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가장 예뻤을 때, (1) 2008/08/10
  2. 공백기 2008/08/10

내가 가장 예뻤을 때,

from the text 2008/08/10 00:40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신이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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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0:40 2008/08/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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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

from monologue 2008/08/10 00:24

1.

이건, 나와의 투쟁이기도 하다.

내가 갖고 있던 관료성과 가부장성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되는 투쟁.

그리고 돌아봄은 항상 내가 상처를 입힌 무한한 사람들에 대한

일차원적 반성으로 되돌아오곤 했듯이

이 투쟁은 그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 자체를 공감하고 느끼는 과정들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야 하는

만만치 않은 숙고여야 한다.

그 어떤 깊이로도 설명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간의 나는, 그리고 당신들은 어떤 척도로

재단하고 깎아내리려 했던가.

 

 

2.

나는, 아주 많은 고통에 직면했던 많은 선배들의 고통을 버렸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매번, 매 순간, 무시하기도 하고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하고 도피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나만 아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 덕에 여러 선배들이 고통을 입었다.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조차 몰랐고, 무력했던 나날들을 보냈다. 그 땐 순간이라 생각했지만, 기억은 박제되어 늘 내 머리속을 짓누르곤 했다.

 

 

3.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한다.

그녀들의 삶 자체가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자기 존재를 딛고 일어선,

침묵과 날조와 위선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다는 것을 생각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삶과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들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데올로기가 참혹한 폭력의 결과로 오기도 했다.

받아서는 안 될 상처를 받고, 남겨서는 안 되는 흉터를 남긴다는 것,

사람들은 여전히 그래서는 안 된다 타박하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곱씹기를 좋아한다. 

이제라도 알아 천만 다행이지만 나 역시 그러했으니.

 

 

4.

당신, 아니 우리, 이제 함부로 '상처'에 대해 거론하지 말자.

사랑은 사랑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그냥 두어라.

이건 이 투쟁의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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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0:24 2008/08/1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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