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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노조, 유령노조, 위성노조의 역습

[복수노조 제도 10년 ③] 진짜 노조 잡는 가짜 노조 사용설명서가 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10년 전 이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노동조합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유롭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 내가 맘에 드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그 노동조합을 통해 내가 바라는 일터를 만드는 것.

 

그런데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일터를 노동조합들의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노동조합 할 자유가 아니라 노동조합 간의 경쟁. 단체교섭권을 얻지 못하면 노동조합도, 노동조합을 택한 노동자도 더이상 회사에서 발 붙힐 수 없게 될 수 있다.

 

부당한 해고로부터, 기간제 계약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로부터, 초과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포괄임금약정에 서명하라는 사용자의 요구로부터, 노동조합이라는 우산은 온전한 노동3권을 가질 때 가능하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행동을 할 자유도 빼앗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 - 노동조합 잡는 어용노조


 

이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제일 먼저 대비해야 하는 일이 어용노조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도입 이후 노동조합이 없었던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곧장 제2의 노동조합이 생기는 게 다반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교섭을 하기 위해서는 교섭창구단일화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한 사실을 바로 사업장 내에 공고해야 하지만 이를 미루면서 제2의 노동조합을 만든다. 조합원수가 1명이라도 많으면 제1노조의 교섭권을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창립 이래 노동조합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자 당장 하루만에 노동조합이 생긴거죠."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조심스럽게 동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교섭요구를 하기 전날 막판 쉬는 시간에도 가입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관리자가 노동조합 설립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상무의 집으로 호출을 받았다. 노동조합을 포기하라는 회유였다. 이미 200명 넘는 동료들에게서 가입원서를 받았다. 안될 말이었다. 싫다고 했다. 앞으로 노사간에 잘 대화를 해보자고 하고 돌아 나왔다. 다음날 회사는 제2노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교섭요구를 하고 사흘이 지났을까. 관리직들이 개별면담을 하기 시작했고 어용노조는 조합원이 800명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수노조의 길로 들어섰다(인천의 **타이어휠 제조업체).


 

수년동안 노동조합이 없던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기자마자 연달아 노동조합이 생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보통 제2노조가 자주적으로 설립된다는 건 기존 노동조합의 어용화에 대한 비판이나 노조 내부 구성원들 간의 불화 등이 원인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창사 이래 노동조합이 실제 활동했던 적 없던 회사에서 신규노조가 막 설립되었는데, 제대로 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제2노조가 설립된다는 것은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면 그동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장에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아직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제대로 보호해줄 단체협약도 없기 때문에 한 노동조합 아래 단결하지 않고 제2노조를 만들어 노동조합 간에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인 행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장 내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활동이나 운영방식이 정해진 게 없으니 노동조합 활동을 자주적으로 원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막 만들어진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노동조합으로 만들어가는데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신규노조가 설립되는 사업장에는 거의 당연한 수순처럼 제2노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용자의 공공연한 비호를 받으면 조합원을 순식간에 만들고 단체협약도 없는데 조합비 일괄공제도 해주고 노조사무실도 내준다.

 

"우리가 노조를 만들고 노조사무실을 달라고 그렇게 요구해도 듣는 체도 안했는데"

 

어용노조는 설립 직후 노조사무실을 받았다. 어용노조 위원장까지 3명은 노조사무실에 상주하고 있고 이제 현장일도 아예 안한다. 아직 단체교섭도 시작하기 전이고 단체협약도 없는데도 말이다. 어용노조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그냥 회사가 새로 만든 한 부서처럼 그렇게 생겼다. 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의 차별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와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인정받다. 어용노조가 생긴지 이미 6개월이 지난 뒤였다. 사용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결정이 유지되었다. 사용자는 마치못해 우리와 노조사무실 제공과 근로시간면제시간에 대해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용자는 절대 회사 내에는 사무실을 줄 수 없다고 했다(인천의 **타이어휠제조업체).

 

"어용노조의 조합비를 모두 회사 돈으로 총무실에서 냈더라구요."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인사관리부서의 과장이 제2노조를 만들었다. 감쪽같이 조합원수를 불렸고 우리 조합원들에게도 노조가입원서에 서명을 강요받았다. 몇몇은 견디지 못하고 서명을 했다. 어용노조를 이용해 조합원들의 탈퇴를 종용하는데 사용자의 개입을 밝히기 쉽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과반수노조를 판단하면서 어용노조의 조합비를 사용자의 돈으로 일괄공제를 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과반수노조 지위를 되찾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조합원을 잃고 난 뒤였다(제주의 **대학교).


 

당연히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나 법원을 통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을 받아도 이미 그때는 수개월 뒤, 조합원을 빼앗기고 교섭권과 쟁의권도 모두 잃은 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규노조의 설립 이후 제2노조가 만들어지면 이미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하고 적극적인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한 제2노조의 설립은 단결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된다.


 

▲ 지난 4월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위헌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잠자고 있던 유령노조의 부활


 

분명 노동조합이 없었는데 노동조합만 만들면 고대 유물처럼 숨어있던 유령노조가 기지개를 편다. 본 적도 없는 단체협약도 체결되어 있어서 교섭요구조차 못하도록 막기도 한다. 유령노조가 실제 노동조합을 활동하지 않는 서류상 조직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노조법에는 휴면노조 해산절차를 두고 있지만 이는 이러한 유령노조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복수노조가 금지되었던 시절,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나 활동을 하지 않는 휴면노조를 정리해주지 않으면 다른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 없고 1년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아 노동조합 스스로 해산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 서류상 해산처리를 하는 제도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막기 위해 서류상만들어져 있는 페이퍼노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외관은 다 갖춰두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 없는 경우는 없다. 이른바 바지 노조위원장이 있다. 페이퍼노조를 휴면노조 해산을 통해 없애려면 외관상의 노조 임원이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선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휴면노조 해산까지 3개월, 정말 007작전을 방불케 했어요"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전 1년 가까이 노동조합 설립 후 발생될 수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대응을 준비했다. 그런데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다. 유령노조로부터 노동조합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회사 내 생산직 노동자들을 거의 95% 이상 조직하고 노동조합을 출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심지어 페이퍼노조와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시청에 단체협약 신고도 해두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단체협약을 우리에게는 보여줄 수 없단다. 정보공개신청을 해두고 페이퍼노조의 위원장을 찾아가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단체협약 체결과정을 추궁해서 사용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노동지청의 부당노동행위 근로감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단체협약상 위원장이 될 수 없는 직책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시청에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노조위원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져서 유령노조를 해산시킬 수 있었지만 정보공개를 통해 단체협약을 받는데 2개월이 넘게 걸렸다. 조합원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했다면 정보공개신청으로 단체협약을 받기도 전에 조합원을 다 잃을 수도 있다(경기의 **기계부품 제조업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이후 노동조합의 설립을 막기 위해 보다 진화된 형태의 유령노조가 생겨났다. 서류상 임원뿐 아니라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바로 대항하여 노조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일정수의 조합원을 조직해둔다. 그래서 노동조합 설립 사실이 알려지면 곧장 노동조합 총회를 개최하고 실제 노동조합 활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열을 정비하기 때문에 휴면노조 해산도 불가능해진다.


 

조합원 뺏어가는 위성노조의 페이크(fake) 전략


 

유령노조를 만들어두는 것만으로도 불안했을까. 노동조합 활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봐도 유령노조는 어용노조다. 사용자가 개입하지 않으면 조합원수를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신규 노동조합의 조직화를 방해하기 위한 위성노조를 만드는 경우도 생겨났다. 주로 전국단위로 다수의 사업장이 존재하거나 직종별 특성에 따라 조직화가 용이하지 않는 경우에 위성노조, 즉 복수의 어용노조를 활용하는 것이다.


 

"페이퍼노조는 사무직을 조직하고, 제3의 노조를 만들어 우리 노조를 비방하면서 생산직, 영업직 노동자들의 가입을 가로막았어요."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마자 페이퍼노조(제1노조)가 노조 총회를 했다. 우리노조(제2노조)의 주력인 지역 지점 영업소에서 조합원 가입이 쉽지 않자, 제3노조는 우리노조가 민주노총이라 강성이라고 절대 회사가 우리노조와는 교섭 안할꺼라고 공포를 조장하고 다녔다. 3개 노조 중 과반수노조가 없었고 페이퍼노조는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결정기간 14일동안 교섭대표노조 협의를 하자고 하면서, 노조를 없애고 제1노조로 들어오면 노조 임원도 시켜주고 실제 노동조합 활동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민주노총만 아니면 된다고. 거부했더니 제1노조와 제3노조가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결정기간에 조합원수를 계속 늘리더니, 우리노조를 제외하고 연합을 통한 과반수노조 통지를 했다. 확정공고일 이후의 조합원수는 산정하면 안되도록 정해져 있지만 조합원 가입시점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눈뜬 채 교섭권을 빼앗겼다. 곧바로 제3노조는 제1노조로 통합되었다(전국단위 **엘리베이터 제조판매업체).


 

가짜 노동조합, 그건 그냥 범죄잖아요.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노동조합들, 이들은 엄밀히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범죄행위에 이용된 도구에 불과하다. 사용자가 아니라도 사실상 사용자가 어용노동조합의 설립·운영에 관여·주도·지배개입하였다면 어용노동조합을 조직하는 행위 자체도 부당노동행위이고, 어용노동조합 조직에 관여한 노조 임원도 공동정범으로 부당노동행위의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용노조의 임원뿐 아니라 어용노조를 주도한 사용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노동조합으로서 실질성이 인정되지 않아 설립필증을 취소해도 이름만 바꿔 제3, 제4의 어용노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교섭권과 쟁의권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도록 하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하에서는 노동조합을 이용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는 부당노동행위는 근절될 수 없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자체가 복수노조 상황을 악용하여 배타적으로 노동조합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도록 부당노동행위 안내서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912174912711#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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