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1990년 일부 개정 이후 28년 만이다.
민주노총과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27일과 28일 각각 산안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27일 성명에서 먼저 “이번 산안법 개정은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915명 직업병 판정과 231명 사망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이후 낡은 법이 따라가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결정이며, 지난 30년의 과제에 물꼬를 튼 성과”이자 “고 김용균 노동자 유족들이 ‘다른 아이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며 분노의 눈물로 하루가 멀다고 국회를 찾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청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된 것은 개선점”이라면서도 “유해·위험업무 도급금지 문제와 관련해 적용받는 업무가 상당히 제한적이고, 시행령 위임을 통한 추가 확대 가능성도 없어 결국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앞으로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한계를 짚었다. 기업 가중처벌 조항에 대해서도 “하한형은 도입되지 않아 실질적인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며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경우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하면 형사 처벌키로 한 조항이 빠진 점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시민대책위도 입장문에서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 앞에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평가하면서도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국회 논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했으며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처벌 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분명하다”고 꼬집는 한편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직업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선 법 개정 이외에도 정부와 법원의 엄정한 법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대책위는 또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 가릴 것 없이 다단계 하청으로 쪼개고 떠넘긴 고용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인의 유서와 같은 메시지로 남은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상시지속업무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및 인력충원 ▲태안화력 1~8호기의 작업중지와 안전실비 개선 등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곤 “오는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2차 범국민추모제에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28년 만에 개정된 산안법, 그 내용은?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을 보면, 산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원청의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안전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기업에 대한 가중처벌도 도입됐다. 위험성과 유해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유해·위험업무에 대해 도급을 금지했지만 적용받는 업무는 제한적이다. 도금이나 수은, 납, 카드뮴 등을 사용하는 유해작업을 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위반하면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원·하청이 같이 일하는 사업장의 경우, 원청 사업자가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가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된다. 원청 사업장이 아니라도 원청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인 경우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장소까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원청 사업주가 안전 의무를 위반했을 때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높였다.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선 원·하청 사업주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 처해지며, 법인 대표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또 처음 산재 사망이 발생한 뒤 5년 안에 다시 법을 위반할 경우 기존 형벌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강화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요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처벌)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하지 못했다. 아래는 민주노총 성명과 시민대책위의 입장 전문.
30년 과제에 물꼬 튼 산안법 개정과 민주노총의 과제 지난 18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 논의만 하다 번번이 폐기됐던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20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구의역 김 군의 참혹한 죽음 이후 2년 7개월 만이며, 고 김용균 노동자 유족들이 “다른 아이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며 분노의 눈물로 하루가 멀다고 국회를 찾은 결과다. 이번 산안법 개정은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915명 직업병판정과 231명 사망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이후 낡은 법이 따라가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결정이다. 지난 30년의 과제에 물꼬를 튼 성과다. 하지만 많은 과제 역시 남겼다. 가장 중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인 유해위험업무 도급금지 문제와 관련해 적용받는 업무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정비 하청 노동자나 이번 태안화력 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업무는 여전히 해당되지 않는다. 시행령 위임을 통한 추가 확대 가능성도 없다. 결국,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안전과 생명은 앞으로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게 됐다. 산재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기업처벌 강화는 가중처벌은 도입됐으나, 하한형은 도입되지 않아 실질 실효성 확보는 제한적이다.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 중지하고 대피할 경우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하면 형사 처벌키로 한 조항이 빠진 점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 분명한 개선점도 있다. 무엇보다 원청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처벌도 강화된다. 원․하청이 같이 일하는 사업장은 원청이 전부 책임지고, 원청이 지정․제공하는 장소인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책임을 지게 돼 앞으로 태안화력 사고와 같은 경우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매년 6백명이 죽어 나가는 건설현장의 발주처 안전책임과 타워 크레인 등 건설기계 원청책임도 강화된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메탄올 중독 청년 실명 등 현장의 화학물질 관리가 강화돼 화학물질 독성 정보를 정부에 보고하게 되고, 기업 영업비밀 사전 심사가 강화된다. 특수고용노동자, 배달 노동자, 프랜차이즈 지점 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가 일부 도입되고, 위험성 평가에 노동자 참여가 법으로 보장된 점 역시 긍정적이다. 구체 법 내용과는 별도로 이번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 무능과 보수 야당이 당리당략에 몰두한 행태는 지적받고 규탄 받아 마땅하다. 목숨을 잃고 다치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문제 원인을 제공하거나 조장하는 집단의 의견을 묻고 따른 행위는 보수야당의 근거가 어디인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매년 노동자가 2천4백명씩 죽어 나가는 현실에 참회는커녕 끝까지 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낸 경총, 건설협회,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는 생명보다 금전가치를 우선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사악한 본성과 함께 그들이 왜 적폐세력인가를 여실히 증명했다. 궁극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법 개정이 김용균 노동자 사망 문제 반복을 막지 못한다는 점이 증명한다. 민주노총이 요구해왔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법사위에서 논의조차 없었다. 남겨진 과제 해결을 위해 민주노총은 고 김용균 노동자 범국민 추모제를 비롯한 진상규명 투쟁에 집중하면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강력히 전개해 나갈 것이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완전한 보장을 위해 앞으로도 불굴의 의지로 투쟁할 것이다. 2018년 12월27일 |
28년만의 산안법 개정, 그러나 여전히 김용균은 하청노동자입니다. 28년 만에 산안법이 개정되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개정이다.특히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 앞에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결과다. 관심 갖고 지켜보며 여‧야 의원들에게 의견을 보내주신 시민들에게 감사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국회 논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했으며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 처벌 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는 분명하다. 이 법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다 사망한 2016년 구의역 김군과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이 하는 일은 여전히 도급으로 남아있게 된다. 한편,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직업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법개정 이외에도 정부와 법원의 엄정한 법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다. 고용노동부가 기존에 해왔던 대로 “봐주기 위주의 솜방망이” 처벌이나 “눈가림식 안전점검” 관행을 전면 혁신하지 않는다면 이 비극은 또다시 반복될 위험이 있다. 또한 검찰과 법원이 전관예우나 재벌대기업의 로비에 놀아나면서,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산재·직업병 예방에 역행한 사업주들에게,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가벼운 처벌로 일관해온 잘못된 사법 관행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검찰, 법원의 진정성 있는 성찰과 산안법 적용상의 혁신을 엄중 촉구한다. 24세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태안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약속하고 입장을 발표했지만,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 과정에서 법안이 정쟁의 대상이 되어 계속 후퇴하고, 유가족들은 더 후퇴할까 마음 졸이며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상황에 분노한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2월 17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유가족 긴급요구와 5대 기본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태안화력 1~8호기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당장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노동자들이 원하는 산안법 전부개정안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2월 국회 처리,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설비 개선이다. 하지만 철저한 진상규명은 유가족이 모든 권한을 위임한 시민대책위가 특별근로감독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이 없다. 유가족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태안화력 1~8호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작업중지 요구도 거부되었다. 우리는 산안법 전부 개정안의 통과가 죽어가는 아들, 딸들을 단 한 명이라도 줄이고자 했던 아버님, 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상시지속업무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및 인력충원, 태안화력 1~8호기의 작업중지와 안전실비 개선 등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이 말한 “국민들이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할만”한 진상조사는 불가능하다.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 가릴 것 없이 다단계 하청으로 쪼개고 떠넘긴 고용 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인의 유서와 같은 메시지로 남은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 아울러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눈물겨운 노력에 관심을 가져준 국민들께 호소 드린다. 바로 내일(29일) 오후 5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2차 범국민추모제에 함께 해주셔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린다. 2018. 12.28. |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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