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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나스/프랑스 2009/11/11

모나스/프랑스

from 記錄 2009/11/11 16:43

2007년 프랑스의 더운 여름 리옹에서 아비뇽으로 향하는 길


그날도 역시나 긴 자전거 라이딩을 했고, 어두워지기 전 텐트를 치고 잠을 잘 곳을 마련하려고 작은 강가를 둘러보았습니다.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지나는 사람도 드물었고 한적한 곳이여서 적당하겠다 싶어 자리를 깔고 저녁밥 지을 준비를 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남자분이 멈추더니  저와 짝궁에게 인사하며 오늘 여기서 자려고 하는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 여기는 밤에 위험하다며 멀지 않은 곳에 자기 집이 있으니 가자고 합니다. 저와 짝궁은 서로 눈빛을 마주치며 '이거 받아들일까? 진짜 좋은 사람일까? 오늘 운이 좋네?' 식의 눈대화를 나눕니다. 사실 긴 여행을 하면서 이런 일이 종종 있고 엄청난 행운이지만 그때마다 약간의 두려움이나 경계심도 있기 마련입니다. 어쨌든 아직 텐트도 펼치지 않아 단촐한 자리를 정리하고 남자를 따라 나섭니다. 셋이서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따라 내려가면서 대화도 나누고 사과밭에 갓 떨어진 사과도 주워먹고 포도나무에서 포도도 따 먹습니다. 혹시나 문제가 될까봐 주저하는 저희에게 이 정도는 괜찮다며 포도열매를 따서 줍니다. 저녁식사를 동양식으로 밥을 먹고 싶은지 프랑스식 식사를 하고 싶은지 묻자, 저와 짝궁은 당연히 '프랑스식 원츄!!!' 마을에 들어서서 언덕길을 올라 찾아간 그의 집은 너른 마당과 아담한 집 그리고 따듯한 그의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미혼에 한국의 태권도를 배우는 경찰인 그는 니콜라스. 저녁을 준비해주신 그의 어머니 재클린. 덩치가 크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귀여운 그의 아버지. 프랑스 가정식으로 야채스프와 돼지고기, 감자칩, 각종치즈와 빵, 와인까지...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대접 받은 우리는 내일 아침 바이바이 하기엔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식사 후 이야기를 나누다 하루 더 머물러도 된다면 내일 저녁은 우리가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 하십니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 편안한 잠자리, 너른 마당에 개와 고양이 수영장까지... 엄청 럭셔리한 순간입니다.


다음 날 오전에 출근한 두 남자를 빼고 재클린과 우리는 동네 구경에 나섭니다. 마침 장이 서는 날이라서 일상적인 풍경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흔히 한국에서 프로방스풍이라고 하는 디자인들이 이 지역 전통문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꽃이나 천들에서 많이 느껴집니다.

토마토나 바질같은 재료와 치즈, 올리브 유로 만든 페스토입니다. 빵에 발라 먹거나 파스타에 섞어 먹으면 아주 맛이 좋습니다. 올리브 열매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오래보관이 가능하게 만든 꼭 밑반찬 같은 것들입니다. 올리브 파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앞치마 두르고 사진도 찍어 봅니다. 각종 허브와 꽃으로 만든 비누들이 멀리서 보면 마치 파스텔을 가지런히 놓은 듯합니다. 예쁜 꽃가게도 있고, 와인을 파시다가 볼일 보러 가신 분도 계시네요.( caca 음..화장실 가신듯 )

재클린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우리는 프랑스어를 못하지만 즐겁게 시장 구경을 합니다. 우리는 함께 먹을 음식을 몇가지 장만하고, 재클린은 우리에게 선물이라며 엽서도 사주었습니다.


 

 

 

 

 

 

이곳은 프랑스 중남부 오랑쥬 지역의 모나스라는 마을입니다. 유럽 중세시대부터 내려오는 성이 있고 로마시대에 지었다는 개선문과 원형극장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가장 흥미롭게 보였던 것은 옛 건물들이 있던 골목길을 돌아보다 발견한 상점 간판이었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에 가면 가게의 기능을 재미있고 단순하게 형상화한 간판들을 볼 수 있는데, 오래된 방식이 주는 편안함과 재기발랄한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펜과 종이를 파는 문구점, 돼지고기와 식료품을 파는 곳, 옷을 만들거나 수선하는집, 열쇠 만드는 집. 이렇게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낯설고 어설픈 한국음식이지만 즐겁게 저녁을 함께하고 난 다음날 우리는 다시 아비뇽을 향해 달립니다. 여행 중에 이렇게 따듯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떠나오던 날 아침 서로의 얼굴에 가득 매운 감정들은 어떻게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가득 밀려오는 아쉬움을 안고 니코와 아버지의 출근길을 배웅하고, 떠날 채비를 하는 우리에게 이것저것 싸주던 재클린과의 포옹은 지금도 가슴을 뻐근하게 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아이와 함께 와야 한다고 당부하던 재클린의 모습을 당장에라도 보고 싶습니다.

 


동창회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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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6:43 2009/11/11 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