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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통일문화 >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
평양 고려의학(한의학)과학원을 가다
<연재>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 (32)
최재영 | sangbun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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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05: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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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조용기심장병원과 이웃하고 있는 고려의학과학원
▲ 고려의학과학원 본관 현판. [사진제공 - 최재영]
2014년 어느 따사로운 봄날, 나와 일행은 평양시 대동강구역 동문 2동에 위치한 ‘고려의학과학원(권영재 소장)’을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평양 인민대학습당처럼 북 고유의 전통건축 양식기법으로 지어진 본관 건물 두 동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고려의학의 메카답게 외형적인 규모가 상당히 실용적이며 웅장해 보였다. 광장과 주변 조경은 조화를 이루며 격조 있게 보였으며 정원 한편에서는 몇몇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의료진의 지도아래 환자복을 입은 채로 교정 훈련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담벼락 너머 주변에는 ‘김만유병원’, ‘조용기심장병원’ 등의 유명 병원들이 즐비했으며 북측 동포들은 이 대로변을 ‘평양 산원거리’라고 불렀다. 특히 고려의학과학원과 조용기심장병원과는 담장 하나 사이로 이웃하고 있었다. 조용기심장병원은 아동 위주의 심장전문병원인데 5.24대북조치가 취해지면서 공사가 무기한 중단되었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용기심장병원의 건축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던 서울의 어느 장로가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지금은 그마저도 완전히 건축이 중단되어 외형 골조가 흉물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담장 너머로 바라본 현장의 빛바랜 게시판에는 ‘연면적 2만 ㎡, 지하 1층, 지상 7층, 260개의 병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청사진만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청사진 안내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한숨만 나왔으며 나는 하루 속히 완공되기를 기도드렸다.
나와 일행을 영접한 관리의 설명에 의하면, 이 엄청난 규모의 과학원 건물을 짓게 된 계기는 1987년, 일본 조총련계 사업가와 경제인들이 발 벗고 나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기 때문이며 건립 이후에는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국립연구소의 형태로 운영된다고 했다. 초창기에는 ‘동의과학원’이었으나 1993년 무렵 김일성 주석에 의해 ‘동의학’이 ‘고려의학’으로 정식 개명되면서 ‘고려의학과학원’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 고려의학과학원 본관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고려의학과학원 산하의 연구기관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고려의학과학원은 크게 두 종류의 기관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고려의학(한방)으로만 환자들을 치료하는 ‘고려전문병원’이며 또 하나는 고려의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여 발전시키는 ‘연구기관’이라고 한다. 특히 고려의학과학원 산하에는 모두 50여개에 달하는 전문연구기관이 소속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특이한 사실은 비슷한 말 같지만 ‘연구소’와 ‘연구실’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연구소’와 ‘연구실’은 모두 13곳이라고 한다. 가장 활발한 연구소는 ‘고려의학기초이론연구소’, ‘전통약학연구소’, ‘침구연구소’, ‘전통고려의학내과연구소’, ‘전통의학외과연구소’ 등 5곳의 연구소이며 ‘민속의학연구실’, ‘고전자료연구실’, ‘진단연구실’, ‘의료기기연구실’, ‘생약연구실’, ‘한약연구실’, ‘전통의학치료연구실’, ‘비약물치료연구실’ 등 8개의 연구실이라고 한다.
이곳 연구소와 연구실의 의사들과 박사들에 의해 지금까지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향약구급방’ 등 10여 종의 고전서적들이 번역되거나 출판되었고 각종 고려의학사전이나 고려의약 처방전등 200여권에 가까운 고려의학 관련 전문서적들을 출판했다고 하니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의 의료진과 연구원들을 통해 고려의학은 계속 진보되어 발전하고 계승되어 있었다.
이곳 고려의학과학원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전국에 고려의학전문병원(한방병원)이 25곳이나 되며 각 시도에 산재해 있는 12곳의 의과대학에는 고려의학부가 정식 전공과목으로 개설되어 있어 이미 뿌리를 내렸고 그곳을 통해 고려의사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한다.
▲ 고려의학과학원 본관앞에 선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 고려의학과학원 담장 옆에 건축 중에 중단된 조용기심장전문병원. [사진제공 - 최재영]
천하의 명의 장도선 박사를 만나다
오늘의 참관 중에 가장 압권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장도선 박사를 직접 만나서 그가 진료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일이었다. 국내외로부터 ‘신의 손’이라고 일컫는 그는 75세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정해 보였으며 여전히 인민의사의 칭호를 들으며 왕성하게 진료를 하고 있었다. ‘인민의사’ 칭호는 수법치료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공로로 당과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그는 46년 동안 연마하며 체득한 수법치료 이론과 임상경험을 통해 그의 명성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오는 각종 노인성 질병, 뇌일혈, 뇌경색, 뇌출혈, 전신마비나 부분마비 환자들을 그 증상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고치고 있었다. 특히 그가 자주 사용하는 치료법 중에는 단연 안마법, 지압법이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었으며 관절운동법, 견인법, 척추교정법 등도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마침 필자가 참관한 이날도 많은 환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어 필자는 그와 변변한 대화조차 나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세상에 어떻게 의료기구나 약물을 전혀 쓰지 않고 맨 손으로만 환자의 질병을 깔끔하게 완치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연거푸 중얼거리며 놀란 마음을 속으로만 진정시켰다. 지금도 외국의 국가원수들이나 각계에 명망 있는 외국의 명사들과 해외동포들이 줄줄이 그를 찾아와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또한 기회가 되는대로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외국에서 초청을 하면 직접 방문해서 진료를 하고 온다고도 했다.
수많은 일화 중에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고려의학과학원이 위치한 건물 길 건너에 위치한 ‘김만유병원’의 설립자인 김만유 이사장을 완치한 사례라고 한다. 김 이사장은 양측대퇴골두 무균성 괴사로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인해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장 박사의 치료를 받고 다시 거짓말처럼 걷게 되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저런 무용담 같은 이야기가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장 박사에게 최근의 근황을 자세히 물으니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 외에도 지금도 여전히 수법연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공부하는 젊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꾸준하게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열정과 노익장은 식을 줄 몰라 보였다.
▲ 국의 참관객과 방문객을 맞이하여 홍보 영상물을 관람하는 영접실.[사진제공 - 최재영]
▲ 우리 일행에게 해설을 담당한 담당의사의 모습.[사진제공 - 최재영]
▲ 영접실 테이블에 놓여진 고려의학과학원 홍보책자.[사진제공 - 최재영]
▲ 해설과 안내를 담당한 남녀 고려의사들의 모습(필자 옆과 맨우측).[사진제공 - 최재영]
의료계까지 미친 5.24조치의 영향
휴식시간을 이용해 영접실에서 잠시 만난 장 박사와 의료진들은 한결같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에 평양에서 열린 '통일침뜸학술토론회'나 ‘남북 민족의학 학술토론회’가 중단된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낀 것은 5.24대북조치가 남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분야 뿐 아니라 의학계 까지 이토록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될 줄은 몰랐다. 하루 속히 5.24조치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기원했다.
또한 과학원의 의료진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가에서 고려의학을 전폭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면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민간요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완성하기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옛날부터 내려오던 민간요법들을 모두 수집해 자료화했고 이를 과학적으로 검토하여 증명하는 일들을 오랫동안 했다며 자신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평가하기도 했다.
이때 수집된 민간요법 건수는 무려 수만 건에 해당되며 이중 가장 가치가 있는 1만 건의 민간요법만을 선별 정리해서 오랜 기간 임상실험 작업을 했으며 약의 성분이나 약리작용을 치료법에 적용하는 연구도 병행했다고 한다. 이곳에 근무하는 학자들과 고려의사들은 고려약과 침, 뜸, 부항을 활용한 민간요법의 치료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체계화하는데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며 자신들을 회고했다.
이들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 완성된 연구 결과물들은 보건성에서 책자로 출판했으며 출판된 서적들은 의학도와 고려의사들뿐 아니라 일반 인민들에게도 널리 활용된다고 했다. 연구원들이 특별히 강조한 부분은 자신들이 전통의학과 민간요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했던 일이며 최근에는 고려약(한약) 위주의 제약공장도 많이 설립되고 있으며 각 일반 병원에도 양방(임상의학)과 한방(고려의학)을 병행하는 시스템이 이미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 복도에 걸려있는 조선의 온천과 약수 현황판. [사진제공 - 최재영]
▲ 장도선 박사가 자신의 치료 비법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장도선 박사가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필자가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장도선 명의가 근무하는 진료실 내부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장도선 명의가 근무하는 진료실에 걸려있는 경혈신경도. [사진제공 - 최재영]
‘의사들의 정성이 명약입니다’
우리 일행은 영접실을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중에 ‘난치나이실’이라는 간판이 보여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이른바 ‘난치병치료실’이었다. 웬만한 한자를 모두 섭렵한 나로서도 한글(조선어)로 적혀 있었지만 해독 불가한 어려운 단어였다. 60년이 넘는 분단 상황에서 남북의 언어와 용어가 갈수록 심화된 결과물들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필자의 주변에는 한의사가 많아서 어느 정도 한의학 기본지식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전 처음 보는 독특한 치료법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장 박사를 보필하는 어느 고려의사가 난치나이치료법과 광천요법에 대해 우리 일행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는데 나로서는 매우 유익하고 흥미 있었다. 나는 고려의사들 중에 가장 어른인 장 박사에게 다가가 수기치료법이 이렇게 완치율이 높은 비결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정성입니다. 우리 의사들에게 있어 가장 큰 비결과 무기는 오직 정성입니다. 제 책상 위에 있는 족자에도 걸려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의사들의 정성이 보약이다’라고 세로로 쓰인 붓글씨는 장 박사의 진료실뿐 아니라 모든 진료실 곳곳마다 걸려 있었다. 나는 병원내부 곳곳을 모두 둘러보니 앞으로 통일을 대비해 하루 빨리 의학 분야의 동질성 회복이 시급함을 절감했다. 가장 비근한 예로 남측은 ‘한의학’, 북측은 ‘고려의학’이라고 호칭하는 차이에서 오는 이질화된 간극을 무엇으로 메울지 걱정이 앞선다.
다른 분야보다 가장 최우선시 돼야 할 부분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학(의료) 분야이다. 하루속히 한의학과 고려의학의 공동 치료법, 학술교류가 시행돼서 통일 후에 벌어질 혼란을 사전에 방지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민간에서 내려온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한의학’, ‘고려의학’, ‘민족의학’ 이 세 분야가 서로 독창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일치를 이뤄 고유한 학문적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고려약과 침, 뜸, 부항 등의 민간요법을 전시한 전시실. [사진제공 - 최재영]
▲ 양방과 한방(고려의학)을 접목하여 치료하는 진료실 내부. [사진제공 - 최재영]
▲ 과학원에서 주도하여 발행하는 각종 고려의학서적들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민족의학 교류가 통일을 위한 기폭제가 되기를
이날 과학원을 참관한 소회는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하고 뿌듯했다. 북의 고려의학은 아직도 우리나라 북방지역의 한방(고려의학)에 대한 순수한 전통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제로 한층 심오하고 수준 높아 보였다. 또한 고려의학은 이미 인민들의 생활 속 깊숙이 실용적으로 뿌리 내리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북은 이미 전통적인 고려의학(한방) 검사와 진찰 등의 기초의료 행위와 동시에 서양의학(양방)의 장점도 적용하고 있어서 마치 양방과 한방이 합쳐져 새로운 독창적인 의학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일반 병원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치료 방식은 아직도 고려의학이 중심을 잡고 있었는데, 아는 ‘양방으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하는 양진한치(洋診韓治)’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확실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 직후 3년여에 걸쳐서 꾸준히 방북한 나는 평양과 지방의 의료시설들을 방문 할 때마다 반드시 고려의사를 정식으로 배치하여 고려의학 진료실을 필수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남에서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철저히 이원화되어 제한돼 있지만 북에서는 고려의학 의료진과 서양의학 의료진을 크게 차별하거나 구분하지는 않았다. 다만 북의 일반 주민들은 오히려 서양의학 보다는 전통적인 고려의학을 더 선호하거나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남측의 한의학보다는 북의 고려의학이 임상부분에 있어서 치료법이 많이 개발이 된 것 같았다. 평양의 여러 병원들에서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고려치료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려의학과학원을 떠나며 무엇보다 남측의 한의학과 북측의 고려의학의 만남과 교류가 시급하고 절실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통일을 대비하여 의학 분야의 동질성을 한 단계씩 만들어 가야하며, 이를 위해 남북이 손을 잡고 민족의학에 대한 공동조사, 기초적인 학술 교류와 임상치료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서양의학(양방)은 많은 재정자원과 시설들이 필요하지만 한의학(한방)은 우리 민족문화 자산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남과 북의 공동 관심사이며 공통분모가 형성되는 분야이다.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의 보건당국은 각각 지대한 관심을 갖고 화해와 협력의 기폭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일단 동질성을 갖추기 위해 가장 시급한 우선순위를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체계화하는 작업부터 시도해야하고, 이에 따라 남북이 합작하여 통일시대의 롤 모델이 되는 민족의학전문병원을 건립하기를 소원해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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