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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질을 한지 5년 가까이 되다 보니 가끔 내가 과거에 썼던 글조차 기억 못 할 때가 있다.
오늘 박원순 변호사의 새 책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 박원순 변호사의 독일 시민사회 기행>(논형)에 대한 서평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50510163711&s_menu=문화) 을 쓴 뒤 2002년 초 그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쓴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보헤미안'이란 박 변호사의 고백을 그 인터뷰에서 들은 것이었다. 난 박 변호사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사석에서 들은 얘기로 기억하고 뿌듯해 했건만...
당시 인터뷰 기사 중 일부를 옮겨왔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국무총리, 교육부총리, 법무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인권위원장 등 가장 많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박 변호사의 모습을 비교적 잘 묘사한 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그때 당시 인터뷰 제목은 "삼성도 망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것으로, 최근 이건희 회장 사태로 다시 한번 '삼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기도 했으니까.
난 도대체 노무현 정권에서 박 변호사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계속 '러브콜'을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지독한 '몽상가'다.
다음은 당시 인터뷰 중 일부.
도대체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을까? 돈벌이도 못하고 바쁘긴 엄청 바쁘면서도 입만 열면 '신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 참여연대의 박원순 사무처장 말이다. 혹시 거짓말 아닐까?
그래서 오늘(1월 3일)의 주제는 시비걸기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더 나아가 존경하는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47)에게 그가 삼성에, 부패한 정치인에 그랬듯 사정없이 ‘딴지걸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딴지걸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치명적인 약점들을 찾아냈다.
우선 그는 실정법(선거법)까지 어겨가며 낙천ㆍ낙선운동을 벌인 ‘범법자’다(총선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었던 그는 지난달 26일 항소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부지런함으로 아랫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교묘한 독재자’다. 참여연대가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으로 악명을 떨치게 된 것도 그의 ‘똥고집’ 때문이다.
권력과 명예, 게다가 부까지 보장되는 검사와 변호사 자리도 박차고 나올 만큼 지독한 '몽상가'에다 ‘보헤미안’ 기질까지 농후하다. 다들 보수와 안정을 희구하는 21세기 한국에서 '혁명적 개혁'을 이뤄야 한다며 초조해 하는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국내 제일의 기업인 “삼성이 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지독한 ‘독설가’다.
'교묘한 독재자'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실 아래층인 느티나무 카페에 박원순 처장은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늦은 10시 40분경에 나타났다. 정관용 에디터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맞이하며 대뜸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지금 내복 입으셨어요?”
“안 입었어요.”
“환경단체에서 하는 내복입기운동에 동참 안 하십니까?”
박처장은 다소 머쓱해 하며 "원래 잘 안 입어요. 건강하니까 내복 안 입어도 춥지 않아요"라고 대꾸했다.
우리는 이어 불룩한 그의 배낭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양복에 자주색 배낭. 다소 안 어울리는 차림새지만 그는 ‘공식행사가 없으면’ 배낭을 즐겨 맨다. 책도 많이 들어가고 겨울에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가방에 책을 많이 들고 다니는 것이 ‘지나친 욕심 아니냐’, ‘과시용 아니냐’ 등 다소 억지스런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 박원순 처장은 자진해서 자신의 ‘초기 치매현상’까지 실토했다.
“인상적으로 본 것은 오래 기억하지만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났더라, 이러면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래서 연구 끝에 수첩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바쁜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한국 리더십 센터에서 제작한 수첩엔 하루하루 해야 할 일/ 약속/ 실제 한 일,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몇 장 뒤적여 보니 거의 매일 6,7개의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기자는 학교 다닐 때 외엔 별로 생각해본 일이 없는 ‘새해 소망’도 끼워져 있었다.
새벽 2-3시에 잠자리에 드는 그는 잠이 늘 부족하다. 모자란 잠은 차 속에서, 심지어 회의 시간에 보충한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7년 만에 반쯤 자면서 회의 내용을 듣는 득음(得音)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부지런함에 대해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려 있는 것 같다”며 애써 부정했다.
그러나 박 처장은 피곤한 지도자 유형중 하나인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간사급 사무처장’이라고 인정하는 그는 근면과 성실로 매번 간사들의 기를 죽이는 ‘교묘한 독재자’다.
‘불독’ 참여연대에 물린 삼성
이 ‘교묘한 독재자’가 이끄는 참여연대의 별명은 ‘불독’이다. 한번 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기 때문이다.
초일류기업 삼성도 '불독' 참여연대에 물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참여연대는 작년 말 소액주주운동의 일환으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이사들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9백7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4년여를 끌어온 싸움의 1라운드 승리는 참여연대에게 돌아갔다. ‘왜 그렇게 삼성을 못 살게 구느냐’는 질문에 박 처장은 삼성에 대한 ‘충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삼성도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도 망하고 현대도 자동차와 중공업 빼고는 망했습니다. 5년전만 해도 현대가 망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습니까. 전근대적인 경영형태와 관행들이 자기 살을 갉아먹었기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자동차의 실패는 삼성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삼성이 ‘세계 일류’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마치 참여연대와 ‘오기 싸움하듯’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세계 일류 기업답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으로도 삼성에 대해서는 소액주주 운동을 계속할 것입니까.”
“참여연대는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합니다.”
정말 그와 참여연대는 징그러울 정도로 ‘똥고집’이다.
'보헤미안+혁명가' 박원순
그만큼 그와 참여연대는 닮은꼴이다. 그런데 그가 지난해부터 후임 사무처장을 물색하고 있다. 스스로 “영원한 실무자”라고 말하는 그는 이제 사무처장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고 ‘현업’에 복귀하기를 바란다. 올해 참여연대에 재활용 사업을 하는 대안 사업국이 생겼는데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
그는 사무처장에서 물러나고 싶은 또 한가지 이유로 자신의 ‘보헤미안’적 기질을 들었다. 그는 결혼생활 이외에는 십여년 넘게 꾸준히 해온 일이 없었다.
정선 등기소장 1년, 사법고시 합격 후 검사 생활 1년, 9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임헌영, 원경선, 이호웅, 김성동씨 등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들었다. 1991년부터 2년간 미국 하버드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그런 그가 7년 동안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해왔으니...
‘보헤미안’ 박원순 처장이 꾸준히 시민운동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면에 흐르는 ‘혁명가’적 기질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나도 한때는 정치를 생각했었다"는 의외의 말을 던졌다. 지난 85년 전직 국회의원 등 고향선배들이 출마를 권유했던 것. 지역주민들한테 때 되면 편지도 보냈다. 그러다 '젊음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고. 지금은 정치보다는 시민운동에서 자신이 할일이 훨씬 큰 것 같아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시민운동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그는 미국과 일본을 돌아보며 “나라는 개판이고 사회는 엉망이지만 할 일도, 바뀔 여지도 많아서 한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16대 총선에서 낙선운동이 의외의 성과를 거두면서 ‘가능성’과 ‘희망’을 절감한 그는 “지금은 혁명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자족적인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어떻게 하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시간 반가량의 시비걸기를 통해 인간 박원순의 몇 가지 약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들이 지난 7년간 참여연대를 가장 신뢰받는 시민단체로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시비 걸기는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올해 참여연대에서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참여연대 1년 사업은 매년 2월말에 있는 총회를 통해 결정된다고 한다. 아직 금년에 있을 지방선거와 대선 전략도 구체화되지 않았다. 확정된 것은 6월 지방선거에 낙선운동은 벌이지 않는다는 사실 뿐.
그밖에 금년 1년의 화두랄까 가장 역점을 둘 일이 뭐냐고 물었지만, "우리가 1년 단위로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정부기관처럼 신년 역점사업 1, 2, 3.. 해 가며 액자에 걸어두는 사람들이 아니쟎아요"라고 되묻는다.
박 처장은 인터뷰를 시작한지 한 시간 반이 지나자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저희 대표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오전 8시부터 약속이 있어 늦었다던 그는 그 날도 예외없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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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1417 글쓴날 2009-12-15글쓴이 좇같은서일권 조회 244
글제목 억울함 호소!!! 여러분 제글좀 읽어 주세요. - 이 글은 인격모독이 없는 순수 사실입니다.
제 글 좀 읽어주세요... 아름다운 가게에서 당한 일이 너무나 억울해서 글을 씁니다.
저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했던 정규직원이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긴 글을 두서없이 적으려 하는 이유는 가게에서 일을 하는동안 겪은 일들이 너무도 억울하고 거기서 당했던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쓰린 기억으로 일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록 저를 괴롭히기에 억울한 제 심정을 알리고자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저는 저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타의에 중심에 지금도 이름조차 떠올리기 싫은 광주지역본부장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 휴대폰에 녹음되어 있는 음성녹음에 일부입니다.
(광주본부장:이하 광)앞으로 사적인 관계에 대해서 전혀 애길 안할테니까 나한테
그쪽도 나한테 전혀 사적인 부분에서 전혀 그런걸 기대하지
마시고 나도 앞으로 공적인 관계에서만 애기할테니 그렇게 합시다.
(본인:이하 본)그렇게 하시든지 맘대로 하세요 그리고 이때까지 본부장님 맘대로
하셨는데 제가 머라 하겠습니까? 마치.
(광) 야 000!
(본) 반말하지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광) 반말하지 말아달라고?
(본) 왜 반말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막말하시고 반말하시고 받아들이기가 많이
힘들어요.
(광) 처음부터 막말했다고? 어떤 부분에서 막말했을까? 내가?
(본) 처음 봤을때부터 건방지다고 했자나요. 대뜸 사람한테...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광)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그만두면 되겠네
(본) 그만두라고요?나가라 이말이십니까?
(광) 아니 있는 사람하고 그렇게 안 맞으면 내가 나가지 않는 이상 본인이 나가야지.
녹음된 통화의 일부입니다. 아직도 제 폰에 그대로 남아있구요...
서울에서 한달간 교육을 받고 광주로 내려와 처음 들었던 말은 "참 건방지네" 였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서울을 다녀온 광주본부장의 화풀이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유인즉슨 제가 광주에서 일하기 싫다라는 소릴 들었다는 겁니다. 전 그런 말을 한적도 없는데 자신이 창피했다며 저에게 화풀이를 해대는 겁니다. 저는 맹세코 그런 말을 한적이 없고 분명히 그런말을 하지 않았다고 본부장에게 말했었습니다.
신입이라는 위치 때문에 당한 억울함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하는 동안 계속된 반말과 사람이 건방지며, 거만하다 등의 막말은 일을 그만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내가 자기와 맞지 않는다며 노골적인 무시와 가게를 나가라는 회유책들은 본인이 저와 술을 같이 마시자는 약속을 잡았는데 제가 응하지 않았다며 저를 싫어할테니 그렇게 알라며 일방적인 통보와 제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에 부정응을 꾀하게 되었으며 일을 하기 위한 지원 없어 혼자서 3개월을 일터가 아닌 개조된 버스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근무전 가게가 오픈되면 그곳의 간사로 간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광주 한 공원에 불법으로 세워진 버스에서 시청의 허락을 받았기에 공원내 판매행위가 가능하다는 본부장의 말과 달리 매일 동사무소에서 나온 직원의 철수요구와 경찰들의 반복적인 철수지시는 업무의 부정응을 꾀하게 되었으며 자연적으로 수습간사의 연장과 해고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사회적기업은 지원을 받기 때문에 해고 할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왜 제가 일할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이제서야 이런 방법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려 하는지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서였습니다.
가게의 한 천사님은 광주본부장이 나중에 무슨 말을 바꿀지 모른다며 천사님께 제가 욕을 하고 협박을 하고 다니며 아주 몹쓸 사람이라며 이간질을 하는 통화내용을 녹음해와서 도와줄테니 나가지 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제가 싸움을 크게 벌이게 된다면 저를 돕고자 했던 천사님이 다칠까봐 저는 그냥 참기로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저까지 광주본부장때문에 가게를 나가게 된 사람이 세번째라고 어떤 천사님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저의 억울함을 풀고 싶고 더 이상 저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램에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알리기를 마음 먹었습니다. 본인의 안위를 위해 남의 피해는 어찌되든 상관않는 사람이 누구를 위해 봉사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자신의 눈에 났다 하여 노골적으로 찍어내리고 파내려하는 모습으로 저는 가게에 입사한 후 제대로 일 한번 해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변호사님의 입장이 그러하지 않으신지요?
가장 먼저 제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던 이유이고, 아직도 존경해 마지 않는 박원순 변호사님께 알리고 노동부와 권익위원회, 언론과 필요하다면 정치기관에까지 제가 당한 일을 알리고 억울함을 호소하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박변호사님의 팬이며 변호사님의 책을 읽으며 변호사님의 생각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름다운 가게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봉사활동도 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우며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봉사는 커녕 지나가는 걸인에게 잔돈 한푼 주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서로 돕고 대화하며 도우며 일하는 가게를 생각하고 다니던 대학교까지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너무 후회스럽고 그 어떤 봉사단체도 자선활동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왔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게를 그만두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정신과 치료까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이 요즘 변호사님이 격고 계시는 어려움과 비슷하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 말에 거짓이나 보탬이 없음을 약속하며 이런 제 억울함에 부디 도움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몇일전 광주본부장으로 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결정은(사람을 나가라고 했던 결정) '공명정대'하였으나.......
세상 천지에 어떻게 사람을 나가게 만들고 그것이 공명정대하다고 말할수 있는지 보통 인간이라면 상상도 할수 없는
이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화가나고 어이가 없어서 제 생전 해본적도 없는 욕을 29년을 살며 최고로 많은 욕을 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단기알바를 쓰더라도 그 알바가 죽을만큼 잘못을 했어도 그렇게 쉽게 나가라고 못할것입니다. 그럼에도 본인은 뻔뻔하게 일을 하기 위해 여전히 다른 의견은 무시하고 거짓말과 위선으로 자신을 합리화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본의 아니게 아름다운 가게 마저도 적으로 알고 등을 돌리겠습니다. 그런 인간이 일하고 있는 곳이 얼마나 사람을 위한다고 ngo를 운운하며 사회적 기업이라는 칭호를 내거는지 그 가식에 혀를 내두릅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의 위선을 다 알리고서라도 이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의 정당함을 알릴것입니다.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