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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31
    <연재소설>-인생역전(6)(3)
    onscar
  2. 2005/01/17
    <연재소설>-인생역전(5)(3)
    onscar
  3. 2005/01/10
    <연재소설>-인생역전(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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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1/07
    <연재소설>-인생역전(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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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12/29
    <연재소설>-인생역전(2)
    onscar
  6. 2004/12/23
    <연재소설>- 인생역전(1)(1)
    onscar
  7. 2004/12/17
    제의(祭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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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6)

3. 

‘김순애, 넌 죽었어.’

 

영철은 순애와 경찰서 대기실에서 20여일 만에 만났다. 순애가 들어서자 반쯤 벗겨진 머리에 작고 마른 체구, 한쪽만 쌍거풀진 작은 눈을 가진 영철이 벌떡 일어나 입을 앙다물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당장이라도 한대 후려칠 듯한 영철의 눈빛을 피해 순애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발장난만 했다. 

 

그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영철은 한바탕 육박전을 치루고 순애가 가출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부터 복수를 계획했다. 순애가 자신이 던진 유리 재떨이에 가슴팍을 맞고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던 생각만 하면, 그는 지금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처음 순애를 데려올 때만 해도 그가 예상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조선족이란 이름에 걸맞는 순진하고 나긋나긋한 ‘조선처녀’를 꿈꿨다. 남영동 후미진 뒷골목이긴 하지만 당구장과 노래방을 하며 동네에선 돈 좀 만지는 축에 속하는 영철은 한국에서도 재혼 상대를 구할 수 있었다. 그가 굳이 멀리 중국까지 가서 신부감을 고른 건 드세고 돈만 밝히는 한국 여자들이 싫어서였다. 3년전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와 20년 결혼 생활로도 충분히 넌더리 날만큼 겪었다.     

 

재혼하기로 마음먹은 영철은 결혼상담소의 안내로 중국 심양에 신부감을 고르러 갔다. 그는 도착한 날부터 서너명의 아가씨를 소개받고 가장 어리고 늘씬한 순애를 선택했다. 조선족 여성들과 결혼하려는 다른 한국 남성들에 비해 경제력이 있는 그는 어딜 가나 환영 받았다.

 

고3인 큰아들보다 불과 여섯 살 많은 여자에게 처녀장가 든다는 기쁨에 영철은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장모를 ‘어머니’라며 존대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순영이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자신과 단둘이 살아온 장모 걱정을 하자 그는 결혼하면 장모에게 작은 슈퍼마켓 하나 차려주마, 큰 소리도 쳤다.

 

그렇게 만난지 일주일 만인 3월25일 영철과 순애는 결혼했다. 순애의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선족 식당을 빌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중국식 결혼을 치렀다. 고개를 젖히고 술잔에 담긴 술을 입에 탁 털어 넣는 순간 식도가 타 들어갈 것 같은 독한 중국술을 적잖이 마신 영철은 그날 밤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순애를 데려왔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10분도 안돼 사정하고 만 것은 그가 만취해서도, 20대 중반의 탄력 있는 순애의 몸 때문도 아니었다. 그 몸을 자신만이 독점할 수 있다는 희열이 더 컸다.(계속)

 

덧붙이는 말 : 이 소설을 기다리는 분이 적어도 두 분이나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여섯번째를 올리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요즘 좀 슬럼프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글 쓰는 게 조금 피곤한 상태입니다.

 

좀 지나면 나아지겠죠^^

(이건 일곱번째도 늦어질 거란 암시? ㅎㅎ)

 

날씨가 너무 추워요....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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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5)

김 형사가 몸을 돌려 순애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어디를 맞았어요?”
“머리하고, 온 몸이 다 아팠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몇 대나 때렸어요?”
“다섯 개, 여섯 개?”
“발로 찬 건?”
“기억이 잘 안 나요.”
“주변에 사람은 없었어요?”
“네. 손님들 다 나가라고.”



향숙이 다시 참지 못하고 말을 가로챘다.

 

“야가 거기 있으면 계속 맞을 것 같으니까 사정을 했대요. 우리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고. 그래서 마음이 풀렸는지 박영철이 나가서 맥주 사오라고 그러더래요. 야가 계속 있으면 맞을 것 같으니까 그 길로 택시 타고 교회로 튀었죠.”

 

“다음엔 칼로 죽인다고 그랬어요.”

 

순애가 볼멘 목소리로 불쑥 말했다.

 

“다음에 또 말 안 들으면 칼로 죽인다고 그러니까 애가 겁을 집어먹고.......”

“어디 피나고 그런 것 있어요?”
“아니, 그래도 멍들고 시큼시큼하고 그러니까 슈퍼 아저씨가 택시 타고 빨리 도망가라고 그랬겠지.”
 
“맥주 사면서 슈퍼 주인 아저씨한테 맞았다고 이야기 했어요?”
“안 했대요.”
“그러면 슈퍼 아저씨가 딱 얼굴 보고 알았을 것이다?”
“네, 야가 막 울고, 머리도 다 헝크러지고 그러니까.”

 

김 형사가 다시 순애한테 물었다.

 

“남편이 술 마셨어요?”
“많이 마시지는 않았는데.”
“같이 싸우지는 않았죠, 같이 때렸어요?”

 

“네.”

 

순간 김 형사의 타이핑 소리가 멈췄다. 순애의 대답을 받아치던 그는 고개를 들어 순애를 약 5초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기계적으로 물었다.  

 

“박영철씨를 때렸어요?”

“네.”

 

순애의 대답에 놀란 향숙은 정색을 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너도 때렸어? 니가 몇 줌이나 때렸어? 남자를......”

“아니 막느라고......”

 

순애가 고개를 떨구며 말을 흐렸다. 향숙은 순애에게 눈을 살짝 흘긴 뒤, 바로 표정을 바꿔 김 형사에게 한껏 웃으며 목소리를 한톤 높여 말했다. 

 

“응. 때린 건 아니고 방어하느라고 그랬다는 소리예요.”

 

“박영철씨, 법대로 처벌하길 원해요?”

 

김 형사의 물음에 순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형사는 작성된 고소장 내용을 읽은 뒤 순애에게 맨 뒷장을 내밀었다. 순애는 김 형사가 시키는 대로 서툰 글씨로 이름을 또박또박 쓰고 엄지 손가락 끝에 붉은 인주를 듬뿍 묻혀 이름 옆에 지장을 꾹 찍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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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4)

2.

 

한달 반전인 11월14일, 순애는 서울 구로에 위치한 ‘조선족 동포의 집’에서 일하는 정은희 간사와 함께 구로6동 파출소를 찾았다. 정 간사는 서울에 온지 채 6개월이 안되는 순애의 사연을 듣고, 가정폭력으로 남편을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2년 전 한국 남자와 재혼해 안양에서 살고 있다는 순애 사촌 언니 향숙도 한국말이 서툰 순애를 돕겠다며 파출소에 나타났다.

 

짧은 스포츠 머리와 떡 벌어진 어깨에서 느껴지는 남성성을 뚝 떨어뜨리는 불쑥 나온 배. 중년 형사다운 외모를 가진 김 형사가 순애의 조서를 쓰게 됐다.

 

김 형사가 묻고, 순애가 대답했다.  



“주민등록증 있어요?”
“몰라요. 박영철이 서류 다 가지고 있어요.”
“생년월일?”
“1978년 5월13일.”
“직업 있어요?”
“없어요.”
“핸드폰 있어요?”
“없어요.”
“지금 사는 곳은 어디예요?”
“구로에 있어요.”
“구로 어디?”
“교회에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교회.”
“혼인신고 언제 했어요?”
“중국에서요? 중국에선 3월25일.”
“법적으로 남편이에요?”
“네.”

 

김 형사는 이틀 전인 11월 12일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몇 시예요, 남편한테 맞은 시간이?”
“3시 반.”
“새벽?”
“네.”
“주먹으로만 때렸어요? 다른 흉기 같은 것은 없었고?”
“재떨이. 유리로 된 둥근 거.”
“어떻게 맞았어요?”
“저보고 사기 결혼이라고 1천7백만원 도로 달라고. 돈 안 준다니까 밤에 술 마시고 때렸죠.”

 

옆에 있던 향숙이 거들었다.

 

“야가 친오빠가 있어서 자꾸 일요일마다 밖에 나가니까, 남편이 그게 싫어 가지고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더니 까만 비닐 봉투에다 바지 하나만 들고 나왔더라구. 한국말을 잘 이해 못하니까 나가라니까 나온 거예요. 그래서 야 오빠하고 내하고 내 남편하고 한번 집에 데려다 준 적이 있어요. 그때 박영철이 하는 소리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집에서 살림할 생각은 안 한다는 거예요. 아침에 애보고 고추를 빻으러 방앗간에 갔다 오라고 했는데 못 하니까 자기가 가서 빻아 왔대요. 말도 제대로 모르는 애가 어케 하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살려고 왔으니까 자꾸 가르쳐야지 못 한다고만 하면 아니 되지 않겠는가. 그랬더니 노력해보겠다 하더라구.

 

그리고나서 불과 한달도 못 되어서 야가 또 튀어 나왔더라구. 왜 그러는가, 도저히 자기는 다른 여자 데리고 왔다갔다 하는데 못 살겠다. 그러니까 박영철이 너 그러면 중국 보내 줄 테니 돈 천칠백만원을 돌라 하더래. 야보고. 결혼 경비 그렇게 썼으니까.”

 

김 형사가 다시 순애에게 물었다.
 
“어떻게 때렸대요,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어요, 발로 찼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막 때리고 발로 밟고. 제가 당구장 보고 있는데. 당구장에 살림집이 겸해 있어요.”
“당구장에서 때린 것입니까? 당구장 이름이?”
“열림 당구장.”
“몇 층이예요?”
“2층.”
“친오빠 만나러 일요일마다 나갔어요?”
“일요일마다 만나러 나간 건 아니고, 처음에 네 번만.”
“당구장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잔 게 언제입니까? 당구장에 딸린 방은 하나 밖에 없지 않나요?”
“제가.......”
“아, 나가 있을 때요?”
“아니요. 당구장 카운터에 앉아 있을 때.”
 
향숙이 또 끼어들었다.

 

“한국에 야를 데리고 와 가지고 한 주일은 같이 생활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외박을 했데요. 야보고는 당구장 지키라고 해놓고 밤에 와서 돈 가지고 나가서 외박하는 거지. 2-3일에 한번씩 들어오고. 그러니까 말 대상도 없고 심심해서 일요일날 오빠한테 가서 놀고 그런거죠.”

 

향숙은 어눌한 순애의 태도가 답답한 듯 의자를 앞으로 당겨 자세를 고쳐 앉더니 순애 대신 김 형사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당구장에 방이 몇 개인가요?”
“하나예요. 가정집은 또 따로 있고.”
“여자를 데리고 온 게 가정집이에요, 당구장이에요?”
“당구장이죠.”
“그러면 세분이 같이 잔겁니까?”
“그 여자랑 둘이 방에 같이 있고, 야한테는 당구장에 카운터를 보라고.”
“그 때가 언제, 어디서죠, 맞은 날이 며칠?”
“11월12일, 새벽 3시 반. 당구장에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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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3)

제 소설을 기다리시는 분이 적어도 한분은 있다던데 하하

'이기준' 때문에 정신이 한개도 없어서...이번 건 좀 짧습니다.

(흥미 유발을 위해 말씀드리면 박 검사가 주인공은 아닙니다.^^) 

 

팬티 바람의 박 검사는 실내화를 질질 끌며 옷장 앞으로 다가갔다. 옷장 문을 열고 혹시나 양복 사이에 와이셔츠가 끼어 있지는 않나 싶어 가지런히 걸린 옷 사이사이를 헤집어 보았다.
 
아! 양미간을 찌푸리며 옷장 안을 한동안 뒤지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시선과 손길은 어느새 옷장 한 귀퉁이에 걸린 여름옷으로 옮겨갔다.



반팔 와이셔츠라.......박 검사는 세탁소 비닐에 싸인 비교적 도톰해 보이는 흰색 여름 셔츠를 꺼냈다. 그는 비닐을 벗기고 셔츠를 이리저리 살피며 여러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겨울이라 실내에서 양복 윗도리를 벗을 일도 없고, 크게 표가 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오늘 하루만인데....’

 

박 검사는 반팔 셔츠를 입고 그 위에 감색 겨울 양복과 검은색 반코트를 겹쳐 입었다. 차 열쇠와 서류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며 “내일 아침까지 와이셔츠 다 다려놔”라고 아내가 있는 부엌을 향해 큰 소리까지 치고 나니 기분은 한결 나아진 듯 했다.
 
이날 출근하자마자 공교롭게도 박 검사를 기다리는 첫 사건은 가정 폭력 사건이었다.

 

‘아, 오늘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군.’

 

짜증이 다시 확 밀려왔다.

 

‘김순애, 25세, 중국 국적.......조선족이군. 아니, 이거 뭐야? 박영철, 50세? 완전 아버지와 딸이잖아.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사람들이야.......’

 

자기 나이의 곱절인 남자와 결혼한 조선족 여성의 사연에 호기심을 느끼며 박 검사는 짜증스런 마음을 다잡고 경찰서에서 넘어온 조서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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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2)

 박 검사는 지난 세 달간 아내와 서로 말도 안 하는 냉전을 계속해왔다. 그러던 그가 새해를 이틀 앞둔 12월30일 아침, 폭발했다. 옷장에 걸려 있는 깨끗한 와이셔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말이다.

 

“도대체 당신이 뭐하는 여자야? 아니 어떻게 열개가 넘는 와이셔츠 중에 빨아놓은 게 없어?”



속옷 바람으로 어제 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던 와이셔츠를 한 손에 움켜쥔 채 부엌으로 달려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탁탁탁탁......아내는 둥근 유리 그릇에 계란을 깨뜨려 넣고, 계란물에 잘게 썰은 파 한 웅큼과 소금 약간을 집어넣은 뒤 젓가락으로 내용물을 휘저었다.

 

촤아......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붓자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고소한 냄새가 부엌에 퍼졌다. 전날 거나하게 술을 한잔 걸친 박 검사는 그날따라 속이 헛헛했고 계란말이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자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안엔 침이 가득 고였다. 고작 계란말이에 무너지는 스스로에 화가 나 그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 말이 말 같지도 않아? 물어 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내가 당신에게 대단한 거 요구하는 거야? 적어도 기본은 해야지. 기본은....... 이거 당장 어떻게 출근하겠어?”

 

착착착착....박 검사의 짜증섞인 목소리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를 도마로 옮겨 먹기 좋은 크기로 썰은 뒤 두 딸의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았다. 냉정을 먼저 잃은 사람이 지는 게 냉전의 법칙이다. 아내 입장에선 대응하지 않는 게 길게 끌어온 냉전을 승리로 이끌며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길이다.

 

아뿔사! 그제서야 박 검사는 자신의 패배를 깨달았다.  

 

“이런 씨발......”

 

박 검사는 방으로 돌아와 손에 쥔 와이셔츠를 바닥에 내동이치며 혼잣말을 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어제 입었던 것을 다시 입을 것인가를 한동안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공교롭게 엊저녁 전남 목포 출신인 부장 검사와 홍어를 먹었기 때문이다. 와이셔츠엔 삭힌 홍어의 암모니아 냄새와 탁주 냄새, 거기에 담배 냄새까지 짙게 배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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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인생역전(1)

 

지난 번에 올렸던 엽기적 시(詩)와 달리 이 글을 올리기까진 좀 고민이 있었다.

 

우선 미완의 작품이다. 때문에 '연재소설'이라고 붙였다. 완성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허걱..


또 앞의 시보단 심혈을 기울였다.


사실 이 소설에 앞서 내 생애 첫 소설을 썼었다. 여기 올리는 글과 아주 다른 일종의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 근데 묻어두기로 했다. 언제까지 묻어둘지 모르겠지만. 당시 그 글을 읽었던 한 친구가 이런 조언을 해준 적 있다.


“원래 처음 쓰는 작품은 자기가 간직하는 것 같아. 자기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첫 작품에 거의 다 녹여내니까. 첫 작품은 자기와의 대화인 것 같아. 그리고 차츰 자기와의 대화에서 벗어나, 자꾸 쓰다보면 세상과의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더 커지겠지?”


언제쯤 세상과 대화할 수 있을 만큼 품이 넓어질 수 있을지,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생역전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동화책 마지막 구절이 문제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구절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은,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결혼했지만, 서로에, 결혼생활에, 실망을 느껴 싸우는 일이 잦았고, 실망이 커지면서 상대에 대한 증오나 심할 경우 살의를 느낀 적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혼하자’는 말을 적잖이 내뱉었고, 어떤 때는 선수를 빼앗겨 상대방이 먼저 ‘헤어지자’고 요구해,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으며, 때론, 오! 하나님 용서하소서, 이웃의 아내를 탐하기도 했다. (주 : 이 욕망의 실현 정도는 개인마다 편차가 크다. 특히 이웃, 즉 욕망의 대상의 남편이 자신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우위를 갖고 있느냐를 중요한 변수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아내가 사랑스러워 보일 때보단 길 가는 모든 여자가 낫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유난히 옆에 찰싹 붙어 오는 아내를 모른 척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아이 때문에 참아야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시작한 건 자식놈이 채 1살이 되기도 전이라 기나 긴 결혼 생활 동안 도대체 몇 번이나 되새겼는지 헤아리기 힘들다. 자식들은 들어가는 돈에 비해 천천히 자랐다.

 

좀더 나이가 드니 ‘그래도 늙어 등 긁어줄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지 않나’라는 좀더 건설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아내하곤 비교도 안될 만큼 사랑한, 거품 빼고 말하면 투자한, 자식들이 커가며 배신감을 안겨주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랬다.

 

드디어 자식들이 다 자랐는지 그들의 전철을 밟겠다며, 물론 본인들은 부모처럼 살지 않을 거라 믿으며, 제짝을 찾아들 갔고, 아내와 둘만 남겨졌지만, 기대가 크지 않으니 실망이 크지 않더라. 물론 기쁨도 그랬다.

 

그러다 병상에서 옆에 있는 아내를 보며 ‘그래도 총량적으로 내 인생이 행복했겠거니’ 위안하며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주 : 여기서 행복의 총량 역시 개인마다 편차가 크고, 심지어 총량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한다.)

 

위에서 아내를 곧장 남편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
.
.
.
.
.
.
고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생략과 압축이다. 따라서 왜곡이기도 하다.

 

또 신부가 신랑집에 지참금을 가지고 가거나, 신부 측 가족에게 신랑이 신부대를 지급하는 풍습들을 볼 때 인류사적으로 결혼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그 기원에서부터 ‘거래’였다. 특히 3백-4백여 곳의 결혼정보회사가 성업 중이며 연간 5백억원 규모의 ‘짝짓기’ 시장이 형성된 대한민국 사회는 결혼을 통한 경제적 거래가 자본주의와 비례해 발전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결혼에 대한 동화책 마지막 구절의 효과가 너무도 강력해, 극히 이성적인 남성마저 포섭한다는 것이다. 박 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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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祭儀)

습작이란 표현이 좀 부담스럽긴 한데...

 

내가 최소한 '작가 지망생'이란 걸 의미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요즘 예술적 글쓰기와 기록적 글쓰기 사이의 차이를 더욱 절감한다.

 

올해 봄 열병을 앓듯 무언가를 끄적였는데

 

젊은 한 때 감상들이 결코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걸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결론은

 

우선 '기자질부터 제대로 하자'로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느끼는 내 감정들이 아깝고 아쉬울 때가 있다.

 

다시는 못 가져볼 것 같아 말이다.

 

여기엔 그런 기록을 남기려 한다.

 

첫 번째 올리는 글이 내 엽기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거시기 하네;;;

 

제의

 

자, 이제 우리 의식을 시작하자.

너와 나만의 마지막 제의.

실수할까 걱정하지 마.

넌 그저 내게 가만히 몸을 맡기면 돼.



널 위해 손에 석회 가루를 살짝 바르고

투명한 수술용 장갑을 끼웠어.

난, 실수하면 안 되잖아.

 

오래 기다렸지?

이제 은빛 메스로

네 살집을 꽃잎처럼 떠

떠돌이 개들에게 던져줄거야.

 

진동하는 피냄새에 모여든

동네 개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침을 뚝뚝 바닥에 흘리며

흥분해 날뛰겠지.

 

조상들이 죽어 독수리로 부활한다고

망자(亡者)의 시체를 그들에게 던져주는

몽골의 조장(鳥葬)을 알지?

 

조장을 치르듯

네 내장은 까마귀에게 줄거야.

 

광활한 대지를 가로지르는 독수리와 달리

도시 뒷골목에 둥지를 튼 까마귀는

행여 네 영혼을 쓰레기와 함께

내장 어느 한 귀퉁이에 담았을지라도

저주받은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할거야.

 

네 뼈는 하얗게 빻아

수채 구멍에 조금씩 흘려 보낼 거야.

하숫물로 등이 젖은 시커먼 시궁쥐가

살빛 코를 벌름거리며 모여들겠지.

 

네 살을 뜯은 개와

네 내장을 훔쳐간 까마귀와

네 뼈를 갉은 시궁쥐.

 

존재 자체가 혐오인

이들의 기쁨만으로는

내 죄가 사해지진 않을까?  

 

마지막으로

죽어서도 

내 맘을 헤집고 다니는

네 영혼을 위해

작은 관을 짤 거야.

내 가슴 한켠에 네 무덤을 만들기 위해.

 

내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길 바래.

 

이것으로 타인에 대한 내 증오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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