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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05
    오늘의 말씀Drei
    공돌
  2. 2006/08/05
    오늘의 말씀.zwei
    공돌
  3. 2006/08/05
    오늘의 말씀(1)
    공돌
  4. 2006/08/05
    불편케 하는 글쓰기
    공돌
  5. 2006/08/05
    결과가 이렇군
    공돌
  6. 2006/08/05
    괴물보다
    공돌
  7. 2006/08/04
    새는 좌우로 난다?(1)
    공돌
  8. 2006/08/04
    지갑 잊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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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8/04
    블로그 정리
    공돌
  10. 2006/08/02
    노무현 귀때기
    공돌

오늘의 말씀Drei

한 여자아이와의 짧은 종교에 대한 대화 중,

 

"사람의 무지로 하느님을 정의하지 마라."

 

씨발, 그럼 왜 너희들은 하느님을 증명할려고해? 상식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증명을 하냐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쨋든 그 아이의 말은 거의 '명언'에 가깝다. 그러나 이미 '광신', 아니면 '빠'수준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슨 논리가 있겠는가. 그냥 싫은 거지뭐. 맑스를, 로자를, 루신을 그냥 대놓고 씹어 재끼면 그리 좋을리는 없겠지만(물론 정확하고 날카로운 비판은 언제나 나를 깨어있게 한다. 그들은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내 생각을 알고 싶다는 그이의 주문에 그대로 나는 답을 했을 뿐이다. 답의 내용?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나는 기쁠때는 무신론자이고, 슬플때는 불가지론자이다. 그 사이에서 논다고 보면된다.(나중에 한 번 정리하자.)

 

짧막하게 나마 휘갈겨 본다. 김홍도라는 목사가 있다. 그 목사는 '쓰나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쓰나미에 희생된 사람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는 자들이다'

 

쓰나미가 비교적 따뜻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뒤엎어 버린 것을 보고 한 목사님께서는 하느님 안믿어서 그렇단다. 재수없다고 하기에는 사태는 좀 심각하게 느껴진다. 물론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다.나는 개인적으로 볼 때, 모든 문제의 책임은 목사님이 아니라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받을어 모시는 하느님 때문이라고 본다.

 

그가 말하는 하느님은 항상 불의 심판을 내리시고, 물로 쓸어버리는 하느님이다. 과격하신 분이다. 얄전없다. 걸리면 쥐뿔도 안남는다. 인도네시아, 그곳에 이슬람이 87%다. 그외 그리스도교를 가진 사람이 9%다. 쓰나미에 9% 중 하나도 죽지 않았다면 일단 하느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자기를 믿지 않으면 다 쓸어버리는 자기들의 하느님. 그건 신통력과 전지전능을 가진 조폭두목에 불과하다. 왜 신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늘 그런 식일까. 위협하고 두려움을 주고(갑자기 부시가 생각나는 이유). 그 중에 자기를 믿는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 믿음의 정도가 견고하지 않아서 쓸어버렸을까. 일단 하느님 책임. 있다.

 

두번째, 하느님이 책임져야 할 것 중에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자식교육이다. 목사든 누구든 간에 전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한다. 그래 좋다. 하느님의 자녀라고 해두자. 구닥다리 쉰냄새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인 시오니즘같은 느낌이 들지만 일단 제쳐둔다.  

 

어떻게 자식새끼하나 제대로 관리 못하나. 그 책임의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그런 똘아이 망발을 하는 그런 하느님의 자녀. 부모의 가정교육이 잘못된 탓이라고 본다. 그 목사님을 똘아이로 만든 것이 하느님이다. 하느님. 이 타임에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자녀분, 최근에 공금횡령으로 대법원까지 가서 유죄판결 받았다. 또한 교회를 세습하다 주변 동료 목사들에게 진탕 맞고 있다. 슬프기 그지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하느님. 해명하셔야 한다. 당신을 안믿는 놈이 하느님을 배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믿는 자식이 저렇게 방방뜨고 법원에서 유죄판결까지 받고 있는 현실. 하느님. 쪽팔리지 않는가.

 

스티븐 호킹이 말했듯이 신이 있든 없든 간에 우주는 대체로 잘 운영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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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zwei

김규항의 말.

 

아이들은 제 아비의 계급이나 지역 따위에 아직은 제 정신을 앗기지 않은 상태에 있다.

 

요기서 봤다. http://gyuhang.net/archives/2003/11/

 

과연 그런가? 그이의 글과는 관계없이 생각해본다.

아이들을 너무 얕잡아 보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 알건 다안다. 고래가 그랬어라는 책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스타크래프트(나는 다행히도 할 줄 모른다)를 부자든, 서민이든 다 하는 것과 같은 것 처럼. 여하간 이 이상의 언급은 오바다. 넘어가자.

 

아이들(가능하면 어린이들이라고 쓰자.)은 경험과 돈만 없을 뿐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버나드쇼가 말했듯이, 역사가 경험을 통해 진보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에 대한 대응방식으로부터 진보했다는 이야기. 이걸 어릴 때부터 배운다.

 

어린이들, 무섭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지극히 정상이다.

김규항은 아마도 정말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러한 계급과 지역(아마도 지역감정 등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지역색이 강한 말투라도 서울말에 대해 크게 위력을 못가진다 )이 언제가는 그들의 정신을 앗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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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이나리의 <열정과 결핍> 중에서 읽은 부분.

 

이윤기와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다음 구절. 41쪽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

 

스파르타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아버지, 칼이 너무 짧아 찌를 수가 없어요."

"얘야, 한 발 더 가까이 가서 찌르려무나."

 

두울.

 

미꾸라지를 산 채로 횟집까지 운반하려면 그 안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된다지요. 메기로부터 달아나려는 필사의 생존본능이 미꾸라지의 수명을 한참 늘려 놓는다는 겁니다.

 

이 둘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카네기의 말이다. 출처는 모르나, 카네기의 말.

 

'바람불지 않을 때에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성공과 결부되어 부담스럽다.

목적에 도달하는 것만이 인생의 참 맛인가. 오늘은 유난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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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케 하는 글쓰기

1. 여기 기능을 좀 더 연구해야 겠다.

 

 

2. 글쓰기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성격성 육체적으로 말로 상대방을 불편케하는 일에는 익숙한 터라,

 

글로 토론하는 것은 장시간 사색을 요하는 일이라

 

나로서도 구차한 변명이 많아진다. 불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어디서 주워서

 

끌어다 퍼담아 쓰는 나로선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글은 일기에 가깝다. 덧글 쓰신 양반의 글에도 내가 그리 적어놓고 왔다.

 

피해를 가지 않도록 일기를 써야겠다. 쓸데없이 남의 글이 봐가지고.

 

 

3. 그리고 오늘에야 알았다. 글을 쓰면 블로그 대문에 쳐발리는 것을 모르고 쪽팔리게

 

요기 안방에서 뒹굴고 지랄발광을 하고 있었으니. 빠른 시일 내에 '기능'을 전수받고

 

학습과 반복훈련을 거듭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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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이렇군

あなたは現代フランスの哲学者 サルトル です。

당신은 현대 철학자 사루토루(샤르트르)입니다.


非常に実際的なあなたは,頭で考えられた奇麗な言葉を嫌い,具体的に実践されたものを評価するところが あります。行動的で実行力があるので多くの人に 信頼されますが,独特の感性を持った人には嫌われる かもしれません。

 

매우 실제적인 당신은,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깨끗한(아름다운) 말을 싫어한다. 구체적으로 실천된 것을 평가하는 점(태도)이 있다. 행동적이고 실행력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에게 신뢰 받지만 독특한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지도 모른다. 


特徴:(특징)
実際的で言葉だけでは納得しない。 실제적이어서 말만으로 납득하지 않는다.

適職:(천직)
雑誌記者,知事 잡지기사, 지사(이건 무슨 뜻인지?)

相性良:(적합성 좋음)
ソクラテス,バタイユ,メルロ=ポンティ 소크라테스, 바타이유, 메루로=폰티

相性悪:(적합성 안좋음)
プラトン,デカルト,カント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ラッキーワード:(럭키워드)
『実存は本質に先立つ』『アンガージュマン』 실존은 본질에 앞장선다. 안가-주만(ㅋㅋ'앙가주망'이겠다.)


精神レベル:B 思考レベル:A 実践レベル:A

정신레벨: B      사고레벨: A      실천레벨: A

 

요기서 하시면 됩니다.  http://www2.tky.3web.ne.jp/~bites/te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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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보다

괴물봤다.

 

공룡영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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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좌우로 난다?

블로그 대문에 글 하나가 올라와 있더라.

 

http://blog.jinbo.net/chasm/?pid=12

 

나는 이런 글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근데 읽으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좌파는 훈장이 아니다."

 

좌우당간 새는 날기만 하면 된다든지, 날아봤자 새라든지,

 

좌우파가 서로의 날개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혹은 묵인)하고 있다는 것한다든지. 결국 이런 보충적 관계라는지. 참 쓸데없는 지적이고 별 의미없는 성찰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결국 좌파의 순수성을 높여내자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리영희 선생의 "새"라는 메타포는 "사회"다. "날개"를  좌우파의 이념으로 치환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고, 그렇다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의 문제는 좌파의 순수성, '우리가 정통'이라는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나는 이들의 논의가 개신교 신도들의 '이단'논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나와 다른 자를 철저하게 구별하므로써 자신(기존 교회집단)의 권위를 회복하고, 기존 질서가 도전받는 일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이단을 구별해 낸다고 개신교가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신도가 교회를 바꿀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새가 두 날개로 날든 말든 간, 새는 날아야 '살아'있는 것이다. 이제 닭을 보고 새라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좌파의 순수성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로 자신이다. 적과 나의 구분은 사실 낡아빠진 개념이다. 왜냐하면 내부의 적과 얼치기들이 더욱 설치고 다니기 때문이다.

 

결국 좌파가 분열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새가 좌우로 날든 간에 안타까운 것은 두 날개 모두 심각한 관절염과 류머티스에 걸려있다는 점이다. 왼쪽 날개가 오른 쪽 날개를 도와줄 수 없다. 치료방법은 단 하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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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잊어먹음

재곤이가 사준 지갑.

그리고 현금카드와 교통카드.

신분증과 찜질방 포인트 카드.

 

 

"인생을 살면서 한 번씩 뜻하지 않게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그리 기분나쁜 일은 아닌 듯하다.

쓰레기 같은 책들도 양장본이라는 이유로 일단은 책장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내가 손수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해 보아야 겠다.

새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말이다.

 

뱀발: 지갑을 잊어먹어도 술은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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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정리

블로그 정리가 끝났다.

 

사실 계륵과 같은 글도 지우지 못하고 올려두었다. 그리고 쪽팔리는 글도 지우지 않고 올렸다. 그 때를 생각하면 글쓰기와 생각의 시계열적 흐름을 보면서 반성하기 위해서다.

 

 

실제 옮겨 놓고 싶은 글 중 하드 디스크가 맛이 가서 옮겨놓지 못한 글도 있다. 조만간 현찰이 마련되면 하드디스크를 복구해서 올려야 겠다.

 

 

그리고 진보넷 블로그로 이사를 감행한 것은 기쁜 일이다.

상업적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사용하는 내내 광고나 대문에 있는 상품광고는 거슬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여기는 좀 다르다. 그래서 상업적이지 않은 블로그를 옮긴 것을 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단 새집에 오니 마음은 푸근하다.

 

다만 선택적으로 글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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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귀때기

오늘 신문을 펼친다.
그리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이런거다. 죽는 소리하다가도 '막가는' 소리를 하는 그 분에게 인간적인 동정도 가지 않는다.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아래 글에서 노무현의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이 쓴 글을 보았다. 한국 정치사의 획기적 변화(내가 보기에는 이변일 뿐이다. 이건 폄하가 아니라 현실적인 평가이다.)라고 하지만 정치개혁의 측면에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정치권의 정치자금 문제는 그 한계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나는 아래 글에서 그 글을 쓴 사람이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 더욱더 노무현 정권을 건강하게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에 대해 반문하고 싶다. 그의 글이 더욱더 정돈되지 않은 일반적인 민주당(혹은 열린 우리당)의 시각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문제는 심각하다.

정권의 각료들이 드림팀이라고 공세적으로 방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는 건 삶의 양태가 변화된 것이지 계급적 상황은 다를바 없다. 과연 지금 우리가 독재라는 외부적인 탄압기제가 사라졌을 뿐, 정보화와 기계화로 생활환경이 바꼈을 뿐,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에는 노무현의 정책적 마인드를 제어할 만한 사람이 없다면 노무현 정권은 과거 김대중 정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문민정부’가 될 것이다.

위와 같은 말을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것을, 왜 저런 말을 계속해대는지 그 속내가 너무나 뻔이 보여 더욱더 속상하다. 이제는 노무현의 귓때기까지 뭐가 막혔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2003.11.06 22: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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