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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가 함께 내놓은 대책에도 계속된 집배원 과로사..61년만의 총파업 불씨 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9-07-01 20:49:01
수정 2019-07-01 20: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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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혜선 의원 “우정사업본부 금융사업 이익, 우편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관련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2019.07.01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관련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2019.07.01ⓒ김철수 기자
 

지난달 19일 한 집배원이 충남 당진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뇌출혈. 유족에 따르면, 고인의 입에선 “힘들다”는 말이 늘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5월 13일 새벽, 공주우체국 무기계약직 집배원 이 모(34)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오후 10시쯤 귀가했던 이 씨는 “피곤해 잠을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가, 눈을 뜨지 못했다.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는 그의 빈방에는 정규직 전환 서류가 놓여 있었다.

이 씨가 사망하기 하루 전날인 12일에도 집배원 두 명이 숨졌다. 의정부우체국 소속 집배원 박 모(59) 씨는 심장마비로, 보령오천우체국 집배원 양 모(48) 씨는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다. 이틀 만에 3명의 집배원이 숨진 것이다. 이들 중 2명은 심정지로, 사실상 과로에 의한 죽음이었다.

2018년 10월 발표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하, 기획추진단)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간 사망한 집배노동자의 수는 166명이다. 근무 중 교통사고 등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45명, 뇌심혈관 질환(29명)과 암 등 질병으로 숨진 노동자는 99명이었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23명에 달했다.

격무에 시달리다 사망에 이르는 집배원들이 이어지자, 양대노총 집배원 노조는 사상 최초로 총파업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집배원들은 인력증원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오는 9일 총파업에 나선다. 집배원들의 파업은 1958년 노조 출범 이후 61년 만에 처음이다.

그간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8월 노동조합과 우정사업본부, 노사관계 및 안전보건 전문가 6명이 참여하는 기획추진단이 꾸려져 26차례의 회의와 실태조사·자체조사 등을 약 1년 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집배원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7대 권고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권고안의 내용은 ▲ 정규직 인력 2000명 증원 ▲ 토요근무 폐지 등을 통한 노동시간 규제 ▲ 안전보건 관리 시스템 구축 ▲ 집배 부하량 산출 시스템 개선 ▲ 수평적 네트워크 문화 구현 ▲ 집배원 업무 완화를 위한 제도 개편 ▲ 우편 공공성 유지와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재정 확보 등이다.

하지만 이조차 집배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관련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2019.07.01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관련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2019.07.01ⓒ김철수 기자

노조 “기획추진단 권고 이행되지 않고 있어”
우정본부 우편물류과장 “국회에서 예산 삭감돼”
추혜선 의원 “흑자 재정, 우편으로 전환 가능해야”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7대 권고이행 점검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기획추진단 전문위원과 전국 각지에서 온 집배원들뿐만 아니라, 류일광 우정사업본부 우편물류과장도 참석해 권고 이행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 등을 설명했다.

먼저 오현암 전국집배노동조합 집배국장이 ‘노조가 점검한 권고안 이행 진행상황’을 정리해 발표했다.

오 집배국장은 △ 인력증원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인력증원이 방기되고 있는 점 △ 노동시간을 감소 과정에서 노무관리가 지나치게 강화되고 있는 점 △ 토요택배 폐지 권고 맥락을 모두 수용하지 않고 이원화만 추진하고 있는 점 △ 경쟁을 유발하는 각종 평가 제도가 대부분 유지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했다.

특히 오 집배국장은 “인력증원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정사업본부가 인력 증원을 방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력을 (증원하지 않고) ‘재배치’하면 된다는 입장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정사업본부의 인력 증원 의지가 있는지 물었다.

이와 관련해 류일권 우편물류과장은 “작년에 인력증원을 위한 예산을 국회에 요청했는데, 전액 삭감됐다”며 “이후 나름대로 별도 예산을 편성해서 해보려고 했지만, 올해 결산에서 재정적자가 큰 것으로 나타나면서 현재 답보상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노총 전국우정노동조합과 관련한 내용으로 협상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몇 명이다’ 말하긴 어렵지만, 집배 인력은 증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 문제 때문에 ‘정규직 집배원 증원’ 권고 이행이 늦어지고 있고, 집배원 과로사를 막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류 과장이 재정적자가 크다고 답했지만, 실제 우정사업본부가 적자인 것은 아니다. 예금·보험·투자 등 금융사업에서 흑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 수익은 정부가 일반회계로 전출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2조8천억에 이르는 수익이 국고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철홍 인천대학교 산업경영공학 교수는 “(우정사업본부가) 흑자 재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문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도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보편적 서비스를 과도한 비용으로, 이익과 손실로만 놓고 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예금 사업을 통해 이익이 나면, 그걸 우편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일권 과장은 토요택배를 폐지하지 않고 이원화만 추진하고 있는 점과 관련해서도 답변했다. 그는 “토요택배는 폐지해 달라는 요구가 많아 가능하면 아웃소싱으로 해결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정희 기획추진단 전문위원은 “우리가 내놓은 권고안의 원칙은 토요근무 폐지”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위탁이나 비정규직을 늘리는 문제로 풀려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위원은 “노동조건 개선이 타자의 노동조건 악화를 통해 얻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달 25일 한국노총 전국우정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은 파업찬반투표를 통해 각각 92.9%, 92.9%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파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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