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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묵은 늑대

조선일보는 지난 31년간 뿐이 아니라 1백 년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강기석 | 2020-03-12 12:51:1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스스로 무척 흥분한 듯하다.
3월5일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려고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차마 잔치를 벌이지는 못하고 그 아쉬움을 방상훈 사장 명의의 편지에 가득 실었다.

“조선일보의 오늘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응원하며 승리와 질곡의 가시밭길을 함께 걸어주신 소중한 분들” 중 기꺼이 잔치에 참석했을 분들에게 보낸 편지임에 분명한데, 어째 전혀 그러지도 못했고 그럴 마음도 없는 내게까지 전달됐다. 사무 착오까지는 아니고 아마도 직책을 위주로 작성한 명단에 내가 끼어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나 자화자찬 일색이다. 편지 속에는 조선일보 100년을 함께한 명망있는 이름이 그득하다. 신석우 이상재 안재홍 조만식 이육사 백석 주요한 박종화 심훈… 조선일보의 특종과 조선일보가 벌였던 각종 캠페인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무려 100년이니 그동안 훌륭한 사람들, 고약한 사람들, 두루 거쳐들 갔겠지. 훌륭한 사람들은 잠시 스쳐갔을 것이고 고약한 사람들은 오래오래 머물며 고약한 짓을 했겠지.

자랑이 지나치다 보니 헛것을 보고 망발을 부리기도 한다.

“지역갈등과 이념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통일운동을 선도한 것 또한 조선일보”
“역대 권력에 밉보여 혹독한 시련도 겪었으나 조선일보는 ‘할 말은 하는 신문’으로 정론직필을 고집”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세태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사실을 바탕에 둔 보도로 저널리즘의 본령을 꿋꿋이 지킴”

정확히 그 반대의 모습이 조선일보임에도 조선일보만이 그걸 모르는 거다. 아니 조선일보까지도 무엇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는 걸 알긴 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 최근 기자협회는 편집위원회 명의로 ‘선 넘은 조선일보의 코로나 보도’라는 「우리의 주장」을 발표했다. 조선일보 보도 중에서도 특히 지난달 19일 신천지 신도들의 집단감염으로 환자가 폭증한 이후 이어진 보도는 정략적 보도라는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초기 중국 봉쇄를 하지 않은 것이 코로나19의 대확산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불확실한 추론이거나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시 주석의 방한과 정권의 결정을 결부시키는 논리적 고리도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3년 전 중국을 찾았을 때 ‘중국몽에 함께 하겠다’고 연설한 사실 정도를 근거로 삼아 “시진핑의 방한 성사를 위해 국민을 코로나 제물로 바친 문 대통령이야말로 큰 나라에 굽실거리는 것 아닌가”(2월27일 ‘김창균 칼럼’) 라며 선동하고, 사설 역시 <中감염원 차단했으면 재앙 없었다, ‘누가 왜 열었나’ 밝히라>(2월24일), <중국은 안 막는 정부 여당이 회의 뒤 ‘대구봉쇄’ 언급>(2월26일) 등 “누가 봐도 실무자의 실수인 보도자료의 ‘대구 코로나’를 물고 늘어지거나, 대통령 부부의 영화 ‘기생충’ 스태프 접견을 반복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정부가 할 일은 안 하고 안일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이도록 한다“고 비판하면서 “조선일보가 바라는 것은 진정 이 정부의 방역실패인가”고 묻고 있다.

※ 기자협회는 전국의 2백여 개 언론사, 1만여 명의 기자들이 가입해 있는 대표적인 ‘기자 연대조직’으로 기자들의 권익과 저널리즘 신장을 도모한다. 독재정권 시절에 저널리즘 신장이란 곧 정치권력에 대한 언론자유 투쟁을 뜻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저널리즘 신장이란 스스로 권력화된 언론에 대한 엄중한 자기비판으로도 이어져야 마땅한데 기자협회가 그런 본분을 다 해왔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기자협회 상층부를 구성했던 언론인들의 저널리즘적 소양이 부족했고 문제의식이 투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중동 소속 기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마당에 그 소속사의 언론 행위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기가 쉽지 않았던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기자협회의 「우리의 주장」을 주목하는 것이다. 신임 김동훈 회장 체제에서 기자협회가 비로소 자기 갈 길을 가면서 제 역할을 다 하려 하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 문득 만 31년 전 내가 언노조 초대 편집실장으로 재직하면서 기관지 「언론노보」에 ‘조선일보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사설(곧은 소리)을 게재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노태우 정권)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주간조선」이 김대중 평민당 대표의 유럽순방 때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각색하고 과장해서 집요하게 야당을 공격했던 일로 정치권과 언론계가 크게 시끄러웠다.

이번 기자협회 편집위원회의 주장에서도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더구나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오해받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할 언론이 이처럼 정파성을 드러낸 적이 또 있었던가“고 한탄하고 있는데 바로 31년 전 그때에도 조선일보는 악랄한 정파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던 것이다. (그때에도 역시 조선노조가 언노조 가입 조직이어서 언노조가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설 쓰기가 무척 힘들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31년간 뿐이 아니라 1백 년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지역갈등과 이념 분쟁을 앞장 서 조장했으며 끊임없이 통일운동을 훼방했고”
“역대 권력에 빌붙어 사세를 키우고 그 힘으로 민주정부에 혹독한 시련을 주었고”
“할 말을 하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말로만 곡학아세했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 눈 깜빡하지 않고 왜곡보도를 일삼으며 저널리즘을 버렸다”

이건 100년 버틴 신문이 아니라 100년 묵은 늑대의 모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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