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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물류법 ‘택배지옥’ 멈출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1/24 08:57
  • 수정일
    2020/11/24 08: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택배기사 보호 대책 첫걸음, 택배·배달대행 등 생활물류 서비스 제도화·육성 지원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0-11-23 17:11:28
수정 2020-11-23 17: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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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롯데택배 비노조원을 비롯한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롯데택배 비노조원을 비롯한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국회가 ‘택배법’을 논의 중이다. 20대 국회에서 야당 반대로 끝내 무산됐던 법안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여당은 ‘이번엔 반드시 처리한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다면, ‘택배지옥’에서 고통받던 13명의 택배기사님 목숨을 구했을 지 모른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택배법’,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을 살펴봤다.

비정상 택배비 정상화
표준계약서, 계약갱신권 등
‘최소한의 안전판’ 될 듯

생활물류법은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렸던 택배기사들에게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하게 된다. 대형 택배사와 쇼핑몰, 대리점에 치여 ‘갑·을·병도 아닌 정’ 취급받았던 택배노동자들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다.

택배 요금 정상화가 명문화 된다. 택배사들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출혈경쟁, 이를 약삭빠르게 이용한 대형 쇼핑몰들의 ‘백마진(고객이 계산한 택배비 중 일부를 판매자가 돌려받는 일)’ 관행 등으로 택배 배송비가 점점 낮아지는 비정상을 개선한다.

택배 단가는 꾸준히 내려왔다. 소비자들은 부담을 덜었으나, 전국민이 덜어낸 부담은 고스란히 택배기사에 전가됐다. 2012년 2,506원이었던 평균 택배비는 지난해엔 2,229원이 됐다. 택배기사 입장에선 8년간 소득이 10%가량 줄어든 셈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택배기사는 장시간 노동에 자신을 내던졌다. 참고로, 일본 야마토택배의 최소 배송기준 단가는 9,300원(930엔), 한국의 5배에 육박한다.

 

생활물류법 43조는 ‘택배 요금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당하게 화주, 다른 사업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른바 ‘백마진’을 금지해 소비자가 낸 택배비가 택배기사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대리점별로 천차만별인 ‘계약 조건’도 표준화된다. 대리점은 배달 박스 한개 당 수수료를 떼서 수익을 올린다. 수수료는 대리점별로 다르다. 박스당 5%를 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보다 6배가 많은 박스당 30%를 수수료로 챙기는 곳도 있다. 생활물류법은 수수료를 표준화하도록 한다. 대리점이 택배기사와 계약을 맺을 때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도록 하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토록 했다. 표준계약서만 확립돼도 택배기사들은 수수료 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리점 소장에게 밉보이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노조에 가입했다’거나 ‘소장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택배기사는 일터에서 쫓겨난다. 생활물류법은 ‘최초 계약일로부터 6년간 계약갱신 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근무 태만 등 택배기사들의 명백한 귀책 사유가 없다면 최소 6년의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6년 뒤에도 ‘택배기사 지위 보호 등을 고려하여 계약 갱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대리점이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계약을 해지 하려면 ‘위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위반 사유를 적어 2차례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부당한 계약 해지를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생활물류법을 ‘과로사 방지법’이라고 규정한다. 택배기사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분류작업’이 택배기사 몫이 아니라는 점을 명문화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활물류법은 택배노동자를 ‘택배서비스종사자’로 명명했다. 택배서비스종사자란 ‘계약을 통해 화물의 집화, 배송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택배기사는 생산자에게 물건을 가져와(집화) 주문한 소비자에게 전달(배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지 이를 ‘분류’하는 것은 택배기사 몫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문구에 ‘’이 들어가 있어 해석이 갈린다. 택배사는 ‘등’ 안에 분류도 들어 있다고 주장하고, 택배기사는 분류업무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 택배노조측은 법안 최종 문구에 이 ‘등’을 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생활물류법 내용 정리
생활물류법 내용 정리ⓒ민중의소리

더 큰 목적은 생활물류서비스 자체
제도화·육성 지원책

생활물류법은 전통물류와 대비되는 생활물류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그간 물류는 전통적 화물운송,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원료나 부품 등을 다른 생산 기업으로부터 배송받는 산업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현대제철이 철판을 생산해 현대자동차에 배송하거나, 삼표시멘트가 현대건설에 시멘트를 가져다주는 일이 그간 정부 당국이 ‘물류’를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이었다.

최근엔 기업이 개인에 보내는 화물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10년 전, 국민 한명이 1년간 이용하는 택배는 25 박스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53.8박스로 2배가 넘게 늘었다. 올해는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60회를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택배 물량만 30억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배달대행시장은 택배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배달의 민족’ 같은 배달 시장은 4배로 커졌고 전문가들은 올해 거래액이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와 배달업을 규율하는 법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대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 대책 대부분은 ‘법안 개정을 통해 시급히 달성하겠다’는 선언적 구호였다. ‘관련 법이 없으니 이제 만들겠다’는 뜻이다. 대책에 포함된 실질적 방안은 주무부처 명령이나 사업자에게 내리는 주의 조치가 아닌 택배사 선의를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것에 가까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선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재정 공청회가 열렸는데, 위원과 국토교통부 관계자와의 대화 내용이 상징적이다.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 나와보세요”
교통물류실장 답변대로 이동.
“택배기사 관련 주무 부처가 국토부 맞지요?”

“예”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국토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습니까?”
“현재 제도상으로는 한계가 많이…”
“아무런 권한이 없죠?”
“…(고개 숙이며 끄덕)”
“법이 있어야 정부가 일할 것 아닙니까”

생활물류법의 정식 명칭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인 이유는 그간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던 생활물류를 제도권 내로 흡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플레이어인 택배사와 대리점, 택배기사, 배달원, 플랫폼업체에 더해 정부와 자치단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법안은 산업 실태를 조사하고 통계를 작성해 정부나 자치단체가 생활물류업에 대한 정책 수립 시 참고 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가 부족을 호소하는 물류센터 등을 신설할 때 각종 보조금과 시설 부지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매년 증가하는 인프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부지확보 등을 노력하고 있지만 비용과 인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생활물류법이 제정되면 어려움이 일정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택배사에 과도한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택배서비스를 일반 물류업 중 하나가 아닌 ‘준 기간산업’으로 봐야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헌구 인하대학교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생활물류는 국민 삶에 꼭 필요한 필수서비스기 되고 있다. 인프라 구축과 제도 개선, 통계 작성 등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법률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존 산업과 역차별 논란이 있다. 택배와 같은 1톤 트럭으로 영업하는 화물운송사업자들에겐 택배업 확산이 곧 일자리 축소다. 기존 화물에서 택배로 넘어가는 소비자나 기업이 가뜩이나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물류법이 이를 부추긴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 규제를 통해 화물운송 ‘번호판’ 수급 규제를 받고 있는데 반해 택배업만 따로 떼어내 새로운 제도의 틀에 담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논란이다. 이른바 ‘번호판’의 가격하락 우려도 크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관계자는 “생활물류와 일반물류를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법을 따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틀 내에서 제도를 설계하는 편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생활물류법이 근로기준법이나 공정거래법, 하도급법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활물류법에서 규정하는 ‘종사자의 권익증진’이나 ‘휴식시간·휴게시설 설치’ 등의 일부 항목이 관련법과 상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현행법상 택배기사가 자영업자(특수고용직노동자)라는 태생적 불합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택배기사들만 관련법을 만들어 보호하면 나머지 특고 노동자와의 법적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에선 택배기사를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택배기사 문제를 해결하자는 원론적 주장도 제기된다.

진경호 전국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생활물류법 제정으로 택배노동자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지 않는 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 측면에서 근본적 해법으로는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법과 제도’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 발생하는 택배노동자들의 피해는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 법 재정이 개선의 첫 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원문 보기]

분류작업을 진행 중인 택배노동자
분류작업을 진행 중인 택배노동자ⓒ민중의소리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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