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6/04/17 11:35

2004년, 만 47세의 나이에 작업실에서 좋아했다던 포도주와 재즈음반을 들으며 숨진 작가,

작가이자 해박한 이론가이면서 주류를 거부하는 활동가라 불리던 작가.

이름도 (태어날 때) 박철호 -> (미국에선) 박모 -> (한국에 돌아와) 박이소

라고 스스로 바꿔 불렀는데,

이름으로 통칭되는 자신의 명예 등을 이름을 지움으로써 완전히 버리는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나 보다.

 

그는 미국 체류 당시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 갤러리라는 비영리 대안 공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마이너 인저리의 설명문에는 '1.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수에 속하거나 이에 관심있는자', '2. 분쟁 또는 개도국에서 이민한 작가'를 환영한다고 적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마이너 인저리의 입구는 개성 강한 창고 주인의 작품 같다. 빨간 스프레이로 대충 적은 것 같은 간판과 네모 모양의 다양한 색상 무늬, 그 위에 검정 스프레이로 칠한 입구는 그들의 마이너 지향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전시관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모뉴멘타 미(monumenta me)]라는 이 작품은 내 키높이를 훌쩍 넘긴 성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위의 뾰족 탑들이 동화 속 그것을 연상하게 한다.

 

 

간단한 스케치들 속에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는데,

[MinJoong Art]라고 적혀 있고

부제로 'New Movement of Political Art From Korea'라고 적혀 있다.

 

 

박이소의 작품 중에는 그림 일기같은 작품도 있다.

1986년에 만든 [무제]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나는 그림 그릴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하며 자주 한심해 한다.'

이 글을 읽다보니 당시 작가의 운동(movement)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 살짝 배어나오는 느낌이다.

 

 

박이소는 이름을 지울 때 동시에 단식이라는 행위 역시 상징적으로 병행했던 것 같다.

리플렛 표지에 단식을 하면서 밥솥을 메고 어느 다리를 건너고 있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오각형의 자백]이라는 작품은 그가 단식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번 단식에 대해 어떻게 기술했는 지를 몇가지 분류로 나누어 적고 있다. 이는 같은 행위에 매번 다른 답변을 한 것 같아 거짓이면서도 답변 자체는 모두 사실이다.

단식의 오각형

단식일을 적고 있는데 1995.7.21 ~ 8.4 까지...  꽤 오래했네.-_-

저항적 자기 해체

'나의 몸을 소재로 삼은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의 속박(혹은 축복)에 잠시 반기를 들어본, 저항적이나 결국은 소극적인 자학'

자살 충동

'먹지 않기'에 대한 선택은 오히려 자신에게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자살 충동에 대한 예방 백신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신력의 승리

뭔가 자신에겐 예술가적 창조성 등등 보다는 정신력과 인내력이 다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를 강화하고 싶었다고...

건강론

건강하고자 하는 사치스러운 욕망

분노와 짜증

보스니아 사태와 같은 인간의 잔혹성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 나약함, 생존의 위태함, 가소로움에 대한 실존적 노여움'이며, 자기개혁의 의지가 뒤엉킨 것이란다.

 

 

그의 작품 중에는 1998년도에 제작되었다지만 7,80년대 분위기가 물신나는 작품도 있다.

[포럼 A의 뉴스레터 표지 디자인]은

맨위에 벽돌마다 '성실1','성실2' 라고 붙인 벽돌 더미가 있고,

중간에 벽돌이 쌓인 벽과 '열심히 노력하여'라는 글이,

맨 아래 꽃 모양과 '재능을 꽃피우자'라는 글이 적혀있다.

어찌나 구호적이고 계몽적인지 보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오늘]이라는 작품은 전시장 밖에 비디오 2대를 하늘을 향해 설치하여 태양의 움직임을 찍고,

전시장 안에서는 벽 한쪽을 잘라 눕히고 프로젝터를 통해 하늘의 모습을 보게 한다.

그야말로 실시간 하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참고로 실내는 조명이 있어 구름이나 하늘 색 등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오공계(五空界)]는 스테인레스에 동그라미 5개를 뚫고 나무합판으로 메꾼 작품인데,

작품 앞쪽보다 오히려 작품 뒷벽의 그림자가 더 재미있다.

 

 

[팔라야바다(Fallayavada)]는 작가가 설계해놓은 도면을 보고 그대로 재현한 작품인데, '하나의 선이 만들어내는 천개의 낭떠러지이며, 외부 세계와 연결된 틈, 우주로 통하는 작은 우물'이란다.

콜로세움 가운데 하늘에서 땅을 찍은 영상이 보이는데, 2006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작품의 경우엔 제부도 상공에서 찍은 땅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 작품은 10개의 조명이 출구쪽 벽에 집중 투사되면서 내가 나가는 길을 밝혀준다.

그리고 그 길의 끄트머리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평범한 말을 해서 충격받지 않으셨나요?'라고 적혀있다.

 

 

전시를 둘러보며 작가가 뭔가 확고부동한 세계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채찍질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은 재미있고 재치있어보이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무게감의 느낌은 이번 전시의 이름이 단테의 '신곡'을 풀어 쓴 탈속의 코미디라는 점에서 더욱 강화되었는 지 모르겠다.

작가를 생각할 때 잠시 피카소의 서글픈 광대 그림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단식 등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느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예술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기 위한 행위였다는 측면에서 삶의 고단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듯한 피카소 그림과는 좀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건 사실이다.

 

확실히 작가는 예술 추구에 대한 괴로움, 진정성에 대한 의문에 휩싸여 있던 것 같지만,

안식을 구하는, 정체성을 추구하는, 희망을 갈구하는 자였기에

포스트모던을 추구하거나 즐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 전혀 다른 활동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 사진출처 : 로댕갤러리(http://www.rodingallery.or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4/17 11:35 2006/04/17 11:35
TAG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jineeya/trackback/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