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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징계’ 답변 피한 황교안, 도망치듯 끝난 30분짜리 광주행

황교안 “지역 간 갈등 있던 시대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한 나라 돼야”

광주 = 김도희 기자
발행 2019-05-03 17:47:38
수정 2019-05-03 23: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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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은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은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부당성을 알리겠다며 광주를 찾았지만, 쇄도하는 시민들의 분노만 맞닥뜨린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황 대표는 이날 광주 일정 내내 눈물과 고성, 생수와 찢어진 피켓 등이 동원된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자유한국당은 황 대표 취임 이후 지난달부터 광화문 집회, 전국 순회 투쟁 등 장외 일정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껏 진행된 장외 일정 중 지지자보다 비(非)지지자가 더 많이 몰렸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단체 등이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2019.05.03
5·18 단체 등이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광주시민 분노만 키운 황교안 방문,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

황 대표에 대한 광주의 감정은 싸늘함과 분노로만 표출됐다. 광주진보연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오월어머니회,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 등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황 대표가 도착하기 30분 전인 오전 10시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100여 명의 광주시민이 함께했다.

시민단체는 광주 송정역 앞에 모여 피켓을 들고 플래카드를 펼쳤다. 이들은 ‘5·18 역사 왜곡, 적폐 몸통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1700만 촛불, 170만 청원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세월호 7시간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국정농단 이석기 내란 음모 조작 황교안은 감옥으로’, ‘황교안은 박근혜다. 광주를 당장 떠나라’ 등의 문구를 내걸고 자유한국당 해체와 황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는 황 대표 도착에 앞서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에 대한 광주시민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라고 강조하며 “자유한국당과 황교안에 대한 광주의 마음을 똑똑히 보여주자”고 결의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광장 중앙에서 정부 규탄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항의를 의식해 변두리로 장소를 옮겨 일정을 진행했다. 황 대표 도착 직전 일부 당원들이 ‘문재인 STOP! 광주·전남 시·도민이 심판합니다!’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며 집회 시작을 예고했다. 이에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는 시민들의 반발도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자유한국당 일부 당원은 “남의 당 대표 행사에 와서 감히 건방지게 뭐 하는 거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황 대표의 등장과 함께 긴장감은 더해졌다. 시민들은 각자 준비한 피켓을 들고 일제히 자유한국당 집회 현장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황교안은 물러가라”,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 구호가 울려 퍼졌고, 광장 한쪽에서는 시민단체가 준비한 차량 스피커를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흘러나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이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이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이에 질세라 황 대표의 주변에 나란히 선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원들은 ‘경제 파탄 문재인 STOP’, ‘지역구의원 줄이는 선거제 반대’, ‘민주주의 파괴하는 공수처 반대’, ‘사법부 장악 공수처 반대’ 등 피켓을 들어 보였다.

황 대표는 가장 먼저 모두발언에 나섰다. 그는 “자유한국당 당원 여러분”을 부르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즉각적인 반감을 보인 시민단체들이 더욱 크게 “황교안은 물러가라”고 항의했다.

이에 황 대표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을 들으시라”고 말했다. 그는 몇 차례 발언을 이어가려 했지만, 진정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 더 이상 발언 진행은 어려웠다. 결국 황 대표는 마이크를 조경태 최고위원에게 넘겼다.

조 최고위원, 신보라 청년최고위원을 거쳐 황 대표는 마지막으로 다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광주 전남의 애국시민 여러분께서 피 흘려 헌신하신 거 아니냐. 그런데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말로 할 수 없으니 장외로 나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황 대표는 “저희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시민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저희를 믿어달라. 경제 살리는 당은 자유한국당밖에 없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광주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황 대표의 메시지는 광주시민들의 울분 섞인 목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전달되지도 못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5·18 단체 등 시민단체가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촉구하며 황 대표 길을 막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5·18 단체 등 시민단체가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촉구하며 황 대표 길을 막고 있다.ⓒ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한 뒤 5·18 단체 등의 항의를 받고 역무실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한 뒤 5·18 단체 등의 항의를 받고 역무실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2019.05.03ⓒ뉴시스

광주시민 질문에 아무 답도 않은 황교안, 역무실로 피신한 뒤 시민단체 눈 피해 전주행

도착부터 규탄대회 진행까지 20여 분만에 일정을 마친 황 대표는 자유한국당 일행과 함께 급히 역 안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황 대표로부터 ‘왜 광주에 왔는지’, ‘5·18 망언에 대한 사과는 없는지’ 등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한 광주시민들은 황 대표의 이동을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일부 시민들은 황 대표를 향해 생수병에 든 물을 뿌리기도 했다.

황 대표는 시민들에 둘러싸여 수 분간 옴짝달싹 못 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다 오르기까지 10여 분이 걸렸다.

황 대표는 우산까지 펼쳐 든 경찰들의 보호 속에서 어렵사리 송정역 역무실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런 말을 듣지 못한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역무실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5·18 희생자 유가족인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우리가 국회 앞에서 87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우리말 좀 전하고 싶다”, “몇 마디만 하려 한다”며 황 대표와의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황 대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 대표는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단체와 취재기자들의 눈을 피해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그는 전주행 열차를 타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 ‘광주시민들한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지역 간의 갈등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한 나라가 돼야 한다”며 “단일 민족인 한나라가 나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민 여러분께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자유한국당 ‘5·18 망언’ 의원들의 징계와 관련된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남기지 않은 채 열차에 탑승했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40대 광주시민 A 씨는 “진상규명은 하나도 안 해주고 와서 얼굴만 비추고 가면 뭐하냐”며 “광주를 어질러놓고만 갔다”고 날을 세웠다.

70대 광주시민 B 씨는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패스트트랙을 해서 반대 운동을 한다고 온 모양인데, 전라도 사람들은 와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4당이 국회에 돌아오라는데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B 씨는 “질 것 같으니 안 들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볼 때 자유한국당은 정치를 잘못한 걸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아마 자유한국당 당원들 빼고는 마음이 다 비슷할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은 많이 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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