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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학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0/13 06:57
  • 수정일
    2012/10/13 06: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엄마의 학교

 
김인숙 수녀 2012. 10. 12
조회수 530추천수 0
 

 

촛불행사[1].jpg

촛불행사

 

 

예슬이는 몇 시간 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인터넷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찾고 있는 중이다. 중3인 예슬이의 학교 성적은 현재 최상위급이다. 그래서 부모는 물론 학교에서도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 예슬이가 컴퓨터를 멈추더니 의자를 뒤로 돌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고등학교는 엄마 학교 갈래.”

그 말에 엄마는 하던 뜨개질을 멈춘다. 자신도 그쪽으로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딸이 먼저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지 못했다. 예슬 엄마는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딸에게 물었다.

 

“왜?”

예슬이는 멈칫멈칫만 하고 선뜻 대답을 안 했다. 엄마는 다시 물었다.

“거기는 공부도 많이 안 시키고 좀 그러는데 왜 엄마 학교를 선택해?”

그제야 예슬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 학교는 뭔가 여유가 있고 특별해. 엄마 학교는 5월이면 그 뭐 행사하잖아? 합창대회도 하고 촛불행렬도 있고…… 나는 그런 것들이 맘에 들고 좋아…….”

 

예슬 엄마는 속으로 참 다행이다 싶고 뿌듯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공부 잘 하는 것은 한 순간이나 학창시절 그 행사, 그 추억들은 30년이 지나도 엄마는 생각난다.

 

합창대회 방청객들.jpg

학교 합창대회 방청객들과 학생들

 

 

정 아녜스 수녀도 해마다 5월이 돌아오면 라일락꽃 향기 속에 날리는 그 시절 그 노래 소리를 듣는다. 새로운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적응하기도 힘들 판인데 담임선생님은 4월 어느 날 조회시간에 힘주어 말했다.

 

“지금부터 딱 한 달 후에는 우리 학교의 역사적 전통이며 가장 중대한 행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반은 똘똘 뭉쳐서…….”

‘선생님~~ 보시다시피 우리는 아직 학교 적응도 힘들고 서로도 도통 모르는데 어떻게 행사를 해요?’

 

나를 포함한 반 친구들은 다 이런 말을 속으로 하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5월 행사를 앞 둔 4월을 우리는 멋모르고 날고 뛰어다녔다. 아마 1학년 전체가 다 그렇게 토끼처럼 뛰면서 보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아욱실리움 합창대회>를 알리는 벽보가 붙었다. 지정곡과 자유곡 채점방법, 심사부분에 대해서 알렸다. 자유곡 선정, 지휘자, 반주자, 의상, 율동 등등 모든 것을 그 반 학생들이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 절대 원칙이었다.

 

도통 뭔지 모르지만 시간이 없다는 촉박함이 밀려왔다. 당장 그날 오후, 우리는 모두 모여 치열한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자유곡 선택을 해야 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도레미송’을 하느냐, ‘마덜 오브 마인 (mother of mind) 을 하느냐 아니면 또 다른 무엇으로 하느냐를 놓고 우리는 손 높이 들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한 표 차이로 자유곡이 선정되었다. 다음은 반주자를 뽑자며 여러 중학교에서 모인 우리는 피아노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수색했다. 찾고 보니 꽤 여러 명이 나타났는데 그중 교회에서 성가반주를 하고 있는 정연이를 뽑았다. 지휘자는 반장인 나영이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참참 의상, 의상은? 의상은 반장과 학교에서 집이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다니면서 나중에 결정하고 우선 합창 연습이 더 중요하니 내일부터 시작하자 결정하고 회의를 마쳤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서로 자기 의견을 표시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사이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하나로 똘똘 뭉쳤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수업 시작 전마다 애교를 떨었다.

 

“선생님~~ 수업 5분만 땡겨서 끝내주세요. 네?”

자비하신 선생님은 3분 전에 끝내 주었다. 우리는 그것도 감개무량 하며 피아노가 있는 일곱 교실 중 한 곳을 찾아 모두 도망가듯 달렸다. 다른 반 보다 먼저 가서 한 번이라도 더 연습을 하기 위한 결사적 투쟁이었다. 그러나 모든 학급 아이들의 심정도 다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날며 뛰며 넘어지면서 달려갔으나 벌써 다른 반 아이들이 피아노 둘레에 모여 연습 중일 때가 허다했다. 점심시간은 언제나 합창 연습 후 밥이었다. 오전 수업 종료 벨이 울리자마자 반장인 나영이는 애가 탔다.

 

“빨리빨리 모여.”

“나, 화장실 좀…… 금방 올게…….”

 

특별한 저음의 보유자 화진이가 오늘도 음을 올리라는 친구들 권고에 삐쳤다.

“이 음이 진짜거든?”

반면 목소리가 큰 순영이한테는

“넌 노래는 잘 하는데 소리를 약간 줄여봐. 응?”

 

 

합창대회[1].jpg

합창대회

 

순영이도 역시 삐쳤다. 반주자도 중간에 삐치고, 노래를 부르다 서로서로 삐치고 삐치면서 우리는 변해 갔다. 불협화음 목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단합된 한 목소리로 되어 갔다. 노래를 정말 못 부르는 송희는 일명 ‘넘순이(페이지터너) 역할을 맡았다. 반주자 옆에서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송희에게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전한다. ‘송희 너, 정말 중요한 역할인 걸 알아, 몰라.’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애쓰는 우리의 호프 반장이 갈수록 안쓰럽다. 나영이는 요즘 꿈속에서도 지휘봉을 칼춤 추듯 휘둘리고 있단다. 팔과 허리가 아파 잠도 못자고 생전 터지지 않던 코피까지 쏟았다. 정보쟁이 희수는 틈만 나면 정보 폭을 넓혔다. 쉬는 시간마다 이반 저반 돌아다니며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정보를 캤다.

 

“야, 니네반 지정곡 뭐야.”

지정곡이 같으면 불리하기 때문이다. 의상 정보도 필요하다. 우리반은 하얀 블라우스에 교복 치마를 입기로 결정했다. 희수의 정보 중 피아노가 있는 교실이 비어 있다는 정보가 떨어지면 우리는 우르르 학급 반 대이동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학교는 합창연습으로 노래가 요들송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한 가지 우리 반이 유리한 조건이 있었다면 이런 것이었다. 합창 대회는 학교 대강당에서 열리는데 이 강당 무대에 서서 연습하는 것은 각 반마다 두 번씩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우리 반은 바로 대강당 바로 옆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정해진 두 번 에 기를 쓰고 플러스 두 번의 기회를 더 만들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교에 모여 연습을 했다.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2-3일은 더더욱 한 번 더, 더 연습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일치하였다. 학원도 빠지자 등 의견이 분분하다. 야식은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생명. 우리의 기쁨. 숫자가 많아 떡볶이는 못 사 먹고, 아이스케키와 빵을 선택한다.

 

합창대회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출연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이것은 절대조건이었다. 만약 한 명이라도 빠지면 감점을 먹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연습 때 보이지 않는 친구들을 우리는 목숨 걸고 찾아 나섰다. 하기 싫다는 친구는 살살 달래고, 아파서 결석한 친구가 있으면 조를 짜서 병문안을 갔다.

 

그 해 4월 한 달을 우리는 노래를 합창하면서 서먹했던 반 아이들과 갑자기 친해지고 우정이 깊어져 갔다. 한 명이 빠지면 감점이라는 점수 때문에 소중하지 않는 친구가 없음이 우리 마음속에 각인 되었다.

 

본 대회 날이다.

평소에 체육 수업을 하러 올 때에는 그렇게 썰렁하고 넓어보였던 대강당이 의자로 꽉 채워지고 심사위원석, 내빈석 등으로 온갖 화분과 팻말로 꾸며 놓은 그날의 강당은 정말 큰 행사를 치른다는 걸 보여 주었다.

 

한 달 동안 이것이 뭐시여 하면서 쫓아다녔던 우리들. 서로 격려하며 끝까지 함께 달려온 우리들. 지금 이 순간 내색은 안했지만 각자는 “나 지금 떨고 있니?” 하고 묻고 있다. 수능 수험생 심정 못지않았다. 우리는 서로 잡은 손목에 힘을 주며 전했다. ‘야, 함께 하잖아. 떨지 말고 해.’ ‘알았어.’

 

강당 밑과 좌우 스탠드에는 전교생을 비롯한 내․외빈들로 꽉 차 있다. 무대 위에 돌덩이처럼 굳은 우리는 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지휘자 나영이가 씨익 웃으면서 신호를 주니 언제 떨었는가 싶게 우리는 초원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상을 받지 못해도 좋다. 부디 떨지만 말아다오.’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우리가 일등 할 거야.’라며 어느새 욕심쟁이가 앉아 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고 무대에 내려와 지정석에 앉아 발표를 기다린다. 화음과 음질, 악상표현, 표정과 율동, 입․퇴장 질서, 관람태도 등이 점수에 포함된다.

 

1학년 노래는 단조롭지만 1년 경력이 있는 2학년 선배 무대는 난이도가 높은 노래들로 탄성을 자아낸다. 민첩한 진행과 깔끔함이 정말 합창대회의 느낌이 났다. 율동으로 우산을 들고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는 여유도 보였다.

 

모든 합창이 끝나고 드디어 점수가 발표되는 순간이다.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인기상, 지휘자와 반주자에게 주는 개인상이 있다. 우리반은 장려상을 받았다. 뛸 뜻이 기뻤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 낯선 상태에서 그러나 가슴 가득 설렘으로 이 날을 준비했기에 최우수상이 부럽지 않았다. 최선을 다 했다는 그것으로 천여 명의 전교생들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고 기뻐했던 그 시절 그 추억… 5월의 꽃향기여, 5월의 노래여…….

 

제2부촛불행사[1].jpg

촛불행사

 

 

2012년 5월 11일. 예슬 엄마와 정순자 아녜스 수녀의 모교에서는 ‘제41회 아욱실리움 합창발표대회’가 열렸다. 초대된 심사위원 중 이름을 날리는 음악교수는 그날 대강당에 모인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의 맑고 고운 합창소리를 들으며 참으로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많은 학생들이 합창대회 중 이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경청하면서 잘 들어주는 행사는 제가 어디 심사평을 가서도 드문 일입니다. 제 딸도 이 학교 졸업생입니다. 50년 역사가 빛나는 모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교복을 아직도 간직하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꺼내보고 잊지 못하는 걸, 이제야 아, 정말 그래서 그랬구나를 오늘 여기 와서 알았습니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두 번째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모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아직도 이런 50년 전통을 이어가는 그 자체가 자랑스럽고 모두에게 상을 주고 싶습니다.”

 

제1부 합창대회가 막이 내리면 전교생 모두는 제2부 촛불행사를 위해 운동장에 모인다. 한 손에 하얀 촛불 하나, 마음에는 소원 가득 품고서…….

 

어쩌면 우리 학교는 이 시대 이 사회 분위기와는 역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빡세게 공부도 시키지 않는다. 일류학교 합격률도 많지 않는 인문계 학교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은 대세의 흐름에 흘러가지 않고 인생의 추억을 심어주는 우리 학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이 누구보다 대단하다.

 

 

 

돈보스코의 예방교육 영성

 

“음악이 없는 학교나 집은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다.”

예방교육자 돈보스코의 말씀입니다.

그는 또 말합니다.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소리지르기, 달리기, 뛰기에 대한 자유를 넉넉히 줍시다. 체육이나 음악, 낭독, 연극, 소풍은 청소년의 넘치는 활력을 배출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자발적인 ‘축제’는 아이들을 순종하게 하며, 도덕성과 건강에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축제의 분위기는 오랫동안 저항할 수 없는 생명의 폭발이며 산소를 공급하여 되살려 내는 그런 호흡과도 같습니다. 음악, 연극, 소풍, 놀이의 축제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며 그렇게 참여한 후에는 새로운 신뢰와 열성으로 일상의 삶과 임무에로 돌아옵니다.

 

합창대회가 어떤 교육적 가치가 있는가? 인간교육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입학하여 모든 것이 낯선 새 학교, 새 학년, 새 친구들이 모여 4월 한 달 동안 학생회 중심으로 준비하는 축제는 서로서로의 소중함으로 자연스럽게 뭉쳐집니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학교 공간이 추억이 없는 시험 장소로만 남아 있다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어른들은 학교의 주인공인 학생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 연극, 춤, 놀이의 공간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학교가 학생들의 감성을 발산하는 축제를 되살려 줄 때 학교 내 친구들 사이의 왕따, 폭력, 자살 등이 사라질 것입니다.

 

예방교육의 축제 분위기가 살아 있는 이 학교는 2011년 교육과학 기술부가 지정한 「학교문화선도우수학교」, 2012년에는「인성교육실천우수학교」로 선정되었습니다. 올해 합창대회가 더욱 뜻 깊은 것은 이 학교를 졸업한 동창생들이 모여 ‘엄마 합창대회’를 창립하였다는 소식과 내년부터는 <아욱실리움 합창발표대회>에 특별출연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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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천주교살레시오수도회 마자렐로센터에서 봉사 중. 순간의 잘못으로 ‘6호 처분’을 받아 6개월간 소년원을 거쳐가는 소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자다. 사회에서 ‘문제아’라고 내모는 아이들에게서 더 큰 희망을 발견하는 수도자이기도 하다. 저서로 <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가 있다.
이메일 : clara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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