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장사꾼 시대의 기자

"과점 언론들 즉 조중동 논조가 왜 그렇게 보수적이냐. 사주들이 정말 친자본적이고 수구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가 됐다. 그전까지는 기자들 월급이 한국 사회 평균이거나 더 아래였다. 그래서 아래에서 한국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등은 월급쟁이가 받는 최고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미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상층부에 기자들이 들어간 것이다. 편집권 독립을 얘기하는데, 기자들이 편집장을 뽑는다고 좀 다른 논조를 주장하는 편집장이 뽑힐까? 데스크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기사를 쓰라고 하면 기자들의 논조가 바뀔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층 부르주아에 포섭됐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이 내용은 지난해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인터뷰 했을 때 고 위원이 한 말이다.

 

진보언론, 언론개혁을 얘기하는 다른 어떤 말보다 내게 무겁고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내 월급은 내 또래의 정규직 대졸 월급쟁이가 받을 수 있는 최저 수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행여나 기자들이 경제적 상층부에 편입해 필봉이 무뎌질 것으로 우려하는 회사의 혜안에도 불구하고 난 종종 내 월급에 불만이 많다.) 

 

먹물쟁이들이 우대받는 사회, 군인들이 우대받는 사회를 지나 장사꾼이 우대받는 사회에서 '기자'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권력을 감시하고 있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고 있다 등 기자의 자존심 만으로 버틸만한 기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 장사꾼의 시대에...

 

아니 인문학적 지식이란게 시대에 뒤떨어진 뒷방 늙은이들의 유희거리 정도로 전락한 이 장사꾼의 시대에 양심적 기자라는 존재가 언제까지 효용 가치가 있을까?

 

주변에 알고 지내던 후배 기자의 전직 소식에 "전망 없으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른 길 알아보는 게 현명하다"는 선배 기자의 평가가 서글프다. 난데없이 추워진 봄날, 소주 한잔이 간절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