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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남북관계 중시한 김정은, 의도는?

문재인 정부, 적극적으로 기회 활용해야
2018.01.01 16:14:45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공언하며 과거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남북관계 개선 방안을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는 핵과 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전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되 향후 정책을 미국과 섬세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올림픽 참가 의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진정으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 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왕래)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며 올림픽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과거 어느 신년사보다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성이 높은 입장을 내놨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지난 2017년 신년사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북과 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충돌과 전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2016년 신년사 역시 "북남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 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며 기본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물론 김 위원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고위급 회담 재개뿐만 아니라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며 적극적인 대화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경우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남북 양측 모두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을 '선언'하는 식으로 발표했던 전례가 있어, 그 자체로 현실적인 남북대화 제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또 2015~17년에 발표된 신년사와 비교했을 때 올해 신년사에 남북관계를 언급한 분량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은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평양 시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남북대화 통한 북미 협상 추진?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이 이번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평가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전례 없이 매우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며 "북한이 지난해 보였던 남북대화 거부 입장에서 탈피할 것이라는 전환을 보여줬다"고 논평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빠른 시일 내에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당국회담이 성사되어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대외관계 중 남북관계를 가장 비중있게 다뤘다"며 "핵무장 완성을 재확인하고, 억지력을 바탕으로 평화 공세로 전환했다. 이는 남북관계를 징검다리로 대외 관계를 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 위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이라며 미국과 날을 세웠다. 

이를 두고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핵무력 완성'으로 이제 안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신년사에서 핵탄두와 탄도 로켓의 대량 생산과 실전 배치를 지시함에 따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고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2018년에도 전력화 실전배치를 명분으로 핵무력의 기술적 완결성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공언하면서도 남한에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의도에 대해 "북한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트럼프 정부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겠다는 점을 내비치면서 대신 남한 쪽으로 적극적 평화공세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통미봉남(通美封南,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대화)이 아니라 통남봉미(通南封美, 미국을 배제하고 한국과 대화)를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에 적대적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미국과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통남봉미'는 이를 위한 하나의 단계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단계적으로는 남한과 관계를 트고 미국과 적대적으로 갈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목표는 결국 미국과 관계 개선이다"라며 "우선 1단계로 남한과 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를 안정화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 미국과 국제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이 변함없는 북한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신년사에서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바탕으로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며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낮추면서 미국의 군사적 선택지 사용 가능성을 감소시키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읽고 군사적 선택지 대신 북한과 협상에 나설 수 있느냐다. 이에 대해 백 수석연구위원은 "미국도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이 쉽사리 군사력을 동원해 전쟁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군사적 선택지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측면의 딜레마뿐만 아니라 북한이 미국의 메시지를 오도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장기적으로 동북아에 중국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 미국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남북이 관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긴장 완화로 가게 되면 미국이 군사적 선택지를 강화하기도 힘들다"고 예측했다. 
 

▲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인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청와대


문재인 정부, 적극적으로 기회 활용해야 

북한이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를 중요하게 다룬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향후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이번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아주 명명백백하게 남북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잡아서 고위급 회담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남북회담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올림픽 특사든 비공개접촉이든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북한에서 고위급이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구체적으로 현재 북한 정권의 2인자인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정도가 움직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이 저렇게까지 나왔기 때문에 실제 (최룡해가)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또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위해 "미국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것에 조속히 합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했기 때문에 미국도 동의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향후 북한과 어떤 어젠다를 가지고 어떤 회담을 할지를 미국과 상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 혼자서 북한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며 미국과 세심한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관계 악화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만큼 관계 개선을 위해 고려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핵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요구와 북한의 입장 사이에는 차이가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평창 올림픽이라는 기회가 있다면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북한에 '와일드 카드'를 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나 미국과 쿠바의 '베이스 볼 외교'의 사례처럼, 체육 외교를 본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오늘부터 장애인 올림픽이 끝나는 3월 말까지 석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반도 정세에서 지난 10년 동안 사라졌던 '당사자'가 귀환하는 시간"이라며 "너무 서두르지 않으며, 너무 큰 기대를 앞세우지 말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한 걸음씩 내딛을 때"라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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