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1970년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다음과 같이 약속한 바 있다. “NPT 제4조: (2) 핵무장의 해제와 핵개발경쟁의 조기중단을 위한 효과적 조치에 관한 국제협상과, 전반적이고도 완전한 (general and complete) 무장해제를 엄밀하고도 효과적인 국제적 관리통제 하에 이루기 위한 조약에 관한 국제협상을, 본 조약당사국은 각자 선의를 갖고 모색하기로 약속한다.”
이 약속은 적어도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핵보유국의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미국이 1970년 NPT를 맺으면서 핵무장해제를 위한 협상을 모색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는데 북한도 마찬가지로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하였다.
미국이 NPT에서 약속한 핵무장의 해제는 조약당사국들이 핵무장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을 각자 알아서 준비하기로만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약속이었다.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으니 아직 그것을 모색하는 중이라고만 답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아무도 미국더러 아직도 그것을 가시적으로 모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도 않고 있다.
북한이 서명한 북미공동성명의 제3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는 약속은 48년 전에 미국을 비롯한 핵강대국들이 한 약속의 본질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있다. 북한도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는 약속이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한다.”고만 약속하였다.
지금 북한은 미국이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던 사실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강제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아직도 핵협상 방안을 모색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만 북한은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에 미국보다 한발 앞서 이미 착수했다. 핵보유국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명과 책임을 솔선수범하는 쪽은 오히려 북한이다.
원래 법률적 문서에서 ‘A를 재확인한다.’고 했으면 나중에 가서 ‘난 A에 관해서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할 수가 없다. 북미공동성명에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했으면, 북미 두 나라는 나중에라도 판문점선언의 내용에 대해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미국도 판문점선언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판문점선언의 내용 가운데 꼭 알아둘 것이 3가지 있다.
(1) 남과 북은 앞으로 상대방에 대해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미국은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한에서는 함부로 허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2) 남과 북은 금년 중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미국도 금년 중에 정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3)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의 핵무기와 핵시설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비핵화가 될 수 없다. 한반도에 미지상군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언제라도 한반도 근처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주한미군을 그대로 존치하려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해야 한다).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북미공동성명 제3항에 명시된 비핵화노력의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미국은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지지해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비핵화를 지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어도 많이 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만 공개적으로 이번에 북미공동성명에 새겨놓은 한반도비핵화약속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 자칫하면 그것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하는 걸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전략적으로 주도하는 북한이 세계비핵화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래 표는 비핵화된 나라와 원래부터 핵이 없는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핵보유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있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있지만, 비핵화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없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없다.
그러나 몰래 감추어둔 핵이 있을 수 있고 다시 핵무장을 할 능력도 있기 때문에 핵으로 보복할 능력도 있다. 그래서 비핵화국은 핵으로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은 못하지만 다른 나라의 핵공격을 핵으로 보복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는 타국의 핵위협에 대응해서는 다른 핵보유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 대가로 핵우산을 제공해준 나라에 종속되고 그들의 패권적 지배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에 비해 비핵화국은 핵우산도 필요하지 않고 타국에 대해 핵우산도 제공하지 않는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