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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선이 보인다

[개벽예감 302] 결승선이 보인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6/11 [08: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44년 역사의 마지막 지점에서

2. 트럼프의 상황오판과 독단적 결정

3. 30년 세월 흘렀어도 의제는 바뀌지 않았다

4.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철군징후들

 

 

1. 44년 역사의 마지막 지점에서 

 

이 글이 <자주시보>에 실린 직후, 8천만 민족과 전 세계가 비상한 관심과 뜨거운 열망을 안고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이 싱가폴에서 열리게 된다. 흔하게 쓰이는 역사적이라는 세 음절의 수식어로는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의의가 그 회담에 깃들어 있다. 조미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선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힘써온 역사를 알지 못하면, 오늘 성사되는 조미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를 알 수 없으며, 조미정상회담 성사로 실현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근본적인 정세변화도 내다볼 수 없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018년 6월 10일 싱가폴 창이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발라크리슈난 싱가폴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착 당일 오후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리셴룽 총리와 담화하면서, 조미정상회담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역사적인 회담이며, 조미정상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면 그 회담을 위해 편의를 제공한 싱가폴 정부의 노력도 역사적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힘써온 역사는 조선에 보관된 외교문서들에 자세히 기록되었을 터인데, 그 외교문서들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므로, 미국과 한국에서 기밀해제된 외교문서들에 나타난 몇몇 역사기록들에서 그 역사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다.  

 

2008년 6월에 기밀해제된 미국 정부의 1급 비밀문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4년 8월 루마니아를 통해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 미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오만한 아메리카핵제국의 대통령은 그 제안을 묵살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1980년대에도 미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거듭 제안하였는데, 이번에는 이집트가 중재자로 나섰다. <연합뉴스> 2014년 3월 26일부에 실린, 한국 정부의 1983년도 외교기록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80년에 조선을 방문한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이집트 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 중재를 부탁하였다. 부탁을 받은 무바라크 부통령은 백악관을 찾아가 지미 카터(James E. Carter) 미국 대통령에게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하였으나, 카터 대통령은 한국이 참가하지 않는 조미회담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남북미 3자 정상회담 제안이라면 응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이 극도로 혐오하였던 광주학살주범을 조미정상회담에 끌어들이려는 카터의 구상은 사실상 조미정상회담 제안을 거부한 것이나 다르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83년 4월 4일 조선을 또 다시 방문한 무바라크 부통령으로부터 카터 대통령의 3자 정상회담 구상을 듣고 그 자리에서 거부하였다고 한다. 카터 대통령의 임기는 1981년 1월 20일에 끝났는데, 그가 퇴임하자 백악관에 들어간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 대통령은 대결주의자로 악명이 높았으므로 전임 대통령의 3자 정상회담 구상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2018년 3월 30일 한국 외교부가 기밀해제한 외교기록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87년 12월 9일 백악관을 방문한 미하일 고르바쵸브(Mikhail S. Gorbachev)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레이건 대통령에게 외교문서를 전했다. 아래에서 이 외교문서의 내용에 대해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것은 김일성 주석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 할 방향과 방도를 미국 대통령에게 제시한 중요한 외교문서였다. 하지만 대결주의자로 악명을 날리던 레이건 대통령은 그 외교문서를 외면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힘써온 44년 역사가 핵무력을 건설하기 위해 힘써온 44년 역사와 시기적으로 겹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그 중첩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 주석은 1974년 8월 루마니아를 통해 포드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는데, 같은 해 3월 조선에서는 원자력법이 제정되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핵무력 건설이 본격화되었다. 또한 김일성 주석은 1980년에 이집트를 통해 카터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는데, 같은 해 7월 조선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평안북도 녕변에서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김일성 주석은 1987년 12월 소련을 통해 레이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에 관련된 외교문서를 전하였는데, 같은 해 12월 조선에서는 정무원 산하에 원자력공업부가 신설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건설된 녕변핵시설단지에서는 1986년부터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가동되기 시작하였고, 1989년부터는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는 재처리시설도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이 글에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력적으로 지도해온 37년의 핵무력 건설은 끊임없이 앞을 가로막는 기술공학적 난관들을 ‘자력갱생과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돌파해야 하였던 역사였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김일성 주석이 제3국 중재를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거듭 제의해온 역사의 흐름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같은 시기에 조선의 핵무력 건설을 정력적으로 추진해온 역사의 흐름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길게 이어지며 벋어나간 두 갈래의 흐름이었다. 명백하게도, 조선에서 조미정상회담 추진과 핵무력 건설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통일체였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미국이 거부해온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온갖 기술공학적 난관을 돌파하면서 장장 44년에 걸쳐 핵무력을 건설해왔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개척한 조미정상회담 추진과 핵무력 건설의 역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도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온전히 계승되었다. 그리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선대 수령들이 두 세대에 걸쳐 개척하고 발전시켜온 44년 역사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다.  

 

김일성 주석이 개척하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발전시켰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성한 조미정상회담 추진과 핵무력 건설의 역사가 44년 동안이나 지속된 까닭은,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하여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해야 미국을 정상회담으로 끌어낼 수 있고, 조미정상회담이 승자와 패자가 마주앉은 역사적인 회담으로 성사되어야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그 믿음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그 믿음대로 실천해온 조선은 온갖 난관과 방해를 돌파하여 핵무력을 완성하였고,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하였고, 마침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2. 트럼프의 상황오판과 독단적 결정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과 정세분석가들은 조미정상회담 협상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할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우려해왔다. 그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사설 또는 분석기사들 가운데 지난 4월과 5월 중에 나온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하면, <워싱턴포스트> 2018년 3월 9일부 분석기사, 4월 23일부 분석기사, 4월 24일부 분석기사, 4월 25일부 사설, 5월 22일부 분석기사, 그리고 <뉴욕타임스> 2018년 5월 19일부 분석기사, 5월 20일부 분석기사 등이다. 

 

그들은 왜 조미정상회담 협상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는 것일까? 아래에 서술한 사실을 살펴보면, 그들이 우려할 만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활동상황에 정통하다는 익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가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아사히신붕> 2018년 6월 7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한반도 정보활동을 총괄하는 특수정보기관으로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에 설립된 코리아임무쎈터(Mission Center for Korea)가 2017년 가을에 작성한 보고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고방식과 성격에 관한 정보분석자료가 담겼는데, “서구문화에 대한 강한 동경과 존경을 갖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의 역대 최고영도자들보다 “교섭하기 쉬운 상대”이므로, 미국이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줄거리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구문화에 대한 강한 동경과 존경을 갖고 있어서, 미국이 교섭하기 쉬운 상대이며, 따라서 미국이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정보분석자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오류와 허구의 뒤범벅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그런 오류와 허구의 뒤범벅을 정보분석자료라고 작성해놓은 것은 경악할 만한 사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과학기술교육을 비상히 강화하여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하고, 첨단과학기술개발로 산업수준과 인민생활향상을 끌어올리기 위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은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심이나 존경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서유럽 선진국들의 경제발전을 최단 기간에 따라잡아 사회주의경제강국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서유럽 선진국들의 경제발전을 따라잡고, 사회주의경제강국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심이나 존경심이라고 본 것은 정보분석이 아니라 궤변적 오류다.  

 

오류는 오류를 낳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심과 존경심을 가졌다고 오판한 정보분석자료는 미국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교섭하기 쉽고, 자국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대로 착각하는 심각한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그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착각하였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오판하지 않을 수 없다.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 앤드루 김(김성현)이 총괄하여 작성한 그 정보분석자료는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당시 중앙정보국장에게 제출되었고, 팜페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정보분석자료를 요약하여 보고하였던 것이 분명한데, 그런 오류와 허구를 정보분석으로 믿어버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만한 상대라고 착각하고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덥석 받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두 차례 받고 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만한 상대라고 보았던 착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지 않았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그 착각에서 벗어났는지 혹은 착각 속에 빠친 채로 조미정상회담장에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사진 2>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또 다른 특이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온라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2018년 6월 7일 분석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해오면서 팜페오 국무장관하고만 상의하고, 다른 각료들과는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주재로 매주 두 차례 진행되는 국가안보회의(NSC) 장관급 회의에서 조미정상회담 준비문제를 한 번도 논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주재로,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국가안보회의 최고회의에서 조미정상회담 준비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악관의 의결절차에 따르면,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하는 국가안보회의 장관급 회의에서 어떤 중대사안이 결정되면, 그것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보회의 최고회의에 제출하고, 대통령과 각료들이 최고회의에 제출된 중대사안을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미정상회담 준비에서는 그런 의결절차가 무시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 국무장관의 보고를 듣고 그와 상의한 뒤에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왔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팜페오 국무장관하고만 상의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부정적인 사건이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최고회의에 참석하는 대통령과 각료들이 조미정상회담에 대해 일치된 관점과 의견을 가질 수 없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미정상회담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각료들도 있고, 마익 펜스(Michael R. Pence) 부통령이나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처럼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는 폭언도발을 자행한 각료들도 있다. 이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내부사정이 복잡한 조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준비문제를 각료들과 상의하였다면, 소모적인 논쟁이 일어나 허송세월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하여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만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다. 세계적 범위에서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는 무역전쟁과 관련해서도 그는 각료들과 거의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처럼 의결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부동산재벌총수에게 체질화된 행동양식으로 생각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각료들과 상의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고, 민감한 의제를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3. 30년 세월 흘렀어도 의제는 바뀌지 않았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김일성 주석은 1987년 12월 9일 고르바쵸브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레이건 대통령에게 중요한 외교문서를 전했는데, 그것은 “조선반도 완충지대 설정 및 중립국 창설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김일성 주석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외교문서를 이 글에서 거론하는 까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하려는 의제들, 다시 말해서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중대사안의 원형질이 그 외교문서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하려는 의제는 일부 표현양식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그 외교문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북과 남은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조선과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

 

(2) 북과 남은 자위적 목적을 위해 필요한 정도의 규모로 단계적인 감군을 단행하여 각각 10만 명 미만의 병력을 유지한다. 

 

(3)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군대는 조선반도에서 철수한다.

 

(4) 북과 남은 제3국과 체결한, 민족적 단합에 위배되는 모든 협정 및 조약을 폐기한다.

 

(5) 북과 남은 자기 군대를 단일한 민족군대로 통합한다. 

 

(6) 북과 남은 연방공화국을 창설한다. 연방공화국은 중립국임을 선언하는 통일헌법을 채택한다. 

 

위에 열거한 의제들을 간결한 표현으로 다시 서술하면, 남북 불가침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남북 군비감축과 주한미국군 철수와 한미동맹관계 해체, 민족연합군 창설과 통일공화국 건설이다. 이 의제들 가운데서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미 합의된 것은 남북 불가침 재확인, 남북 군비감축, 평화협정 체결추진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민족연합군 창설과 통일공화국 건설이라는 최고 강령을 제의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 최고 강령은 8천만 민족의 조국통일염원이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국통일유훈이다. 

 

물론 민족연합군 창설과 통일공화국 건설이라는 최고 강령은 현 단계에서 합의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라, 판문점 선언이 충실히 이행되어 남북관계개선이 전면화, 심화된 시기에 열릴 높은 단계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의제다. 

 

높은 단계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최고 강령이 민족연합군 창설과 통일공화국 건설이라면, 높은 단계의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최고 강령은, 31년 전 김일성 주석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외교문서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철수와 한미동맹관계 해체다. 1987년 12월 김일성 주석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외교문서에는 1980년대 정치외교상황이 반영되었으므로, 거기에는 조미국교수립이 최고 강령으로 명시되지 않았고, 주한미국군 철수와 한미동맹관계 해체가 최고 강령으로 명시되었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0년 전과 달라진 오늘의 정치외교상황을 반영하여 주한미국군 철수와 한미동맹관계 해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조미국교수립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조미국교수립이라는 개념에는 주한미국군 철수와 한미동맹관계 해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의제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의제는 조미국교수립이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 중에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한미동맹관계가 해체되고, 한미동맹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남측의 친미정권은 존립근거를 상실할 것이다. 친미정권이 자주정권으로 교체되면, 남과 북은 민족연합군을 창설하고 통일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상황에 대해 잘 아는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미국의 온라인 정치전문지 <액시오스> 2018년 6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회담(최근 판문점에서 여섯 차례 열렸던 실무회담)에서 이미 조미관계정상화 문제가 논의되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조선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평양에 미국 대사관을 개설하는 문제를 고려할 것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2018년 6월 11일 단독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영철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한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2018년 7월 평양에 초청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국교수립을 고속으로, 강하게 추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진 3> 

 

일반적으로, 국교수립과정은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 개설 → 이익대표부(interest section) 개설 → 대사관(embassy) 개설로 진전되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2018년 7월 중에 평양에 초청하였고, 그에 상응하여 트럼프 대통령도 대사관 개설문제를 고려하는 것은 조미국교수립 추진속도가 빨라질 것임을 예고한다. 

 

정치외교상황이 그처럼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데도,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어떤 경우에도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조미핵대결 종식으로 일어난 정치외교상황의 엄청난 변화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철군불가능설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철군불가능설은 정치외교상황의 엄청난 변화를 도외시한 착오다.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국교수립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며, 조미핵대결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조미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최종조치를 취할 것이다.  

 

 

4.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철군징후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5월 9일과 10일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두 차례 접견하면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까닭은, 조미정상회담에서 조미국교수립이 합의되면,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는 철군징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 징후들은 다음과 같다.  

 

(1) 주한미국군 철수를 반대하는 미국 연방의회 외교위원회, 군사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철군문제를 합의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면서, 대통령의 독단적인 철군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예방조치들을 의결하였다. 하지만 철군결정은 미국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이므로, 연방의회가 아무리 그 권한을 제한하려고 해도 철군결정을 가로막지 못한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대통령의 독단적인 철군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예방조치들을 의결한 것이야말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철군징후다.

 

(2)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결정을 내리면, 한국과 일본은 견디기 힘든 안보충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 주한미국군 철수는 한미동맹관계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철군으로 한국이 안보충격을 받건 말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만, 일본이 안보충격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관계는 포기해도 일본과의 동맹관계는 변함없이 유지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일본의 안보불안을 해소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4월 18일 아베 신조(安培 晋三) 총리 부부를 플로리다주에 있는 자신의 호화휴양소로 초청하였으면서도, 조미정상회담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2018년 6월 7일 아베 총리를 또 다시 백악관으로 초청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이례적인 행동은 미일동맹관계가 변함없이 유지, 강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일본에게 보여주기 위한 ‘위안외교’였다. 

 

18년 전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미국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을 일정에 올려놓았을 때는 주한미국군 철수가 의제로 되지 않았으므로, 모리 요시로(森 喜郞) 일본 총리를 안심시키고 다독여주는 ‘위안외교’가 없었다. 조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위해 연출하는 ‘위안외교’는 철군징후다.   

 

(3) 2018년 4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위해 ‘위안외교’를 연출하는 자리에서, 그에게 주한미국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했을 때 일본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느냐고 물었다. 미일관계 소식통들의 발언을 인용한 <요미우리신붕> 2018년 5월 5일부 보도를 통해 그런 사실이 알려졌는데,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 중에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논의한 것이 분명하다. 미일정상회담에서 철군문제를 논의한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명백한 철군징후다. <사진 4>

 

(3)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안에서 주한미국군 철수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이 놀라운 비밀은 <워싱턴포스트> 2018년 6월 7일부에 실린, 유명한 기사집필자 조쉬 로긴(Josh Rogin)의 글에서 드러났다. 그 글에는 “트럼프가 주한미국군 철수에 관한 카터의 관점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제목이 붙어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준다.  

 

(ㄱ)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주한미국군 대폭감축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그들의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가치를 계속 납득시키려고 애썼으나 실패로 끝났다.

 

(ㄴ)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필요성을 동의하지 않는다고 계속 말하고 있으며, 때로 펜타곤의 군사지휘관들에게 미국군을 아시아에 계속 배치해야 할 근거를 설명해보라고 요구하고, 그들의 답변에 불만을 표시한다. 

 

(ㄷ)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주한미국군 주둔비를 허비하고 있으며, 한미동맹관계를 유지할수록 미국의 한정된 국가자원이 낭비된다고 생각한다.   

 

(ㄹ)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2월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내리려고 하다가,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ㅁ) 백악관과 펜타곤의 관리들은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검토하는 과업을 공식적으로 받지는 않았지만, 그 문제에 관련된 선택방안을 논의하는 중이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으므로, 철군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충격적인 사실은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명명백백한 철군징후다. 자기 임기 중에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는, 고집에 가까운 의지를 가진 미국 대통령이 출현하였으니,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어떤 경우에도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조미정상회담에서 철군문제가 논의되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해결되면 자기의 결심대로 주한미국군 철수를 단행할 것이다. 따라서 조미정상회담에서 철군문제가 논의하지 않더라도, 그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결정을 재촉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된다. 

 

한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외국군대가 물러가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아메리카핵제국의 점령군에게 치욕을 당해온 73년의 역사도 가슴 아픈 민족분열의 역사와 더불어 끝나가고 있다. 결승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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