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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사태와 관련된 법적 쟁점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0/11/24 15:34
  • 수정일
    2015/05/06 18:50
  • 글쓴이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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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연평도 사태가 언론 등에서 다뤄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법적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법적 개념들은 때로는 정당한 필요에 의해 쓰일 수도 있지만 특정 주장에 부당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나는 법적 개념들이 남용되는 경우를 구별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작성한다.

 

1. 북한의 국제법적 지위는 무엇인가?


국제법에서 주로 드는 국가의 요건은 1933년 몬테비데오 협약에서 제시된 4가지 요건이다. 여기에는 항구적 인구 집단, 확정된 영토,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 다른 국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북한은 이 4가지 요건을 일단 만족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제연합헌장에 보면 UN회원국의 요건으로 그것이 국가일 것(국제연합헌장 제4조 제2항)을 들고 있기 때문에 UN회원국인 북한은 국가로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별개로 남한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국가 승인을 하지 않은 상태이며, 남한 국내법에 따르면 북한은 반국가단체이자 대화의 상대방이다. 이 글에서는 국제법적인 관점에서 남한과 북한을 별개의 독립된 국가로 간주하겠다.

 

2.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표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측(북한) 영해에 포사격을 가”한 것을 연평도 공격의 이유로 제시했다. 남한이 실시한 훈련이 ‘2010 호국훈련’이든, 통상적인 훈련이든 상관없이 남한이 “우리측(북한) 영해에 포사격을 가”한 행위 자체를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북측을 향해 포를 사격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 전혀 문제되는 사항이 아니다. 북한이 말하는 경계선과 남한이 상정하는 경계선은 그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계선은 훨씬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북한은 그들이 1999년 9월 2일에 일방적으로 공포한 ‘인민군 해상 군사통제수역’을 기준으로 해양경계선을 결정하고 있는 반면 남한은 UN군 사령관 클라크(M. Clark)가 1953년 8월 30일에 일방적으로 결정한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해양경계선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의 해양경계선 모두 영해의 경계선과는 관련이 없다.

 

3. 영해의 경계선과 해양경계선은 어떻게 다른가?
 

영해의 경계선은 한 국가의 주권이 해양에서 미치는 범위를 결정하는 경계를 의미한다.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 제3조를 보면 영해의 폭은 기선(주로 해안선)으로부터 12해리(약 24km)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백령도와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도는 각각 12해리 이내의 영해를 가질 수 있으며, 북한 역시 자국의 기선을 기점으로 12해리 이내의 영해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영해의 침해”란 등산곶 부근으로부터 12해리 이내의 지점에서 남한 측의 사격이 닿은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양국이 인접해 있는 경우,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 제15조는 양국이 달리 합의하지 않는 한 중간선 내지 등거리선을 기준으로 영해의 경계를 정할 것, 그리고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이 기준을 적용하지 말 것이라고 규정한다. 여태까지 남북한 간에 서해 영해에 관한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합의는 없었으므로 중간선 내지 등거리선을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나, 여기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이 또한 적용되지 않는다. 즉 여기에는 사실상 법의 공백 상태가 존재한다.


반면 해양경계선은 여러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영해의 경계선을 지칭할 수도 있지만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선을 지칭할 수도 있으며, 행정구역 간의 경계선을 지칭할 때도 있다. 이 경우 남북한 간의 해양경계선은 해상군사분계선을 뜻한다. 상대국이 해상에서 군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경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상대국이 군사활동을 할 수 없는 해역이 곧바로 다른 일방의 영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의 북방한계선이 백령도와 연평도보다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방한계선 남쪽에 있는 해역 전부가 남한의 영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북방한계선이 남한의 영토선이라는 주장을 기각시키는 것이다.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는 경우, 그것에 대한 적절한 표현은 ‘영해 침해’가 아닌 ‘북방한계선 침범’이 된다.

 

4. 남한의 북방한계선과 북한의 서해해상경계선 중 무엇이 타당한가?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간의 해상군사분계선에 대해 합의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근접한 것이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 제10조이다. 제10조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해석이 달라지는 바람이 제10조 제2문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남북기본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을 지닌 국제법적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큰 효력이 없다.
 

그렇다면 다시 남한의 북방한계선과 북한의 해양경계선을 놓고 양자대결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양쪽 경계선 모두 일방적으로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적인 구속력을 지니기 어렵다. 이에 대해 남한 측이 북방한계선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는 응고이론과 국제법상 시효의 원칙이다. 북방한계선이 오랫동안 어떤 측으로부터의 항변도 없이 유지되어 왔으므로, 비록 그것이 일방적으로 설정된 것이더라도 그 사실적 상태가 그 자체로 관습적인 규범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북한 측이 서해해상경계선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는 국제해양법상 인접국 간의 경계를 확정지을 때 적용되는 등거리원칙이다. 아울러 북한은 당국이 지속적인 항의를 해왔기 때문에 북방한계선에 응고이론과 국제법상 시효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북한이 북방한계선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한 것은 1999년 6월이 처음[이용중, 서해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남북한 주장의 국제법적 비교 분석, 경북대학교 법학연구원 <<법학논고>> 제32집, 553p.]이다. 약 50년간 북방한계선에 대한 이의제기가 없었다는 것인데 50년이라는 기간이 국제법상 시효의 원칙이 적용되기에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반면 북한이 공포한 서해해상경계선이 타당한 국제법적 원칙에 근거하고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경계선이 국제법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5. 연평도의 국제법적 지위는 어떠한가?

 

서해의 해상군사분계선이 정해지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도는 국제법적으로 남한의 영토이며 이에는 북한도 동의한다.

 

6.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국제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북한의 주장대로 남한군의 사격이 북한의 “영해”를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남한과 북한 간의 영해의 경계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 부근 수역은 국제법적으로 법적 공백이 있는 상태, 즉 공해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상군사분계선 침범의 문제가 남아있을 수 있으나 살펴본 바와 같이, 북방한계선의 법적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서해해상경계선은 국제법적인 효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이 경우 북방한계선이 유일하게 합법적인 해상군사분계선이 되거나, 양쪽 경계선 모두 유효하지 않은 해상군사분계선이 될 뿐이다.
 

최대한 북한에 호의적으로 접근하더라도 양쪽 경계선 모두 유효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북한 국내법상 남한군의 사격행위가 금지된 무력사용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국제법상 북한을 향한 무력사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남한군의 사격행위가 북한을 향한 무력사용이라고 보기 어려운 반면 북한이 이에 대응해서 연평도를 공격한 것은 명백히 남한을 향한 무력사용이며 국제법상의 자위권의 행사가 아니다. 따라서 북한의 무력사용은 국제연합헌장 제2조 제4항이 금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만약 북한의 무력사용이 자위권의 행사가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자위권를 행사함에 있어서는 타국의 공격에 비례하는 정도의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민간인 거주지역에까지 무차별 공격을 한 북한의 무력사용은 이러한 비례에 어긋나는 정도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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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사태와 몇가지 법적 비유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0/11/23 23:53
  • 수정일
    2015/05/06 18:50
  • 글쓴이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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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사태 때문에 오늘 하루 공부 분량을 다 날렸으니, 이에 대해 글이라도 하나 써야겠다. 우선 내 신분이 신분인 만큼, 연평도 사태를 둘러싼 국제법적 쟁점에 대해 건조하게 다뤄보겠다.

 

몇몇 사람들은 남북한이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법은 평시상태와 전시상태를 나눠서 판단하지 않는다. 남북한 일방의 무력사용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남북한의 특수한 관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UN헌장 제2조 제4항은 무력사용금지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UN의 모든 회원국은 어떠한 유형의 무력사용도 할 수 없다.  무력사용(use of force)이란 국가가 정규군 등을 이용하여 다른 국가에게 행하는 군사적 활동 일체를 포함하며, 여기에는 다른 국가의 반란단체를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것까지 포함된다.

 

UN헌장은 무력사용금지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단 세 가지만 허용한다. 첫째는 자위권, 둘째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한 군사적 강제조치(제53조에 의한 지역협정 또는 지역기구에 의한 집단적 제재조치도 포함), 셋째는 구적국의 침략정책 재현에 대한 무력사용이다.

 

구적국이란 2차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이탈리아-일본을 지칭한다. 이 세 나라 중 어느 하나가 침략정책을 재현할 경우 이들에 대한 무력은 허용된다. 이는 거의 사문화된 규정이다. 이번 사건에서 북한의 무력사용은 안전보장이사회와는 무관하다. 결국 북한의 무력사용이 자위권에 해당하는지만 검토하면 된다.

 

UN헌장 제51조는, UN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가 있기 전까지 해당국의 개별적,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인정한다. 여기서 '무력공격'의 해석이 굉장히 까다로운 문제로 등장한다. '무력공격(armed attack)'은 '무력사용(use of force)'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국제사법법원은 Military and Paramilitary Activities in and against Nicaragua 사건에서 무력공격을 "정규군에 의한 국경침입 또는 정규군의 그것과 규모와 효과가 유사한 용병에 의한 국경침입"이라고 해석[안진우, 이종훈 공저, 국제법요해 제3판, 피데스도서출판, 210p.]한다. 또한 이런 자위권의 행사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무력공격에 비례하는 수준의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에 비추어 볼때, 북한의 무력사용은 UN헌장 제51조의 자위권 행사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위법한 무력사용이 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무력사용은 한국정전협정(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을 위반하고 있으며 민간인에게도 무차별적인 무력사용을 했기 때문에 제네바 제4협약(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협약)을 위반하고 있다. 이런 북한의 무력사용에 대응한 한국군의 공격은 국제법상 자위권의 요건을 갖춘 무력사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건조하게 쓴다고는 했지만 막상 써놓고 보니 내용이 많아졌다. 국제법 원칙들이야 참 화려하지만 저 원칙들이 거의 휴지조각에 가깝다는 것은, 힘겹게 나열한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내가 글의 제목에서 명시한 '법적 비유'는 조금 다른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맞이하며 참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어차피 예측불가이며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화해무드를 조성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에게 사태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이 '담론'에는 북한을 비정상국가로 확정지으려는 함의가 담겨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비정상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이 무슨 짓을 하든 그건 전적으로 북한 책임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주변국이 알아서 조심을 해야 한다. 여기서 북한은 마치 형법상의 심신장애자처럼 취급된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 그 능력이 미약한 자의 형은 감경한다고 규정한다. 북한을 이 맥락에 대입시킨다면 북한은 (제대로 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그 능력이 미약한 자가 될 것이다. 이런 자를 책임무능력자라고 하니, 북한은 '책임무능력국가' 정도가 되겠다.

 

누가 북한을 책임무능력국가로 지정할, 내지는 선고할 권한이 있는지, 어떤 경우에 그것이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실 무의미한) 논의는 일단 제쳐두자. 저 맥락을 계속 따라간다면 북한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은, 북한 인민이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한을 책임무능력국가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강경대응을 하려는 자는 책임무능력자를 엄하게 다뤄 훈련시키려는 자이겠고,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자는 책임무능력자를 살살 달래서 책임무능력자가 엄한 짓을 하지 않도록 만드려는 자이겠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어쨌거나 북한은 책임무능력자이며, 앞으로도 책임무능력자일 것이라는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무능력자는 말 그대로 무능력자, 훈련되지도 않고 살살 달래지지도 않는다.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바는 오히려 북한의 책임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겠다. 북한 인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획득하여,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 공동체의 복원이라고 다르게 말해보겠다. 이것은 동시에 남한 공동체의 복원도 요청하는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남한이 얼마나 책임능력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를 재고하자는 것. 이 공동체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공동체간에 어떤 성질의 연결과 갈등이 있는지가 조금 더 명확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평화의 조건에 대한 유의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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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관련 각종 국제지수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0/10/13 14:26
  • 수정일
    2015/05/06 18:50
  • 글쓴이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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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F(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2010년도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에서 대한민국은 조사대상국 134개국 가운데 104위를 차지했다.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발표한 2009년도 '여성권한척도(Gender Empowerment Measure, GEM)'에서 대한민국은 109개국 가운데 61위를 차지했다. 마찬가지로 UNDP에서 발표한 2009년도 '성별개발지수(Gender-Related Development Index, GDI)'에서 대한민국은 182개국 가운데 26위를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발표한 2006년도 '성·제도·개발지수(Gender, Institutions, and Development Index, GID)'에서 대한민국은 123개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분석하기에 앞서 각종 단체가 제시하는 국제 순위가 실질적인 성평등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컨대, 전 지구적으로 여성이 대단한 강도의 억압을 받는데 그 중 한국이 그나마 나으면 한국의 성평등지수 순위는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이 성평등 국가라는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한계를 분명히 하고 저 지수들이 의미하는 바를 들여다보자. 일단 GGI와 GEM에서 한국이 비교적 하위권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GDI와 GID에서는 상위권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차이를 면밀히 하기 위해서는 각 단체가 무엇을 기준으로 지수들을 산정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GGI는 경제참여도(노동력인구 비율, 동일노동대비 임금비율, 전문인력 비율 등), 교육성취도, 보건수준, 정치참여도 등을 기준으로 성격차지수를 산출한다. GEM은 의회내 여성비율, 여성 고위관료 비율, 여성 전문인력 비율, 평균기대소득 비율, 정치참여가능연령 등을 기준으로 여성권한을 산출한다. GDI는 평균기대수명, 15세 이상 식자율, 교육기관 등록 비율 등을 기준으로 성별개발지수를 산출한다. GID는 제도에 의한 여성성기절단 허용 유무, 제도에 의한 조혼 허용 유무, 제도에 의한 일부다처제 허용 유무, 제도에 의한 여성의 부모권한 인정 유무, 제도에 의한 여성의 상속권한 인정 유무, 제도에 의한 여성의 이혼 허용 유무, 제도에 의한 여성의 소유권 보장 유무 등을 기준으로 성·제도·개발지수를 산출한다.

 

일부는 GID와 GGI의 격차를 설명함에 있어서, 한국이 제도상의 성평등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실질적인 성평등이 달성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한국 여성들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컨대 한국은 벨기에, 네덜란드와 함께 GID 공동 4위를 하였는데, 한국은 GGI 104위이고 네덜란드는 17위인 것은 그만큼 한국 여성들이 네덜란드 여성들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전형적인 인종주의로서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다.

 

오히려 이 상이한 지수들이 각자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GID는 제도상의 기계적인 성평등을 나타낸다. GDI는 제도상의 기계적인 성평등이 실질적인 성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들을 보여준다. 그것이 평균기대수명, 15세 이상 식자율 등인 것이다. 다음으로 GEM과 GGI는 기계적인 성평등이 해소해주지 못하는 여성 억압을 보여준다. 아무리 여성에게 제도상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여성은 남성과 비슷한 수준의 정치·경제·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제도 너머에서 작동하는 여성 억압적인 시스템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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