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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사자’ 문제로 막히다

<2019 송년특집 ①> 남북관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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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3  1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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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9년은 연말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난해 순항하는 듯한 북미관계가 올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결렬로 갸우뚱거리더니 그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일 년 내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한마디로 북미관계가 막히자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모두 경색된 해였습니다. 

북한이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이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한반도의 진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불허인 가운데, 통일뉴스는 <2019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한 내부 ③북미관계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70여 년 분단사를 돌이켜 보면 남북관계는 끝없이 나쁘지도 마냥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2018년은 달랐다. 남북 정상은 세 차례 만났고, 군비통제를 실천하며 한반도 평화의 오솔길을 여는 역사적인 해였다. 그러나 2019년은 제대로 된 일이든, 허튼 것이든 어느 하나 이루지 않은 무관의 역사로 남았다. 한반도의 ‘당사자’ 문제로 남북은 막혔다.

지난해 12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019년에도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서로의 마음도 열릴 것”이라고 화답했다. ‘판문점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남북 간 다짐은 2019년의 산뜻한 출발을 예고하는 듯했다.

2019년 시계 ‘제로’..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남북

하지만 2019년 남북관계는 2018년에 비해 한 단계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보다는 ‘과연’이라는 물음부터 시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대목은 문재인 정부의 숙제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숙제는 미국으로부터 어떻게 허락을 받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첫 번째 과제였던 인플루엔자 치료의약품인 타미플루 대북지원이 무산됐다. 한미워킹그룹이 약을 실은 차량의 방북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측의 남측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측은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했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 것이라는 기대를 높였다.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는 사명으로 한반도 평화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신한반도체제’를 열겠다며, 논란을 딛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결과는 결렬이었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사업은 무기한 연기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이유였다지만, 3.1운동 100주년 남북공동행사는 무산됐다.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도 불허됐다. 북측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3일 동안 철수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4월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 9월 평양공동선언 1주년 행사에 북측은 빠졌다. 11월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초청장을 김 위원장은 거절했다. 국제기구를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북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남북 예선전에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2018년과 달리 2019년 남북관계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지난해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른 일부 후속조치를 마무리하는 수준이었다. 한강하구 공동이용수역 해도를 완성하고 남북 철도.도로 협력 관련 자료를 주고받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유도, 여자농구, 여자 필드하키 등에서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것 뿐이었다. 

   
▲ 2019년 남북은 함께 한 사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사진은 2월 금강산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주최 새해맞이 행사. [자료사진-통일뉴스]

민간교류도 마찬가지였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2월 금강산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열었지만, 그뿐이었다. 각계가 만나 2019년 다양한 교류사업을 하자고 다짐했지만, 5월 북측은 “남북관계의 소강국면에 대한 진단과 과제를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민간단체의 협의를 추진했으나, 남측의 언론보도 등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은 제외된 채, 부차적인 의제들만 거론되는 등 협의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며 모든 민간 실무협의를 중단했다.

그나마 6월 이희호 여사와 10월 문재인 대통령 모친 별세에 북측이 조의문을 보내온 것이 남북교류의 한 줄을 차지했을 뿐이다.

‘당사자’ 문제로 어긋난 남북

이유는 하나였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역할론에 대한 남북의 차이였다. 대북제재 상황에서 미국의 승인없이 남북관계를 풀 수 없던 남측에 북측은 시쳇말로 ‘내 편이 돼라’는 당사자론을 요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비판과 함께 요구했다.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이 있기 전부터 북측은 각종 매체를 통해 남측에 ‘당사자’ 역할을 주문했다. <우리민족끼리> 등은 한미워킹그룹을 두고, “남조선 당국이 동족이고 북남선언에 합의한 상대인 우리에 대한 미국의 제재압박책동에 추종하면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미국에 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8.15경축사를 통해 평화경제를 강조했지만, 북측은 이를 폄훼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러나 남측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역할로 내놓을 해법이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구조로 운전자론을 내세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를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는 북미대화의 성과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한미동맹 속에서 북측 편만 들어줄 수는 없었다.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났지만, 남측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닫힌 북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자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강조한 '연말 시한'에 다가가도 북미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 길잃은 남북, 결국 금강산에서 터지다

이는 결국 금강산 문제로 터졌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밝혔지만, 남측이 대북제재 속에서 ‘당사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김 위원장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훌륭히 꾸려진 금강산에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는 말에 무게를 둔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협의를 통해 금강산 문제를 풀자는 뒷북을 쳤을 뿐. 통일부는 ‘창의적 해법’을 내놓겠다지만, 무엇이 ‘창의적 해법’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기존의 (금강산) 관광 방식은 안보리 제재 때문에 계속 그대로 되풀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관광의 대가를 북한에게 지급하는 것은 제재에 위반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솔직했다.

하지만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당사자’ 역할을 못 하는 남측과 협력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10월 금강산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지난해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이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확인했지만, 남측이 ‘당사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북측의 불만은 다시 군사적 긴장 상황에 직면했다.

북측은 하노이 결렬 이후 5월 4일부터 11월 28일까지 14차례 단거리 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 등을 13차례 발사했다. 급기야 11월 북측은 김 위원장의 지시로 서해 창린도에서 포사격을 실시했다. 수차례 미사일 발사에도 ‘9.19 군사분야 합의’ 위반이 아니라던 정부는 서해 포사격은 합의 위반이라며 항의했다. 남측도 12월 서해 연평도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했으며, 북측은 “군사적 도발소동”이라고 반발했다.

북측이 설정한 ‘연말 시한’ 동안 북미대화가 풀리지 않은 현재, 북측은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시험을 두 차례 단행했다. 북한과 미국의 힘겨루기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당사자’가 되지 못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경제’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다. 남측이 ‘당사자’가 아님을 확인한 북측은 금강산 문제에서 보여주듯 ‘자력부흥, 자력번영의 장엄한 새 시대’를 열겠다며 자신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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