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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과 가스냉장고

지난주부터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해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 난치병 치료에 신기원을 기록했다는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 얘기로 떠들썩하다.

 

그의 연구가 난자 공여 과정, 연구 과정에서 버려진 난자와 배아 문제 또 세포 복제 기술 자체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 등 윤리적 문제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느 누구도 그의 연구에 '딴지'를 걸기 힘든 분위기다.

 

유난히 일등과 최초를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 그리고 종교적 이유로 줄기세포 연구를 제한하고 있는 미국에서 이른바 '황우석 논쟁'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연구를 흠집내려 했다간 당장 '매국노'로 몰릴 판이다.   

 

또 척수손상으로 팔.다리가 마비된 환자(예를 들면 가수 강원래씨) 등 그의 연구가 실용화될 경우 구체적 수혜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난치병 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황 교수의 연구는 칭송받아 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연구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과학기술이 효용성, 가치에 따라 발전한다는 다소 순진한 믿음에 기반한 게 아닌가 싶다.



어제 술자리에서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얘기를 하다 동료 기자에게 들은 얘기다.

 

그 친구 역시 황 교수 연구를 둘러싼 최근 분위기에 대해 마뜩잖아하는 사람이다.

 

그가 불안해 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막연하고 모호해 보이는 종교적, 철학적 차원의 '윤리' 문제가 아니다. 그는 한번 개발될 경우 그것이 미치는 파급력은 너무나 크지만, 역효과가 발생할지라도 되돌리기 힘든 과학기술의 '불가역성'에 주목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세포복제 연구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라도 가지고 있는가? 과거에 기반한 '종교 윤리'를 대체할 새로운 윤리가 존재하는가? 이 친구의 고민이다.

 

그는 그러면서 효용성이 아닌 자본이 기술 개발을 결정했던 사례로 가스냉장고를 들었다.

 

가스냉장고는 가스의 연소로 냉각장치를 작동시키는 흡수식 냉장고로 1922년 스웨덴의 한 공업학교 학생인 맨타와 플란텐이 발명한 것이다. 가스냉장고의 특징은 소음이 없고, 기계적 마모에 따른 고장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기냉장고는 냉매를 고온, 고압으로 압축하는 '압축기'를 가동시키면서 '윙윙' 거리는 큰 소음이 나고 전기료도 비싼데다 덩치도 더 컸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스냉장고는 사라져버렸다. '자본의 힘'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냉장고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1920년대 전기냉장고를 생산하는 회사는 제너럴일렉트릭, 제네럴모터스, 웨스팅하우스 등 대기업이었다. 특히 발전소에서부터 전등을 만드는 것까지 전기산업을 주도하고 있던 제너럴일렉트릭 입장에선 냉장고 시장이 사업 확장에 있어 매우 중요했다. 

 

반면 가스냉장고를 제조하던 기업은 중소기업들이었다. 가스냉장고와의 경쟁에서 전기냉장고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은 우리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각종 횡포를 저질렀다.


결국 미국 가정의 45%가 전기냉장고를 소유할 정도로 냉장고가 보편화된 1940년대 무렵에 가스냉장고는 사라지게 됐다. (좀더 자세한 얘기를 알고 싶은 분들은 사이언스타임즈(http://www.sciencetimes.co.kr). "냉장고 '윙윙'거리는 소리에 얽힌 비밀- 강양구의 과학기술 뒤집어보기" 롤 보시기를..)

 

최근 만난 강주성 건강세상 네트워크 대표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백혈병에 걸리면 다 죽었다. 그러나 한병에 3백만원 하는 글리벡이 시판된 후 약을 사먹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백혈병 환자는 치료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좀더 기술이 발전하면 수혜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과연 이게 기술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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