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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민영화 - 한국노총

민중의소리

 

“지식경제부 장관이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할 때 최대한 노동계와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24일 기자들과 만나 “공기업 민영화는 노사정 협의를 통해 추진돼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특히 한나라당과 맺은 정책연대를 공기업 민영화와 연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정책연대는 한국노총 조합원이 선택한 것이고, 위원장은 이를 경영할 책임이 있다”면서도 “지금까지는 정부에 협조적이었지만 앞으로 태도를 봐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작심하고 추진하는 것 같다”며 “다음주부터 공공부문 대책위를 가동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협의하겠지만 이해시키지 않고 강행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연대 추진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서는 에둘러 섭섭함을 표시했다. 장 위원장은 “정책연대라는 단초가 마련됐지만 지지부진한 게 사실”이라며 “정책협의기구를 가동하고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5일부터 6박7일 간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일본 순방길에 동행한 것을 두고 그는 “비판받을 부분이 있으면 받겠다”며 “전 집행부부터 해왔던 일이고 국익 차원에서 다녀온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경제살리기에 동참한 것”이라며 “한미FTA를 측면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는데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장 위원장은 “일본노총 위원장을 만나 한일FTA 추진이 구체화하면 공동대응을 모색기로 얘기를 나눴다”며 “오는 7월 일본노총 위원장이 방문하면 구체적인 논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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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민영화대안-사회연대전략 & 노힘 사회화전략

사회연대전략 찬반 논란 재연

[사유화반대토론회] 정태인·오건호 vs 우석균·김동수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8년04월28일 9시34분

25일 '반사유화 운동 평가와 향후 연대운동 토론회'에서 가장 큰 논란은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민주노동당의 저소득계층 국민연금 지원방안, 진보신당의 2,00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통한 노동시간-일자리 연대 및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지급능력 취약기업의 고용보험기금 지원방안 등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됐다.

홍석만 진보전략회의 운영위원은 “이 같은 사회연대전략의 핵심은 국가와 자본이 지급해야 할 비용을 고임금 노동자가 대신 지급하는 것”이고, “저소득층 국민연금 지원방안의 경우 일정 소득 이상의 노동자의 국민연금의 일부를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것”이며, “노동시간 상한제의 경우 야근을 줄이더라도 누군가는 야간노동을 대신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며 임금, 연금, 노동시간을 상위노동자가 ‘지급’하는 방식은 노동자 간 연대라기보다 일종의 ‘시혜’에 가깝다며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정태인 경제평론가는 이에 대해 “사회연대전략 문제는 일방적인 시혜나 노동자끼리 돈을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사회연대전략의 모범으로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도를 들었다. 정태인 경제평론가는 “스웨덴의 연대임금은 대기업이 흥하는 문제에 대해 노동시장 정책, 교육 정책 등을 만든 것으로, 진보신당의 사회연대전략은 아직 이런 거시적인 고민이 없다”고 대꾸했다.

계속해서 정태인 경제평론가는 사유화 반대 투쟁 대안과 관련 “가격정책의 측면에서도 제고가 필요한데, 안보재(식량, 에너지 등)는 너무 소비를 많이 한다”며 1인당 에너지 소비, 물소비 세계 1위 수준의 문제를 거론했다. 현재 소비를 줄이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공기업의 소유와 운영의 분리에 있어 민중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축과 모든 공개 운영에서 생태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 등이 대안을 만들 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태인 경제평론가가 건강보험 문제와 관련 ‘6만 원 내기 운동’을 제안하자 논란이 더 커졌다. 국민들이 1인당 약 6만 원씩 내는 민간보험을 더 내서 건강보험 100% 운영을 제기하자는 제안이다. 정태인 경제평론가는 “보험회사와 대형병원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정부가 못 받아들일 텐데 그러면 왜 못 받느냐는 식으로 문제제기하고, 실제 6만 원 씩 모으는 방법도 가능하고, 건강보험 100%를 보장하라는 압박을 가하면서 대형병원과의 결탁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 같은 ‘6만원운동’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료는 기업과 국민이 5:5로 내는데, 보건의료 진영에서 볼 때 당장 보험료를 갖고 싸우게 될 것”이라며 “돈을 내면 낸 만큼 (혜택이) 돌아오느냐 라는 최소한의 측면에서, 제약회사와 의사가 가져가는 전제하에 6만 원을 올리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시 반론으로 오건호 전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은 보험료를 더 내자는 정태인 경제평론가의 제안에 동의했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악화에 맞서야하지만 대안 설정 의제가 중요하다”며 “우리 노동자가 보험료를 더 내자고 하는 화두를 전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민간보험을 막는 것이 중요하지만, 건강보험이 커야 한다. 시장 담론 체계에서 민간보험을 막는 것은 어려우므로, 동시 적용을 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의 공적 규모를 늘리는 것에 주목했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건강보험 재정 확대가 결과적으로 기업의 부담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6만원운동’에 대해 김동수 노동자의힘 회원은 100% 실패를 호언했다. 김동수 회원은 “공공부문이 뭐냐. 평등 아니면 공산주의 아니면 민중적 혜택 같이 (민중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자본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현재 공공부문의 사유화 국면은 자본주의 모순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민주노총 등 노동진영의 대안적인 대응이 뭐냐를 기치로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김동수 회원은 “사회연대전략 아니면 6만 원 식의 운동은 사유화 반대 운동에 혼란을 줄 것이고, 실패의 지름길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사유화에 '사회화 연대'로

[사유화반대토론회] 홍석만·김동성, ‘공공성 넘는 사회화 실천’ 제기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8년04월28일 9시17분

홍석만 : 소유와 함께 통제, 공공영역 넘어 산업별 영역으로, 사회화 연대 제기

2부 발제 가운데는 이명박 정부의 사유화에 맞서는 대응 방향으로 ‘공공성을 넘는 사회화 쟁취’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홍석만 진보전략회의 운영위원은 “한미FTA 타결이 예고되는 시기, 사회화의 정치적 함의를 재해석하고, 자본운동에 대한 민주적, 사회적 통제방안과 주체형성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공세에 맞선 과제로 △소유와 함께 통제를 △공공영역을 넘어 산업별 영역으로 △사회화 연대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소유와 함께 통제를’에서 홍석만 운영위원은 “(지금까지) 자본의 우위가 관철되어 가는 상황에서 소위 ‘통제’의 문제는 앞서 예처럼 선언적이거나 개량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이는 “생산에 대한 통제력이기보다는 이익 배분을 위한 ‘참여’가 주종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실질적인 생산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히 공공서비스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며 △공공서비스 가격 통제권 △보편적 서비스를 추구하기 위한 정책적·법적 통제력 △진단평가를 거부하기 위한 교사의 권리, 교육내용 통제력 △의료보험수가 결정을 위한 사회적 통제력 등을 실례로 들었다.

한편 매각 방식에 있어 “지분의 분산, 우리사주 혹은 종업원지주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이는 노동자의 저항을 순화시키는 등 매각의 문제점을 중화시킬 소지가 있음을 경계했다. 최근 대우조선이 일괄매각 반대와 함께 우리사주 20% 배정을 투쟁요구로 내건 것은 매각 과정에서 노동자 통제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주식시장과 주주의 요구와 일치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다.

둘째 ‘공공영역을 넘어 산업별 영역으로’는 공기업과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제한된 공공성 이해를 전 산업 영역으로 넓혀 이해해야 한다는 과제를 담고 있다. 가령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조선업계 3위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처음에는 공기업이었으나 대우그룹에 매각되었다가 워크아웃된 기업인데, 이를 공공성 투쟁 영역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대우조선해양이 최근 매각방침이 발표되고 노동조합에서 총파업을 선언하고 서울상경투쟁까지 진행하고 있지만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접근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의 경우도 “비록 사기업이지만 무역의 22%를 차지하며 국민경제의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집단인 삼성에 대해 사회적 통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없고 기업투명성을 확보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공공영역을 협소하게 인식해온 사례라며 보다 확장된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산업으로의 공적 조절의 확대와 노동자 통제에 대한 홍석만 운영위원의 문제제기는 1,2,3차 산업 전반에 걸쳐 검토된다. 1차산업의 경우 농축수산업은 국가의 개입과 조절이 당연시돼 농림수산식품부와 산하기관들이 거의 모든 부분을 결정하고 있고, 2차산업은 과잉생산, 공장의 해외이전 속에서 노동에 대한 공격이 확장되고 있으며, 3차산업인 유통과 서비스 영역 또한 생산과잉, 해외이전, 자본철수 등 생산과 고용에서 시장 조절에 실패하고 있음이 문제로 제기된다.

이로부터 홍석만 운영위원은 산업별 정책으로서 사회화 전략의 구체화의 필요에 대해 “사회화 전략을 통해 민간영역에 대한 국가 개입과 노동자 통제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셋째 ‘사회화 연대’는 “수평적이어야 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연대”를 일컫는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국가와 자본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고임금 노동자가 대신 지불하게 하는 민주노동당의 ‘사회연대전략’을 비판하며, “가령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정규직 비정규직간 협약을 맺고 실천하는 것이 임금이나 복지에 대한 시혜적 지원보다도 훨씬 당당하고 현실적인 연대”라고 지적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1991년 캐나다 체신노조(CUPW)가 파업 시작 전 노인, 학생, 장애인, 실업노동자, 농민, 빈민운동 조직 대표들을 초청해 공개적인 연대협약을 한 사례를 들고, 가령 공무원노조가 빈민단체와 특정지역 상수도 요금 동결에 대한 공개적 사회협약을 맺고 이를 통해 물 사유화 저지 투쟁과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연대활동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제기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과거와 같이 고용보장 투쟁을 지속시켜는 것은 고용보장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공공성 쟁취를 요원한 문제로 남겨두게 된다”며, “낙하산 인사의 금지, 이사 및 임원에 대한 민주적 선출, 투명한 이익금, 소득비례가 아닌 필요에 의한 사용이 가능한 보편적 서비스의 확대, 공정한 이익환수 등 공공부문 개혁”을 사회화 과정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성 : 공공기관 소유·운영구조 개선 투쟁.. 공공부문 사유화 반대 6개 대응방안 제안

한편 김동성 공공운수연맹 수석부위원장은 공공기관은 국가가 운영해야 하고, 공공기관의 관련주체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공공기관의 소유와 운영에 대한 지향’을 제기했다.

김동성 수석부위원장은 발제문 ‘공공부문 사유화와 노동조합의 대응’에서 “공공부문의 목적이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는 만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데 공공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이윤을 남긴다면 이는 사기업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공공기관에 사적자본이 투자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이윤의 창출은 기관종사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서비스 질의 하락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공기관이 국가 소유이기는 하나, 운영에는 국가독점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성 부위원장은 “공공기관의 설립 목적에 충실하려면 소유자인 국가뿐만 아니라 기관종사자 그리고 서비스를 받는 사회 주체들이 공동으로 운영해야 공공기관의 사회적 목적을 제대로 달성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동성 부위원장은 노동자의 사유화 대응 방안으로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와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와 공동행동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의 국가 소유 △국가에 의한 운영을 사회적 운영으로 △사유화 저지 투쟁을 공공기관 소유와 운영구조 개선투쟁으로 전화 △공공부문 사유화 이해 당사자의 교류와 연대 △공공부문 확대 운동 전개 등을 꼽았다.

김동성 부위원장이 밝힌 ‘노동조합의 대응’은 이명박 정부의 사유화 추진 반대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소유와 운영에 대해 이해당사자를 비롯한 민주적 통제의 과제까지 다루고 있어, 향후 공공부문 및 시민사회의 구체적인 실천방안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홍석만 : 사회화 연대전략과 전체 민영화 반대 투쟁전략 마련

홍석만 진보전략회의 운영위원은 공공성 영역을 확장하고 사회화 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공공성이) 2002년 발전노조 파업 당시 민주노총의 공식 요구로 되면서 현재까지 공기업 구조조정 반대 투쟁의 대의명분과 슬로건으로 제출되고 있다”고 말하고, “공공성 개념을 금속 등 국가 소유의 산업 전반의 문제로 확장해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이날 토론회 자리에 금속 노동자의 참석이 저조한 점을 들며 “현대건설, 쌍용, 하이닉스 등 국가 소유의 기업 매각 움직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대해 “산업은행 민영화의 전단계로, 대우조선, 일렉트로닉스, 동명전기 등 산업은행 소유 지분 전부를 매각하려 한다”며 공공부문 사유화가 단지 공기업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환기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향후 공공성 확대와 관련 “국가 소유, 유지의 문제를 넘어 누가 어떻게 통제를 할 것인지, 공기업을 넘어 산업별 국가기업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사유화 통제를 위한 연대를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 등 세 가지 과제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공무원노조가 사유화 저지 투쟁에서 박정희정권의 유산을 철폐하면서 어떻게 생태적인 물 공급에 대한 사회적 협약을 맺어나갈 건가” 또는 “일제고사 진단평가에 대해 학부모단체와 함께 하루 총파업이라도 할 수 있는데 교사들이 시험감독을 거부하고 학부모는 전교조를 지지하는” 등의 제안 사례를 들어 공공서비스 통제가 갖는 의미를 환기했다.

역대 정권의 사유화 추진과 관련 홍석만 운영위원은 “김대중 정권은 돈이 필요해서 공기업을 팔겠다는 거였고, 노무현 정권은 공기업 내부의 구조조정, 분사, 하청계열화 등을 추진했는데 비해, 이명박 정권은 하드웨어식 민영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고 비교 설명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의 목표가 국가 주도형 금융자본 육성”이라며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를 중심으로, 사회화 연대전략과 전체 민영화 반대 투쟁전략 마련”을 과제로 제시했다.

한편 “국가와 자본 주도력이 강한 현장 상황에서 노동자 통제가 어불성설이 될 수 있으나 이 고리를 놓치는 것은 퇴보”라고 짚고 “공공영역에서 노동자 현장 통제를 위해 투쟁할 수 있다면 김대중 정권 당시 민영화 저지와는 다른 형태의 공공성 확대와 사회화의 전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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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사유화

공공부문 사유화, 한꺼번에 이뤄진다

[사유화반대토론회] 8개 분야 민영화 현황 분석한 1부 토론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2008년04월28일 15시23분

이명박, 돈 될 만한 것은 다 시장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민간에 이양하겠다”라며 공공부문 민영화의 기치를 들었다. 목적은 “국부의 원천인 기업”을 살리는 것이며, 방향은 효율성과 이윤의 규모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것은 ‘비지니스 프랜들리’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까지 모두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이런 기본 취지를 담은 ‘공공부문 민영화 계획’은 올 6월까지 완성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부의 원천인 기업”을 살리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는 어느 한 군데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추진해 온 금융허브 구성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 외환은행 등에 대한 민영화와 각종 연금을 구조개편하고 있으며, 공기업과 국가소유기업의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교육, 의료, 물, 에너지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시장에 내놓고 있다.

▲  25일, 17개 노동사회단체는 '이명박 정부 공공부문 사유화에 대한 대응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오로지 자본만을 위한 공공부문 사유화

이에 17개 노동사회단체들이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제동을 걸겠다며 나섰다. 지난 25일 열린 ‘공공부문 사유화에 대한 대응방안 토론회’ 1부 토론에서는 물, 교육, 의료, 미디어, 사회복지, 금융, 운송, 에너지 등 8개 부분에서 어떻게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 후과는 어떻게 드러날 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서로 다른 부문에서 민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8명의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오로지 자본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자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7%의 경제성장과 이를 통한 1인당 국민소득의 4만 달러 달성,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한 747공약을 내세웠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하루가 다르게 이를 달성할 수 없음을 실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서 “경제성장 어쩌면 7%를 하겠다고 했다”라며 “금년에 우리가 제시한 성장목표수치 7%를 달성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7%를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닦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성장은커녕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7%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공공부문의 사유화다. 이미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팔아치운 상황에서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아니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되는 것들을 시장에 내놓아 이윤을 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물, 전기, 가스, 철도 등 전통적 의미의 공기업 뿐 아니라 공영방송 매각, 신문사 방송소유 허용, 금산분리폐지, 방카슈랑스 전면허용 등 언론 및 금융영역에서도 추진되고 있으며, 교육과 의료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기에 돈이 된다? 물, 에너지, 의료, 교육, 복지

이태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영화저지특위 부위원장은 “물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자원이고 인권이다”라며 “기업적 윤리로만 생각한다면 수도 값을 지불하지 못하면 우리는 물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다”라고 지적하고, “현재의 물 사유화 찬반 논쟁은 기업적 윤리로서 물을 공급하려는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에 가까운 행동과 물을 공공재로 보는 보편적 윤리가 맞붙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정부는 ‘물산업지원법’을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물 사유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태기 부위원장은 “물 사유화는 다국적 물기업과 국제금융기관, 신자유주의 정부의 삼위일체 프로젝트”라며 “물의 사유화는 ‘가격이 매겨진 물(블루 골드)’로 상하수도 서비스의 민영화와 생수판매, 댐 건설 등이 대표적인데, 물 부족 위기의 해결책으로 기업들이 내놓은 ‘물 시장화’는 오히려 물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태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영화저지특위 부위원장, 이종훈 공공노조 정책국장,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이철호 범국민교육연대 정책실장(왼쪽부터)

가스 등 에너지 산업도 다르지 않다. 이종훈 공공노조 정책국장은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공기업 사유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자 했으며,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중단되었던 (전력, 가스, 철도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산업 사유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며 “캘리포니아의 2000년, 2001년 블랙다운, 16%를 넘어선 에너지 빈곤층에 시달리는 영국 전력공급 중단 사태의 속출, 2003년 이탈리아 등에서의 정전 사태, 남미의 에너지 공급중단 사태 등은 네트워크망 산업 분할 매각이 자본 입장에서도 효율적이지 않으며 소위 국가 차원의 공적 관리와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의료는 어떨까. 이명박 정부는 민간보험 활성화를 위해 올 10월까지 건강보험공단의 개인질병정보를 민간보험사에 넘기는 등 민간보험사 특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영리병원 허용방침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한 상황이다. 또한 의료기관채권발행법과 당연지정제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의 의료 시장화에 대해 “이미 시장화된 의료제도를 버티고 있는 것이 92%에 달하는 민간의료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묶어두는 비영리병원 제도,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환자를 받아야만 하는 당연지정제도, 그리고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건강보험의무가입제 세가지”라며 “이명박의 길은 이를 한꺼번이 무너뜨려 삼성병원과 현대병원 그리고 삼성생명과 AIG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주고, 대다수 서민에게는 감기 걸릴 여유조차 뺏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도 돈을 남기면 되는 기업으로 변하고 있다. 이철호 범국민교육연대 정책실장은 “이제 학교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라 교육활동을 통해서 어떻게 이윤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자율’은 학교 교육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교육기관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허용해 교육의 가격을 자율적으로 책정하고, 교육이라는 상품을 어떻게 다양하게 팔아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돈과 효율성의 논리만 머릿속에 가득한 이명박 정부에게 복지라는 단어가 있을 수 있을까. 성은미 민중복지연대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는 한국 복지에 대한 현실 인식이 없는 것 같다”라고 잘라 말했다. 성은미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능동적 복지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빈약한 소득재분배, 민간중심의 복지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라며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복지철학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사유화다”라고 지적했다.

▲  성은미 민중복지연대 활동가, 이영수 운수노동정책연구소 연구원,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 이한진 진보금융네트워크 준비위원(왼쪽부터)

공영방송도 필요없다? 오로지 경쟁과 이윤만을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는 국민의 눈과 입의 역할을 하고 있는 미디어를 비켜가지 않는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공영방송은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을 보장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시청자의 복지증진에 기여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며 “그러나 공영방송의 민영화는 방송프로그램이 소외계층이나 저소득층보다는 지불능력이 있는 시청자에 초점을 맞춰 제작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의 민영화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긴밀히 연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동준 연구실장은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KBS2나 MBC에 대한 민영화 주장은 방송을 장악하지 못해 집권에 실패했다는 수구 집단의 정치적 판단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라며 “이들은 민영화를 방송 통제나 장악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거대한 세계 금융시장에 적극 편승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전략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부터 추진되던 금융허브 전략을 완성시키는 것으로 나타나며 자본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줘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모든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을 결론으로 한다. 이한진 진보금융네트워크 준비위원은 “금융자본의 이익 극대화를 가로 막는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함으로서 국내 금융시장(특히 자본시장)으로의 대규모 자금 유입을 도모하고, 금융시장의 확장과 팽창을 통해 임기 내 7%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의도”라며 “문제는 금융자본의 수익극대화는 금융소비자인 국민들의 희생을 통해서 가능하며, 이를 위한 금융시장 규제 철폐는 자본만을 위한 것으로, 자본의 이익 극대화는 민생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8개 분야에서 진행 중인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정책의 현황에 대해 발표한 발제자들은 “민영화가 부문별로,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한꺼번에 진행될 것”이라는 것에 목소리를 모았으며,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 날 토론회의 1부 토론은 공동대응의 방향을 놓고 2부 토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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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대우조선 국민기업

조선업 노조들, 대우조선 매각에 '공동 총파업' 불사

"국제적 투기자본 골드만삭스 선정은 금속노동자에 대한 도전"

최인희 기자 flyhigh@jinbo.net / 2008년04월28일 18시53분

정부와 산업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관련해 조선업종 노동조합들이 '공동 총파업' 등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 21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매각 주간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 발표하자 24일 삼호중공업지회에서 긴급 조선분과대표자회의를 열었다. STX조선지회, SLS조선지회, 부산한진중공업지회, 울산한진중공업지회, 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노조, 대우조선노조, 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 등 회의에 참석한 8개 조선업종 노조 대표자들은 이날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에 따른 공동투쟁결의문'을 발표했다.

"일방적인 매각, 조선업 전체의 피해를 불러올 것"

조선업종 노조 대표자들은 골드만삭스가 대우조선해양을 해외 매각하기 위한 전초단계로 기술유출과 국부손실, 방산 업체에 대한 국가기밀 누설 등의 문제를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국제적 투기자본인 골드만삭스를 매각 주간사로 선정한 것은 15만 금속노동자에 대한 중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조선 산업의 공동화를 부추기는 촉매제로 전환되어 노동조건 저하 및 고용불안 심화 등 조선업 전체의 피해로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대우조선해양의 바람직한 매각 절차와 방법이 쟁취될 때까지 공동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기업의 독점적 횡포를 철저히 배제할 것 △대우조선노동조합과 고용협약서 체결을 통한 노동조합 승계와 단협 승계를 이행할 것 △매각 과정에서 나타난 부적격 업체에 대해 인수 참여를 원천 차단할 것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에는 "15만 금속노조 및 조선분과 사업장 조합원들이 매각 공동투쟁 전선을 구축하여 총파업 투쟁은 물론 대정부 투쟁을 강도 높게 펼쳐 나갈 것"이라는 각오다. 금속노조는 이와 별도로 5월 말께 공청회를 개최하여 대우조선해양 매각의 부당성을 알리고, 대우조선노조가 3차 산업은행 상경투쟁에 나설 즈음 전국 단위의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민주노동당, "대우조선 국민기업화" 제안

한편 '민생대장정'을 진행하며 거제에 머물고 있는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오늘 오후 2시에 거제시청에서 '대우조선해양 국민기업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영길 의원, 홍희덕·이정희 국회의원 당선자, 이수호·최순영 비대위원 등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은 정부 마음대로 해외투기자본이나 사기업에 팔아 넘겨도 되는 기업이 아니"라며 "국민 세금으로 살려낸 만큼 국민 소유 기업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삭스가 실사를 통해 기술자산을 파헤칠 경우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면서 "매각 이후 인수기업의 자본회수를 위한 자산매각과 사업축소,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상되며 결국 매각의 부담과 고통은 노동자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대우조선해양의 국민기업화 등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 당 차원의 대책기구 구성과 시민사회단체들과의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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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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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축하합니다~

더 이상 숨어있지 않기로 했다.

내 상처를 더 이상 뒤에 숨어서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거리낌없이 말하고 다닐테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긴 했지만.

 

 

 

"이혼 축하합니다~"

 

마지막 스캔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정준호가 최진실에게 불러준 노래.

이 노래를 들으면서 뭔가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우리에게는 이런 노래가 좀 있어줘야 돼.

슬픈 일이겠지만

아무튼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저런 노래.

 

 

 

나도 요즘 나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피스, 가방, 귀걸이, 팔찌 등을 사들였다.

귀걸이, 팔찌는 천원짜리.. 훗.

다 합해서 5만원 정도 쓰고 나니까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더라.

소심하기 이루말할 데가 없구나.

 

 

 

 

왜 나 혼자서 이런 아픔들을 견뎌내야 하는 걸까?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생각보다 매력적인 것이라는 걸 알았다.

비현실적이지만

나쁜 놈을 응징하는 구도.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나쁜 놈들이 응징받는 사례는 정말 드물다는 거.

 

 

 

TV에서 이런 말도 나왔드랬다.

"행복해져야 합니다~"

 

엄마가 옆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눈물을 감출 수가 없더라.

하품하는 척 했지만.

 

나는 지금 과연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다.

내가 해왔던 활동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지고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마지막 스캔들에 나왔던 것처럼

근사한 케잌에 촛불을 꽂으며 누군가 나에게 이런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낙태 축하합니다~"

 

 

 

너무 잔인한가?

어찌됐든

난 어깨를 들썩이며 펑펑 울어제껴야 한다.

 

내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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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어떻게 기록을 남겨야 할까.

지난 1년의 시간을 되돌아본 결과

연애 관계 속에서 나는 성적 대상화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괴롭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알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연애에 푹 빠져서

연애 지상주의 분위기에 물들다보면

언젠가 절벽으로 뚝 떨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앞으로 맺게 될 수많은 관계들을 어떻게 맺어나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연애가 끝나고 나서 수많은 여성주의 서적들을 읽으며

나의 과거를 객관화시키고, 사회구조화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이, 연애를 한다는 것이

'가족', '결혼'이라는 것과 맞물려서

순식간에 비참하고 형편없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사람과 충돌한다면

그 때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선택했을 때 나는 그 충격과 외로움을 온전히 버텨낼 수 있을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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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D를 선택한 히피족

LSD를 선택한 히피족
히피문화 속 ‘여성’의 의미-1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현주
<’성 해방’의 기치를 내걸었던 히피운동 속 여성들의 위치는 어떠했을까. “모든 반문화 운동이라는 것이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소외 받는 계층들의 특별한 경험들에 대한 자리를 마련해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세일라 휘틀리의 지적은 과거의 문화운동뿐 아니라 오늘날 진보적 운동들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말이다. 일다는 3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사랑과 평화를 갈구했던 히피운동에서 여성의 위치와, 그 안에서 여성뮤지션들의 고민은 어떠했는지 조망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샌프란시스코에 갈 때는 머리에 꽃을 꽂아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거에요/ …거기에는 모든 세대와 새로운 설명이 있어요.” 스콧 맥켄지(Scott McKenzie)가 부른 노래 ‘샌프란시스코(San Fransisco)’의 가사처럼, 196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는 머리에 꽃을 단 히피들의 낙원처럼 보였다. 덥수룩하게 늘어뜨린 머리칼과 수염, 인디언처럼 총 천연색의 복장에 장신구를 하고, 느릿느릿 무리 지어 걸어 다니고 있는 이들은 처음에는 기성세대의 눈에 위협적이라기보다는 한심하고 철없는 젊은이들처럼 보였다.

‘사랑’과 ‘자유’ 그리고 ‘평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는 지금까지 기성세대의 가치에 반기를 들고 노골적으로 저항을 해 오던 반항적인 젊은이의 공격성은 없었다. 으슥한 거리를 걷고 있는 현명한 중년의 신사라면, 파키스탄인들에게 발길질을 가하는 스킨헤드족에게 충고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모르는 채 지나가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런던의 카나비 스트리트에서를 허름하게 차려 입고 지나갔다가는 깔끔하게 차려 입은 모드족들의 삿대질을 당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미국에선 오히려 일반노동자들이 머리가 긴 사람만 보면 “꽃이나 좋아하는 호모새끼들”이라며 폭력을 가하곤 했다. 이 “계집애 같은” 히피들이 무슨 저항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가진 것은 낭만적인 구호들과 거세된 듯한 표정, 그리고 LSD(환각제) 뿐인 것처럼 보였다.

하위집단이 선택한 약물의 ‘남성성’

히피족과 LSD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1960년대 초중반 런던에 나타난 모드족과 그들이 애용한 진정제, 암페타민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모드족(Mods)은 1950년대 영국의 경제적 급성장의 시기를 거쳐 나타난 ‘풍요의 아이들’이었지만, 부모세대의 가치관에 반감을 가지고 모든 일에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들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도시문명이나 산업화를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에 대해 낭만적인 기대감을 가지며, 속도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강박증적으로 외모에 신경을 썼다. 프랑스 댄디풍의 줄무늬 양복에, 스프레이로 짧은 머리를 부풀린 이들은 말 그대로 “패션 잡지에서 그대로 튀어 나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들은 항상 길거리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매만졌고, 옷을 더럽힐 염려가 없는 유선형디자인의 이탈리아제 베스파 스쿠터를 몰고 다녔다.

백인노동자 계층이 주를 이루었던 모드족은 평일에는 자본의 ‘맹목적인 연료로 소비되는 것을 묵묵히 감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을 증폭하여 노동의 과정에서 나온 자본의 상품들의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기를 원했고, 상류층의 사교파티에서나 어울릴 옷들을 자신들의 뒷골목으로 끌어내렸다. 모드족은 20세기의 모던 드럭(modern drug)이라고 할 수 있는 암페타민을 이용했는데, 암페타민은 불면증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다. 따라서 잠과 게으름을 경멸하는 모드족들이 6일간의 지루한 노동이 끝나고 난 후, 48시간 동안의 주말을 잠을 자지 않고 즐기는 데 몰두할 수 있었다. 이는 남성다운 청년이 주말 내내 어머니의 영역에서 벗어나 거칠고 추운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암페타민은 여성에 대한 성욕은 억제시키고 공격성과 속도감을 증대시킴으로써 그들의 남성주의적인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 모드족들은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남자친구들의 눈에 띄기 위하여 멋을 부렸다. 히피족들에게 사랑의 행위는 하나의 목적이었지만, 모드족들의 연애는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드족의 우상이 된 ‘더 후(The Who)’의 공연장에서는 “늙기 전에 죽어버리고 싶다”는 노랫말과 함께 기타를 때려 부수는 일이 연례가 되어가고 있었다.

평화를 가져오는 약물, LSD

모드족을 비롯한 대부분의 하위문화 집단이 선택한 드럭이 남성성과 공격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평화주의와 자연에의 회귀, 그리고 자유로운 사랑을 주장하는 히피족들에게 환각제인 LSD는 최고의 선택으로 보인다. 히피족이 만약 암페타민이나, 사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 내면으로 파고들게 하는 코카인같은 드럭을 선택했다면 그들의 성향은 현재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가장 강력한 환각제 중의 하나인 LSD(Lysergic Acid Diethlamide)는 호밀에 생기는 곰팡이인 맥각에서 추출되는 화학물질로, 1938년 스위스 화학자인 앨버트 호프만이 처음으로 곰팡이에서 추출해냈다. 호프만은 1943년 LSD의 성질을 연구하는 실험을 하던 중 실수로 피부에 LSD액 소량을 주입시켰다가 이상한 의식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LSD를 복용하면 혈관 수축물질인 세로토닌의 반응에 이상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것이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미량만 복용해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이한 왜곡과 심한 환각과 망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충동적인 개방성, 혹은 사랑의 감정상태를 끌어온다.

LSD는 주로 기분 좋은 각성효과를 가져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약을 복용하거나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하면 극심한 우울증 등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한 LSD는 대부분의 다른 약물들과는 달리 중독성이 없다. 초기에 LSD는 각종 심리 치료, 특히 성기능 장애 치료 등 의학 분야에서만 연구, 활용됐으나 LSD의 환상적인 효과에 대한 소문은 급속하게 퍼져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LSD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히피공동체에서 찾은 낙원의 세계

LSD를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사람은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였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티모시 리어리는 LSD의 효능에 흠뻑 빠져, 대학에서는 LSD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이 신비의 약물이 ‘정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사물의 진리를 깨닫게 하여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또 ‘자기애가 아닌 집단에의 소속감’과 ‘타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약물이 평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티모시 리어리는 스스로가 LSD를 복용한 후 처음 만난 여성과 하루 만에 결혼식을 치렀으며, 그의 이런 모습과 여러 히피들이 집단으로 LSD를 복용하고 환각에 빠져들어 집단적인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TV를 통해 공개되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히피공동체를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모여들었다. 베트남전, “상대가 자본주의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공산주의자로 없애버려야 한다”는 덜레스(1953년 D.D.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무장관, 반공주의자)식의 광적인 공산주의 혐오, 그리고 이기적인 소비지상주의에 지쳐있던 젊은이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이 히피공통체에서 이상적인 낙원의 모습을 발견했다.

히피족들은 이 낙원을 미래의 어떤 상상의 공간이 아닌,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상정했다. LSD에 취한 이들은 환각 상태에서 이성적인 언어가 무너지고, 시간과 공간 등 모든 견고해 보이는 것들이 왜곡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데, 히피들은 꿈을 꾸는 듯 느리게 공중을 부유하는 듯한 이 상태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는 경험과 다름없다고 느꼈다. 모든 자연의 근본과도 같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울려오는 무의식의 메시지와 접촉하려고 했는데 이 메시지는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 완전한 자유와 사랑이 있는 세계였다.

히피의 남성들은 스스로를 아버지의 폭압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손길에 의해 순화되고 중성화된 인간으로 보았으며, 거친 남성성 과시하는 행위를 폭력적인 것으로 간주하곤 했다. 또한 성 억압적인 당시의 가치관에 대항하여 프리섹스주의를 실천하면서, 자신들의 ‘성의 해방’을 통하여 ‘성의 평등’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구체적인 문제를 무시한 프리섹스주의적인 성의 해방이 성의 평등과 동의어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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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운동의 여성주의적 한계

히피운동의 여성주의적 한계
히피문화 속 ‘여성’의 의미-2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현주
1969년 8월, 뉴욕 근교의 한 농장에서 사흘간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유토피아와 같은 사랑과 평화의 황홀경을 보여주었다. 애초에 유료콘서트로 기획되었으나 모든 표가 매진되고 표를 구하지 못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자 주최 측은 무료공연을 선언한다. 히피들은 지금까지 음반기획사들이 꾸려 온 비싼 공연들에 불만을 표시해 왔고, 물질주의를 배격하고 공유정신을 내세웠던 히피들이 공연티켓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구걸이나 도둑질, 대마초를 키워 파는 방법들뿐이었다.

따라서 이번 무료축제는 그들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것이기도 하면서, 타인이 기획하고 마련한 축제에 초대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축제를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물과 음식이 부족하고 화장실도 엉망인데다가 사흘 내내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등 객관적인 상황은 엉망이었지만 우드스탁의 젊은이들은 음식과 약 등을 서로 나누어 쓰면서 평화의 제전을 만들어 낸다.

우드스탁의 평화와 알타몬트의 폭력

30만~40만의 젊은이들이 뿜어대는 대마초의 연기와 LSD의 기운 가운데 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은 대표적인 드럭송 ‘나는 너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고 싶어’(I want to take you higher)를 부르고 크로스비 스틸 내시 앤 영은 ‘나무 배’(Wooden Ship)를 통해 불만스러운 나라를 버리고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나무배를 타고) 유토피아로 떠나자고 노래한다.

반전의 메시지도 빠지지 않았다. 컨트리 조 맥도널드는 ‘I feel like I'm fixing to die rag’에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관에 실려 돌아오는 첫 번째 부모가 되라”고 말하면서 베트남 전에 찬성한 사람들을 향해 냉소적인 저주를 내뱉었다. 그룹 Byrds의 데이빗 크로스비는 “만약 정치가들이 LSD를 맛본다면 전쟁은 끝나게 될 텐데”라며 자신들의 천국이 모든 공간으로 전이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말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보컬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은 그녀를 둘러싸고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공연에서 “우리는 자유, 그 중에서도 프리섹스를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관중들 사이에서는 “성적인 반응이나 남성성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으”며, “LSD에 취해 서로에 대한 사랑에 빠져있는 공동체적인 상태가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레이스 슬릭의 이러한 평가는 사랑과 평화의 축제인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그대로 증명되는 듯 했다.

하지만 바로 몇 달 뒤 열린 알타몬트(Altamont) 페스티벌에서 우드스탁의 꿈은 악몽으로 변한다. 우드스탁의 열기를 재현하고 싶었던 롤링 스톤즈는 다른 유명한 사이키델릭 밴드들을 초청하여 콘서트를 연다. 그러나 롤링 스톤즈가 경호대로 불렀던 악명 높은 오토바이 폭주족 헬스 엔젤스(Hell's Angels)의 멤버가, 백인여성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흑인관객을 죽이는 비극이 벌어진다. 또한 약물과용으로 3명이 사망하고, 여러 폭력 사태가 끊이지 않는 등 온갖 끔찍한 사고들이 벌어져 가장 추악한 행사로 기록되었다.

공연장 밖에서도 알타몬트 페스티벌에서의 문제를 예외적인 일로 묻어버릴 수 없게 만드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집단생활을 하던 히피 찰스 맨슨이 비틀즈 곡 ‘Helter, Skelter’에서 영감을 얻어 여배우 샤론 데이트를 교살시키고, 히피들의 상징적인 장소 하이트 애쉬베리에서는 LSD에 만취한 여성이 집단강간을 당한 후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사람들은 1960년대 젊은이들의 저항운동이 그 이면을 드러내며 막을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사랑’예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히피운동이 왜 실패한 시도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기 힘들다. 현실과 동떨어져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유토피아적 관념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저항적인 코드든지 기존 의미체계 속으로 끌어당겨 대량생산되는 상품의 형태로 전환시켜버리는 지배문화의 무차별적 힘이 이들의 순수함을 변질시킨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히피운동이 평화나 사랑, 자연과 같은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외부의 권력관계를 그대로 번복했다는데 그 모순이 자리 잡고 있었다.

히피 그룹들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의식을 공유하긴 했지만, 그 반대의 구호는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고, 대체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당시 베트남전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였던 흑인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대부분 백인 중산층 자녀였던 이들은 그들의 부모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흑인들도 그들의 문제를 ‘사랑’에 대한 예찬만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히피운동이 사그라질 무렵 미디어에서는 히피 청년들에게 날마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들의 중산층 부모들은 ‘여전히 너희를 사랑한다’는 피켓을 들고 다니면서 그들의 하얀 자녀들이 짧은 방랑을 끝마치고 안식처로 되돌아 올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저항적인 흑인청년들에 대해서는 냉혹한 시선을 보냈다. 당시 FBI국장이었던 에드가 후버(Edgar Hoover)는 급진적인 흑인 학생집단인 블랙 팬더스당을 ‘국가 최대의 적’으로 규정짓고 폭력적인 탄압정책을 펼쳤다. 히피들이 그들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흑인들은 그들의 집 안에서도 끌려 나와 폭행을 당했다.

히피공동체 그루피의 의미

히피운동은 당시 여성해방운동에 대해서는 보다 더 냉담한 태도를 취했다. 사이키델릭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로 평가되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보컬이면서 히피들의 히로인이었던 그레이스 슬릭도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다른 많은 중요한 사안들 앞에서 그건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다. 왜 갑자기 요리를 못한다고 선언하고 그것에 대해 불평을 해 대는지. 여기 이 집에서 많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아무도 나에게 요리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레이스 슬릭이 요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당시 제퍼슨 에어플레인 멤버들이 공동 거주하던 샌프란시스코의 집에서는 셀리 만(Sally Mann)이라는 나이 어린 그루피(groupie)가 요리와 세탁 등 모든 가사 일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루피들을 소개한 1969년 롤링스톤즈(The Rolling Stone)의 기사에 따르자면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멤버들은 셀리 만에게 고맙다고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레이스 슬릭은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히피문화내의 여성의 문제, 그루피들의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열성 소녀팬들을 지칭하는 모멸적인 표현 ‘그루피’란 개념이 생긴 것이, 남성적이고 여성폄하적인 성격을 가진 파워풀한 남근 록(Cock Rock)이 주류가 된 1970년대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성적 가치를 중시하고 성의 해방을 내세웠던 1960년대란 것은 얼핏 이상하게 여겨질 지 모른다. 하지만 1960년대 중후반 히피운동에서 예찬한 여성성이 단지 자연으로서의 어머니, 즉 현대사회에서 벗어나 자궁으로 퇴행하고 싶어하는 소년들을 위한 개념이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히피운동이 주장했던 자유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벗어나 남성들처럼 저항의 길을 가고 싶어했던 여성들에게 허용되었던 것은 오직 ‘프리섹스로의 길’뿐이었다.

모든 가치를 전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웠던 급진적인 뮤지션 프랭크 자파(Frank Zappa)는 그루피들을 ‘성 해방의 자유의 전사’로 묘사하며 모멸적인 예찬론을 폈다. “결국 그녀(그루피)들의 대부분은 사무직 노동자나 공장 노동자 같은 평범한 남자들과 결혼하겠지. 남자들은 화려한 성적모험을 거친 (성적으로) 기술이 뛰어난 소녀들을 얻게 되니 행운이 되겠고, 이건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야. 남자들은 더 행복해지고, 그들은 자기 일을 더 잘하게 될 테니까.”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추앙받는 지미 헨드릭스 역시 “나는 (내가 연주를 했던) 도시를 오직 그곳의 여자들에 의해서만 기억한다. 너를 둘러싸고 네 양말을 빨아주고 네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무엇이든 하는 여자들 말이야”라고 말하며 그의 여정에 그루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했다.

가사노동, 히피여성들에게 주어진 의무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1970년대 펑크 무브먼트에서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등장하기 이전에 록음악에 여성은 부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1960년대 록음악에서 여성이 어떤 의미로든 존재한 흔적을 찾는다면 그것은 그루피에게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제니스 조플린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그나마도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고 약물 중독으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여성이 그 시대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착실히 타이프 치는 것을 배워 비서로서 사회에 진출하는 것보다는 그루피가 되어 그 자신이 추앙하는 뮤지션의 삶의 태도를 흡수해 버리는 것이 여성에게는 매우 급진적인 선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선택의 대가로 그루피들은 자신들이 혐오했던 평범한 가사일들을 자신의 영웅을 위해서는 불평 없이 해내야 했다.

가사를 돌보는 역할은 그루피들에게만 부여된 것이 아니라 히피공동체 전체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진 공동의 의무였다. 남성히피들이 대지의 어머니, 태고의 공간을 꿈꾸며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는 동안 여성들은 이 모험의 현실적인 필요들을 충족시켜주면서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했다. 공동체에서 바느질, 요리, 세탁, 아이 돌보기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었고, 자연친화적 이념 때문에 전기나 냉장고, 세탁기 같은 문명의 기기들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알로 거스리(프로테스탄트 포크음악의 대부로 평가 받는 우디 거스리의 아들)의 노래 ‘Alice's Restaurant’(1969)는 “쓰레기를 버려 벌금 50달러를 문 것이 전과자로 처리되어 베트남 전쟁의 징병결격자가 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담은 반전 송으로도 유명하지만, 저항문화집단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공동체 ‘엘리스의 레스토랑’에서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꿈꾸는 남편은 늘 취해 있고, 모험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오고 가지만 엘리스는 이 모험가들의 지렛대가 되기 위해 거기 머물러 끊임없이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 ‘엘리스의 레스토랑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후렴은 여성을 모든 반문화적인 모험의 디딤돌, 혹은 반문화의 영웅들에게 수유를 해주는 만인의 어머니 위치에 묶어두었던 남성들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중적 잣대 속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분열증

이러한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관점은 히피운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히피운동에 모태가 된 1950년대의 반문화 비트닉의 영웅인 잭 캐루악(Jack Kerouack)은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방랑적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책 <길 위에서 On the Road>에서 ‘대지의 어머니’인 자연과 직접 대면하기 위해 땅에 구멍을 뚫고 자위를 한다. 이는 남성이 자연을 찾아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이 여성이 가야 할 과정과는 일치할 수 없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성이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주변부로 물러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실제로 잭 캐루악은 작가 지망생이었으며 이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했던 부인(조이스 존슨)의 요청을 방해가 된다면서 거절했으며, 자신의 남성친구와 함께 길을 떠났다. 여성은 언제나 ‘아이나 원하므로’ 진정한 방랑의 길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런 그가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어머니의 돈과 보호를 받으면서 글을 쓰고 평생 살아갔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다. 여성은 방해가 되는 한은 부르주아적인 가치를 추종하는 세력이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한에서는 모성적인 안식처를 제공하는 자연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던 정치적인 학생조직 SDS(민주 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를 탈퇴한 마지 피어스(Marge Percy)는 급진적인 학생운동 안에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여성에 대한 관념은 인습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그들은 총을 멘 베트남 여성이 그려진 포스터를 가리키며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이 진짜 해방된 여성이지. 만약 당신이 저런 역할을 한다면 그때 나는 당신이 혁명가라고 믿을 거야.’ (중략) 여성은 패배자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부르주아적인 주관성에 머물며, 게다가 그 사고가 선천적으로 반혁명적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의 히피문화 안에서 여성들은 기존 가치에 반기를 둔 저항에 동참했으나 그 저항에서 배제된 것은 너무도 많았다. 남성들의 혁명이 성공을 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노예상태에 두는 것과도 같았다. 여성들은 방랑의 길에서도 여성적인 역할을 다하도록 요구받았고 또 그것 때문에 비난 받기도 했다. 여기에서 분열증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히피들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지금 2000년대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그 모순 속에서 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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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은 인종적 텃세를 극복한 것일까

피겨스케이팅은 인종적 텃세를 극복한 것일까
흑인선수 쉬르야 보날리의 ‘백플립’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최근 들어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김연아 선수의 인기로 국내에서도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피겨 종목 중 특히 여성 싱글 부문은 아시아계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트리플 악셀’로 유명한 일본의 이토 미도리라는 선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피겨스케이팅은 백인들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후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쉘 콴 등 아시아계 미국 선수들이 이름을 떨치게 되고, 일본이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피겨 강국으로 발돋움하면서 피겨스케이팅의 중심은 동양계 선수들에게로 옮겨졌다.
 
피겨스케이팅은 이제 백인 중심의 인종적 텃세를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피겨 팬들은 종종 ‘왜 피겨스케이팅 계에서 흑인 선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인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 이유가 꼭 피부색에 대한 차별 때문만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피부색이 장벽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비운의 선수로 기억되는 쉬르야 보날리
 
1994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롱프로그램 경기 중, 한 선수가 심판들 앞에서 아마추어 경기에는 금지된 기술인 백플립(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하는 것)을 보란 듯이 해버린다. 장내는 술렁이고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세계 팬들도 놀라움에 휩싸였다.
 
피겨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이 사건의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의 쉬르야 보날리(Surya Bonaly)선수. 그는 1973년 프랑스 태생으로, 피겨 팬들에게는 탄력 있는 스핀과 뛰어난 점프 실력으로 주목 받았지만 실력에 비해 ‘흑인’이라는 이유로 평가 받지 못한 비운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1988년부터 9번 연속 프랑스 챔피언, 1991년도 주니어 월드 챔피언, 1991년도부터 5회 연속 유럽챔피언, 거기에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만 3번이라는 이력이 말해주듯 쉬르야 보날리는 톱랭커에 이름을 올릴 충분한 자격을 가진 선수였다.
 
여자선수로서 4회전 점프를 시도할 만큼 점프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아 기술의 여왕으로 불린 보날리지만, 유독 예술성 점수에 있어서 만큼은 그에 걸맞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해 세계 정상의 문턱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빙판은 미끄럽고 메달의 색깔에는 어느 정도 ‘운’이라는 요소도 따르긴 하지만 보날리가 예술 점수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예술적 표현의 부족함이라기보다 외모에서 온 차별이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 있다.
 
피겨스케이팅이나 체조 등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겨루는 스포츠의 경우, 특히 외모에 대한 편견이 선수에 대한 평가와 동일시 되는 일이 종종 목격된다. 아테네 올림픽 리듬체조 경기를 중계하던 KBS의 한 해설위원은 흑인선수가 나오자 ‘피부색은 검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보날리와 같은 흑인이지만 세계선수권 우승을 거머쥔 데비 토마스는 ‘갈색’의 피부에 가녀린 몸매를 지녀 백인들 취향의 외모였던 데 반해, 쉬르야 보날리는 ‘여성스럽지 않은’ 근육질 몸매에 그야말로 ‘검은’ 피부색을 지녔고, 이런 점이 아름답지 않다고 받아들여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포츠 무대의 외모, 인종차별 조롱한 ‘퍼포먼스’
 
피겨에서 예술 점수는 심판의 재량에 의해 매겨진다. 따라서 국가나 선수의 명성, 인종에 따른 편견이 개입된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현재 각 요소 별 점수를 합산해 총점으로 겨루는 신채점제에 비해, 6점이라는 만점을 기준으로 두고 상대적으로 점수를 매겼던 구채점제는 이런 비판에 더욱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연아 선수를 두고 신채점제의 수혜자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기술이나 예술적 수행력을 가지고도 실력 외적인 이유로 저평가될 가능성이 구채점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의미이다.
 
보날리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월등한 기술력을 가지고도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 납득하기 힘든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항의했던 선수다.
 
1994 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홈 코트의 이점을 등에 업은 사토 유카 선수에게 금메달을 뺏긴 보날리는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고 시상대 옆에 서서 메달을 받았다. 그는 은메달을 목에 걸자마자 벗어 들고 눈물을 쏟았다.
 
세 번의 올림픽 참가 중 마지막 대회였던 나가노 올림픽에서 선보인 ‘백플립’은 아마추어 시절의 종지부를 찍는 시점에서 ‘한풀이’를 위한 퍼포먼스로 보였다. 당시 올림픽에서 보날리는 마지막 그룹 중 3회전-3회전의 고난이도 콤비 점프를 넣은 유일한 선수였음에도 쇼트 프로그램에서 6위를 기록했다.
 
이어진 프리 프로그램 경기에서 초반에 삼회전 살코 점프에서 실수를 하면서 메달권에서 벗어나자,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부상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금지된 기술인 '백플립'을 심판들 코 앞에서 선보였다. 모든 점프는 한쪽 발로 착지해야 한다는 규정에 맞춰 ‘한 발로 착지’하면서.
 
인종도 국경도 초월한다는 스포츠 무대가 사실은 더 차별적이었다는 점을 통렬하게 조롱한 한 판 ‘시위’였다.
 

2008/03/21 [02:32]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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