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방문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 2신도시 행복주택(A4-1블록) 단지.ⓒ민중의소리
체감온도 영하 13도. 화성 81번 마을버스에서 내린 주민들은 옷깃을 여미며 서둘러 ‘행복주택’으로 향했다. 16일 저녁, 경기도 화성시 동탄 2신도시 행복주택 단지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논란 아닌 논란이 된 단지다.
전용면적 5평에서 13평까지 총 10여개 면적, 1,640세대가 12개 동에 모여 산다. 입주가 시작된 지 3달밖에 지나지 않은 새 아파트는 쾌적해 보였다. 대학생, 청년, 한부모가족, 신혼부부, 주거취약 고령자, 주거급여수급자 등이 입주 대상이다. 신축 아파트를 살 수도, 임대할 수도 없는 서민들의 주거불안을 해소하고 생활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주거복지다.
최근 언론 보도만 보고 이곳을 찾은 기자는 주민들의 ‘행복주택’이 흡사 ‘불행주택’처럼 느껴졌지만, 단지 초입에서 만난 입주민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독립·신혼 새 출발 입주민들 “가성비 만족”
주민들은 “가성비가 좋다”고 입을 모았다. 행복주택은 시세 대비 최대 80% 가까이 저렴한 보증금으로 제공되는 임대아파트다. 보증금 4천, 월세 6만원이면 10평대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
새집에서 첫날을 보내게 됐다는 20대 중반 직장인 A(여) 씨는 “집을 본 첫인상이 좋았다. 혼자 살기 넓고 편하다”고 말했다. 생에 처음으로 독립하는 A 씨는 직장이 가까워졌다. 본가에선 차를 타고 30분을 가야 했지만 이곳에선 대중교통으로도 1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는 “출퇴근 거리도 줄이고 독립도 하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월세·보증금이 싸서 여기로 오게 됐다. 보증금을 4,700만원 정도 내니까 월세가 6만원밖에 안 한다”며 웃었다. A 씨는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친구 세 명과 함께 음식이 든 비닐봉지들을 들고 새집으로 향했다.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모(26) 씨는 ‘예비신혼부부’ 자격으로 행복주택에 입주했다. 신혼집을 알아보다 ‘행복주택’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던 13평 복층형과 같은 구조에서 산다. 그는 “저 같은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에겐 (행복주택이) 좋은 정책”이라며 “월세 부담도 덜고 돈을 더 모을 수 있다. 열심히 해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시 소재 직장에 다니는 강모(28·남) 씨도 가성비를 으뜸으로 꼽았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5만원, 8평짜리 오피스텔에 살던 그는 대출을 조금 더 받아 보증금 4,400만원에 월세 6만원 행복주택에 최근 입주했다. 대출 이자를 생각해도 월세만 한 달 20만원 이상 절약됐다. 강 씨는 “오피스텔은 해도 잘 안 들고 베란다도 없어 답답했는데 여긴 훨씬 쾌적하다. 게다가 월세 부담이 확 줄어드니 살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주택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이 컸다. 입주민들은 서울이나 서울에서 더 가까운 곳에 행복주택이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대료는 싸지만 직장이 너무 멀어 입주를 꺼렸던 사람이 많았다. 단지 1,640세대 중 407세대는 현재 공실이다. 작년 말 기준, 행복주택은 총 3만1,107가구가 공급됐지만, 이중 서울은 715세대에 불과하다.
입주 자격에 대한 미세조정도 필요해 보인다.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 계층에 따라 법에서 정한 소득·지역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입주 신청이 가능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총 3차례 기준을 완화해 모집공고를 내고 있지만 공실은 여전하다.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방문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 2신도시 행복주택(A4-1블록) 단지 내 44㎡ 세대.ⓒ민중의소리
인테리어 ‘눈속임’ 없었다…비용 2천만원에는 ‘갸웃’
문재인 대통령 일행이 방문했다는 곳에 가봤다. 13평(41㎡) 복층 타입과 단층(44㎡) 타입은 모델하우스 형식으로 공개돼 있었다.
대통령과 국토부 장관의 대화가 오갔던 44㎡ 단층 타입 세대에 들어가 보니, 표준인 3인 가구에게 아늑한 거주지가 될 법했다. 거실에 방 두 개, 화장실이 한 개다. 거실은 양쪽 벽에 널찍한 소파와 TV를 놓고 쓰기에 충분한 크기다. 큰 방은 침대와 책상을 놓아도 공간이 넉넉하다. 작은 방은 침대와 책상을 나란히 놔도 공간이 남았다.
다만, 본보기용으로 꾸며진 세대는 옷장이 배치돼있지 않았다. 2~3인 가구 옷장을 배치하면, 좁아 보였다. 베란다에는 세탁기와 작은 탁자, 캣타워가 배치돼 있었다. 좁은 배란다에 가전제품과 가구까지 있으니, 공간이 없었다. 세간의 지적대로 4인 가구가 살기에는 좁았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훌륭한 주거복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날은 LH가 문 대통령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세대의 인테리어 비용으로 약 4천만원을 지출했다는 자료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다.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급히 꾸몄다는 지적이 나왔다.
LH는 “구조변경이나 인테리어 시공은 없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방문한 세대 내부 모습은 일반 입주민이 사는 곳에 가전기기와 가구, 집기 등 소품만 추가한 상태였다. LH 측 해명대로 구조와 인테리어는 동일했다.
해당 단지에서 보일러실과 전기실 등 시설을 위탁 관리하는 업체 관계자는 “가구만 들여놓은 거고, 인테리어 뜯어서 고친 건 없다”며 “다른 곳이랑 샤시·장판·도배 모두 똑같다”고 말했다.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41㎡ 복층 타입 내부를 들여다보니 마감재와 구조가 방문 세대와 동일했다. 돈이 어디에 들어갔는지 의문이었다. 구조변경 없이 13평 아파트 인테리어에 2천만원을 넘게 썼다는 말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주민들은 “보여주기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규정에 따라 입주민들은 못 하나 박는데도 주저하는데 대통령이 온다고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발이었다.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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