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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는 왜 검찰개혁보다 '보이콧 뮬란'인가?

[인터뷰] 영화 <뮬란> 보이콧 이설아·박도형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

지난 6월 결성된 청년단체 '세계시민선언'의 활동 내용이다. 세계시민선언은 세계 어디든 국가로부터 침해받는 시민의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우리 정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

 

이들은 지난 17일 용산 CGV 앞에서 디즈니 실사 영화 <뮬란>을 보이콧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은 <뮬란> 개봉날이기도 하다. <뮬란>을 보이콧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출연 배우들의 '친중' 발언이다. 주연인 류이페이(유역비)의 홍콩 규탄 발언이 대표적이다. 홍콩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홍콩 시민을 향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 류이페이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홍콩(시민)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썼다.


 

두 번째는 영화 <뮬란>이 촬영된 장소다. <뮬란>은 중국 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촬영됐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은 중국 정부로부터 민족개조라는 명분으로 심각한 인권 탄압을 받고 있다. 위구르족 지식인들이 납치되고 실종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일반 시민은 직업교육 명분으로 사실상 수용소에 끌려가 감시를 받으며 강제노역에 징용되곤 한다.


 

해당 논란은 <뮬란> 엔딩 크레딧에서도 이어졌다. "촬영에 협조한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를 표한다"는 문구를 넣었기 때문이다. 투루판 공안국은 위구르인들이 구금된 중국의 재교육 수용소를 운영하는 곳이다. 더구나 앤딩 크레딧에는 투루판 공안국 외에도 위구르족 탄압에 연루된 중국 단체 4곳에 대한 감사 인사도 포함됐다.

 

영화 <뮬란>을 둘러싼 마찰음 때문인지 한국에서의 흥행 성적은 저조하다. 개봉 첫날인 17일과 이튿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지만, 주말인 19일과 20일에는 영화 <테넷>에 1위를 내줘야 했다.


 

<프레시안>에서는 세계시민선언의 이설아·박도형 공동대표를 만나 영화 <뮬란>을 보이콧한 이유와 <뮬란>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이하 일문일답


 

▲17일 서울의 한 영화관 밖에서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 영화 '뮬란' 보이콧 동참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뮬란'은 주연 배우의 홍콩 시위 진압 경찰 지지 발언 등의 논란 속에 17일 국내 개봉 했다. ⓒ연합뉴스

한국인인 내가 미국 회사의 중국 배경 영화를 왜?


 

프레시안 : <뮬란> 논란은 결국, 중국과 소수민족간 문제인 듯하다. 그런데도 1인 시위까지 하면서 왜 <뮬란> 문제를 지적하고 보이콧하는 설명해 달라.


 

이설아 : 국제연대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연대가 필요한 이슈들이 있다. 위안부 문제나 전범기 사용 문제가 그렇다. 우리가 우리 문제에 연대를 요청하려면 우리도 다른 나라의 문제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당장 홍콩시위에도 침묵하고 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구호 중 "어제의 광주, 오늘의 홍콩"이 있다. 상징적인 구호다. 우리나라는 군사정권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국가다. 홍콩 또한 중국 정부의 탄압을 이겨내겠다는 의미이자 다짐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86세대'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 세대가 이끌고 있다. 그렇기에 홍콩 문제에 침묵하는 게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박도형 : 보이콧은 그냥 '누구를 응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세계 어딘가에서 부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어떤 성명을 내고 어떤 방법으로 그걸 제재하기 위해 노력하느냐. 이건 결국 우리 정부가 국내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우리가 강대국의 눈치를 보거나 외교적인 수 싸움을 떠나 부정의한 일에 부정의하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라면,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는 나라라면 우리나라도 지금과는 조금 다를 거라 생각한다. 억울한 일 때문에 거리에 나오고 철탑에 오르는 일이 덜 했을 거다.


 

프레시안 : 우리는 모두 연결돼있다는 말인가.


 

박도형 : 중국에서 시진핑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존중했더라면, 코로나19 초창기에 의사 고(故) 리원량 씨의 고발로 지금과 같은 팬데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일'이라고 방조한 결과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기술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나만 해도 처음 보는 한국 사람보다는 소셜미디어를 팔로우하고 있는 외국 친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홍콩의 친구가 느끼는 인권탄압에 더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설아 : '보이콧뮬란'은 단순히 영화를 보지 말자는 운동이 아니다. 국가폭력에 침묵하는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폭력에 공감하자는 운동이다.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청년 세대만의 특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지금 20대 30대 청년들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떠나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누렸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의 침해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목소리를 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박도형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국제연대, 청년정치의 주요 담론으로 떠오르다


 

프레시안 : 기후·환경 문제나 여성 인권, 난민 문제 등을 보면 청년을 중심으로 국제연대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박도형 : 우리나라는 인권이나 환경 등의 이슈가 청년 정치만의 주요 화두다. '어른들의 정치'는 이런 거엔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사는 검찰개혁, 적폐 청산 이런 것들이다. 우리 곁의 성 소수자나 여성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인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되묻고 싶다. 뭐가 거대 담론인지.


 

나 같은 경우는 5평 원룸에 산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 당장 갈 데가 없다. 여름에 에어컨이라도 고장 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하물며 쪽방에 사는 취약계층은 어땠겠나. 성 소수자 문제도 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위축되고 다들 어렵고 힘들다. 혐오도 확산된다. 그런 상황에 성 소수자들은 더 취약하고 위험한 환경에 내몰린다. 젠더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에게 '검찰개혁'이나 '적폐 청산'은 그렇게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레시안 : '보이콧뮬란'도 그렇게 와닿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박도형 : 청년 정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청년들이 왜 홍콩 민주화 운동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는가. 우리는 군사정권 때처럼 국가로부터 심각한 인권 탄압을 겪지도, 최루탄을 맞아본 적도 없다. 국가폭력에 대해 민주화 세대보다 잘 모른다.


 

그런데도 홍콩에 연대하는 건 민주화 세대가 아니라 청년들이다. 당장 월세 걱정하고 밥값 만 원 넘을까 전전긍긍하는 청년들. 청년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폭력과 좌절이 홍콩의 상황과 어떤 공감대를 갖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기성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설아 : 민주주의는 청년세대에게 갈등의 축이 아니다. 세계시민선언을 보면 정당 활동했던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보수정당 출신이고 박도형 대표는 진보정당 출신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시민선언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교집합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전제로 토론이 이뤄진다. 기성세대의 정치 이념, 갈등의 축과는 아주 다르다.

 

▲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청년 정치, 일상의 정치를 말하다


 

프레시안 : 종합하면 국내 정치에서 국제연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청년 정치 담론이 실종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되나.


 

박도형 : 국회가 말하는 '청년'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국회의 청년 정치는 정당의 깜짝 인재영입식, 보여주기식으로 이뤄진다. 자기들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청년을 찾아서 앉혀놓고 청년 정치라고 한다. 젊은 이미지만을 가져가겠다는 거다. '아빠가 허락한 청년 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의 정치는 언어를 쉽게 전유한다. 그 담론이 형성되기까지 현장에서 오랜 투쟁과 논의의 맥락이 있는데. '페미니스트 대통령', '한국형 그린뉴딜' 이런 말도 마찬가지다. 어떤 페미니스트가 권력자의 성추행에 침묵하나. 그린뉴딜도 마찬가지다. 탄소 넷 제로(net-zero) 없는 그린뉴딜은 그린뉴딜이 아니다. '청년 정치'는 그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빼앗은 단어라 생각한다.


 

이설아 : 얼마 전 총리실 산하 청년정치위원회가 설치됐다. 12명 민간위원 중 5명이 민주당과 유관하다. 심지어 벤처기업 대표로 영입된 조동인 씨는 '스펙용 창업'이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벤처기업·스타트업을 대표할 인재가 그렇게 없었나. 조동인 씨를 영입함으로써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은 거다. 이게 그들이 원하는 청년 정치인가.


 

프레시안 : 청년 정치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세계시민선언이 추구하는 청년정치는 어떤 모습인가.

 

이설아 : 나는 '보통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보통 사람들에 의한 일상의 정치다. '보이콧뮬란'도 마찬가지다. 작게는 내가 영화를 하나 안 보는 거지만 여기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를 붙인다든가, 단톡방에서 "<뮬란> 영화에 이런 문제가 있다더라" 이야기 할 수 있다. 일상의 인플루언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정치의 시작이다.


 

박도형 : 청년 정치는 현장의 정치이자 국회의 정치여야 한다. 지금은 시민단체가 국회 밖에서 하는 집회, 국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논의가 따로 논다. 청년 정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영역부터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계시민선언은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우리 일상의 고민을 세계의 청년들과 나누면서 공감하고 연대하며 의제화하는 것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211548588669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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