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9시 20분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어렵사리 개최됐으나 성과는 없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사개특위 전체회의가 이날 열렸지만, 한국당-민주당 의원들 간 격렬한 고성과 항의가 오간 끝에 1시간 만에 산회했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불발됐다.
장소 옮기며 사개특위 회의 개의... 1시간만에 산회
애초 오후 8시, 국회 본청 220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사개특위 회의는 회의장 안을 점거한 한국당 의원·당직자들로 인해 여야4당 의원들이 입장하지 못했고, 결국 장소를 바꿔 507호 문화체육관광위 회의실에서 개최됐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민경욱 의원 등 한국당 의원 50여 명은 회의실 앞 복도에 연좌해 앉아 "헌법 수호", "독재 타도" 구호를 외쳤다.
회의실 안에선 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 동의를 위한 안건이 상정됐다. 그러나 한국당 간사 윤한홍 의원과 곽상도·윤상직·정종섭·이장우 의원 등은 "오신환 사보임부터가 불법이다", "회의가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항의했다. 유승민·하태경·이혜훈·지상욱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도 사개특위 회의장 안에 들어와 반발했다. 앞서 사임된 오신환 의원은 "사보임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발언기회를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가 열리자, 사보임으로 교체된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사보임의 부당함을 토로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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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의원들은 오신환 의원을 향해 "원내대표나 국회의장에게 가서 항의할 사안이다. 위원장에게 권한이 없다"며 응수했지만 대치는 계속됐다.
곽상도 의원은 새로 교체된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분이 저 자리 앉는 게 마땅한지 확인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의원은 결국 굳은 표정으로 "오늘 회의에 상당한 기대 가지고 왔지만 제 실명이 거명되는 것에 심각한 유감이다"라고 말한 뒤 참석 30여 분 만에 회의장을 떠났다.
사보임 적법성 여부를 놓고 대치하던 여야 의원들은 결국 윤한홍 의원의 '도둑' 발언을 놓고 큰 소리로 싸웠다. "회의가 당당하면 도둑처럼 숨어서 옮겨가며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윤 의원의 발언에 이 위원장이 분노한 것. 그러나 윤 의원은 "발언을 취소할 수 없다"고 맞섰고, 결국 이 위원장이 "더는 원만하게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며 10시 13분께 사개특위 산회를 선포했다.
이에 따라 앞서 상정됐던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개혁법안들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이날 결국 불발됐다.
▲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과 김종민 민주당 간사와 위원등이 26일 오후 국회 본청 정개특위 회의장에 입장하려하자 자유한국당장재원, 정진석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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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특위(정개특위)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정개특위는 앞서 오후 8시께 국회 본관 445호 행정안전위 회의실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을 비롯한 특위 위원들과 한국당 의원 30여명에 가로막혀 결국 개의도 하지 못했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회의 방해는 국회법 165조 위반으로 징역 5년에 해당한다"며 "항의가 있다면 회의장에 들어와 말하라"고 요구했지만 대치는 계속됐고, 결국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이 물러서면서 상황은 9시 15분께 마무리됐다.
나경원 "비상대기조 국회 남기겠다"
▲ 나경원, 사개특위 회의장앞에 드러눕다 2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이 국회 본청 사개특위 회의장에 입장하려하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입장을 가로 막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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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개특위 회의장 밖에서 결의를 다지던 한국당 의원들은 안쪽 상황을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임재훈 의원이 이석해서 나가자, 진짜 나가는 건지 아닌지 헷갈려했다. 채이배 의원이 참석하지 않을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그럴 리가 없다" "아니야, 안 온다"라며 서로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이혜훈 의원도 밖으로 나가며 "임재훈 의원이 이석한다고 우리에게 약속했는데, 지금 채이배랑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라면서 "방호과 경호 인력 20여 명과 함께 온다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몇몇 의원도 따라나가자 "정말로 오늘 끝났나보다" "채이배 만나서 함께 뚫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라며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목포로 내려갔다는 소식에는 웃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민경욱 의원이 "얼굴을 밟고 가라"라고 말할 정도로 결기가 높았지만, 사개특위 산회 소식이 알려지며 이들의 투쟁 의지는 시험받지 못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웃으며 본청 246호로 옮겨 이날 농성을 마무리하는 긴급의원총회를 열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우리의 비장한 각오와 단합된 힘으로, 오늘 저들이 패스트트랙에 (법안을) 태우려는 것을 막아냈다"라고 선언했다.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나 원내대표는 "그러나 아직 가야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라며 "우리가 정도(正道)에서 막아냈더니, (여당 등은) 결국 모든 것을 편법과 불법으로 점철해 도둑회의를 하거나, 도망회의를 하거나 아니면 회의조차 열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한국당은 비공개회의에서 주말 기간 동안의 비상대기조 편성을 마쳤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저들은 25일에 패스트트랙을 하겠다고 했지만, 오늘까지 하지 못했다"라며 "그만큼 저희가 승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희가 막아내는 데까지 국민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라며 "내일 토요일 장외집회가 우리의 가장 큰 투쟁 방식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혹시 주말 동안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 위원들이 정개특위‧사개특위 개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원들이 비상시에 투입될 수 있도록 비상대기조를 남겨두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 "채이배를 막아라" 26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 및 당직자들이 사개특위 회의가 시작된 회의실앞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참석을 저지하기 위해 농성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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