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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에 대한 동상이몽

 

CJ 비자금수사 경제민주화와 연결 말아야
 
경제민주화에 대한 동상이몽
 
편집부 | 등록:2013-05-26 08:36:28 | 최종:2013-05-26 09:32:55

 

 

 

<조세피난 한국인명단을 발표한 뉴스타파 기자회견>

 


돈에 발이 달렸나?

 

뉴스에서 처음 조세피난처(tex haven)란 단어를 듣고 잠시 멍해졌습니다. 조세, 즉 세금을 피해 도망간 행위를 ‘피난’이라 표현하는 순간 대한민국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은 6.25때 남침한 북괴군과 동급이 되어버립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합니다. 언론들이 저런 범죄자들의 표현을 직역해서 받아 쓸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같은 단어를 ‘조세회피처’, ‘조세도피처’로 바꿔 사용하기로 한 한겨레와 참여연대의 결정을 칭찬합니다.

 

지난 4월 한국인들이 세계적인 조세회피처 버진 아일랜드에 숨겨 놓은 은닉자산의 규모가 870조에 이른다는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협회(ICIJ)의 보도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조세를 북괴군만큼이나 무서워했던 한국의 기업가들은 완전한 ‘피난’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뉴스타파가 이들의 명단을 입수∙공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뉴스타파의 조세회피자 명단발표가 있기 하루 전 검찰은 해외비자금 운용 혐의로 CJ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두 가지 이슈로 인해 한국사회는 다시 한번 재벌들의 비자금조성과 조세포탈에 대해 공분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되어야 할) 지금의 시기에 터져 나온 조세피난처와 재벌비자금 이슈는 뭔가 찜찜합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동상이몽

 

대선이 끝난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경제민주화'는 관념적인 개념입니다. 이런 모호한 단어는 해석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규정됩니다. 시장주의자들은 경제민주화를 공정거래감시나 비자금감시 정도로 온건하게 해석하는 반면 사민주의자나 진보주의자는 이것을 비정규직해소 문제와 최저임금문제, 정년연장문제에까지 확대시켜 해석합니다. 같은 것을 두고 각자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으니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4월 임시국회에서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인 가맹사업법(프랜차이즈법)과 공정거래법(공정거래위원회 전속 고발권 폐지)이 여야간의 이견으로 무산된 것 역시 이런 해석의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경제민주화가 정치구호를 넘어 현실의 영역으로 들어오자 정부와 여권은 이것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경제민주화관련 법안들에 무리한 측면이 있어 기업활동을 억누를 수 있다 - 박근혜 대통령

기업 경영 자율성을 해치는 법안은 정부가 수용하기 어렵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경제민주화는 경제를 살리는 경제민주화가 돼야 한다 -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환자가 기초체력이 안 되는데 무조건 수술부터 하는 상황이 생긴다 - 김기환 정책위 의장

 

 

 


경제민주화를 가장 앞장서서 환영해야 할 공정거래위원장(노대래)마저 "경제 민주화의 개념을 확장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정부의 속도조절론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 '과연 박근혜 정부하에서 경제민주화가 가능한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밀려듭니다. 이런 시점에서 터진 조세회피처와 재벌비자금 이슈가 자칫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애써 협소하게 규정하려는 여권의 노력에 도움을 줄까 우려됩니다.

 

 

<CJ비자금 경제민주화와 연결말아야>

 


분명한 선긋기 필요

 

두 사건이 경제민주화에 미칠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재벌가의 부도덕이 국민적 지탄을 받음으로써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이 환기되는 측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재벌비자금사건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추진동력을 얻게 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재벌가의 비자금문제에 매몰되면서 경제민주화의 참 의미가 퇴색∙은폐되는 경우입니다. 재벌의 불법∙탈법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개념과는 무관한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이자 사명일뿐입니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인 시대에 이런 탈세와 조세회피 행위는 끝까지 추적 조사해 일벌백계함이 마땅하다. - 5.24 국회 경제민주화포럼

 

경제민주화 제도화의 선봉에 서있는 '국회 경제민주화포럼'이 조세회피와 비자금문제를 경제민주화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려스럽습니다. 지난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고작 재벌의 탈세방지를 말하는 것이었다면 허탈합니다.

 

분명한 선긋기가 필요합니다. 재벌의 비자금조성과 역외탈세를 처벌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경제민주화와는 무관한, 기존의 법률로도 충분히 처벌가능한 차원의 문제들입니다. 굳이 여기에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끌어다 쓸 경우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기존의 법질서에 매몰될 위험이 생깁니다. 이미 존재하는 법과 도덕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매몰되다보면 새로운 법과 질서의 탄생은 요원해집니다.

 

만약 정부가 두 사건을 통해 형성된 재벌비자금 규탄 분위기를 이용해 경제민주화의 범위를 재벌의 탈세감시 정도로 축소시킨다면 경제민주화는 결국 서민의 삶과는 무관한 수준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경제민주화를 새로운 시대정신이라 여긴다면 대기업의 순환출자금지, 부당거래 금지와 같은 경제정의의 구현은 물론 수평적 갑을관계 정립, 임금격차 해소, 비정규직 해소와 같이 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까지 전향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6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4월 임시국회때 미뤄졌던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두고 여야간의 치열한 격돌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이 이번에도 경제민주화 입법에 반대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공약이 사기공약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세력이 무슨 이유로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지 6월 국회를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할 이유입니다.

 


( * 시사블로거 다람쥐주인님이 25일 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하에 소개합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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