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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6

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27
    가난의 이야기
    젊은바다
  2. 2005/06/24
    안산노동인권센터(1)
    젊은바다
  3. 2005/06/21
    배려할 만큼 용기 있는.....(4)
    젊은바다
  4. 2005/06/15
    싸움자리(3)
    젊은바다
  5. 2005/06/15
    마음이 편하려면 몸이 불편해야...(1)
    젊은바다
  6. 2005/06/12
    다 같다! 다 다르다!
    젊은바다
  7. 2005/06/10
    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젊은바다
  8. 2005/06/09
    영적 성숙 - 내 마음 섬김
    젊은바다
  9. 2005/06/09
    Walter Crane, 만화적인 또는 풍자적인-그리고 현실가능한 상상
    젊은바다
  10. 2005/06/05
    바다를 보다
    젊은바다

가난의 이야기

* 민중언론 참세상[비정규연대회의, "더는 면담 요구할 일 없을 것"] 에 관련된 글.

* 민중언론 참세상[노동운동 탄압의 도구로 전락한 근로복지공단] 에 관련된 글.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들려지지 않는 목소리

 

보려 하지 않거나

보여지지 않는 모습들

 

다가가지 않거나

다가갈 수 없도록 에워쌓인 사람들

 

날마다 곁에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를 끌어안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의 이야기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의 삶이 자유로워 지도록만 이용되었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자유로워진 오늘,

가난의 이야기,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는

배부른 저녁상을 물린 한가로운 저녁시간에,

TV가 보여주는 만큼만,

딱 그만큼만 보면서

안타까운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그만인

처량맞은 드라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들리지 않아도 외치고 있고

보이지 않아도 꿈틀대고 있고

다가가지 않아도 가까이 다가오고

안아주지 않아도 큰 가슴으로 덥석 끌어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

 

TV 밖에서 그 이야기를 만날때 마다 내 삶은,

자꾸자꾸 새로워 진다.

내 피는 다시 뜨거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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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노동인권센터

1년 넘게 뜸을 들이다가 년초에 회원이 된 안산노동인권센터 후원의 밤에 다녀왔다.

회원 가입할때 만난 분들 말고는 아는 분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얼굴만 알고 지내거나, 인사를 한 번 나눴거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그리고 알고 싶었던 몇 사람과도 인사를 나눴다.

 

또 몇해전 새만금 삼보일배에 만난 머리긴 환경운동 활동가도 다시 만났다.

제대로 인사 나눈 적도 없이 먼발치에서 몇차례 눈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인데

기억해 주는 눈빛이어서 고맙다. 우리 달 진서도 알아보며 반가워 해준다.

이 활동가의 안내를 받으며 오늘 행사에 강연을 하러 오신 문정현 신부님도

가까이서 다시 뵙게 되니 반갑고 즐겁다.

 

그리고 서울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며 스치듯 보았던 인권운동사랑방의 박래군 선생도

안산에서 보니 뭔가 남다르다.

마치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오랜 만에 만난 기분이다.

 

작게나마 활동에 대한 결심과 기대를 가지고 회원이 되었지만 안산노동인권 센터는

아직 낮설다.

내가 게으르거나 다른 일로 바쁜 탓도 크다.

마음 한 번 먹으면 참가할 만한  정기 집회가 한 달에 두세차례는 있는 것 같은데

오늘이 두 번째 참석이다.

 

이제 인사 나눈 사람이 몇 명 더 늘었으니

그만큼 더 익숙하게 자주 함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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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할 만큼 용기 있는.....

 

 

 

위 표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에서 따온 것이다.

이해 하겠는가?

 

나도 이기고, 상대도 이기는 '승/승(상호이익)'을 추구하라.

그것을 위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용기'와

상대방에 대한 '높은 수준의 배려'가 필요하다.

 

대충 이런 말이다.

 

덧붙이고 싶다.

 

용기와 배려는 따로 떼어서 이야기 할 수 없다.

 

진정한 용기는 가슴 넓은 배려를 품고 있고,

진실한 배려는 용기있는 사람 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이다.

 

 

누가 썼고, 무엇 때문에 썼고, 누가 무엇 때문에 읽느냐에 따라

책에 대한 가치판단이 제각각일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아주 훌륭하게 읽힐 수도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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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자리

알엠님의 [간단히] 에 관련된 글.

 


 

'전선(?)'에 선 사람들은 남다른 헌신성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소수일 뿐이다.

그들이 그곳에 서있는 것, 그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더이상 그곳만이 싸움의 자리는 아니다.

싸움을 피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자기 서있는 그곳이 싸움의 자리다.

 

그래서 굳이 전쟁터에 비교한다면 소수의 헌신성이 서있는 자리는

'최'전선 정도로 이야기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억지로 쫓겨나거나,

두렵고 떨려서 피하거나,

삶에 못이겨 포기하거나,

그렇게 최전선을 떠난 우리(그저 민중)들은 

자기 자리에서 날마다 지지만,

또 그 자리에서 내일 이길 것을 날마다 꿈꾼다.

 

전선이 앞인지 뒤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기 서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그저 민중)들이 올바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우리(그저 민중)들이 끝까지 지치지 않고 싸워낼지,

그것이 우리의 내일을 결정 짓게 될 것이다.

 

더하여 그 최전선을 밀고 당기는 역할도 이제는 우리(그저 민중)들의 몫이다.

우리(그저 민중)에게 기대지 않은 최전선의 사람들은 모두

엉뚱한 고지에 올라 깃발을 휘두른다.

물론 늦게라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는 더러의 사람들은

'어? 여기가 아닌가벼!' 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런데 도대체 그 최전선은 어디일까?

있기나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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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하려면 몸이 불편해야...

정기적으로 서울 나가는 날...

안산에서 종로 5가까지,

전철...

 

보통은 4호선으로 서울역까지

그리고 다시 1호선으로 종로 5가 까지 가는데

왠지 오늘은 고민이 생긴다.

사실 시간이 조금 모자란듯 해서...

 

금정역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1호선과 4호선.

역 수도 그렇고, 아마 시간도 1호선이 빠를 것 같다.

그러나 알면서도 항상 서울역에나 가서 갈아타는 이유는

내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날은 별 고민없이 앉아 가는 것을 택하는데,

오늘은 시간 때문에 고민이 된다.

금정역.

사람들이 내리고 건너편에 미리 와서 서있는 1호선이 보인다.

일어서지 못한채 잠시 또 고민...

 

'에이, 몇분 차이 나지 않을텐데, 뭐...'

 

앉아갈 것을 결정한다.

그러면서도 건너편 1호선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바라보고 있는 출입문으로 할아버지가 들어오신다.

곧장 내게로 걸어오신다.

 

눈이 마주친 이상 별 수 없다.

벌떡 일어났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

 

'어차피 서서 갈꺼면 1호선으로 갈아타자!'

 

그러나 출입문 스르르...

 

 

때늦은 후회를 하며 장시간 서서 갈 채비.

 

오늘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난히 많다.

내가 서있는 바로 옆에 칠순은 훨씬 넘겼을 할아버지가 서신다.

 

뭐 항상 나도 그랬듯,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고개를 내려뜨리고 있거나 내려뜨린다.

 

모처럼 자리를 양보한 거만함으로 그들을 본다.

고단한 얼굴의 할아버지도 함께.....

 

참 재미있는 모습니다.

내가 서있는 앞자리의 잘생긴 청년은

금방도 눈을 말똥말똥 거리고 있더니

어느새 고개가 심하게 꺽여있다.

 

저 마음, 나도 안다.

잠이라도 빨리 들었으면 하는 바로 그 마음.

보아하니 마음도 여리게 생겨서

잠 들기도 힘들 것 같다.

그 마음.... 지옥이리라.

뒤늦게 일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게 또 더 민망할 것 같아

감은 눈을 한 번 더 질끈 감으리라.

 

이야기 해주고 싶다.

 

"어이, 학생, 지금이라도 일어나면 마음은 천국이 될꺼야!"

 

 

그 옆에 아저씨... 그 옆에 아줌마....

어쩌다 눈을 살짝 떠도

여전히 서계신 할아버지를 손등 주름으로만 확인하고 얼른 눈을 감는다.

 

별 수 없어 양보해 놓고

내 마음은 콧노래를 부른다.

 

'몸이 좀 힘들면, 마음이 편한 법이야!'

 

눈만 감고 있든,

그러다가 진짜 잠이 들었든,

어쨌든 고개 숙인 사람들 마음은

과거와 미래의 공범으로서 남몰래 웃어줄 수 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 바로 앞에 앉아있던 그 아가씨,

눈 감는 척 한 번 없이 깔깔대며 수다떨다가

서울역에서 나와 함께 내린 그 아가씨.........

 

정말 무슨 마음이었을까?

 

금정에서 서울역까지....

만만치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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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다! 다 다르다!

다르다!

틀리다!

 

이것 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다 같다!

우리는 다 같다!

 

그런데 우리는 다 다르다!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다 같다.

더불어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하나 하나 다 다르다!

 

그냥 우리는 다 다르다!

그냥 우리는 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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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황우석의 연구는 비판적 감시의 대상에서 국가적, 민족적  추앙의 대상이 된 것 같다.

일부 시민단체와 극소수 언론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매우 조심스러우며,

직접 대면할 기회도 없다.

 

꼭 한 번 읽어볼 글이다.

 

길지만 정말 꼭! 읽어보시라.

 

 

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 강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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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숙 - 내 마음 섬김

이 글은 김규항 님의 '자본주의와 기독교' 에 관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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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숙 - 김규향님의 표현대로라면 '내 마음 섬김'-은 개인의 문제이다.

내 치열한 기도와 성찰로 내 내면이 성장해 가는 것이다.

또 그것은, 무언가를 해야하는, 하고 있는 나를 지켜주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예수도 그것을 위해 홀로 기도하는 많은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 신앙이 그렇듯,

기독교 역시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몸부림이다.

삶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개인의 복을 구하는 기복적 기독교는 도리어 이러한 신앙의 근본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영적 성장-내 마음 섬김-을 목적으로 하는 기독교는

종교, 신앙의 근본과 멀어지고 있다.

 

사회적인 모든 현상을 대하는 계급적 관점이 분명히 존재하듯,

종교 - 기독교를 대하는 계급적 관점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돈과 그것이 만들어 준 폭력적 힘으로 자기를 구원할 종교로

기독교를 이해하고 그렇게 신앙의 규범을 만들어 가는 계급이 있고,

가난과 그 가난으로 인해 겪여야하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기를 구원할 종교로

기독교를 이해하고 그렇게 또다른 신앙의 규범을 만들어 가는 계급이 있다.

 

이 사이에서 영적 성숙은 그저 각 계급의 신앙을 좀더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그 실현을 위해 좀 더 치열하게 살아갈 내적 힘을 길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걸 분명히 하지 않는 영적 성숙 - 내마음 섬김은 돈과 폭력으로

민중에게서 기독교를 빼앗은 계급의 신앙 규범을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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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Crane, 만화적인 또는 풍자적인-그리고 현실가능한 상상

바다를 보다

주민운동 트레이너 교육훈련 과정 가운데

숙박 교육으로 대천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

 

볼 때마다 설레이던 그 바다...

 

 

또 새롭게 본다.

그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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