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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이수 “헌재소장 임명 동의 부결은 예상 밖의 일…꽤 충격받았다” 퇴임 인터뷰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입력 : 2018.09.03 06:00:03 수정 : 2018.09.03 09: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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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헌법재판관 퇴임하는 김이수
ㆍ“대법, 힘의 관계로 이해 말아야”
ㆍ박근혜 탄핵 등 결정 과정 공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지난 6년 임기를 회상하고 있다. 심판정 정면에 보이는 한글 휘장은 김 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이던 지난해 10월9일 한글날에 바뀌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과거사 헌재 결정, 대법에 재판 바로잡을 기회를 준 것”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다뤄진 세 가지 대법원 판결은 모두 문제가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스스로 재심 사유를 만들지는 못한다. 헌재는 대법원에 재판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 것이다. 대법원이 이를 헌재와의 힘의 관계에서 이해하려 하면 안된다.”
오는 19일 퇴임하는 김이수 헌법재판관(65·사진)이 지난달 3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과거사 사건 헌법소원에서 헌재가 위헌을 결정한 것은 대법원에 일종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자신이 위헌 결정을 주도해 도입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에 관해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의 1.5배 정도가 적합하다. 1과 3분의 1~1과 3분의 2배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를 봐도 현역과 차이가 거의 없다. 독일은 현역과 복무기간이 같다가 모병제가 되면서 폐지됐다. 결정문 전체를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에 대해서는 “8 대 0이라는 데는 의심할 게 없었다. 가능하면 전원일치가 좋다는 공감도 있었다. 지금 보면 탄핵 사유로 오히려 추가될 것들이 (더 있다)”라고 설명하고 “다만 의견이 너무 세분화되면 곤란하니 그런 부분을 정리한 형태(가 헌재 결정문)”라고 밝혔다.
그는 퇴임 직후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배낭여행을 떠나며, 오는 11월부터는 전남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로 강단에 선다.
통진당 해산 심판 초반엔
다들 ‘설마 해산까지’ 생각
선고 한 달 전쯤 혼자라 느껴
의원, 정당 아닌 국민의 대표
정당 해산 기각의견 쓰느라
의원직 박탈 반대 못 쓰게 돼
박근혜 탄핵 ‘전원일치’ 공감
세분화된 의견만 정리한 것
김이수 헌법재판관(65)은 지난달 31일 경향신문과의 퇴임 인터뷰에서 “지난해 (나에 대한) 헌재소장 임명 동의가 부결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꽤 충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에 대해서는 “선고를 넉 달 앞두고 의견을 쓰기 시작했다. 안창호 재판관이 인용, 나는 기각 의견을 나눠서 썼다”고 밝혔다.
- 2012년 9월 민주당 추천으로 국회에서 선출돼 임명됐다. 조대현 재판관 후임으로 추천된 조용환 후보자가 천안함 발언 등의 이유로 낙마하면서 공석이 1년2개월 되던 시점이다.
“재판관 공석 상황이 계속되면 안됐다. 청문회를 잘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군법무관 당시 5·18 관련자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되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특히 나를 추천한 민주당에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당 정체성과 관련이 있어서인 것 같았다. 사형 선고된 분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은 재판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특별법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아서였다. 어쨌든 가슴 아픈 일이었고 나중에 사과도 했다.”
- 지난해 5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내정했다. 5·18 기념식에 문 대통령과 함께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서 참석한 다음날이다. 사전에 조율된 것인가.
“아무런 조율이 없었다. 군검찰관이던 때 5·18 희생자들 검시도 했다(군법무관은 군검찰관과 재판관을 거친다).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연루됐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모두 광주에서 나왔다. 책임감이 있었다. 기념식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청와대 연락을 받았다. 소장 임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당연히 재판관 잔여 임기라고 생각했다. 소장 임기 6년을 따로 보장하도록 헌재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재판관 잔여 임기가 소장 임기다.”
- 헌재소장 임명 동의가 부결되던 지난해 9월11일 후보자는 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에 있었다. 이강국 전 헌재소장은 출국하지 말라고 조언한 것으로 안다.
“사실 부결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또 내가 커버할 게 많지도 않았다. 6월7~8일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석 달이 지난 상태였다. 여러 노력도 했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다 9월1일 대통령 몫이던 이유정 재판관 후보자가 논란 끝에 사퇴했다. 이날 국회가 헌재소장 동의 투표 일정을 잡았다. 나중에 국회 본회의장 화면을 봤는데, 의원들이 환호하는 모습도 보이고 그랬다. 부결에 충격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고, 사실은 꽤 충격이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이고 나도 잊으려 했고, 그런 것이다.”
- 헌재소장 임명 동의가 부결된 이유 가운데 통진당 해산에 반대했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기각 의견의 재판관이 심판 중반까지는 3명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정설이다.
“정부가 2013년 11월 해산을 청구했다. 한두 달 동안은 ‘설마 이게 해산까지 가겠냐’고 재판관들이 생각한 것 같다. 2014년 6~7월에 본격적으로 심판이 진행되면서 증인들이 줄줄이 나왔다. 주체사상파 운동권이던 김영환씨가 나오면서 주도세력이란 개념도 등장했다. 이 무렵부터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그래도 나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되던 분들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9월 들어서면서 인용의견과 기각의견을 안창호 재판관과 내가 각각 맡아서 쓰기 시작했다. 11월에는 기각의견이 나 혼자라는 느낌을 받았다(통진당 해산 결정은 2014년 12월19일 이뤄졌다).”
- 해산 결정과 함께 헌재는 통진당 국회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하지만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고 법원 재판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법원행정처가 판결 방향을 지시하는 문건을 만들었다.
“나는 정당해산에 반대했고, 가령 해산이 맞다고 해도 국회의원직은 박탈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정당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지방의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당해산에 기각의견을 쓴 상황이어서 더 쓰지 못했다. 우리 헌재는 쟁점별 합의가 아니라 주문별 합의를 한다(이 사건의 경우에는 정당해산에 반대한 재판관은 정당해산이 전제인 의원직 박탈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의견으로는 못 쓸 것도 아니었다. 입장을 같이한 재판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생각까지 못한 것 같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은 반대 의견 없이 인용됐다. 당시 혼란을 수습하려면 전원일치가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대를 없애려 결론의 수위를 낮췄나.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자주 하는 일이다.
“8 대 0이라는 데는 의심할 게 없었다. 가능하면 전원일치가 좋다는 공감도 있었다. 선고 시점까지 형사사건이 마무리되지 않긴 했지만, 지금 보면 탄핵 사유로 오히려 추가될 것들이다. 가령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에게 사직을 요구한 혐의도 유죄가 인정되지 않았나. 다만 의견이 너무 세분화되면 곤란하니 그런 부분을 정리한 형태가 됐다. 다른 사건에서도 하는 수준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응이 성실의무 위반이라는 보충의견은 그대로 들어가 있지 않나.”
- 대법원의 과거사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한 헌법소원에서 위헌을 결정했다. 법률에 대한 위헌이었지만 법원의 해석을 문제 삼았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대법원이 소멸시효를 6개월로 줄인 판결은 해석이 아니라 입법을 한 것이다. 해석을 통해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판결이다. 법원은 해석을 통해 법을 형성하는 기능도 한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 권리를 더 지켜주거나 보장하기 위해서만 가능하다. 권리를 축소하고 잘라내기 위한 시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법원의 해석을 문제 삼는 한정위헌은 헌법재판에서 가능한 결정 형태다. 거듭된 대법원 판결, 즉 판례는 법과 효력이 같다.”
- 헌재가 과거사 판결에 적용된 법률에 대해 위헌을 결정해 당사자들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여도 다른 이유로 패소시킬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번에 다뤄진 세 가지 대법원 판결은 모두 문제가 있다. 대법원은 스스로 재심 사유를 만들지는 못한다. 헌재는 대법원에 재판을 바로잡을 기회를 준 것이다. 대법원이 헌재와의 힘의 관계에서 이해하려 하면 안된다. 긴급조치 배상 거부 판결에 대해서는 손을 못 댔는데, 이는 헌재의 (헌법적) 한계였다.”
- 헌재는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이 위헌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내년까지 대체복무제가 생겨야 한다. 형태와 기간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수준이 헌법에 합치되는 대체복무인가.
“1.5배 정도가 적합하다. 1과 3분의 1~1과 3분의 2배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를 봐도 차이가 거의 없다. 독일은 현역과 복무기간이 같다가 모병제가 되면서 폐지됐다. 대만은 한두 달 정도 긴 수준이다. 국회에 올라 있던 법안은 1.5~2배였다. 결정문에 2배까지 규정한 국회 법안이 올라와 있다고 쓰려다 2배가 적합하다는 오해를 줄까봐 뺐다. 헌재 결정문에는 이렇게 써 있다. ‘현역복무 기간보다 어느 정도 길게 하거나, 대체복무의 강도를 현역복무의 경우와 최소한 같게 하거나 그보다 더 무겁고 힘들게’라고. 전체를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생각한다.”
김 재판관은 앞으로 헌재에 필요한 것은 ‘치밀한 논증’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헌재가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기보다는 지금 토대 위에서 굳건히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논증의 치밀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치밀하고 치열한 논증을 해놓아야 비슷한 문제가 왔을 때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면서 “어설프게 논의하다 결론을 내면 확장된 문제를 맞아 이전과 다른 결론을 내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중도진보 성향을 보였다. 가령 간통죄에 위헌이 결정될 때 혼인이 파탄난 부부의 경우만 처벌에서 제외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사건에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내면서 극단적 소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류 헌법학계는 오히려 해산 결정에 의문을 표시한다. 2017년으로 예정돼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재소장 임명을 앞두고 재판관들이 전반적으로 보수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 재판관은 퇴임 이후 오는 11월부터 전남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취임한다. 그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로 유명하다. 2011년에는 연령별 출전자격 기록이 정해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도 참가했다. 지금도 한 달에 200㎞가량을 뛴다. △전북 고창 출생, 전남고·서울대 졸업, 사법연수원 9기 수료, 판사·헌법재판관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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