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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먹기

뻐꾸기님의 [유치원에서 발생한 무서운 일] 에 관련된 글.

난 밥을 빨리 먹는다.

입에 한 수저 떠넣고 몇 번 우물거리다 보면 입안은 텅 빈다.

 

내 식습관 때문에 우리 진서는 힘들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그리 천천히 먹는 쪽도, 적게 먹는 쪽도 아니지만

자기 서너 수저 먹고 있을 때 이미 밥그릇을 비운 애비의 눈치는

진서에게는 감당하기 어렵다.

 



난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만큼 말 실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feel 받기 전에는 말을 길게 하지도 않고

자주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진서는 아직까지 만만해서

애비 잔소리가 내 생각에도 좀 심한 편이다.

 

그러니 밥숫갈 이미 놓고 자기만 쳐다보는 애비를

진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 어디선가 이런 이야길 들었다.

 

'음식은 굉장히 많이 씹어서 넘겨야 돼요.'

(이 이야기는 무척 많이 들어 나도 이미 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게 어렵죠. 그럼 이런 방법을 써보세요. 우리나라 전통으로는 야단맞을 짓이겠지만

밥 한 수저 입에 넣고 책 한 페이지 읽고, 또 밥 한 수저 입에 넣고 TV 한 번 쳐다보고,

또 밥 한 수저 넣고 이야기 한 마디...... 이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오래 씹게 될꺼예요'

 

처음엔 마음 속에서 반발이 심했다.

지금도 진서가 TV 보며 밥 먹는 꼴이 보기 싫어 죽겠는데,

그래서 TV를 없애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있는데....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시간만 넉넉하다면 그게 뭐그리 큰 문젤까 싶다.

몸이 튼튼해 진다는데....

거기다가 요즘 읽고 있는 어린이 동화책-아주 감동적이라고 해서 읽고 있다-에서

묘사한 식사장면은 이렇다.

'아침밥상에서 넬레는 늘 미키마우스를 읽고, 아빠는 신문을, 엄마는 무슨 책인가를 읽습니다.'<휠체어를 타는 친구/보리>

 

이런저런 생각, 이런저런 문제....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 취미인 난,

별 쓸데없는 문제까지 다 끄집어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내 식습관을 진서에게 이식하는 것보다

진서의 식습관을 내가 배우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빈 밥그릇을  앞에 두고 진서와 진서의 밥그릇를 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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