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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4/11/17 02:01
  • 수정일
    2004/11/17 02:01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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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친구를 몇이나 두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어릴 적부터 친구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었던 터에 남들이 그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를 친구로 삼는 것에 쉽게 동의가 안되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에 같은 반을 하고 한동네 살았던 한 친구가 있는데,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도 다른 곳을 다녔지만 꾸준히 만나고 연락을 하며 지냈고, 우연히 그 친구가 천안에 내려와 살면서는 더 가까운 느낌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중학교때 가까이 지냈던 한 친구는 대학졸업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결혼 하고 나서 딱 한번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는 연락이 되질 않았다. 유복한 집안에서 잘 자란 딸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랑스 유학도 다녀왔다고 했는데 아마 어릴적 감정만 공유할 뿐 가는 길이  너무 달라 서로 연락을 하기 어려웠던 듯 하다.

고등학교 때 유난히 나를 도와주려는 책임감이 강했던 친구는 중학교 수학교사가 되었는데, 역시 대학졸업 후 한번 보고는 연락이 닿질 않는다. 병원노조가 막 활동을 시작하던 80년대 말에 만났을 때,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훈계하던 모습이 마지막 기억이다.

대학에 와서는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과 친구들에게 정을 주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세미나그룹에 들어가면서 한두명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 중 한명이 보건의료노조를 창립하여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운동가가 되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때로는 내가 지닌 작은 전문성을 보태주느라 만나면서 대학다닐 때보다 훨씬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치열하게 한 길을 걷고 있는 그를 보면서 많이 반성하고, 다짐도 했으며 좀 덜 힘들었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많았다. 요즘은 어찌 지내는지 마음이 많이 쓰인다.

이번에 보스톤을 찾아온 또 한명의 대학동기는 대학시절에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던 사이였다. 졸업 후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같은 학교에 시간강사를 나갔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전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나를 대해주는 바람에 어떨결에 나도 마음을 열수 있었던 친구다. 매사에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를 많이 배울 수 있는 친구. 편견없이 나를 신뢰해주는 그의 태도가 내겐 늘 고마울 뿐이다. 함께 일을 할 때도 잘난 척하는 나를 전혀 거슬려하지 않고, 편안하게 바로 잡아주는 풍성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친구란, 서로 경쟁하는 마음을 선의로 극복하지 못하면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는 것을 종종 보았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는다 해도 가까이에 있는 친구와 자꾸 비교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탓에  오래 익은 술처럼 진정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듯하다. 

이번에 보스톤을 다녀간 남편의 친구도 있었는데, 그들의 우정에서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내 능력보다는 친구의 능력을 기꺼이 인정해주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옛친구가 그리운 것은 나이가 드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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