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돼 언론을 탔지만, 이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곧바로 "스쿨미투는 학교 망신"이라는 말이 학교 안을 떠돌다 A의 귀에 꽂혔다. 모든 걸 덮으려는 어른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 힘에 부쳤다.
스쿨미투 고발 이듬해인 지난해, A는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같이 미투 운동을 했던 친구들은 각자 다른 학교와 학급으로 진학하면서 동력은 파편화됐다. A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미투 운동 이후 A가 마주한 세계는 너무도 뒤틀려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은 A에게 너무 좁고 불편하고 또 폭력적이었다. 학교는 '친구가 있는 공간'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A는 고등학교 1학년 한 학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학교를 떠났다. SNS는 A를 세상과 이어주는 통로였다. 힘겨운 일상을 기록해 나가던 SNS는 그런 A가 허위미투를 했다는 증거로 쓰였다.
A는 친구들에게 "'혹시 네가 캡처한 거냐'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친구들을 의심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A는 고민 끝에 "수신인이 보호자로 돼 있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SNS에 글을 올렸다.
친구 K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같은 편지를 받은 것 같다"고. A의 중학교 친구인 K와 또 다른 친구인 B의 부모 앞으로 각각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간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 편지에는 A와 스쿨미투 운동을 함께 했던 B에 대한 비방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 충북여중 김 모 교사는 지난 2018년 A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성추행 가해자로 고발당했다. 현재는 퇴직 후,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제추행)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원이 학생들에게 증인소환장을 보내자, 익명의 편지가 A와 친구들의 보호자 앞으로 도착했다. 김 교사에 대한 1심 선고는 2월 7일로 예정돼 있다. ⓒA씨, 청주지방법원 제공 | |
A는 "저와 친구들의 부모님 앞으로 편지를 보내서, 우리에 대해 자극적인 말로 도배를 해 놓고는 '아버님께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셔야 됩니다'라고 하니까 당황스럽고 화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숨어야 하는지 너무 분했고, 내가 한 미투운동이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싶었다"라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스쿨미투' 마음고생에 정신과 다녔는데…
A는 스쿨미투 운동 이후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발자 색출에 대한 압박 등 2차 가해가 심각했던 까닭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쿨미투 괜히 했다"고, 아주 잠깐 후회하기도 했다. 가끔은 정신과에서 약을 타다 먹으며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A는 힘든 마음을 SNS에 기록하면서 긴 시간을 이겨냈다.
편지 발신인은 SNS를 통해 A가 정신과에 다닌 사실도 알아냈다. A가 스쿨미투 운동을 주도한 배경으로 '비정상적 정신 상태'를 내세우며 A를 공격한 것이다. 퀴어축제에 참여하거나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걸 두고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활동을 한다며 문제시했다. 그러나 미투 운동 이전에 A는 정신과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와 편견이 편지 내용에 투명하게 드러난다.
▲ 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편지 내용 일부 ⓒA씨 제공 | |
법무법인 유안의 유달준 대표 변호사는 이에 대해 "재판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학생들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이 담긴 편지를 여러 사람에게 보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의 경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보호자에게까지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형법 제307조 제2항에서는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A는 현재 이 편지에 대한 법적 조치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 충북인뉴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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