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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명태→고등어…더위먹은 바다가 ‘국민생선’ 바꾼다

등록 :2019-10-30 21:42수정 :2019-10-31 10:22

 

 

한반도 생선반찬 변천사

50년새 표층수온 1.23도 상승
전세계 수온 변화의 2.5배 넘어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은 59㎏
7년새 60% 넘게 늘어…세계 1위

온난화·남획에 명태 ‘국적’ 바뀌고
최근 2~3년 동안 대세는 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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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 장군이 식수와 반찬이 떨어져 군사들이 동요하자 가시나무를 가져다가 물에 꽂아 놓으니 조기떼가 걸려 반찬으로 먹었다.”

 

서해 지역에선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을 ‘조기잡이’의 시초로 여기는 전설이 전해진다. 서해를 건너던 중 주린 병사들을 위해 낚시를 했는데, 나뭇가지에 물릴 정도로 조기가 풍성하게 잡혔단 얘기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 유배 시절 쓴 어류학서 <자산어보>(1814)를 해제한 손택수 시인의 책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2006)에서도 “조기 울음소리가 한양까지 들렸다”고 했다.

 

이런 얘기는 말 그대로 ‘전설’로만 남게 됐다. 1970년대 연간 3만~4만톤에 이르던 참조기 어획량은 40년 만에 반토막 났다. 참조기를 절인 뒤 말려서 만드는 굴비도 추석 선물세트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처지다. 유통업계에선 2~3년 전부터 민어나 참조기보다 크기가 3배 정도 큰 중국산 부세로 굴비 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때 ‘국민생선’으로 동해를 누비던 명태는 국적을 바꿨다. 1970년대만 해도 연간 어획량이 최대 5만톤에 달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1~9톤 수준이다. 요즘 시중에 유통되는 명태는 90% 이상 러시아산이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정착성 어종의 경우 노가리 남획이, 회유성(이동하는) 어종의 경우 수온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5년간 어린 명태 방류 등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해양수산부는 올해부턴 명태 어획을 연중 금지했다.

 

 

명태 지고 고등어 뜨고

 

한국은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2017년 기준 59.3㎏으로 세계 1위다. ‘수산 강국’ 노르웨이(53.3㎏)나 일본(50.2㎏)도 제쳤다. 속도도 가파르다. 2000년 36.8㎏에서 60% 넘게 늘었다. 그새 ‘국민생선’도 바뀌었다. 1990년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소비량이 가장 많은 수산물이 명태에서 오징어로 교체됐다. 최근 2~3년간 설문조사에서는 고등어가 명실상부한 ‘선호 생선’ 1위다.

 

한국인 밥상 위 생선이 바뀐 데는 무엇보다 한반도 인근 해역의 어획 추이가 달라진 영향이 크다. 명태나 참조기뿐 아니라 동해안 ‘단골’이던 꽁치와 도루묵도 소식이 뜸하다. 반면 멸치와 고등어는 풍년이다. 1970년 5만톤 정도던 멸치 어획량은 2017년 21만톤으로, 고등어는 3만톤에서 21만톤으로 대폭 늘었다. 1970~80년대 연간 3만~4만톤 잡히던 오징어도 2010년대엔 15만톤까지 치솟았다.

 

먼저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한 수온변화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국립수산과학원 집계를 보면 한반도 해역의 표층수온은 1968년~2018년 사이 1.23도 높아졌다. 같은 기간 전세계 수온 변화(0.49도 상승)를 상회하는 수치다. 한인성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는 “수온 상승 땐 영양염류 양이 줄어 수산생물 성장이 제한받을 수 있고, 번식과 서식지 이동도 영향을 받는다”며 “다만 서식지와 어종에 따라 영향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한반도 해역에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와 멸치가 대거 들어선 반면, 한류성 어종인 명태와 도루묵은 북상했다. 오징어는 남해에서 동해와 서해로 서식지를 확장했고, 남해안에선 아열대 어종 등장이 잦아지고 있다. 참다랑어가 2010년 처음 어획량 통계에 포함된 데 이어, 지난해 제주 연안에 나타난 어류의 42%는 청줄돔, 아홉동가리 등 아열대종인 것으로 집계됐다.

 

 

“새끼물고기 남획 통제해야”

 

급격한 어종 변화를 이상 기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국 어선 중심의 공격적인 조업이나 무분별한 남획 등 영향이 더 크다는 지적이 따른다. 산란도 하지 않은 어린 물고기를 헐값에 팔거나 생사료로 써서 수산 자원 고갈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명태의 씨가 마른 계기도 1970년 노가리 어획 금지령 해제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1976년 노가리는 명태 어획량의 94%에 달했다. 오징어 어획량이 2016년 12만여톤에서 지난해 4만여톤으로 급감한 것을 두고도 강수경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는 “산란장 저수온 현상으로 산란자원이 감소한데다가 여러 어선에 의한 남획까지 겹쳤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발간된 해앙수산개발원의 ‘어린 물고기 남획실태 및 보호정책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6년 어획량 중 어린 물고기 비율이 갈치 69~74%, 참조기 55%, 고등어 41%에 달했다. 산지 가격이 1만원(1㎏당) 넘게 매겨질 정도로 수익성이 좋은 참조기 등이 미성어(새끼물고기)로 어획돼 사료로 소진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노르웨이는 1971년 30㎝ 미만 고등어의 포획을 금지한 결과 2014년 북동대서양 고등어 가운데 성어 비중이 89%였다”며 “갈치, 참조기 등 어린 물고기는 판매장소와 불법어획물 거래를 통제해야 한다”고 짚었다.

 

 

넌 어느 바다에서 왔니

 

소득 수준이 오르고 서구 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수입 품종이 다양해진 효과도 있다. 연어, 왕게(킹크랩), 바닷가재(로브스터) 등 과거 고급 식당에서나 취급하던 수입 수산물은 이제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살 수 있게 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통계를 보면 킹크랩 수입액은 지난해 1억2675만달러로 2년전 대비 3배 정도 늘었다. 연어 수입의 20%를 차지하는 동원산업 관계자는 “2000년대 ‘웰빙’ 흐름에 따라 대중적 수요가 형성됐다. 원가 부담이 분산되면서 가격대도 낮아졌다”고 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새우 산지를 2015년 3곳에서 지난해 10개국으로 다변화하는 등 가격 합리화를 꾀하고 있다”고 했다.

 

수산물 소비 방식이나 구매 경로가 다변화되는 것도 관심이 쏠리는 부분이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위주에서 편의점이나 온라인으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편의점 지에스(GS)25 자료를 보면, 지난 1~9월 수산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6.1% 늘었는데 랍스터나 고등어 등 어류 매출비가 2017년 8.0%에서 올해 상반기 10.2%로 확대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간편식 흐름이 이어지고 양질의 식사를 추구하는 20~30대가 늘면서 수산물 수요도 증가세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consumer/915239.html?_fr=mt1#csidx9df4babe141f99b9bade7257d83a1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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