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소와 앉은뱅이소’에 대처하는 공감의 자세



김기린 (장애여성공감 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비장애여성 활동가)




촛불집회에 가기 전, 사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간단한 세미나를 하면서 누군가 ‘미친소 싫소’라는 피켓이 몸서리치게 싫다고 말했습니다. 정신장애를 희화화하고 있는 ‘미친소’라는 말도 무섭고, 꽃을 달고 눈이 풀린 ‘미친’소의 이미지도 너무 불편하다고 말이에요.




육식동물에게 제멋대로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는 또 아파하는 소를 제멋대로 죽이고 있는 인간 자체도 무섭지만, 그런 소를 먹지 않을 권리만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백프로 동의하기도 어렵다고요.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자기 생을 살아갈 소와 돼지와 닭의 권리는 누가 고민하나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도 삼겹살 냄새에 흔들리고, 육식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우리도 반성하자는 얘기도 나왔고요. 아니, 이 모든 것은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닌가요.




이윤추구가 전부인 시스템 안에서 먹을 것을 공장에서 찍어내면서 무엇을 더 바라냐고요. 이 끝없는 탐욕의 연쇄고리에서 한우만 예뻐하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한우를 예뻐하는 게 한우를 많이 먹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엽기적인 발상은 또 어떻구요. ‘앉은뱅이소’라는 말은 어떤가요? 선천성 골이형성부전증으로 걷지 못하는 우리 R언니와 M언니는 ‘앉은뱅이’가 아니던가요?




덕분에 앉은뱅이로 검색해 보았더니 ‘앉은뱅이 용쓴다’ , ‘앉은뱅이 앉으나마나’등의 속담이 십여 개가 나오네요. 휴우- 얼굴이 화끈거려요. 예비군복을 입고 여성과 노약자를 지켜준다는 군인아저씨들은 어떻구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단독자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거리에 나서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생각을 담은 피켓을 여러장 만들었어요. - ‘미친소’는 장애편견을 강화합니다 - 보호는 통제의 또 다른 이름 - 우리는 예비군의 보호가 필요 없는 시위를 원합니다 - 육식을 멈추자, 탐욕을 멈추자 - 1%를 위한 정책을 멈추라 휠체어를 타고 수만 명이 모여 있는 거리로 나간다는 것은 비장애인이 거리 행진에 참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 지하철에서 모르는 타인에게 딱해서 어쩔 줄 모르는 시선과 빵, 사과 따위를 참으로 자주 받게 되는 우리인데 이날 지나가던 시민으로부터 받은 삶은 계란 한 봉지는 좀 남다르게 느껴졌어요.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만나는 시민들의 ‘힘내세요!’ 하는 응원도 조금 달랐죠. 휠체어만 지나가면 그림된다며 마구 찍어가는 언론사 카메라는 역시 부담스러웠지만요.




어쨌든 우리는 여자들뿐이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약한 중증장애여성들이 많은 집단입니다.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의 취약성을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것이 우리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어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아무 이유 없이 맞으면서 자란 언니,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고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 매달 수급권으로 받는 돈을 통장에 모으는 재미로 사는 언니,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는 것이 소원인 언니, 걸핏하면 어린아이 취급하고 반말하는 낯선 이들과 매일같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언니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차별만 사라져서는 택도 없습니다. 옆 사람을 괴롭히는 문제가 내일은 나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선견지명(?)을 가진 분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만든 피켓을 신기한 듯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요. 우리가 조금 더디고, 새로운 사람에 대한 낯가림도 심한데다, 지난한 논의와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공동행동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은 있습니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장애여성공감은 연대 공포(!)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반차별 공동행동에 믿음이 가는 이유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서로에 대한 애정을 업그레이드할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버려서인 걸까요. 집회 때 만난 우리와 같은 속도로 맞춰 걸어주던 그 깃발들의 마음을 느껴서일까요. 오래도록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연대체가 되기를 바래요. 물론 공감도 노력할게요.



http://chachacha.jinbo.net/bbs/board.php?bo_table=webzin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8/25 17:29 2008/08/25 17:29
Tag //

구원.

from monologue 2008/08/14 01:07

처음 타로를 배웠을 때

나의 별명은 구원이었다.

 

뒤섞여 있던 타로카드 중,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카드가

새 세상이 열린 것처럼 내 앞에는 내가 만지고 싶어하던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나중에야 그것이 '환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내게는 '구원'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를 '구원'이라 불렀고, 사람들에게도 '구원'이라 불러달라 했다.

 

구원해달라는 호소를 언제 해봤더라. 오랫동안 가슴에 묵힌 체증이 무엇을 해도 내려가지 않았을 때, 그 정지된 상태를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어서 만난 사람들, 그게 타로를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전혀 관리되지 못하는 기억들 속에서 조금씩 좋아졌던 나날들..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다른 한 쪽의 나를 다시 찾았다.

 

끔찍한 터널을 건너왔다.

다 오지도 못해, 이제 또 다른 터널에 마주한다.

 

이제는, 시시때때 내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구원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 어둠을 함께 딛고 이겨낼 사람들이

나에게는 구원 같다.

 

은희언니에게 연락해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8/14 01:07 2008/08/14 01:07
Tag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from the text 2008/08/10 00:40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신이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8/10 00:40 2008/08/10 00:40
Tag //

공백기

from monologue 2008/08/10 00:24

1.

이건, 나와의 투쟁이기도 하다.

내가 갖고 있던 관료성과 가부장성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되는 투쟁.

그리고 돌아봄은 항상 내가 상처를 입힌 무한한 사람들에 대한

일차원적 반성으로 되돌아오곤 했듯이

이 투쟁은 그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 자체를 공감하고 느끼는 과정들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야 하는

만만치 않은 숙고여야 한다.

그 어떤 깊이로도 설명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간의 나는, 그리고 당신들은 어떤 척도로

재단하고 깎아내리려 했던가.

 

 

2.

나는, 아주 많은 고통에 직면했던 많은 선배들의 고통을 버렸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매번, 매 순간, 무시하기도 하고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하고 도피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나만 아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 덕에 여러 선배들이 고통을 입었다.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조차 몰랐고, 무력했던 나날들을 보냈다. 그 땐 순간이라 생각했지만, 기억은 박제되어 늘 내 머리속을 짓누르곤 했다.

 

 

3.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한다.

그녀들의 삶 자체가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자기 존재를 딛고 일어선,

침묵과 날조와 위선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다는 것을 생각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삶과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들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데올로기가 참혹한 폭력의 결과로 오기도 했다.

받아서는 안 될 상처를 받고, 남겨서는 안 되는 흉터를 남긴다는 것,

사람들은 여전히 그래서는 안 된다 타박하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곱씹기를 좋아한다. 

이제라도 알아 천만 다행이지만 나 역시 그러했으니.

 

 

4.

당신, 아니 우리, 이제 함부로 '상처'에 대해 거론하지 말자.

사랑은 사랑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그냥 두어라.

이건 이 투쟁의 시작이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8/10 00:24 2008/08/10 00:24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