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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최늘샘의 세계방랑기 39] 화장실도 전기도 없는 삶, 마사이족의 오래된 미래
19.12.14 19:33l최종 업데이트 19.12.14 19:33l
탄자니아 아루샤주 마사이족 청년 루카스 씨와 그의 가족ⓒ 유최늘샘
길에서 만난 세계 일주 여행자들은 보통 1년에서 2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각자의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아프리카 종단 여행자들은 가는 곳이 비슷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길 위에서 다시 마주치곤 했다. 이집트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울 때 만난 여행자 주원, 주하, 양승희, 김원석씨 가족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구한 널찍한 숙소에 나를 초대했다.
킬리만자로 아랫마을 모시에서 이른 새벽 만원 버스를 타고 열 시간을 달려, 아랍어로 '평화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탄자니아 최대도시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 동료 여행자들의 환대 덕분에 숙소비도 아끼고, 탄자니아 한인사회를 만날 수 있었으며, 도시 외곽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추장 작위(爵位)를 받고 탄자니아에서 사업 중인 김태균 추장과 한인교회 이종례, 최병택 목사 부부의 소개로 만난 마사이 청년 루카스 모렐리 카이카Lucas Moreli Caica는 탄자니아 북부 아루샤 지역의 고향 마을로 나를 안내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여행길이지만, 관광산업이나 현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야생의 마사이 마을은 유난히 낯설고 놀라웠다.
마사이 가족의 흙집 바로 옆에 텐트를 치고 며칠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일부다처제를 비롯해 마사이 사회의 여성 차별을 느낄 때 마음이 매우 불편하고 슬펐지만, 이렇다 할 음식도 화장실도 전기도 없이 오로지 '가축과 자연과 서로'에 의지해 단순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통해, 수만 년 이어져 온 인류 역사의 원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은가이 신의 아이들, 소와 염소의 민족 마사이
마사이족(族)은 동아프리카 유목민으로 케냐와 탄자니아에 약 200만 명이 살고 있다. 킬리만자로, 세렝게티, 나일강의 원천인 빅토리아 호수 근처가 마사이인들의 주거지다.
신화에 따르면, 태곳적 마사이는 하늘나라에 살았는데 어느 날 몇 명의 아이들이 지상을 구경하고 싶어 그들의 신(神) '은가이(Ngai)'에게 허락을 얻었다. 은가이는 지상에서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소와 염소를 함께 내려 보내 그 젖을 먹고 살게 한다.
아이들은 신의 말을 어기고 사슴 한 마리를 잡아먹었고, 은가이는 아이들이 하늘에서 타고 내려간 밧줄을 잘라버렸다. 소와 염소를 열심히 길러 신이 만족할 만큼 그 수가 늘었을 때, 하늘나라로 돌아갈 밧줄이 내려오리라.
케냐와 탄자니아 정부에서는 마사이족의 정착과 농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마사이족에게 소와 염소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며, 대다수의 마사이족이 원시의 방식 그대로 가축을 기르며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보다는 마사이인이라는 종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아간다.
아래부터는 마사이 청년 루카스의 목소리로, 현대 속에서 과거를 살아가는 마사이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이름은 루카스 모렐리 카이카입니다. 1988년, 탄자니아 북부 아루샤주(州) 론기도 지역의 론돌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쪽으로는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동쪽으로는 킬리만자로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케냐와 국경을 맞댄 땅입니다.
저는 부모님과 형제, 두 부인과 네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마사이족 결혼 제도는 일부다처제로, 남성은 여러 여성과 같이 살 수 있지만, 여성은 다수 남성과 같이 살 수 없습니다. 결혼 지참금으로 보통 소 다섯 마리가 필요합니다. 가축을 많이 기르려면 일손이 중요하기 때문에 되도록 아이를 많이 낳습니다.
마사이족 청년 루카스 모렐리 카이카 씨ⓒ 유최늘샘
론기도 지역 마사이들은 가족 단위로 네다섯 채의 흙집과 울타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마사이 여성들은 주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물을 긷고 요리를 합니다. 마사이의 주식은 우유입니다. 마사이 남성들은 소와 염소를 몰고 종일 초원을 걷습니다. 우리 가족은 소 세 마리와 염소 백여 마리를 기릅니다.
"비가 오는 계절에는 초원에 풀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하지만 풀이 없어서 염소가 배고픈 계절에는 우리도 염소처럼 슬픕니다."
마사이는 마사이 말을 씁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케냐와 탄자니아의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를 배웁니다. 많은 마사이 남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갑니다. 저는 2014년에 처음 도시에 나갔습니다. 대도시 므완자와 다르에스살람에서 건물 경비원으로 일했습니다. 도시의 마사이들은 주로 경비원이나 노점상으로 일합니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마사이들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저는 처음 바다를 보았습니다. 저의 꿈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튼튼한 집을 짓고 염소와 소를 많이 기르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번 돈으로 마사이는 소를 삽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삶은 너무 복잡하고 시끄럽습니다. 도시에 온 마사이는 대부분 돈을 벌면 초원으로 돌아갑니다.
"초원은 고요합니다. 물과 먹거리가 부족하고, 모래 바람이 불고, 전기도 없지만,
소와 염소만 있으면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 새벽 해가 뜨면 우리는 소와 염소를 몰고 물과 풀을 찾아 초원으로 떠납니다. 아기 염소들은 하루 종일 집에서 어미 염소를 기다립니다. 해 질 녘이 되면, 하나 둘,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들리고, 초원으로 나갔던 염소들이 줄을 지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있던 여성들, 아이들과 아기 염소들도 모두 다 반갑게 마중을 나옵니다. 사람들도 동물들도 이웃을 만나 서로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주말도 공휴일도 없이, 수 천, 수 만 년 동안 매일 매일 한결같이 반복되어 온 마사이의 하루가 오늘도 저물어 갑니다.
해 질 녘, 종일 초원에서 풀을 뜯고 돌아오는 소와 염소를 마중 나온 마사이 마을 사람들ⓒ 유최늘샘
밤이 오고 별이 뜨면 마사이 가족은 마당에 모여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쇠똥을 태워 끓인 우유는 참 따뜻합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사이의 자장가를 부르다가 어느덧 잠이 찾아오면, 좁지만 아늑한 흙집에 들어가 지친 몸을 누입니다.
"깜깜한 하늘에는 언제나, 수 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초롱초롱, 별이 빛납니다."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오는 소와 염소와 가족을 마중 나온 마사이 마을 여성들과 아이들ⓒ 유최늘샘
루카스 씨 이웃의 마사이 가족. 마사이 사회는 너무나 자연친화적인 원시의 삶을 간직하고 있지만, 매우 가부장 중심적이고 여성 차별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다ⓒ 유최늘샘
유난히 호기심이 많던 마사이 마을의 아이ⓒ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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