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생각_펌 - 2004/11/16 14:31

사람은 참 간사한지라... 보육노조(준)의 하루주점 광고 실린 것이 기뻐 [일터]를 잡고 훑어보고 있다. 그 중에서 영화 이야기가 있길래 눈길이 멈췄는데, 영화 [귀신이 산다]를 보고 쓰여진 칼럼이었다.


귀신이 나오면서도 호러가 아닌 코미디라는 건 예고편만 봐도 알듯. 그리고 몇몇 관람자들의 "너무 지겨웠다"라는 감상평과 평론가가 준 모자란 별 개수를 세고 나면 이 영화와의 인연은 영원히 바이바이~!

 

그러나 [일터]의 칼럼이 들려준 영화이야기는 일반인이나 평론가가 들려주는 영화평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영화에는 10년을 벌어도 빚을 져야 겨우 섬 귀퉁이 집 한 채를 얻을 수 있는 대한민국 주택 문제의 현실과,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통해 해마다 수많은 인명이 죽어나가는 죽음과 골병의 조선소 노동자들의 현실이 담겨져 있다. 덤으로 현재 조선소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직업병 요양 투쟁의 단편까지도...

 

비정한 세상에 태어나 산 목숨이 아닌 죽은 자의 모습으로 영화의 조연이라는 자리에 잠시 얼굴 비춘 그들을, 바로 [일터]가 발견했다. 언제나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고민하고 살펴보는 자만이 볼 수 있는 한결같고도 참신한 시선.
이러한 시선이 존재하기에 건강을 잃고 직장을 잃고 가족을 잃고 목숨을 잃었던 자들의 의문이 밝혀지고 해결될 수 있다.



귀신이 산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신상도



“차승원은 역시 웃겼다. 하지만 영화는 정말 너무 한심해서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 괜찮다 싶던 영화가 되도 않는 설정에 기가 막히고 2시간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시간 더럽게 안 갔다. 너무 지겨웠다.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정말 초등학생용이었다.” (ID: kwave12, naver 영화게시판에서)

영화 <귀신이 산다>를 보고 나온 네티즌들의 비평은 험담에 가까웠다. 아마도 코믹영화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인 과도한 설정, 인위적인 해프닝, 현실을 도외시한 결론 등 다양한 문제들이 영화 비평가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에게는 조잡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귀신이 산다>는 영화 기획사의 엄청난 광고와 홍보 덕택인지는 몰라도 1달 동안 267만 명이 관람함으로써 흥행에 성공하였다. 비록 유치한 코믹 영화이지만 <귀신이 산다>가 담고 있는 비교적 진솔한 우리 사회의 문제인 ‘주택문제 (내 집 갖기)’를 배경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사랑, 더 나아가 귀신이 된 이후까지 이어지는 ‘사랑과 영혼’류의 사랑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거나, 한국 코믹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배우 ‘차승원’의 효과일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비평가들의 목소리와 일반 관객의 즐거움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3대를 이어온 셋방살이 설움에 ‘네 집을 가져’라는 아버지 유언을 인생 목표로 사는 박필기(차승원 역). 그는 낮엔 조선소 기사로, 밤엔 대리운전으로 일하는 소위 ‘투 잡스(two jobs)’를 뛰면서 결국 사회생활 10년 만에 대출에 융자까지 보태 거제도 바닷가에 이층집을 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 때문에 그 집에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던 귀신(장서희 역)이 집을 내놓으라며 싸우게 되는 것이 전체적인 영화의 줄거리이다. 물론 이런 코믹한 설정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예를 들어 내 집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박필기가 소유하고 있는 집을 재개발하려는 자본가의 탄압과 불법행위 등)은 우리 사회가 현재형으로 가지고 있는 소위 ‘불평등 사회구조’를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 코믹 영화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 매니아도 아닌 데다 1년에 영화 한두 편 보는 게 고작인 나로서, 영화에 대한 평을 한다거나 네티즌들의 영화평에 토를 단다는 게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순간 놀라고, 당황했던 점은 주인공 박필기가 일하고 있던 공장이 “죽음과 골병의 조선소”였기 때문이다. 박필기는 거제도 조선소에서 인정받는 현장 노동자이며, 영화 장면으로 추정해 보건대 아마 ‘탑재’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작업현장에서 추락하여 죽은 노동자가 귀신이 되어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매일 출근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저녁 일과 후에는 조선소 근처 선술집에 나타나 생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와 술잔을 같이 하는 등, 죽은 조선소 노동자의 귀신 생활이 평범하지 않게 나에게 다가왔다.

죽음과 골병의 공장 조선소!! 지난 1999년, 우연한 기획에 나는 마산창원거제지역의 9개 사업장에서 재해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들에 관한 연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거제도에 있는 굴지의 조선소 노동자들의 사망재해 자료 역시 노동조합의 도움으로 접할 수 있었는데, 당시 전체 연구 대상 25개 사망사례 중 15개 사례가 이 조선소 노동자들이었다. 압착, 추락, 폭발 등 잔혹한 형태로 사망했던 당시 사례들을 연구하면서, “한 척의 대형 배를 만들려면 억울하게 죽어간 노동자의 원혼이 필요하다”라는 현장 노동운동가의 피맺힌 토로를 잊을 수 없었다.

지금은 곳곳의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직업병 유해요인조사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지만, 불과 2년 전만 하여도 이 조선소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직업병 요양을 위하여 노동조합의 핵심 간부들이 구속되어야 했다. 근골격계 직업병 요양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거제도에서 멀리 서울 본사 앞까지 올라와 항의농성을 벌이고, 국회 안에서 항의 투쟁을 전개하다가 구속되고...
최근에 이 회사는 근골격계 직업병 요양자들의 요양기간이 적절치 않다는 가정 아래, 전문가에게 적정요양기간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여 노동계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직업병 노동자들이 적절한 요양기간을 넘어, 장시간 회사를 쉬게 되는 이유가 일하지 않고 놀고 먹으려는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논리로 직업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최고의 조선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매년 내놓라하는 기업들이나 국가가 배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어느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소위 ‘신화창조’의 기업인 셈이다.
그러나 이 조선소에서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추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영화에서처럼 코믹한 귀신으로 둔갑하여 2시간짜리 영화의 조연은 될지 몰라도, 개인의 목숨을 앗아가고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드는 노동재해의 피해자들이 매년 집단적으로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아니, 알고 있다고 하여도 불가피한 것으로 우리 사회는 받아들인다.

영화 <귀신이 산다>를 보러 아내와 함께 극장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새집을 산 어느 덜떨어진 놈과 귀신의 사투가 이 영화의 줄거리인 줄로 알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거제도의 아름다운 바닷가가 나타나고 장승포 뒷골목 선술집들이 화면에 보이면서, 조선소 노동자가 이 영화의 주인공임을 알았다. 10년 전 일하다가 떨어진 귀신 노동자가 매일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과, 저녁에 동료들의 술자리를 기웃거린다는 극의 설정이 너무나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이라는 점을, 이 영화를 보는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조선소 노동자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죽어가는 지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울산이나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베테랑 노동자들이 재해로 죽어간다는 노동안전보건 뉴스가 가십거리로 보수언론의 귀퉁이에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연재된다는 점이나,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노동환경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대책마련을 추궁하는 거들먹거림을 반복한다는 점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감독이 거제도를 배경으로 극을 구성할 때, 조선소 늙은 노동자 귀신을 등장시키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모두 이승을 떠나는 게 기본인데 원한이 사무치면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한단다. 그렇다면, 평생 육신을 바쳐 일한 노동현장에서 재해로 죽은 노동자들이야말로 이승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그 자리를 맴도는 원혼이 되는 게 필연일 것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이 조선소야말로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들끓는 귀신 공장일지도 모른다.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가 이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제목을 바꾸어 달고 싶다.

“거제도 조선소에는 정말 귀신이 산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http://kils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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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6 14:31 2004/11/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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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미 2004/11/16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앗! 이렇게 반가울때가...울 연구소의 글을 일케 마음 따뜻하게 읽어주시다니...감사합니다요~~~용 ^^

  2. jineeya 2004/11/16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미/앗, 연구소 분이 계셨군여...^^;; 글이 훌륭한게지요. 그냥 제게 전해졌을 뿐..^__^

  3. 뎡야핑 2004/11/17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저도 함 보고 싶네요 비디오가 나왔나 모르겠어요

  4. jineeya 2004/11/17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덩야핑/그죠?^^

  5. neoscrum 2004/11/18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노동자만이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6. kingdumb 2004/11/18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신이 산다에 이런 속내가 있다니...관심도 안두었었는데...정말 함 봐야겠어요...본다고 노동자분들의 깊은 속내를 제가 다 알지 못하겠지만 말이에요...

  7. stone 2004/11/18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여기에도 일터의 귀신이 산다가 있네요 저도 그 글을 읽고 다른 시선의 평론(?)이 맘에 들어서 블러그에 펌질을 해 놓았습죠..이번호 일터의 히트작인가부다~~

  8. jineeya 2004/11/19 0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eoscrum/아마도...자본가는 절대 못보겠죠?
    kingdumb/kingdumb도 노동자 같은데... 아닌가?^^
    stone/역시 같은 생각인 분이 있었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