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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제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0/08 08:14
  • 수정일
    2012/10/08 08: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리해고는 과연 불가피한가? 현실은…"

[정리해고 연속기고·①] 정리해고제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08 오전 8:06:14

 

국정감사 기간을 맞아 정리해고가 연일 이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달 20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청문회'를 연 데 이어, 한진중공업 이재용 사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업장에서 정리해고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오는 10월 중순 '정리해고 철폐 선언운동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정리해고 실태를 고발하는 기고를 <프레시안>에 6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1. 정말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일까?

정리해고제는 말 그대로 기업 경영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해고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정리해고를 명문화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24조에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면서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정리해고라는 것을 실시하려면 경영 악화라는 객관적인 상황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지금 민주노총에 속해 있으면서 정리해고 문제를 가지고 장기 투쟁을 하고 있는 사업장들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보았다. 11개 사업장의 재무제표를 보면, 재무제표상 경영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던 곳이 적지 않다. 파카한일유압, 시그네틱스, 한진중공업, 흥국생명, 코오롱 등은 영업이익 혹은 순이익이 흑자였다. 그리고 콜트악기의 경우에는 회계상 적자 상태이지만 대법원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쌍용자동차의 경우에는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드러났듯이 회계 조작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금 정리해고 관련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16개 사업장 중에서 7곳은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객관적 필요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이들 사업장의 정리해고는 원천무효 아닐까?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기업과 사업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자본의 의도된 '선택'이 있었다. 콜트악기처럼 기존의 공장을 고부가가치 생산 공간으로 재설정하기보다는 단순 조립 공정을 다변화함으로써 기존 공장의 물량을 분산하고, 결국에는 기존 공장 물량을 없애버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파카한일유압의 경우에도 기존 공장의 생산 아이템을 새로 설립한 법인의 공장에서 생산하면서 기존 공장의 생산물량이 줄어들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국내 물량 수주는 줄이고 해외공장 수주는 늘리면서 국내 조선소의 경영위기를 의도적으로 확대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물량이동, 공장이동, 기업분할, 비정규직 고용 등의 수단을 사용하려다가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제거 혹은 위협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영 위기를 조장하고 정리해고를 실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 기업은 과연 고통을 분담하나?

만약 정리해고를 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면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기 이전에 할 수 있는 노력과 시도들을 해야 옳다. 근로기준법 제24조 2항에서는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자신이 보유한 자신의 일부를 매각하여 경영자금으로 확보했거나 주주 혹은 채권단들이 추가 출자 혹은 채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출자전환한 경우나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경영진이 교체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기업회생절차를 밟았던 쌍용자동차나 대우자동차판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산을 매각한 사례조차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멀쩡한 기업 혹은 사업의 일부를 분할하거나 분사한 사례나 다른 곳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신설한 사례들만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노동자들에 대한 조치들을 하는 경우는 많았다. 상여금이나 복리후생 중단은 거의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있었고, 휴업이나 휴직 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하였다. 노동자에 대한 비용을 줄이고 어떤 식으로든지 인력을 줄이는 일이 정리해고를 앞두고 시행된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경영 위기라면서도 경영진과 주주의 책임과 부담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노동자들이 고통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리해고 회피 수단 역시 노동자들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는데 경영진과 주주들이 고통을 분담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어떤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결국 인력감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희망퇴직이든 정리해고이든 그 형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로 볼 때, 애초부터 기업 측에서는 기업 경영의 개선과 회생보다는 인원삭감을 통한 비용절감으로 기업 수익성을 제고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3. 교섭 횟수가 많으면 성실한 교섭인가?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대표와 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하는 일도 포함한다.

그런데 "성실한" 협의는 매우 요식적이다.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 대표들에게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무성의하게 교섭 횟수만 늘리고서는 이를 성실한 교섭의 증빙 자료로 삼는다. 노동조합을 설득하지도 못한 채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 전달, 해고 강행 의사를 피력하는 과정이 과연 성실한 교섭일 수 있을까? 노동조합에게 무조건 동의를 구하는 것이 성실한 협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 당사자들을 이해시키지 못한 채 사용자들이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대상자들을 노사가 협의하여 합리적으로 선정하는 일은 거의 상상할 수 없다. 게다가 많은 경우 대상자를 선정할 때, 사용자 측면을 60% 고려하고 노동자 측면을 40% 고려하고 있었다. 사용자 측면으로는 인사고과, 징계 및 포상 실적, 근태, 근속연수 등이 주로 반영되고 노동자 측면으로는 부양가족, 연령, 유공자 및 장애자 여부가 주로 반영되고 있었다. 사용자들은 대상자 선정에서도 노동자를 배려하는 아량 따위는 결코 베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대상자 선정의 기준과 합리성에 대해 끊임없는 논란이 일어난다. 특히 복수노조 사업장의 경우 민주노총에 속한 노동조합 간부들이 대거 포함되는 경우가 있었다. 동서공업과 같은 곳에서는 회사와 협력적인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식이어서는 누가 정리해고를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쌍용자동차에서는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4. 휴지조각이 된 재취업 시 우선채용 조항

각 사업장들 자료면접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정리해고 대상자들에 대한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쌍용자동차 같은 경우 정리해고 이후 평택을 고용촉진지구로 선정하기도 했지만 실제 정리해고자들에게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았다. 이런 제도적 허점 속에서 노동자들은 강제적 인력조정이 있을 경우 정리해고보다는 희망퇴직을 선택하기도 한다. 희망퇴직의 경우 그나마 최소한의 위로금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로금조차 받을 수 없는 정리해고 대상자들은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수당'을 받는 것이 유일한 '사회적 지원'이다.

근로기준법 제25조에는 "근로자를 해고한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한 날부터 3년 이내에 해고된 근로자가 해고 당시 담당하였던 업무와 같은 업무를 할 근로자를 채용하려고 할 경우"에 "해고된 근로자가 원하면 그 근로자를 우선적으로 고용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완전히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법 조항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동서공업의 경우 2009년 3월 정리해고 이후 22차례 넘게 인원을 충원하였으나 정리해고된 조합원 15명 중 3명을 제외한 12명의 재고용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원직복직내지는 우선재고용의 법적근거를 통한 인원충원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시그네틱스 역시 생산시설확대로 인하여 신규채용이 진행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경영상태가 호전되어 신규인력이 발생할 경우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 영업전직자를 복직, 채용한다는 등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정리해고된 사람들에게 다른 일자리가 제공되거나 알선되는 것도 아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선심 쓰듯이 '협력업체' 취업을 알선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한 그것은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수평적인 일자리 이동이나 더 나은 곳으로 상향은 아예 꿈조차 꿀 수 없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기업에서 자신이 '정리'되었다는 사실이 개인에게 주는 충격과 상실감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남은 자들보다 못해서 잘렸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정리해고자들이 실업의 냉혹한 현실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잉여'로 분류되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하는 그 심정임을 왜 모르는가.

5. 정리해고제를 '정리'해야 할 때

민주노총에 속해 있으면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을 나름대로 유형해보았다.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유형도 없지는 않았지만 △기업의 경제적,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일방적 결정 △인력조정을 반드시 포함하는 반고용 행태 △노조에 대한 탄압과 사용자 중심 경영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즉, 현재 정리해고제는 본래 의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와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정리해고제를 '정리'해야 한다. 숱한 문제점을 양산하는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결코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없다. 마음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은 기업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그 부담을 나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국가와 사회, 그리고 기업의 경영진과 주주들이 기업 위기의 고통을 나눠가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리해야 한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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