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기요금 동결’ 공식 입장… 내년 총선 의식한 듯
삼한사미(사흘은 추위, 나흘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 겨울 날씨를 비유하는 신조어)의 계절이 돌아왔다. 미세먼지와 함께 ‘탈원전 정책’도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탈원전으로 ‘깨끗한’ 원전 가동을 멈추고 석탄화력발전을 늘려 대기오염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미세먼지와 더불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이 터진다는 분석도 쏟아진다. 지난 12월 8일에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2040년까지 33% 오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내부에서도 전기요금 인상론이 흘러나온다.
이 같은 주장을 종합해보면 탈원전은 미세먼지와 전기요금 인상을 부르는 문제투성이 정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라면 논란은 왜 반복되는 것일까.
미세먼지 시즌이 되면 정부는 석탄발전부터 줄인다. 이미 지난 12월 1일부터 석탄발전 감축에 돌입했다. 12월 첫 주에는 석탄발전소 12기의 가동을 멈추고 최대 45기의 상한제약(발전출력 80% 제한)을 시행했다. 전체적으로는 하루당 석탄발전기 16∼21기를 실질적으로 멈추는 효과가 있었다. 산업부는 석탄발전 감축을 통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미세먼지 배출이 408톤에서 221톤으로 187톤(45.8%) 줄었다고 밝혔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
가동 중인 원전을 중단한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 2017년 22.5GW(기가와트) 수준인 원자력발전량은 2022년 27.5GW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해 원전 이용률이 2017년에 비해 5%포인트가량 떨어진 65.9%로 집계됐지만 이는 원전 보수를 위해 가동을 중단하면서 떨어진 수치일 뿐 탈원전과는 무관하다. 올해 원전 가동률은 79%(6월 30일 기준)로 2016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석탄발전 중단으로 부족한 전력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통해 맞춘다. LNG 발전은 석탄보다 깨끗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LNG 발전의 전력 구입 정산 단가는 1㎾h당 125.3원(2018년 1~8월 평균)으로 석탄발전 89.1원보다 36원가량 비싸다. 석탄발전을 감축하고 LNG 발전량을 늘리면 비용도 늘어난다. 비용 감당을 위한 전기요금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2017년 탈원전·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요금 동결 시기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로 특정했다. 2017년 12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공개하며 “2022년 전기요금이 2017년 대비 1.3%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는 2030년에도 전기요금은 2017년 대비 10.9% 인상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수치는 연료비와 물가 요인을 제외한 과거 13년간 실질 전기요금 상승률(13.9%)보다 낮은 수준으로 사실상 ‘동결’ 수준이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생긴다. 낮은 전기요금은 지난 정부에서 허가된 원자력·석탄 발전소의 추가 완공과 신재생 에너지 발전 원가 하락 덕분에 가능하다. 만약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량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늘릴 경우 ‘환경비용’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전기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한전과 발전업계, 시민사회의 공통된 견해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지난 6월 열린 전기요금개편안 토론회에서 “사회환경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수요 감축을 유도하고 재생에너지가 감당해야 할 에너지 생산 부담을 줄이는 것은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전기요금 동결’을 공식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브리핑에서 “당분간 전기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불가 의사를 거듭 밝히는 과정에서 요금인상은 ‘해서는 안 되는 것’, 나아가 ‘나쁜 것’으로 인식된다.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요금을 고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미 저요금 고수 정책의 폐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전력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한국의 1인당 전기사용량 증가세는 연평균 1.5%(2010년 이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소비량도 한국은 1인당 5.73toe(석유환산톤·2017년 기준)로 OECD 국가 평균 4.10toe보다 40%가량 많다.
이렇게 되면 전력 수요와 요금을 맞추기 위해 원자력과 석탄발전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재생 에너지는 전환 초기인 만큼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발전량의 80%를 차지하는 원전과 석탄발전에 다시 의존해야 한다. 전기요금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도 불가능한 구조다.
시민사회단체 “사회환경 비용 반영해야”
정부 전기요금 방침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한전이다. 한전은 지난해 1조174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손실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 9322억원이다. 지난해 김종갑 한전 사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콩을 가공해 두부를 생산하는데 이제는 두붓값이 콩값보다 싸다”며 연료비보다 전기요금이 싼 현실을 지적했다. 한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요금 1% 인상되면 한전의 세전이익은 4200억원 늘어난다.
상장 기업인 한전이 인위적으로 손실이 지속될 경우 문제가 생긴다. 한전은 지난 10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충분한 요금인상이 없을 때 연료비 부담 증가추세가 계속될 경우 한전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달라”는 질의에 대해 “연료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면 재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답했다. 한전은 ADR(미국 예탁증서) 형태로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 관련해 SEC에 답변서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며 “해외 투자자와의 소송 이슈를 포함해 법률 서비스 수요가 있어서 법조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전 적자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한전 역시 지난 11월 중 내놓겠다던 전기요금 개편안 발표를 연기했다. 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는 정부·한전의 내년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전기요금을 인상에 따른 반발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초 에너지 전환 정책을 정공법 대신 포퓰리즘에 기대 설계했다가 벌어진 사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전기요금 인상은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용기 있게 친환경 에너지는 비싼 재화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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