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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열어준 기회, 소득 기반 전국민 고용안전망 도입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6/15 10:11
  • 수정일
    2020/06/15 10:1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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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가 열어준 기회, 소득 기반 전국민 고용안전망 도입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발행 2020-06-15 08:30:34
수정 2020-06-15 08: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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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 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서 과잉 소비를 창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사회라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실제로는 자연을 파괴하고 노동을 착취하며 일부 최상위 계층에게 막대한 부를 몰아주는 시스템이다. 이는 알면서도 눈 감았던 진실이었으나 코로나 사태는 현 시스템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알려줌과 동시에 이러한 시스템의 작동을 강제로 종료시켜 버렸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는 저생산·저소비에 적응해야 하게 되었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면서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공동체적, 연대적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사실 현 자본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고 바람직한 경제의 모습이 무엇인지도 진보진영 내에서는 어느 정도 암묵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자유주의가 드디어 그 핵심부인 미국에서 붕괴하기 시작했으므로 이제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는 기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마침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도 있었으며 오바마가 흑인으로서 최초로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역사적 성취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근본적인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재정보수주의로 인해 세계 경제가 ‘장기침체’ 상황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왜 이런 결과를 맞이했는가? 현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소수라기보다 ‘우리’는 분열되고 힘이 없는데 반해 기득권계층의 단결력과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코로나로 인한 패러다임 전환을 낙관하기 어렵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참가자들의 행진 모습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참가자들의 행진 모습ⓒ뉴시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코로나 위기의 심각성과 광범위함이 개혁의 동력이 되어 개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위기가 전 사회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국민들은 지금까지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던 것들에 이전보다 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고 마침 진보정부라는 행운이 겹쳐서 발 빠른 대처와 함께 복지 확대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전 국민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 중 무엇이 더 나은 제도인가를 비교하고 논의하는 일은 이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정부는 최근에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여 적자재정을 통해 향후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 뉴딜을 추진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각국의 대응도 2008년 위기 보다는 더욱 적극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독일과 프랑스 간에 7500억 유로(약 1028조 원·유럽연합 국내총생산의 3.7%) 규모의 ‘유럽 회복기금’을 형성하여 경기부진으로 고통 받는 회원국들에 대부분 보조금으로 지원하자는 합의가 있었는데 과거와는 다른 전향적인 결정이다. 케인즈적, 연대적 정책 대응이 추진되고 있다.


코로나 위기가 심각할수록 개혁 분위기가 형성되는 아이러니
노동의 과도한 유연화와 착취라는 근본 문제는 변하기 어려움
기회의 창 놓치지 않고, 제대로 된 전국민 고용안전망 도입 성공해야


물론 이러한 대응으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운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 시스템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노동의 과도한 유연화와 착취라는 근본 문제는 금융의 단기 수익성 원리가 경제운용의 원칙으로 군림하는 한 해소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기 수익성 원리가 한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제도적 기반은 개별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자본이동, 낮은 자본과세 및 금융과세, 주주자본주의의 확산 등이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생겨난 새로운 사각지대의 틈으로 금융화 원리가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리쇼어링(re-shoring)이 전망됨에 따라 각국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누가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인가 경쟁을 벌이고 있고,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디지털 기업들은 플랫폼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가 부유해지는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밀주의 역외세계 금지, 금융규제 강화, 정의로운 디지털세 도입이 필요하며 주주자본주의보다는 이해관계자자본주의가 기준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윤 극대화가 지배원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지배원리가 되어야 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자료사진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 전환을 달성하기도 전에 코로나로 가능해진 개혁 분위기가 곧 식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노동은 분열되어 있고 자본은 강력하다. 따라서 코로나로 열린 기회의 창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된 전국민 고용안전망의 도입이라는 과제에 성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국민의 호응, 대통령의 약속이라는 동력이 작동하는 기간은 짧을 수 있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정부는 마지못해 현재보다 소폭 개선하는 데 그치는 고용보험을 제시할 것이 예상되는데, 특고·예술인·자영업자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전국민 고용안전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고용이 아닌 소득 중심으로 고용보험이 재설계 되어야 할 것이다. 소득 중심의 전국민 고용보험의 도입은 그동안 불완전했던 복지제도의 한 축의 완성을 의미하여 향후 산재보험의 강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 복지체제 전체를 소득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가 다음 개혁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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