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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톡] 자유한국당이 만든 ‘야식비 정국’

스스로 불리한 정국으로 바꾼 자유한국당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8-10-03 19:01:37
수정 2018-10-04 0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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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심재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지난 9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항의 방문을 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심재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지난 9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항의 방문을 하고 있다.ⓒ뉴시스

"와인바가 아니고 24시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었으면 문제가 될 게 없죠!"

청와대가 밤 11시 넘어 사용한 업무추진비의 내역을 두고 발끈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야식계'에서 가장 뒷줄에 서있는, 삼각김밥까지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비공개 정부 자료 불법 유출' 논란이 이제는 '야식' 논란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사상 유례 없는 '야식비 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요?  

궁색한 폭로전의 실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빨랐다'
 

당초 비인가 자료 유출 경위를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심 의원 간의 잡음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번 사태가 '야근' 논란으로까지 번지게 된 건, 심 의원의 '궁색한 폭로전' 때문이었습니다.

심 의원은 위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업무추진비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한국재정정보원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잇따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확보 경로가 불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허위 자료는 아닌 만큼 내용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심 의원은 이를 토대로 청와대가 기획재정부의 예산집행지침에 맞지 않게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가뜩이나 국회와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등 '눈 먼 돈'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던 정국인 만큼, 심 의원의 폭로에 여론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곧 이어진 '팩트 체크'가 다시 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청와대는 심 의원 못지 않게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반박했고, 그 결과 심 의원의 폭로전은 요란한 빈수레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 의원은 '유흥업소', '최고급 식당 코스요리', '와인바'와 같은 다소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이 마치 도덕적으로 크게 잘못된 것처럼 몰아 갔지만, 실제 내역을 확인한 여론의 반응은 냉담했던 것이죠.  

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및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재부 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및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재부 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심 의원은 저녁 기본 메뉴로 1인당 10만원 내외인 고급 음식점에서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건수가 총 70건, 1197만3800원(1건당 평균 17만1054원)에 달했고, 고급 스시점에서 사용된 것도 473건, 6887만7960원(1건당 평균 14만5619원)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두 청와대 인근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1인당 평균값으로 환산한다면 체감할 수 있는 가격대는 훨씬 더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심 의원은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주점에서 사용되는 등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건들도 총 236건(3132만5900원, 1건당 평균 13만2700원)에 달했다"며 '호프', '펍', '주막', '이자카야', '와인바' 등이 포함된 상호명을 자체적으로 분석해 집계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심 의원이 지목한 일부 주점을 여러 언론과 네티즌들이 잇따라 직접 찾아 가서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일반 직장인들도 자주 찾을 만한 평범한 가게로 보인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면서 심 의원의 주장은 더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기자도 얼마 전 이들 중 한 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간 곳은 청와대 인근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작은 주점으로, 여러 종류의 수제맥주·외국맥주와 함께 1만원대의 돈가스, 떡볶이 등의 음식을 팝니다. 업종 분류도 '유흥주점'이 아닙니다. 이곳은 낮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데, 일대 가게에 비하면 늦게까지 영업하는 편이라 청와대 직원들도 종종 찾는다고 합니다. 점심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3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여론 상으로 심 의원이 판정패를 받은 것으로 본다"라며 "우연히 (디브레인에) 들어가 봤는데 업무추진비와 관련해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항목들이 있더라, 이것에 대해 검증을 하라고 하면 되는데, 뭔가 뒤에 엄청난 게 있는 것처럼 얘기하니까 국민이 볼 때는 약간 짜증이 나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심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더 이상의 섣부른 공세는 자제해야 했을 것 같습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죠. 청와대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한 상태인 만큼, 그 감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물러서면 그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홍보본부장이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재철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 업소를 설명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홍보본부장이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재철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 업소를 설명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주화입마에 빠진 듯한 자유한국당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줄 알았던 자유한국당의 '궁색한 폭로전'은 마치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듯 계속 이어집니다.  

때는 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심 의원이 '맞고발' 상대인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과 '소득 없는' 싸움을 벌인 뒤였습니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홍보본부장이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폭로(?)에 나섰습니다.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선 홍 본부장은 청와대의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식당 등을 자유한국당 당직자들이 직접 가봤다며 이자카야, 와인바 등 식당 내부 사진들을 공개했습니다. 홍 본부장은 이를 토대로 '국정운영 업무 특성상 365일 24시간 업무', '불가피한 사유로 일반식당 영업 종료한 늦은 시간 간담회 등 업무 시 주점 사용' 등의 청와대 해명은 "거짓 해명"이라고 몰아 갔습니다. '직접 가보니 취객의 시끄러운 소리 등으로 간담회나 회의 개최 자체가 불가능했다', '장소도 협소하고 음악소리도 시끄러웠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홍 본부장은 정말 심야 근무가 끝난 후라면 주점이 아닌 주변의 '24시간 순대국밥집'을 이용하거나 청와대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면 될 일이라고 강변했습니다. "어제 가본 업체에서 5분 거리에 24시간 운영하는 해장국집, 순대국밥집이 있었다"는 '깨알' 정보까지 제공하면서 말이죠.  

이러한 홍 본부장의 긴급 기자회견이 이미 불난 여론에 부채질을 한 것이었다면, 김성태 원내대표의 이어진 방송 출연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었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KBS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해 "직장인들 입장에서 보면, 야근하다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11시 넘어서 야근하면 사비로 사먹어야 하는 건가요?"라는 방송인 김제동 씨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24시간 편의점이 다 있는데 그런 편의점에 가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했으면 심 의원이 문제를 삼아도 국민들 보기에도 그렇다." 한 마디로, 한밤 중 야근으로 인해 업무추진비를 정 쓰고 싶으면 편의점에서 쓰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받고 열람·공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질문하고 있다.
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받고 열람·공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질문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소득주도성장론에 총공세 펼치던 자유한국당, 
정작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선 '심재철 폭로전'이 핵심 이슈로 부상

다시 되돌아가봅시다. 사실 '야식비'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심 의원의 국회 사무실 보좌관이 디브레인에 접속해 자료를 다운로드 받다가 문제가 불거졌던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위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다가 심 의원과 기재부가 검찰에 '맞고발'을 하게 된 상황입니다. 만약 여기서 그쳤더라면, 심 의원실 압수수색 등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정부를 향해 "국회 무시"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논란이 일단 마무리됐을지도 모릅니다.

'야식비 정국'이 오기 전까지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기조인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하고 여론전을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나름의 효과를 보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출산주도성장'이라는 대안을 꺼내들어 비판 여론을 불러 일으키긴 했지만 말이죠.  

그렇게 문재인 정부 경제 심판론을 키워가던 자유한국당은 지금 스스로 폭탄을 끌어안은 형국입니다. 심지어 정부가 긴장하고 있을 듯한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도 경제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심 의원이 핵심 이슈가 됐으니,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아쉬운 목소리가 나올 법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계속 가느냐, 아니면 회군 하느냐. 과연 내일은 자유한국당이 어떤 길을 선택할까요? 


* ‘정치톡’은 정치팀 기자들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슈의 전말을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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