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형제 : 바야드 러스틴의 생애

Brother Outsider: The Life of Bayard Rustin
낸시 케이츠, 베네트 싱어 / 84min / 2003 / 미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방인 형제 : 바야드 러스틴의 생애>는 흑인공민권운동의 분수령이었던 워싱턴 행진의 주역이었지만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으로 인해 그 운동의 지도자로서 결코 인정받지 못했던 바야드 러스틴의 삶을 풀어놓는다.  

 

   이 영화에 대한 "흑인게이혁명가의 초상, 탈식민주의 시대의 새로운 퀴어정치학 쓰기"라는 소개는 그닥 동의되지 않지만... (게이이기 때문에 러스틴의 활동에 제약이 있었구 그에 대한 평가가 폄하된 부분 인정하지만 그 스스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그의 운동에서 얼마나 녹여내고 있는가 하는 부분은 사실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점... 그리고 이 영화에서 '새로운' 정치학은...글쎄...내가 눈이 어두워서 그런지 ...아니 보이던데...) 역사다큐 그리고 인물다큐라는 양식에 있어서의 성실함 혹은 세련됨은 참고할만한 텍스트 같다.

 

    <이방인 형제 : 바야드 러스틴의 생애>는 우선, 다큐 특히 역사다큐에서 영상자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 기본인지를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보도자료(동영상, 오디오소스, 인쇄물), 기록영상, 개인적인 사진, 서류 심지어 영화와 드라마까지... 필요한 그림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는, 그 필요에 대한 성실함과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점과 그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재현장면의 경우도 꼼꼼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여 좋았구(좀 오바다 싶은 장면도 있긴 했지만...슬라이드를 이용한 부분은 신선했다).


   인물다큐, 개인적으로 공감도 어렵고 그래서 별루 좋아하지 않는 양식 중의 하나인데... 이 다큐에서는 바야드 러스틴이라는 인물이 운동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속에서 혁명과 정치, 투쟁과 합의 사이에서 혼돈을 느끼는 부분이 드러났다는 점. 끝까지 밀어부치지 못한(아니 않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갈등과 혼란 혹은 그의 치명적인 실수이자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역사도 인물도 보다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물다큐는 대상을 단순히 알린다...는게 목적이 아닌, 인물을 구체적으로 진정성 있게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인물을 대상으로 선택했다면, 그 인물을 재창조해내고자 하는 연출자의 분명한 기준, 주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할 거구 그 재창조의 과정에서 외적이든 내적이든(사실 구분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충돌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여러 지점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의미화하는 그래서 관객이 그 인물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중요하지 싶다.

 

   적어도 이 다큐는 그런 면에서 최소한의 성실함 혹은 최대한의 무난함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이 다큐를 통해 바야드 러스틴이라는 인물을 지지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한 인물로서 현실감있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긍정한다. 쉬운 동의가 아닌 안타까운 이해가 가능했다는게 좋았다.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의 한 인물 그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 운동가의 생애가 어떤 수순으로 변화, 흘러가는지... 역사와 개인이, 집단과 개인이 혹은 개인과 개인들이 어떤 영향들을 서로 주고 받고... 그리고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역사와 인물에 대한 (최소 혹은 기본의)예의는 지킨 다큐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거기까지라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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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4 15:46 2005/08/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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