주아 권력과의 동맹이 잘못된 것이며심각한 패배로 이어진다고 믿는 이유이다사실모든 파시스트 정권의 지지 기반을 구성하는 것은 부르주아지 자체이다대신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계급 단결”, 즉 모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방어하고 부르주아 권력에 대적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연합을 지지해왔다.

 

파괴적 발전을 위한 자본주의의 힘에 비추어 인류 앞에 서 있는 대안은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코뮤니즘이냐 야만이냐이다.

 

8.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을 넘어선 투쟁

 

노동조합에 관한 우리 입장은 노동조합이 결코 혁명적이지 않다는 것이다노동조합은 본질에서 노동력 판매 조건을 계약하는 중재 기관이다.  20세기에 이르자 노동조합은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와 운명을 같이했는데점점 더 독점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고 생산을 계획할 필요성을 유지했다. 조합주의에 대한 우리의 반대는 단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던 실제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노동조합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수 활동가를 만났지만(물론 우리는 노동조합을 회피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실제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평조합원으로 활동한다), 결국 그 동지들이 실제로 보여준 경험(한국은 민주노조 운동의 쇠퇴)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우리의 목표는 노동 현장에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노동자 핵심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노동조합 모임과 노동조합이 소집한 행동에 개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국제주의자로서 우리는 노동자 투쟁에 개입할 때투쟁하는 노동자로 호명되는 평조합원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있는 곳에 개입(노동조합이 소집한 모임과 행동에도 개입)하여 노동조합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투쟁을 조직하고자본주의를 넘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구체적으로 방어하도록 촉구한다.

 

노동조합의 반()노동자적 기능을 인정한다고 해서 경제 투쟁을 무시한다거나 충분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반대로 우리는 자신의 당면한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할 수 없는 계급은 혁명을 위해 싸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우리에게 노동조합 형태는 더는 유용하지 않으며그것은 부분적인 작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진정한 투쟁에도 유용하지 않다이를 위해서는 아래로부터노동조합 밖에서 일어나는 투쟁위원회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등과 같은 다른 형태가 필요하다그리고 필요하다면 노동조합의 관료적/조합주의적 실천에 과감히 반대해야 한다이러한 유기적 조직에서 혁명조직()은 노동자들을 혁명 강령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정치적 투쟁을 계속한다.

 

혁명조직은 노동조합을 통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개입하기 위해 현장 및 지역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 노동자그룹의 조직을 촉진한다이러한 국제주의 그룹은 노동자 투사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확고한 투쟁으로 이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투쟁 과정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의식적인 요소를 자기 조직화하기 위해 투쟁의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또한코뮤니스트 강령과 조직계급투쟁의 생생한 사건에서 경험으로 노동자 투사들의 의식을 풍부하게 한다이 그룹에서 활동하는 모든 노동자가 반드시 혁명조직의 구성원은 아니며그들은 반()자본주의와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활동을 포함한 근본적 지침을 공유한다.

 

9. 종교(), 국가가족에 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은?

 

국가가족은 노동자 운동이 시작된 이래 반()코뮤니스트 행동의 강령이지만오늘날에는 차고 넘치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과학적 발견에도 사회에 대한 종교적 통제는 여전히 매우 강력하며통합주의 국가나 성직자에게 증오의 씨앗을 뿌리기 쉬운 특히극빈 국가들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그러나 신을 믿는다는 것은 대부분 자신을 신의 정당한 대표자로 제시하는 사람들즉 지배계급 일부이며 그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며 그들을 먹여 살리는 부르주아 사회를 옹호하는 데 관심이 있는 다양한 종교 기관의 위계질서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더욱이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것은 자연히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실용적인 실천즉 실천적인 유물론적 행동을 비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국가에 관련하여 우리가 자란 곳과 사는 곳에서 우리가 느끼는 유대감과 사랑그리고 같은 문화적 관습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본능적 친밀감을 "애국심"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애국심은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의미 모두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입장이다애국심은 유럽의 젊은 혁명적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국가를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 낡은 봉건 권력을 쓸어버려야 했던 18세기에 퍼졌다어느 나라가 하나의 국가이거나 치아파스나 팔레스타인과 같은 준()국가적 실체이거나유럽이나 아랍 세계와 같은 거시적 지역적 실체라도본질은 변하지 않는다애국심은 자본주의 국가를 뒤흔드는 계급투쟁을 제쳐두고국익 또는 투자 이익을 위해 노동자가 자본가와 팔짱 끼게 하고국외(다른 체제민족)에 존재하는 공공의 적에 맞서기 위해 가난한 자가 부자들과 연대하게 만든다.

 

 

가족에 관해서도 역시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저분하게 작용했다사실 가족애(愛)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예측할 수 있는 무게가 있으며부부/동거애(愛)와 자식/부모애(愛)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그러나 가족이 가족 밖 집단의 대안이 될 때그것은 편협한 기준, 즉 다소 편하고 안심되는 함정 형태를 취한다이 함정에서 각각의 프롤레타리아트 커플은 원자화되어 각자의 거실로 고립되고개인주의로 밀려나 정치적사회적인 관점에서 더욱 무력하고 활력을 잃은 상태가 된다.

 

10. 자본주의 가족제도와 여성해방에 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은?

 

여성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지만사회 노동의 대부분을 수행한다착취가사차별성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오늘날 재생산 노동(양육가사)이라는 역할은 주로 여성이 수행한다여성의 노동이 유급일 때조차 평균임금은 남성보다 매우 낮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항상 전쟁기아정리해고라는 가혹한 공격의 우선 대상이 된다부르주아지는 평등한 법과 성해방에 대해 수없이 떠들어대지만오늘날 여성은 사실상 여느 때 못지않게 기본권을 박탈당한다수많은 여성은 임신 중지권에 대한 법적 결정권을 박탈당하며심지어 자기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조차 거부당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은 광범위한 개선을 경험하지만이러한 개선은 주로 경제 호황과 자본주의 필요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승리였다자본주의가 노동시장과 사회생활에 여성을 참여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위한 기반을 닦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 관계 안에서 극복할 수 없다오늘날 여성 억압의 근원은 여전히 부르주아 소유 관계의 최후 보루인 가족에 있다자본주의 발전은 가족이라는 제도를 확실히 약화한다게다가 최소한 주도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부장적인 억압의 가장 노골적인 월권행위는 결혼 생활에서 이혼 권리와 폭력강간의 불법화와 같은 법적 규제로 제한된다그런데도 자본주의는 사회화의 기본단위로서 가족을 넘어설 수 없다여성해방은 자녀 양육가사환자와 고령자에 대한 돌봄이라는 과제가 사회화된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따라서 여성해방은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과 전체로서 노동계급 해방과 직접 연결된다그런데도 성차별과 성폭력에 반대하는 투쟁은 혁명 이후로 미룰 수 없다여성에 대한 반동적인 개념에 반대하여 단호하게 투쟁하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기본 과업이다코뮤니스트는 지배적인 부르주아 성도덕에 순응하지 않는 성적 지향을 기반으로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며가부장적 억압과 차별의 핵심인 부르주아적 결혼과 가족에 대한 미화를 반대한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사회의 계급 분할을 무시함으로써 부르주아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여성 사이의 이해관계 모순을 위장하지만코뮤니스트에 여성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은 전적으로 여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계급 단결과 연대를 위한 수단과 전제조건이다코뮤니스트 조직은 코뮤니스트 운동에 여성과 성소수자가 어떠한 제한도 없이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여성해방 없이 코뮤니즘은 없으며코뮤니즘 없이 여성해방도 없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에 대한 질문과 답변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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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자본주의 쇠퇴기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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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파와 치사율 감소를 위한 인명구조 안전조치가 이윤 창출 면에서 볼 때 수용력을 넘어 지나치게 지속되었다고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결론지은 한편정치인들은 값비싼 개혁방안을 담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이들 안전조치가 하나씩 폐지되는 와중에도다수의 노동계급은 대유행의 굵직한 파장을 겪으며 끊임없이 노동한다상공회의소가 지휘하는 뻔뻔한 자본가계급은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더뎌지자노동계급의 혜택 제공에 대비를 위한 사회적 지출을 증대시키는 대신 임대료와 실업급여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해제했다노동조합 역시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매각 혹은 노동자 측과 협상하는 역할을 지속해왔으며조합원들에게 원치 않는 양보를 강요함으로써 노동계급 투쟁의 상승기류를 조정해왔다노동계급 투쟁에 활력소가 되는 주된 요구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인상과 주당 노동 시간 단축이라는 계층형 임금체계(tiered wage system)의 폐지를 포함한다노동조합은 자본가를 대신해 노동자들에게 계층형 임금체계를 강요했으며또한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의 소비력을 감소시킨 것에 대하여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노동자들은 또한 인력 부족으로 끊임없이 야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에서 이들의 요구는 노동조합이 지지할 수 없는 것들이다대신 그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인상률에서 임금인상 및 초과근무아니면 주당 7일 노동이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이는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켈로그 노동자들의 파업 일화이지만이미 오래전 일이다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국가의 오랜 수레바퀴이며심지어 그들은 노동자들이 투표소로 오게끔 하는 데 능력 감소” 속에서조차 지속될 것이다일부 정치권에서는 수십여 년간의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서민들의 골칫거리를 관리하는데 무능해지고가치 있는 개혁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모는 여전히 남아 있다이는 자기 계급의 타협적 가치를 보는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인더욱 엄격한 계급지배를 옹호하는 자들과는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열망에도 그러하다그들은 현실이 안정되면서 자유주의의 미덕과 강점을 강조하는 한편개혁이라는 달콤하고 값싼 것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이는 문화전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이렇게 단정 짓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국의 막대한 군(예산을 증거로 이용하는데가치 있는 개혁을 이끄는데 올바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그러나 폐기물 생산과 군대는 자본가계급에 따라 다르게 여겨진다, a) 그것은 국가 자본의 국외 이윤을 증대시킨다는 것, b) 국가적 폐기물 양산은 생산의 합리화를 돕는다는 것그리고 c) 국가는 수요를 창출하며 다른 자본주의 형태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미국과 같이 부르주아계급이 역사적으로 강했던 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노동자들은 체불 임금을 되찾을 수 없지만자본가들의 이윤 손실에 있어서는 가능하다죽을 각오로 임하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위기에 대한 비용을 내게 하기 위해노동자들은 그들로부터 악랄한 공격을 받아 왔다물가 상승에도 임금은 그대로인데 노동시간은 늘어났다바이든 대통령은 최근의 적자에 대해 국가지출을 1조 달러까지 줄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자본주의는 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 체제이다개혁주의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의 반()체제적 투쟁을 없애고자 나설 것이다이 지도자들은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계급을 억압하는데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장할 것이다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국가인종성적 억압과 같은 부분적 억압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이것들은 자본주의의 지속에 부차적이다그들은 전(자본주의 체제가 의존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해결할 수 없다이러한 억압은 임금과 노동잉여가치의 생산에 근거한다이들 민주적인 지도자들은 민주주의자유혹은 인권을 위한 싸움에 관해 횡설수설할 테지만노동계급이 정치권력 행사로부터 소외되어있다는 점은 자본주의 체제의 조건이다머지않아 이들 잠재적인 민주적 대표자들은 민주주의의 덕목을 거창한 말들로 그럴싸하게 포장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 억압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것이다국가는 이러한 개혁에 어떠한 비용도 들이지 않으며상대적으로 더욱 지배적인 자본가계급은 이 개혁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이들 상류층 부르주아들은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에만 의존하지 않으며받아들일 수 없는 인종 정책을 시행한다거나 또는 계급 활동을 막기 위해 노동력을 분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덜 받을 수 있다노동조합에 의한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특정 경제적 요구는 이 자본가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그들은 또한 반()인종차별주의성차별주의혹은 외국인혐오증 법률 제정에 더 개방적일지 모른다이들 중 어떤 이들은 노골적인 견제와 공개적 억압이 그 가치보다 더욱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쉽사리 깨닫는다이러한 권리는 무효화 할 수 있는 것이며노동계급이 끊임없이 개혁을 위한 투쟁에 발을 빼도록 하고자본주의 체제를 위해 물을 길어 나르도록 할 것이다노동계급이 조직력을 강화하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신장시킬 가능성을 열어주는 그들의 영역에서 투쟁하는 것 대신 말이다.

 

매 선거 주기 동안국가의 자본가 관리자들은 의료 개혁에 적용되는 공약을 걸 것이다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지출을 절대로 삭감하지 않겠다는 공약심지어는 주로 보험이 없는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는 공약이 가장 흔하다공공의료 지출을 직접적으로 반대한다거나국민건강보험의 시행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에 인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계급의 평화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개혁 가능성에 대한 환상 역시 여러 좌파와 진보당의 유권자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자본가의 해악 줄이기” 논리는 좌파 진영의 근간이기도 하다그리고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이윤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신념이 그 중심에 있다.

 

노동계급에 이익이 될 만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정치인들이 유지함으로써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 악용되는 것을 상당히 방지할 수 있기는 하다이것은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전을 저해하며잠재된 혁명적 파열을 방해한다그 대신 자본가계급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제도적 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이것은 진정한 계급 활동의 잠재성이 국가 자본을 안전하고 굳건한 길로 향하도록 한다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사실상 배제된 노동계급은 선거주의에 휘말린다각 당의 권력은 국가관리를 위해 경쟁한다또한자본주의의 축적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을 공고히 한다이들 정당은 노동자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인데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그들의 프로그램은 개혁을 위한 양보를 제안할지는 모르겠으나일단 그들이 여러분의’ 표를 얻고 나면, ‘여러분의’ 대표자가 된 후의 정치적 협의에서 노동계급의 역할은 즉시 폐기되어 버린다.

 

다음으로는 뉴딜의 일부로서 합법화된국가보안기구 일부로 국가에 통합된 노동조합들이 있다노동자들은 파업의 불법화를 대가로 실업보험과 쥐꼬리만큼의 임금인상을 받았는데그나마 임금인상은 임금 정체 및 (임금삭감으로 점차 대체되었다한편 노동조합의 관료들은 국가 직책을 받으면서도회비를 걷어 들임으로써 봉급을 두둑하게 받을 수 있었다심지어 조합주의 조직의 일부로서 국가에 통합되기 이전에도 그들은 결코 혁명적인 조직이 아니었다그들은 가입에 정치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영원한 대중조직이다말하자면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들의 기능은 언제나 노동력의 판매를 협상하는 것이었으며그러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적인 안녕에 의존하는 것이다그들은 결코 계급투쟁을 진일보하도록 두지 않는다오히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영역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자본 영역은 이윤율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노동조합을 배척하기 시작했을 뿐이다노동조합에 있어서 노동자의 활동은 비밀투표에 참석하는 것, ‘민주당에서의 선거 활동납세의무에 제한된다결국그들은 노동력 판매 협상을 누가 관리하도록 할지 결정하는 것에 관계될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부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므로, [노동조합]은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죽어가는 자본주의의 사회정치적 고통이 끝날 때까지 존속해야 할 운명이다그들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공격이 제국주의 국가를 무너뜨릴 때야 비로소 패배할 것이다.1)

(오노라토 데이먼)

 

심지어 자신을 혁명적”, “평조합원” 혹은 풀뿌리라고 일컫는 노동조합조차 자본주의 내에서는 노동력 판매와 협상이라는 똑같은 기능을 한다일종의 노동조합을 주장하는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개혁주의적 목표를 품은 거대조직이 되느냐정치조직이 되느냐생디칼리스트 조직은 자본의 좌파 진영에 있는 또 다른 개혁주의의 수레바퀴이다생디칼리스트 조직의 명목은 기껏해야 계급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조합으로 엮는 것이다그들 역시 다른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동일한 구조적 강박의 압력에 굴복해야만 한다그것이 아니라면 회원 이탈에 직면해야만 한다또한그들은 그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관료적 구조를 채택해야 한다그들이 자본주의를 인정해야 할 때혹은 자본가가 상점의 처분 혹은 배송에 직면해야 할 때 말이다노동자 분열을 자본가의 노동 분업이 낳은 범주에서 극복하려는 그들의 철저히 양심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이것은 정치적 조직과 함께하는 정치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노동조합은 매우 본능적으로 그러한 분열을 드러내며그들의 협상 상대는 자본가와 연결되어 있다.

 

결국기타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와 마찬가지로심지어 노동조합의 조합원 상당수조차 코뮤니스트 당이 개혁보다 혁명을 우선시한다는 이유로코뮤니스트 당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

(헤르만 호르터)

 

자본가계급이 노동자 해방을 시작하기에 유리한 이유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들은 노동계급 대부분이 혁명적 상황 이외의 곳에서는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노동과 자본 없이 생산을 조직할 수 없다고 믿는다그들은 자본주의에서는 임금노동 없이 자신들의 욕구를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지만자본주의 체제가 생활 기준을 향상해 줄 가치 있는 개혁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그렇기에 노동계급의 잠재적인 에너지 대부분이 선거에 이용되는 것이다최근에 벌어진 2020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와 그의 사이비 혁명적-개혁 플랫폼(임금체계 폐지의 대안인 아메리칸 잡스, ‘모두를 위한 의료서비스’ 전망이 포함된다)에 2019년 중반까지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캠페인 자원봉사자로 나섰다또한이들 봉사자 덕택으로 수천 가지의 행사가 개최되었으며그의 행사에 모금된 액수는 2020년 2월에만 4천 600만 달러였다.3)

 

노동자의 참여는 민주주의 체제의 투표제도 속에서 시작하고 끝나 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발언집회 및 결사언론의 자유 등과 같은 권리에 대해 고려한다면만약 이러한 권리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반()하지 않고 체제를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면국가에 의한 간섭은 없을 것이다어떠한 반대더라도 즉시개혁주의로서 자본주의의 토양에 양분될 것이다또한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개선하는 것이다이것을 요구하는 계급혹은 그 외의 계급은 민주주의 체제에 가장 깊이 개입되어있는 이들이다명목상 이른바 중산층 또는 중산계급으로 불리며주로 소부르주아 및 부르주아계급을 구성하는 이들이다이들 계급 일부는 경영이나 학계에 연루되어 있다그들은 신분 상승하지 못해 낙담한 이들이기 때문에더 잘 작동하는 체제를 원한다아니면 어떤 일부의 계급에서는 계급 및 구조적 모순이 극복될 수 있으며계급사회에서 대중을 위해 향상된 생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그들은 제인터내셔널과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노동운동 속에서 노동자조직의 계급적 성격을 변화시켰던 바로 그 기회주의적 개혁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궁극적으로자본의 좌파와 자본가계급의 여타 진보적 기능으로 구성된 이러한 약속과 포부들은 이윤율이 감소하는 현실에 맞추어 상실되고자본은 노동계급에 더욱 공격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모순의 결과이다사회 체제가 지속해서 존속하려면 "시민사회 안에 있지만시민사회는 아닌어떤 계급인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율을 높여야 한다.

 

자본은 흡혈귀와 같은 죽은 노동이며살아 움직이는 노동을 흡혈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살면 살수록 자본은 그것을 빨아먹는다.”4)

(칼 맑스자본110.)

 

전후 축적 사이클 종식의 결과로이윤의 부족을 가져온 조건에 해당하는 사적 소유를 위한 일련의 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다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다노동계급 중 가장 취약한 계급을 보조해 줄 사회적 비용을 위해 국가는 세율을 삭감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한다결국국가는 증가한 지출분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채에 더욱더 심각하게 의존하게 되는 한편이 모든 것은 잉여가치에 대한 상향 재분배 및 빈약한 수익률 강화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또한수익성 위기는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고대도시에는 더욱 이윤이 높은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기 위해 국가가 이전의 신성한 소를 거스르고경제의 최고점을 포기하도록 했다대도시뿐만 아니라아시아의 저렴한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도 이용했다값싼 상품을 수입하고착취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비율 증가는 대도시의 정체된 임금을 상쇄하는 것에 이용되었다정부는 이미 급상승 중인 지출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키지는 않을 것이다또한자본가의 이윤 감소를 낮추지도 않을 것인데이는 국가 자체의 소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게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적자지출에 더욱 의존하곤 했으며급상승하는 지출 비용에 자금을 대기 위해 조세를 미루곤 했다적자지출에 대한 국가 의존의 주요 영향은국가지출 비용이 막대한 비율로 증가하여 부채 상환에 사용된다는 것이다이는 착취율을 증가시키지 않고 더욱더 많은 화폐를 유통함으로써 동시에 인플레이션 증가를 초래했다이 모든 것은 2021년 5월 당시의 직관에 반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회계연도 2022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년도 대비 100억 달러 증가했다.5) 대중 소비를 위한 모든 생산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무기 생산을 선호하는데무기는 생산도 소비의 수단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폐기물 생산이기 때문이다자본의 쇠퇴기가 시작된 이래국가가 초래한 폐기물 생산의 지출 비용이 계속 증가해왔다그들의 목적은 다른 무엇보다도 생산을 합리화하는 것이며국가 자본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무기 생산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심지어는 생산물에 대한 비생산적 지출 비율 및 이윤 창출을 위한 지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확대되었던 전쟁 시기에도국가는 활성화된 국가 자본 대부분을 유지하는 것그리고 노동계급 전체를 고용상태로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미국의 베트남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년에는 미국 국가 자본의 약 80%가 활용되었고, 600만의 실업자가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자본의 구조조정에도 기타 모든 비생산적 지출 비용과 마찬가지로 특히 무기 생산의 경우 고용안정 및 안정적 사회 유지를 위해 이용된 사례로 남았다.6)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예산은 공공사업 혹은 사회적 행동을 위한 매우 조잡한 대체물이 되었다또한스스로 정부 적자를 양산하여 경제 전체를 지탱했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군국주의에 경제적 정치적 투자를 한다.7)

 

순전히 경제적 경쟁력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경제의 최고점이라 일컬어지는 곳에서 생산의 합리화에 있어서 무기를 선호한다국가는 제국주의적 목적을 관철해야 한다자본주의 체제의 안전성에 위협이 되는 자본가와 노동계급을 억압해야 한다그렇기에 국가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제국주의의 목표는 국가협정외교적 협력또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위기에 대한 극대화된 표현을 선호하는 형태를 취한다이는 경쟁국으로서 경쟁국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무기 생산은 시장성 상품 생산에 개입된 사적 자본형성에 반하여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국가가 유도한 무기 생산은 이들 상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감소시키지 않는다자본가계급은 특히 폐기물 생산의 한 형태로서 무기 생산을 지원하는데이는 생산능력 활용에 대한 유지 및 고용 수치 증가 모두를 위해 국가개입이 확대될 때 강화된다이때자본 축적을 급격히 감소시키지 않고국가의 소비력을 신장시키는 지속적인 자본형성이 있게 된다전자의 조건 아래에서는 구조적 모순을 강제적으로 완화 시킬 필요가 있는데제국주의적 목표를 실행함으로써 결국 주요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 및 다양한 강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후자의 경우는 자본가들이 군비 지출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그들의 역할은 국제적 시장과 국가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는 능력에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대체로 국가는 버터가 아닌 무기를 선호한다다른 지출 비용보다 무기 생산비용을.

 

무기 생산(및 그에 수반하는 모든 것)은 시장에서 궁극적’ 상품으로 등장하지 않는다정부는 민간자원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그것을 차입하고민간기업의 무기 생산을 유도한다비록 정부가 지불하기는 하지만그들의 생산비용 및 이윤은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기부세금이나 대출 방식후자는 납세 지연을 함축할 뿐이다.로 지불하는 것이다무기 생산자의 관점이 아닌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무기 경제는 성장을 통해 궁극적’ 상품의 증가 부분을 시장에서 제거하여 결과적으로 (이윤생산투자를 감소시킨다자본의 축적 대신에 국가부채의 축적이 발생한다.”8)

(폴 매틱)

 

폐기물 생산은 이윤율에 상응하여 자본형성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한계를 드러낸다그것들은 국민소득을 공제한다폐기물 생산은 자본화된다거나 자본의 확충 혹은 소비에 사용될 수 없다무기 비용 지출 증가는 자본 축적의 비용이기에 또한 생활 수준을 저해한다개혁에 더욱 개방적인 미국의 정치인 일부에서는 아직도 뉴딜” 정책을 민주주의 체제 역사상 최고의 승리로 여긴다. 1933년 뉴딜의 조건은 산업 활동 증대였다정부는 또한 주로 금융회사에 일련의 신생 지출 비용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했다노동계급 다수에게 호소하고정부를 강화하는데효과적인 자유주의 문구에 매료되었다당시 이것은 필수적이었다. ‘뉴딜에 반대하는 자본가계급말하자면 투자은행가들 일부의 반대 때문이다. “잊힌 이들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지지했던 산업가들로 밝혀졌다또한더 높은 상품 가격을 원한 농업기업들광산회사들상당한 양의 수익을 잃고 그들의 자본이 대규모로 평가 절하된 부실 철도회사금주령이 종식되기를 바랐던 주류생산업체로 밝혀졌다. 1937년 즈음산업 활동의 감소로 인해 반대 경향이 시작되었다임금향상과 생활 수준 개선을 요구했던 뉴딜’ 정책은 상대적인 잉여가치율을 높이고지배적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을 시행함으로써이제는 착취율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폐기된 구호가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다더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정책이 아닌즉 이윤증대를 위한 생산성 향상노동 강화임금 삭감의 방식으로 물가를 낮추는 정책이었다.”9)

(폴 매틱)

 

일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후 사회적 국가의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은제국주의 전쟁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이었다결과로 자본의 가치는 국제적으로 그 수치가 50%까지 하락했으며, 1973년까지 주기적으로 가장 장기간인 호황이 열렸다.

 

자본주의적 의료 개혁은 비용 절감 조치에 불과한 경향이 있다사회화된 의학의 이상향은 자본가계급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의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심지어 사회주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물론이른바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불리면서도 자본 축적의 필요만을 충족시켰을 뿐이다이것은 개별적 기업의 노동력 유지비용을 줄였으며질병으로 야기된 이윤-재생산 붕괴를 제한했다또한이 모든 것은 노동계급의 건강에 관련하여모든 자본가계급의 주된 관심 속에 있다는 것이다복지개혁이 처음으로 시행된 데에는 항상 그만한 현실적인 경제적 이유가 있었는데계급조정에 대한 그들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자본가계급은 이러한 개혁을 가로막고그들의 적용 범위 혹은실질 자금을 줄이는 것에 관련된 노동계급에 반대되는 직접적 공격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인플레이션을 보기로 들면영국의 경우 자본가 정치인들의 일부 약속에도공공의료 지출은 최근 들어 감소했다영국의 공공재정을 구제하기 위한 IMF의 대출 규제와 별개로국가는 대()의료 지출을 삭감해야 했다약 50년간 국가는 NHS(국민보건서비스)의 병원 수용력을 50%가량 축소 시켰다.10) 이른바 사회적 국가의 기원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노동자들의 급진화에 자극받은 부르주아지는 국가 경제의 고점적 지위에 대한 사법적 지위를 변화시켰으며자본을 능수능란하게 제공했던 NHS와 같은 포괄적인 의료보험 프로그램의 전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여러 주에서 국립의료보험서비스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이것은 사회민주주의적 투표 기계 및 사회주의에 대한 민주적 노동운동의 정의에 부합했다이는 노동계급의 관심을 혁명적 정치조직 형성으로부터 돌리기 위해 사용되어왔다대신 노동자들은 올바른 정치인에게 투표하도록 설득당하고그러면 그들은 그렇게만 한다이것은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뒷걸음질 치게 하고노동계급이 조직력을 키우는 것을 가로막는다.

 

단 하나의 국민건강보험제도도 갖추고 있지 않은 미국에는 전통적으로 올바른 정치인을 뽑으면 국민건강보험이 시행될 것이라고 믿는 일그러진 환상이 존재한다이는 체제를 위한 유권자 기반 유지와 노동자 오남용 제한에 있어서 훌륭하다전반적으로어떤 국가에서든 정치인들 대부분은 공공보건 지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는 계급-평화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오히려보건교육사회보험에 대한 공공지출 삭감은 은밀함과 기만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동계급에 유리한 지출 비용을 늘릴 힘은 높은 이윤율에 입각한다그래야만 국가는 그러한 전망을 위해 잉여가치를 재분배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코로나-19 대유행공공의료보험 개혁이 가장 시급했던 시기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공격받았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그 대신 국가는 노동자들이 폐망해가는 위기의 자본주의에 비용을 대기 위해 일터로 내몰고실업보험을 해지해 간다민관협력관계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던 대유행 초기국가는 내수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 2020년 2월 말까지주 대부분에서 시장 활동이 이미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11) 국가의 역할은 공공 소비를 위해 생산을 늘리는 것(축적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전쟁 당시와 유사했다)이었다수십 년간 과거의 연구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뿐만 아니라명목상 개인용 보호장비(PPE), 의약품수십 년간의 감소를 상쇄하기 위한 병원 수용력 확대가 그것이다어떤 국가들은 PPE 혹은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사재기했다이는 특정한 상품 가격 및 입찰 전쟁을 야기했다.12) 이는 체제에 위협이 있을 때 국가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다국가는 전 세계에 충분할 만큼 백신을 풍부하게 생산하는 한편대부분은 그것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이는 최소한의 차질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백신 및 다른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의 치열함 때문이다자본주의 국가는 과학을 따르라!”라고 말하지만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은 임대료를 모으고그들의 영향력을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국민적 챔피언(제약 회사)의 능력을 옹호한다부분적 전면적 봉쇄조치중소기업으로의 소비 활동 촉진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외출과 같은 이들 계획 속에서 보이는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건전성에 대한 국가의 우려는 또 다른 모순이다일부 자본가가 그러한 것들을 이윤 창출에 있어 과도한 간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현재의 코로나-19 안전조치는 철회되거나 완전히 폐지되었다국가는 또한 잉여가치 전체 양의 확대를 증대시키기 위해 특정 산업에서는 최저 연령을 낮추어 노동법 규제를 완화했다잉여가치는 노동계급을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죽은 이윤을 촉진하기 위해 상향 분배될 것이다노동자들의 여건을 완화하고자 하는 일부 자본가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단지 이윤 창출을 위해 국민적 결속과 안전을 걱정하는 것일 뿐이다보험 접근성의 부족공공보건에 대한 정부의 지출감소는 빈곤을 의미한다노동자들에게 대유행의 결과는 현실이다자본주의 체제의 상황 때문에 노동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타락실업으로 인한 파멸에 직면한다선거 주기마다 어떤 자본가가 그들을 통치할 것인지 만을 그저 투표하도록 노동자들을 끌어들인다그 대신노동자들은 체제에 이용당해야 하고이러저러한 국가의 조치를 단순하게 지지해서는 안 된다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을 쇠퇴기 자본주의의 위기와 연관 짓는 혁명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그러한 조직만이 PPE, 더 나은 임금위험수당 또는 폐업 후 실업급여 수령과 같은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우리 계급 지형에 가져올 수 있다.

 

- B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옮긴이 ㅣ 지나

 

 

 

<주>

1. 「보르디가: 신화를 넘어」 중 66쪽 “조합의 질문에 대하여”(오노라토 데이먼 & 아마데오 보르디가), 런던 ≪프로메테우스출판≫. leftcom.org

2. 헤르만 호르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조직』 중 “코뮤니스트 정치조직”, 베를린 [KAPD]. marxists.org

3. 〔뉴욕타임즈〕 ‘셰인 골드마커’의 기사 〈베르니 샌더스, 2월, 4,600달러 모금으로 2020년의 기록을 세우다.〉 nytimes.com

4. 칼 맑스 『자본』 제1권, 제10장 “노동일” 중 제1편 “노동일의 한계들” marxists.org

5. 국방부 ‘회계연도 2022년 국방예산 발표’ defense.gov

6. 폴 매틱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제3호- 19~26쪽 (1971), ≪뿌리와가지≫ marxists.org & ‘폴 매틱’의 〔맑스 인터넷 아카이브〕 기고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

7. G. 콜코 『세기의 전쟁』 중 “1914년 이후의 정치, 분쟁, 사회과학”(475쪽), 뉴욕≪뉴프레스≫(1994)

8. ‘폴 매틱’의 기사 회고 〈국제적 사회주의-무기와 자본〉 연재 –제34호- #1. marxists.org (1968, 가을) 

9. ‘폴 매틱’ 『루즈벨트의 새로운 “뉴딜”』 -제5호-, -제5권-, 10쪽 ≪프로레타리아 전망≫. marxists.org (1939, 11월)

10. ‘시바 아난다치바, 레오 유뱅크, 헬렌 맥케나, 제임스 톰신, 데보라 워드’의 논문 “NHS 병원의 병상 수 : 과거, 사전설정, 미래”. kingsfund.org.uk

11.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비상사태 이전인 2월 말, 시장은 이미 10% 하락했다. 미국은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D. J. 트럼프-COVID-19 발생으로 ‘국가비상사태’ 선포, 백악관(2020, 3월 13일). 

 

12. ‘에스테스, C’의 기사 “국가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투를 위한 의료 장비를 얻기 위한 입찰 전쟁을 강요당하고 있다.”(2020, 3월 28일). forbes.com // ICT 북미 지부 저널-1919년, 세 번째 기사. (mcmxix.org)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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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21세기 노동자평의회의 의미

21세기 노동자평의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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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평의회는 우리가 선동하는 부분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최근에 우리는 노동자평의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정치조직과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그리고 오늘날 노동자평의회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이 질문들에 대한 우리의 답은언제나 그렇듯이과거 계급투쟁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

 

부르주아지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의 운동이 19세기 초에 역사적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전 세대의 많은 용어를 이어받았다영국미국 또는 프랑스혁명과 같은 세계를 구성한 사건의 유산은 특히 무거웠다모든 줄무늬의 노동자와 혁명가들은 다양한 "클럽", "사회", "위원회", "협회", "정당", "노동조합", 그리고 실제로 "코뮌"과 "협의회"로 조직하려고 시도했었다그 용어는 여전히 상당히 느슨했지만이미 어떤 종류의 독립적인 조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1848년 혁명의 여파로 맑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노동자그리고 무엇보다도 코뮤니스트」 동맹은 비밀과 개방 모두에서 노동자 당의 독립적인 조직의 창설을 위해 일해야 한다. ... 동맹은 모든 코뮌을 부르주아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와 이익이 논의될 수 있는 노동자 연합의 중심이자 핵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 [노동자들은지방 집행위원회와 평의회의 형태로또는 노동자 클럽이나 위원회를 통해 그들 자신의 혁명적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여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가 이 노동자의 지지를 즉시 상실할 뿐만 아니라처음부터 노동자의 전체 대중을 지지하는 권위에 의해 감독 되고 위협받는 것을 발견하게 해야 한다.”

(맑스와 엥겔스, 1850년 코뮤니스트 동맹 중앙위원회 연설)

 

여기서 "위원회", "평의회", 그리고 "클럽"은 모두 거의 서로 바꿔서 사용되지만그 메시지는 분명하다그들이 무엇이라고 불리든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을 필요로 한다노동자 운동의 성장과 함께이러한 용어 중 일부는 점차 새롭거나 더 특별한 의미를 얻기 시작했다. 1864년 국제노동협회(일명 제인터내셔널)가 결성될 무렵이미 경제적 투쟁과 정치적 투쟁 사이에 구별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을 노동과 자본 사이의 중재 기관으로 공식화하는 것다른 한편으로는정치조직이 의회 정당으로 변모하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인터내셔널은 그 격차를 없애려 했지만자본주의 자체의 발전으로 촉발되고 있는 경제적정치적 모순을 결코 해결할 수 없었다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계급투쟁에 의해 제기되었다.

 

1871년 3프랑코-프로이센 전쟁의 여파로 파리의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일어섰고그 과정에서 단명한 혁명 정부즉 파리 코뮌또는 더 정확하게는 프랑스로 알려진 공동체 평의회인 콘세일(conseil) 코뮌을 창설했다혁명 대대의 대의원들로 구성된 방위군 중앙위원회가 권력을 장악한 후공동의회에서 선거를 발표했다투표권을 가진 파리의 485,000명의 파리 사람 중 275,000명이 이 선거에 참여했다베르사유에 있는 권력자들은 대대적인 기권 운동을 조직했기 때문에유권자들은 필연적으로 봉기를 지지하는 노동계급 이웃에게서 나왔다평의회에 선출된 사람 중 소수만이 노동계급 출신이라 할지라도통과된 규약 대부분은 파리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소환 대상의 대리인들로 구성된 파리 코뮌은 집행 권한과 입법 권한을 모두 행사하면서 우리가 태초의 노동자평의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맑스는 당시에 그것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마침내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해결할 정치적 형태계급의 존재따라서 계급 지배의 존재에 놓여있는 경제적 토대를 뿌리 뽑기 위한 지렛대-를 발견했다.”

(맑스 1871년 프랑스 내전)

 

궁극적으로노동계급 민주주의에 대한 이 짧은 실험은 몇 주 만에 격렬하게 진압되었다그러나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노동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겼다.

 

사전의 러시아혁명 예행연습

 

그들은 러시아에서유명한 노동자평의회 또는 소비에트로 알려졌는데, 1905년 혁명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1870년대부터 러시아 제국 내에서 노동자 운동이 성장하고 있었다법적 권리가 없었고 억압적인 차르 정권을 마주해야 했던이 운동은 주로 사회주의 단체들에 의해 장려되고 파업위원회와 서로 부조하는 사회에 의해 유지되는 자발적인 산업 행동의 형태를 취했다노동자들은 고용주와의 싸움에서 단합과 연대의 필요성을 재빨리 인식했고자신의 요구를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대표를 선출했다. 1904년에 발발한 러일 전쟁은 사회적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고정통 사제이자 오크라나 정보원이었던 가퐁(Gapon) 신부가 이끄는 노동자들의 평화적인 행렬에 차르 병사들이 발포했을 때제국 전역에서 격렬한 계급투쟁의 물결이 일어났다이 대대적 파업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널리 논평하였고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언급했지만당시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노동자평의회의 중요성이었다트로츠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의 대의원으로 직접적인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소비에트는 모든 사건의 축이었고모든 실타래가 그것을 향해 달렸고모든 행동 촉구는 그것으로부터 발산되었다노동자 대표의 소비에트는 어떠했는가소비에트는 객관적인 필요즉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생긴 필요성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났다그것은 권위가 있었지만전통이 없는 조직이었다그것은 사실상 조직적인 기제가 없는 동안 수십만 명의 흩어져있는 대중을 즉시 포함할 수 있었다이는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혁명적 흐름을 통합시켰다그것은 주도적인 권력을 갖고 자발적인 자기 통제할 수 있으며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24시간 이내에 지하에서 꺼낼 수 있었다.”

(1907우리의 혁명트로츠키)

 

최초의 소비에트는 흔히 1905년 5월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Ivanovo-Voznesensk)의 볼셰비키 거점인 4만 명의 노동자 파업 중에 등장했다고 한다역설적으로노동자들이 협상을 더 쉽게하기 위해 직장에서 대의원을 선출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공장 조사관이었다다음날 110명의 대의원이 선출되었다소비에트는 본질적으로 개별 공장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파업위원회였다그것은 1905년 7월까지 존재했으며 군사 탄압폭동 및 활동이 고갈되었음에도 파업을 계속 유지했다이바노보-보즈넨스크 소비에트가 해체된 같은 달에이웃 도시 코스트로마(Kostroma)에서 또 다른 소비에트가 형성되었지만 몇 주밖에 지속되지 않았다그러나 파업 운동을 통합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05년 10월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소비에트가 출현한 것이다세 번째 회의에서는 96개 사업장에서 온 226명의 대표새로 결성된 노동조합의 대표들그리고 자문의 역할로 사회주의 정당들(멘셰비키볼셰비키사회주의 혁명가)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그것은 곧 자신의 논문을 출판하고 러시아 제국의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소비에트를 만들 수 있는 표지가 되었다. 1905년 혁명은 일부 지역에서는 고갈로다른 지역에서는 억압에 패배했지만노동자들에게 다음의 충돌에 필요한 많은 경험을 제공했다.

 

노동자평의회가 그 혁명에 전력투구한 유일한 단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동시에 혁명 정당 당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모든 종류의 협동조합노동조합문화사회 조직이 설립되었다진정한 혁명적 과정은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연합을 통해 일상생활을 재조직하는 실험을 하는 것을 항상 보게 될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어떤 조직이 계급 전체의 권력 행사에 가장 적합한가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

 

1차 세계대전은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처음에는 애국심의 열정에 부딪혔지만제국주의 갈등의 가혹한 현실은 곧 각 나라를 강타했다러시아 제국에서 노동계급은 마침내 시위파업봉기로 대응했다소비에트를 결성하려는 의지가 다시 한번 생겨났고노동자들은 파업위원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처음부터 혁명의 범위를 제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17년 2노동자들의 등 뒤에서 두마의 정치인들은 타우리데(Tauride) 궁전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임시 집행위원회를 결성했다차르의 붕괴에 직면하여그들은 러시아를 민주적 공화국으로 변화시키려 했다그러나 1917년 혁명의 이야기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를 그들 자기 대표로 채우고 러시아 제국 전역에 걸쳐 노동자병사농민들의 더 많은 소비에트를 창조함으로써그들 자신의 권력 행사를 위한 조직으로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1905년의 교훈을 배운 것은 부르주아지만이 아니었다소비에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레닌과 같은 혁명가들은 이미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성찰했다.

 

노동자 대표인가아니면 당의 소비에트인가나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며그 결정은 확실히 노동자 대표의 소비에트와 당 둘 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는 소비에트가 어느 한 당을 전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 대표들의 소비에트는 총파업을 통해파업과 관련하여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누가 파업을 이끌고 승리를 거두었는가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포함한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는 다행히도 소수이다. ...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불완전하고 유일한 "종이정보 덕분에정치적으로 소비에트는 임시 혁명 정부의 맹아로 여겨져야 한다고 믿는다.”

(레닌우리의 임무와 소비에트 동자 대표단, 1905)

 

나중에스위스에 있는 동안 쓰인 국가와 혁명에 대한 그의 준비 노트에서레닌은 맑스를 되풀이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낡은 ("기성품") 국가 기계와 의회를 노동자 대표와 그들의 수탁자의 소비에트에 의해 대체한다거기에 본질이 있다 !!”

(레닌국가에 관한 맑스주의, 1917)

 

레닌은 볼셰비키들 사이에서 이 강령을 위해 싸웠고곧이어 볼셰비키들도 소비에트 내에서 이 강령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볼셰비키들은 소비에트 조직에 참여했고소환권이 도입되어야 함을 주장했다그리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거리에서 외쳤다. 1917년 10월까지그 강령은 혁명적 노동자 다수파의 승인을 얻었고지금까지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았던 임시정부는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자체의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무너졌다.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 장악은 소련의 두 번째 모든 러시아 회의에서 비준되어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만약 10월 이후 처음 여섯 달 동안 소비에트 원칙이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다면내전 과정에서 전(지배계급이 외부의 군사적 개입의 도움으로 권력을 되찾으려 시도했을 때소비에트는 점차 공허해졌다고립전쟁기근 및 질병과 같은 객관적인 요인들이 그 배후에 있었지만주관적인 요소는 이 문제즉 소비에트의 중앙 집행위원회(VTsIK) 위에 인민위원회(Sovnarkom)의 창설인민위원회에서 나온 좌파 사회민주당은 정부를 남겨두고 떠나고코뮤니스트당」 선거의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등을 해결하지 못했다우리는 다른 곳에서 이러한 과정에 대해 광범위하게 글을 작성한 바가 있다()혁명 과정에서 소련이 된 소비에트 러시아는 1991년까지 "소비에트 공화국"이었지만소비에트는 1921년에 이미 빈 껍데기였다코뮤니스트당 안팎에서 방향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용감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7년 혁명은 쿠데타를 일으킨 스탈린과의 점진적인 퇴보로 패배했다.

 

오늘날 노동자평의회와 혁명가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우리가 지금 노동자평의회에 대해 간략한 정의를 한다면우리는 그들이 계급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만든 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 여기저기의 공장 또는 부문을 넘어서는 노동자들을 포함한다.

• 위임 및 소환의 원칙에 따라 조직한다.

• 공동의 목표를 향한 운동의 통일을 목표로 한다.

•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의 분리를 하지 않는다.

• 노동계급 전체에 의한 권력 행사에 적합하다.

 

물론 그러한 깔끔한 정의는 결코 현실을 완전히 묘사할 수 없다사실코뮌이나 소비에트는 항상 이러한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유사 기관의 보기는 말할 것도 없고그 보기는 다음과 같다.

 

• 독일헝가리폴란드우크라이나핀란드노르웨이 등의 노동자평의회 (1918~9)

•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 (1919~20)

• 중국의 코뮌과 파업위원회 (1925~7)

• 쿠바의 슈가 밀 소비에트 (1933)

• 스페인의 도시 및 농촌 집단 (1936~7)

• 베트남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의 노동자평의회 (1944~7)

• 헝가리와 폴란드의 노동자평의회 (1956)

• 프랑스이탈리아체코슬로바키아의 파업위원회 및 공장위원회 (1968~9)

• 칠레의 코르돈 (1972~3)

•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의 파업위원회 (1974~6)

• 이란의 슈라스 (1978~9)

• 폴란드의 공장 간 파업위원회 (1980~1)

• 아르헨티나 총회 (2001)

• 이란의 평의회 조직 (2021)

 

이러한 보기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철저하지 않으며그들 모두가 우리가 실제 노동자평의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록 그들이 그 이름을 취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모두 계급투쟁의 높은 지점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해 그들 자신의 계급 전체의 조직을 창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혁명가들은 이 과정을 지원하고 장려할 수 있지만그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러한 계급 전반의 조직에 혁명가들의 개입이 없다면다른 정치 세력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그들을 지배하고파괴하고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다 – 보기를 들어 독일의 사회민주주의(1918), 베트남의 스탈린주의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스탈린주의(1944~7), 심지어 이란(1978~9)과 폴란드(1980~1)에서와 같은 종교적 권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정치적 경향은 1920년대부터 반()혁명의 조류에 저항하려고 시도한 코뮤니스트 좌파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되었다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에서 추방된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연속성은 유지되었으며그 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서 재편성되었다그러나 더 광범위한 코뮤니스트 좌파에 걸친 노동자평의회의 역할에 대한 공통된 이해는 없다독일 코뮤니스트당에서 나온 평의회처럼러시아의 코뮤니스트당이 어떻게 당 독재를 창출하고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평의회를 자본주의 국가에 어떻게 종속시켰는지를 보면서노동자평의회는 정당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또한 이 견해에 대한 지지는 오늘날 아나키스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52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으로부터 분리된 보르디가주의자들과 같은 다른 이들은 결코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단일 정당에 의해 움직이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찬성하여 노동계급 민주주의에 전적으로 반대해왔다. 1945년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가입을 거부한 프랑스의 한 집단에 기원을 둔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와 같은 다른 이들은 노동자평의회와 함께 그리고 분리된 이행기 동안 다른 억압적인 기구가 존재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만약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성공적인 혁명 이후의 노동자평의회의 배타적 지배를 의미한다그것은 하나의 혁명적 조직이나 당의 통치가 아니다사실, 1917년 러시아와 1918년 독일의 평의회에서 보았듯이 당에 의석을 자동으로 할당하는 것조차 문제가 되었다다른 노동자들에 의해 계급 전체 기관에 의식적으로 위임되는 혁명가들은 계급에 의한 코뮤니스트 강령의 채택을 반영할 것이다그러한 상황에서그들은 자신이 위임받은 명령즉 코뮤니스트 강령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혁명 조직이 어느 한 시점에 평의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하고다른 시점에서는 소수를 확보할 수도 있다노동계급은 그것이 생동감 있게 하는 계급 전반의 기관 구성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계급 사이의 분위기가 혁명적 진로에서 멀어지는 것은 혁명가들이 그들의 임무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그러한 상황에서 혁명적 조직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에 집착한다면평의회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평의회를 위해 자신을 대체한다면혁명 과정은 모두 똑같이 반()혁명 과정에 기여할 것이다우리의 선배들이 말했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언제나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의 전투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그것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지 않으며심지어 정당에도누구에게도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의 정치 강령, 1952)

 

우리에게 있어서 이행기는 어떤 별개의 단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해체하는 과정이며자본주의적 사회관계는 노동자평의회의 지배 확립과 함께 즉시 시작되어 계급이 최종적으로 사라지면서 끝난다그 과정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노동자평의회의 창조적 활동 (그리고 평의회가 운영할 많은 다른 형태의 협회)에 의해 표현된 수백만 명의 노동자 사이에서 자기 주도권과 자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동시에혁명적 조직은 평의회 내에서 자신을 해산시킬 수 없다계급이 최종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그 역할은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돕고 코뮤니스트 조치의 채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계급 전반의 조직 형성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사상과 실천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의 시작에 불과하다국제주의자들의 혁명적 소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에 개입하려는 모든 개량주의적이고 순응주의적 경향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일단 계급이 인간 자체로 해체되면노동자평의회는 "그들의 정치적 성격을 잃고 사회의 진정한 이익을 감시하는 단순한 행정을 담당하는 기능으로 변형될 것이다." (엥겔스, 1872). 이전 지배계급이 다시 권력을 잡은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평의회가 채택하기로 선택한 억압적이거나 국가적인 기능은 그 시점에서 쓸모없게 될 것이다.

 

노동자평의회는 역사적으로 발견된 형태로모든 사람이 소환 장치를 통해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코뮤니즘/사회주의가 정치 엘리트가 지배하는 또 다른 경제체제가 아니라 계급 분열로 지배되는 이전 사회와 모든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라는 생각이다코뮤니즘/사회주의하에서는 여전히 문제(먼저 환경)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겠지만의견 차이는 다른 계급의 입장을 표현하지 않고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학)을 사용하여 모든 경우에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다소환 시스템의 장점은 이전 결정의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 다시 결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평의회 시스템에서 결정은 어떤 지역에도 강요되지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의 기본적인 요구로부터 성장할 것이다그리고 러시아혁명이 보여주듯평의회는 최종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장소가 될 것이며다른 많은 활동은 생산 단위와 이웃의 협동조합과 지방위원회와 같은 것을 통해 수행될 것이다.

 

만약 노동계급이 다시 한번 투쟁을 시작한다면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지구가 남아 있게 된다면그 결과로 광범위한 계급 조직이 출현할 것이다이들은 처음에는 파업위원회대중 총회 또는 지역 협회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그 이상이며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사회적정치적 주춧돌이 될 것이다미래의 노동자평의회는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다혁명가들이 계급투쟁의 필요에 따라 결정될 것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혁명가들은 모든 조직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코뮤니스트 강령즉 자본주의 지배의 전복노동자평의회의 통치계급 없는 사회로의 변혁을 위한 코뮤니스트 강령을 제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요컨대노동자평의회와 혁명조직은 모두 필요하며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2022년 9

다이바스(Dyjbas)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ㅣ 이명수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9-12/the-meaning-of-workers-councils-in-the-21st-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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