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고향마을 오일장, 진한 팥죽

굿놀이 마라톤 마지막 주자 터울림의 해보내기굿에서 팥죽과 막걸리가 제공된다고 한다.
팥죽...하면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우리 동네 장터는 매월 4, 9일이 붙은 날은 왁자지껄 질서있게 늘 그자리 그물건으로 장을 연다.
한 귀퉁이에 첩실이면서 알콜중독자인 남편과 자식을 키워야 했던 고달픈 삶의 무게를 진 친구 어머니가 여는 국수집이 있다. 파란 비닐로 벽을 만들고 삐걱거리는 긴나무의자에 마구 짠 테이블. 테이블 밑에는 물을 담아놓는 타원형의 큰 다라이..후후..
기웃기웃 장구경을 하다가 국수집에 들르면 어머님이 여름에는 국수와 묵종류, 겨울에는 국수와 팥죽을 끓여서 내놓는다.
어머님 손이 얼마나 큰지 세알도 큼직큼직하고 짙은 팥색깔이 침이 꿀꺽 넘어가게 만든다.
초등학교 4학년 까지는 세알이 너무 싫어서 요리조리 피해서 팥죽을 먹고는 세알도 쪽~빨고는 뱉어놓다가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곤 했는데,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팥죽의 진미는 찹쌀가루로 빚은 세알임을 알게 되었다.
장이 서는 날은 어김없이 점심은 친구네 국수집에 가서 친구랑 국수 한그릇, 팥죽 반그릇을 공짜로 먹었다. 가끔 옆자리의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니, 약국집 딸네미 맞제? 아이구야 우째 지할미랑 똑같노."라며 감탄사 연발이다. 쑥스러워서 입을 꼭 다물고 국수를 건져먹는 나.
우리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찾아서 부산으로 가기전까지 우리 동네 장터에서 콩나물을 팔았으니, 동네 어른신들은 콩나물 아지메로 기억하고 있다. 아..내고향은 우리 아버지의 외가이며 할머니의 고향이다.
요즘도 친구 어머니는 국수집을 하고 계시다. 가끔 얼굴을 뵙게 되면 시집 안가냐고 묻는다. 내친구는 어느새 애엄마가 되었으니까. 지금은 그저 "어머님 건강하시죠?" 엉뚱하게 말을 돌리면서 손한번 잡아본다. '에고..많이 늙으셨네..' 다음에 가도 그자리에 계시려나, 그 진한 팥죽 한그릇 먹을 수 있으려나..
(2001.12.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