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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 하늘

대추리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교회가 모여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데

그 김에 다녀왔습니다.

 

해방

생명

평화

자유

그리고 부활,

 

 

뭐 그런 것들.......

 

그러다가 올려다본 하늘,

그러다가 올려다본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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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인가?

'국민이 경악할만한 비리를 폭로하겠다.'

'억지스러운 폭로, 도리어 역풍!'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지들끼리 짖고 까불면

우리는 '멍, 멍' 꼬리치며 따를 줄 아나 봅니다.

 

2년 전 이맘때도 비슷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었군요.

지들이 바람 불고 우리는 그 바람에

주책없이 팔랑거리기만 하는 수수깡 바람개비 정도로 여기는...

 

 

날짜 : 2004.04.06

 

 

"대구에는 한달새 세번 바람이 불었다"
[대구 현지 총선 르포] 탄핵-박근혜-정동영




이런 제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난 거지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전문 정치꾼들이 국민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군요.


보수적인 국민들은 그들대로,

진보적인 국민들은 그들대로

자기의 표심을 가지고 있는 건데....

전문 정치꾼들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표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군요.




"이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정해져 있던

국민의 마음이다! 이 놈들아!!!"



"지역주의! 탄핵! 일당독재! 대표교체! 삼보일배!........."

이런건 사실 전문 정치꾼들이 지들 살자고 만들고,

지들 살자고 반대도 하고,

지들 살자고 후회도 하고,

지들 살자고 선동도 하고,

그런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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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도 안되는데....

안산 와동의 할머님들은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이십니다.

 

그 만남 이제,

3년을 채워 가네요.

 

 

 

날짜 : 2004.04.01

 

 

소주병이 30원,

맥주병이 50원.


아침에 챙겨나간 빈병을

목사님과 함께 할머니께 건넸습니다.


소주병이 스물댓개,

맥주병이 두개.........


다 더해도 850원......


할머니는 두손 모아서 머리를 숙이십니다.

죄송하고, 민망하게 몇번씩이나 머리를 숙이십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주으러 다니고,

때론 이렇게 조금씩 얻기도 해서

하루 몇천원 벌이로 살아가는 노인네들.....


자기 몸 뒤척이기도 힘든 삶에

아들네가 버린 손주까지 등에 진 노인네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는 하루는

이제 한 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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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희만

 


 

70년대 부터 기독교 청년학생들의 사회운동을 이끌어온 단체의 활동가들.

이들이 희망을 조직하는 대중조직가로 거듭나기 위해 선택한 교육훈련.

 '기독청년학생 희망만들기'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 위상이 사무국 실무자 또는 개인 활동가로 변해가고 있다.

출렁거리지 못하고 고여있는 사회운동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몸을 망칠 만큼 여전히 일은 많지만,

그 끝엔 언제나 한숨과 슬픔이 찾아온다.

 

역동적인 힘을 되찾고 싶어 안타까워 하던 이들 활동가들이

그 원인을 자기들 자신으로부터 찾겠다는 용기있는 결정을 했다.

 

사회가 변했다고....

사람이 변했다고....

주위를 탓하며 굳어져만 가던 자신의 몸과 머리, 마음을 돌아보며

그 몸과 머리, 마음으로부터 다시 희망을 만들어 가려 애쓰고 있다. 

 

뜨거운 가슴으로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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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하다

집에 일이 있다고 제주도를 다녀온 후배,

30년-아마 후배가 막 아빠에게 말을 걸기 시작할 무렵부터인가 보다-을

당뇨와 함께 사셨다는 아버님이 중환자실에 계시단다.

 

그런데 후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터로 돌아왔고,

또 프로그램 준비로 바쁘다.

 

찬찬히 표정을 살핀다.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라

넋이 반쯤은 나간 표정이다.

 

지나가듯 후배가 말한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꼭 필요한 치료가 있지만

그 치료 와중에 쇼크사 하실 수 있다고,

그래서 치료를 포기하고 그만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어머니와의 통화를 담담히 전하는 후배....

 

말리지도

위로하지도 못하고

그저 덩달아 담담하게

일을 이야기 하는 나와 동료들...

 

그렇게 돌아선 걸음이,

영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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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미숙하게........그렇게.......

2002-02-05

 

 

 

나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자신감일까요?

 

이제 저는 마흔을 목표로 달려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김광석보다 양희은을 더 좋아하게될 나이가 된 것이지요.

 

서른다섯이 되기 전..........

그러니까 이삼년 전에는 낮선 모든 사람들이 두렵더군요.

나도 모르게 그 모든 낮선이들은 나보다 다 어른 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알고 보면 가마득한 동생들인데도 말이죠.

 

그러던 것이, 이제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차츰 벗어나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낍니다.

 

나이에 대한 컴플렉스였을까요?

아니면, 아직도 '학생'이라고 오해하는 내 외모 탓이었을까요?

그도 아니면, 그저 나 스스로가 자꾸 나를 작게만 생각한 탓일까요?

 

어느 하나로 답하기 어렵군요.

아마 어느 하나로 답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지요.

 

그럼,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요?

내 아이가 또렷한 말로 나와 의사를 나눌만큼 자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늙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그도 아니면, 모든 것에 이제 익숙해지고 있는 걸까요?

 

이것도 하나로 답할 수 없겠지요?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이도, 외모도, 개인적인 자신감도,

그리고 내 아이도, 익숙함도..........

모두 나를 어쩌지 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아니 그런것들을 무기나 방패 삼아 나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고마운 아내의 노래 가운데 이런 제목을 가진 노래가 있죠.

 

'여리고 미숙한 나의 인생'

 

내 아내는 말로는 벗어나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 인생에서

내가 보는 것보다 훨씬 큰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남을 아픔을 주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자주 상처투성이로 들어와서 나와 우리 아이에게는 짜릿한 아픔을 주긴하지만.

 

 

그래서 나도 내 고마운 아내와 함께

여리고 미숙한 우리의 인생을 그냥 살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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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못할 자유

2002-01-25

 

 

 

어제 저녁엔 중학교때 음악선생님의 시어머니 장례식장에 다녀 왔습니다.

 

성내동인지, 풍납동인지에 있는 중앙병원 영안실이었지요.

 

좋더군요.

 

왠만한 지방 종합병원 크기의 건물에 아주 멋들어지게 지어진 영안실........

 

지지난주에 저희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큰아버지는 국가가 운영하는 보훈병원 영안실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물론 새 건물을 지을 동안이라고는 했지만

 

컨테이너 박스를 이층으로 쌓아올려 만든 영안실은 좀 서글펐지요.

 

 

이런 생각 해봅니다.

 

예전에는 부유하고 깔끔한 사람들이

 

가난하고 추래한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피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이제는 궂이 피하지 않아도,

 

태어나기 전부터 죽은 후 까지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고 살 자유를

 

서로가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지요.

 

왜 서글퍼지는 걸까요.

 

부유한 사람들은 기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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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날짜 : 2003.04.02

 

 

결국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밤과 낮도 없이

때론 목숨까지 내놓고서 반대했는데..........


국회 앞에 모여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결심합니다.

내 몸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아니, 그 뒤에라도 영원히........

반역의 무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정말 주민증을 반납 하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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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에너지로 남기

날짜 : 2003.04.02

 

 

 

당신이 만일 우주를 에너지의 창고로 보면,
그때엔 에너지의 관점에서 절대로 아무것도 죽지 않는데,
왜냐하면 에너지는 소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로서의 당신은 언제나 여기 있을 것이다.
............(디팩 초프라 - 마법사의 길 중에서)

중학교에 갓 입학 하고서 였던 거 같습니다.
죽음.......
나라는 존재가 언젠가는 사란진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도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게 아파왔습니다.

증상은 사라졌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진 형태대로 나의 존재를 규정짓는 못된 버릇만 고치면........
나 자신을 에너지 덩어리로 인식하기만 하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니, 나는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언제나 여기 있다고 합니다.

더많이 두려워 졌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이렇게 무책임하고,
이렇게 이기적이고,
이렇게 제멋대로인 내 존재가
영원히 여기에 있다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에너지로 나를 이곳에 계속 남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착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어차피 남게 될 에너지라면 좋은 에너지로 남아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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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 밥 지으러 간다

2002년 03월 19일

 

민주당의 노무현 고문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앞서서 이 나라 대통령감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분주한 모든 분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한다.

그분들이 항상 이야기 했듯, 나 역시 이회창 대통령을 모시고 사는 것 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몇곱절 이상으로 좋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회창이 되는것 보다는 노무현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허나 이렇게 노무현 고문의 지지율이 높아져 가면서 어쩔 수 없는 나의 염려병이 도진다.

'어허, 이러다가 진보진영 지지층까지 다 노무현으로 돌아서서 또 진보진영은 개죽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여기에 또 노고문 지지자들이 쐐기를 박으려 들 것이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고 우리 함께, 될 사람을 밉시다.'

나 역시 현실 정치인 가운데서는 노무현 고문을 그래도 가장 맘에 들어 하는 사람으로서, 내 한표에 대한 적지 않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혹시라도 나같은 사람들이 찍어주지 않아서 진짜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또 이렇게 생각하며 나의 선택과 판단을 확신한다.

"진보진영과 그들을 지지하는 민중들의 존재야 말로 이 오욕의 땅에 제한적이나마 민주정부, 국민의 정부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나의 확신으로 삼고 있다.

같은 민주당의 대통령 수험생 이인제 후보가 노고문을 향해 오늘도 이렇게 떠들고 있다.

'파괴적 개혁주의자'

이걸 망국의 색깔론이라고 이야기하며, 노고문 지지자들은 분개하고 있다.
언제나 이 색깔론 때문에 이 사회가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옳다. 지나친 반공이데올로기,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빨리 민주화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그래서, 노고문은 이렇게 응수한다.

'나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이어갈 것입니다.'

김대중 정도만 개혁하지, 그보다 더 심하게는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물론 극성스러운 김대중 팬들을 의식한 측면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화 의지를 번번히 꺽었고, 지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앞으로 본선 경쟁에 들어가면 더 한층 기승을 부릴 색깔론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로 인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정면돌파를 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 생명을 이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빨간색이라고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빨간색이 어때서! 그럼, 그림을 파란색으로만 그리니?!'라고 당당하게 되묻지 못하고, '아니야 난 빨간색이 아니야!!'라고 강변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아직도 빨간색을 두려워하는 사회로 남아있다.(사실 요즘 때아닌 반미열풍에 휩싸여 있다지만 그것이 제대로된 한미 관계로까지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 빨간색 공포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을 진짜 빨간색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면 그건 또 그들 나름대로 이유있는 변명일 수 있겠다.

어쨌든 이들이 자신을 빨갛다고 믿건, 그렇지 않든 새깔론을 잠재우거나, 추방하는데 이들이 한 역할은 조금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이 빨간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들 역시 빨간색을 경계하거나, 심지어 적대시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 이들도 필요할때는 색깔론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들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들이 그토록 염려하는 색깔론은, 자신의 실제 색과 무관하게 다양한 색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부의 합리적인 사람들과 또 자신의 색을 당당하게 드러내 놓고 그 색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대다수 진보진영에 의해서 극복되어지고 있고, 결국엔 그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설사 다된 밥(생각해 보니 그 밥은 노고문과 그 지지자들의 밥이지 내 밥은 아니다)에 코를 빠뜨리는 한이 있어도, 내가 지금껏 지지해온 진보진영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될 사람을 밀어주는 엄청난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밥 지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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